2024 월간미술대상 기획자들의 시선:
동시대의 질문과 응답 Ⅱ

6.백년 여행기
7.출구가 어디에요?
8.서울: 서울, 어디에나 있고 아무데도 없는 강홍구의 서울
9.서울의 찬가
10.극장
Special Feature

6.백년 여행기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2023.9.6~2.25

인터뷰어 안소현(독립큐레이터)
기획자 배명지(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작가 정연두

정연두〈세대 초상〉 2채널 HD 비디오, LED 스크린, 컬러 22분 500 × 350cm(× 2) 2023 제공 : 국립현대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이 주최하고 현대자동차가 후원하는 MMCA 현대차 시리즈 2023년도 정연두 개인전. 정연두는 20세기 초 멕시코로 건너간 한인 디아스포라의 이주 서사에 주목하고, 다양한 매체의 작품을 통해 한국과 멕시코를 잇는 사람과 식물의 백년 여행기를 재구성한다. 전시는 20세기 초 한인 이주라는 다큐멘터리적 서사를 넘어 서로 다른 두 세계가 접합되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탈구된 시공간, 이질성과 친숙함의 관계, 이주를 둘러싼 세대 간의 문화적 · 역사적 간극, 경계를 넘나들며 이동하고 번역되는 존재 등에 대해 생각하게 했다. 배명지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는 작가의 신작 4점을 포함해서 총 5점의 대형 설치작으로 전시를 구성했다. 안소현 독립큐레이터는 배명지 큐레이터와 정연두 작가의 시선을 각각 담아냈다.

안소현 《MMCA 현대차 시리즈 2023 : 정연두 –백년 여행기》(이하《백년 여행기》)는 일반 관객에게는 생소한 100여 년 전 멕시코 한인 이주를 다룰 뿐만 아니라, 전시의 모티프도 다양해 관객에게 제공할 정보가 상당히 많아 보였다. 그럼에도 기획자는 전시 설명에서 특정 사건, 다큐멘터리적 방식, 정체성 정치학에 한정되지 않을 것을 강조하면서 역사적 정보에 초점을 맞추지 않으려고 했다. 이 전시가 관객들에게 어떻게 다가가기를 원했는지, 그 과정에서 어려움은 없었는지 궁금하다.

배명지 《백년 여행기》는 1905년 인천 제물포항을 떠나 40여 일간의 항해 끝에 멕시코 유카탄주의 수도 메리다에 도착한 1,033명의 멕시코 한인 이주기에서 출발한다. 신대륙을 향한 제국주의적 열망으로 밧줄 재료인 식물 에네켄의 수요가 증가하며 한인들은 이주를 택했지만, 그 이면에는 쇠락하던 대한제국 말, 멕시코 대농장주 대리인과 일본 지주회사 사이 검은 공모가 작동하기도 했다. 《백년 여행기》는 이처럼 제국주의, 식민주의, 신체 정치를 둘러싼 역사적 맥락을 태생적으로 깔고 있다. 멕시코 한인 이주 서사를 둘러싼 공적/사적 서사가 이처럼 드라마틱하고 무겁고 복잡하기 때문에, 전시가 역사적 정보에 초점을 맞추면 관객은 그 서사에 쉽게 빠져들 수밖에 없다. 나는 이 전시를 통해 관객이 다큐멘터리에 함몰되지 않으면서도 이주 서사를 비평적으로 사유할 수 있는 거리감(distance)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정연두와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의견이 일치했다. 동시에 관객이 20세기 초의 이주 서사를 단선적 역사 속에서 과거로만 바라보지 않고, 과거-현재-미래의 시점과 연결하여 다층적으로 바라보았으면 했다. 《백년 여행기》에서 작가의 작품 전반을 지배하는 연극적 요소, 공연, 퍼포먼스, 특히 소리는 그러한 거리를 유지하고 과거와 현재, 미래의 동시성을 가능하게 하는 주요한 미적 장치였다. 즉 한국의 판소리와 일본의 기다유부시(義太夫節 ), 멕시코의 마리아치(mariachi ) 공연과 황보영주( 1895~1959 )의 시 「나의 길」 등을 경유하며 시, 소리, 그리고 매우 미시적인 사적 서사로 재번역된 멕시코 이주 서사는 오히려 관객의 폐부에 더 깊숙이, 더 설득력 있게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멕시코 한인 이주 서사 주변에서 작동하는 근대성에 대한 비평이나 탈식민 서사 또한 작가가 의도한 이미지, 소리, 시의 수행성을 통해 관객에게 자연스럽게 다가가기를 원했다. 역사의 다성성(多聲性 )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시적 방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4채널 영상 〈백년 여행기〉의 복잡한 설치 과정에서 어떤 영상을 어느 공간에 배치할 것인지 결정하는 데 있어 약간의 어려움이 있었다. 또한 설탕으로 만들어진 〈날의 벽〉이 전시장에서 예기치 않게 녹아내려, 6개월여간의 전시 기간에 최대한 녹아내리지 않게 하는 장치를 전시장 곳곳에 보이지 않게 설치하는 과정이 매우 어려웠다.

안소현 《백년 여행기》 같은 대규모 미술관 전시에서 기획자의 역할은 당연히 중요할 수밖에 없지만, 여전히 개인전에서 기획자의 역할이 무엇인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 전시에서 기획자는 어떤 역할을 했으며, 작가와 어떤 방식으로 소통하며 전시를 완성할 수 있었는지 설명해달라.

배명지 2023년 10회로 종료된 ‘MMCA 현대차 시리즈’는 큐레이터가 후보 작가를 선택하고 프레젠테이션을 거쳐, 심사위원들이 최종 선정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MMCA 현대차 시리즈 2023’의 작가 정연두는 2021년도에 선정되었기 때문에 일찍 논의를 시작할 수 있었다. 약 1년 6개월 동안, 전시의 주제, 제목, 방향, 작품 설치 방식에 이르기까지 모두 기획자와 작가의 소통을 통해 결정되었다. ‘MMCA 현대차 시리즈’에서 기획자의 주요한 역할은 무엇보다 신작의 산파라고 생각한다. 작가가 구상 중인 신작이 작품의 전체 스펙트럼에서 어디에 놓일지, 동시대 한국 미술이나 글로벌 미술신에서 어떤 성좌에 놓일지에 관한 대화 속에서 전시의 주제와 방향을 정해 가는 것 또한 기획자의 역할이었다고 생각한다. 전시 준비 과정에서 이주 서사와 연결된 작가의 구작들-〈엘비스 궁중반점〉( 1999 ), 〈여기와 저기 사이〉(2015 ), 〈높은 굽을 신은 소녀〉(2018 ) 등-과 신작 사이의 공명과 차이에 대해서도 여러 차례 대화를 나눴다.

안소현 그간 다양한 전시를 기획했지만 여전히 ‘미디어아트’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기획자다. 그동안 보여준 전시들에 비추어볼 때 미디어아트에 특화된 기획을 하려고 의도했는지, 아울러 앞으로 어떤 기획을 해나가고 싶으신지 알고 싶다.

배명지 장르로서의 미디어아트보다는, 제도 비판적이고 반예술적 문맥에서 탄생한 대안적이고 저항적 매체로서의 미디어아트와 영화, 조각, 퍼포먼스, 문학 등 타 장르와의 유기적 접속이 가능한 미디어아트 특유의 유연함과 액체성에 많은 관심이 있었다. 동시대 예술 실천에서 ‘다큐멘터리’와 ‘퍼포먼스’에 대한 관심이 자연스럽게 미디어아트 중심의 전시-《역사를 몸으로 쓰다》(2017 ), 《퍼포밍 필름》(2015 ), 《코드 액트》(2014 ) 등-로 이어진 것 같다. 역사적 다큐멘터리와 퍼포먼스, 수행성에 주목한 《역사를 몸으로 쓰다》에서 출품작 대부분이 미디어아트인 것이 대표적인 예다. 또한 미디어아트에 특화된 전시로 《한국 비디오 아트 7090-시간, 이미지, 장치》(2019 )를 들 수 있다. 미디어 환경 변화와 한국 현대미술의 지형 변화와 연동하여 1970년대에서 1990년대 말에 이르는 한국 비디오 아트의 변곡점과 여러 층위를 살펴보고자 한 전시였다.

최근에는 초국가적 관점에서 1960년대 이후 아시아 미술을 비교 연구하고 이를 전시로 확장하는 프로젝트에 주목하고 있다. 《세상에 눈뜨다 : 아시아 미술과 사회, 1960s~1990s》(2018 )를 비롯하여,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진행되고 있는 《접속하는 몸-아시아 여성미술가들》(2024 )도 그러한 관심에서 출발했다. 아시아의 숨은 고수들과 작가들, 연구자들과 협업하고 아시아 미술에 대한 상호 연구를 기반으로 한 전시를 지속적으로 기획해 나가고 싶다.

안소현 월간미술대상이 어떤 전시 기획에 주목하면 좋을지에 대한 의견도 부탁한다.

배명지 최근 월간미술대상 수상자들이 국공립 또는 사립 미술관 기획자에서 독립 기획자로 그 폭이 확장된 것은 시의적절하다고 본다. 전시 규모에 상관없이 전시 기획력을 중점적으로 보고자 하는 시상 의도 또한 고무적이다. 월간미술대상이 한국 미술전시에 주목하는 것에서 나아가, 한국 미술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아시아 미술과 글로벌 미술과의 연계성을 다층적으로 살피는 전시 기획에도 주목하길 바란다.

정연두 〈날의 벽〉 설탕, 허니콤 보드, 흡음재 가변 설치 2023 《MMCA 현대차 시리즈 2023 : 정연두-백년 여행기》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전시 전경 2023 제공 : 국립현대미술관

안소현 《백년 여행기》는 주제나 규모 등 모든 면에서 쉽지 않은 전시였을 것 같다. 정연두 전시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문제를 맞닥뜨렸을 때 큐레이터와 어떤 대화를 나눴는가?

정연두 전시의 규모보다 내가 이주의 경험이 없는 상황, 즉 당사자가 아닌 상황에서, 이주라는 주제, 멕시코에서 만난 한인들, 제주도에서 만난 백년초라는 식물 등 무관해 보이는 것들 사이를 예술적 상상력으로 연결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래서 멕시코에 가서 직접 사람들을 만나보기 전까지는 확정할 수 없는 것이 많았는데, 배명지 학예연구사는 작가의 불안과 불확실성을 견디고 존중했다.

안소현 배명지 학예연구사는 〈세대 초상〉에서 작가가 인물들을 대상화하지 않으려는 노력을 기울인 점에 주목했고 그들과 관계를 맺는 과정도 소개했다. 그렇게 조심스럽게 관계를 맺은 인물들을 그렇게 과감한 방식, 즉 아주 느린 영상으로 대형 LED 스크린에 구현한 이유가 궁금하다. 관객들이 인물들을 어떤 시선으로 보기를 원했는가?

정연두 한국과 멕시코는 수교 역사도 짧고 상호교류나 이주사 연구도 부족한 상황에서, 멕시코 한인들이 매년 멕시코 한인 도착일과 광복절을 기념하는 것을 보면서, 이들이 스스로를 한국인이라고 생각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지 궁금했다. 『멕시코 한인 이민 100년사』를 쓰신 이자경 작가가 “세상의 옳아 보이는 말들은 거짓”이라고 한 대목을 읽고, 한국인의 관점에서 그들을 재단하기보다 그들의 모든 것을 포용하고 최대한 보여주고 싶었다. 관객들이 커다란 두 개의 화면 사이에서 세대 간의 어색함과 복잡함을 고스란히 느끼기를 바랐다. 스케일과 감정의 밀도가 이들을 대상화하지 않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안소현 개인전을 기획자와 함께 만들어가면서 기획자 없이 하는 개인전과 가장 다른 점은 무엇이었는가? 특히 ‘MMCA 현대차 시리즈’를 마무리하는 작가로서 기관의 입장도 고려할 수밖에 없었을 것 같다. 작품의 전시 방식을 결정해나가는 과정에서 기획자와 어떤 의견을 주고받았는지 궁금하다.

정연두 제도가 작가에게 요구하는 것이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지만, 배명지 학예연구사는 그런 것들을 적절히 걸러내서 작가가 자유롭게 작업하게 해줬다. ‘MMCA 현대차 시리즈’ 작가로 선정되고 1년 반 정도의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이주에 대한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가질 수 있었고, 배명지 학예연구사가 나의 작은 프로젝트와 공연을 함께 지켜보면서 쌓인 신뢰가 있었기에 가능한 전시였던 것 같다.

7.출구가 어디예요?
대구미술관 2023.6.6~9.10

인터뷰어 노재민(월간미술 기자)
기획자 정종구(경북대 미술학과 외래강사)
작가 김영진

대구미술관의 선큰가든. 김영진 〈1980-1988〉 회반죽, 돌 15 × 23 × 6cm( × 1170 ) 1980~1988
《김영진 : 출구가 어디예요?》대구미술관 전시 전경 2023 제공 : 대구미술관

2023 대구미술관 다티스트(DArtist)에 선정된 김영진의 개인전. 김영진은 국내 1세대 전위작가로, ‘설치미술’이라는 용어조차 없던 시절부터 ‘설치미술’의 지평을 넓히며 ‘관념과 통념에 익숙해진 회화를 낯설고 생경한 것으로 해체’시켰다. 그는 대구와 경주를 거점으로 오브제, 비디오 영상, 사진, 석고, 종이, 플라스틱, 나무, 흙 등 다양한 매체를 경유하여 공간의 관계를 실험하고, 사진, 불상 오브제, LED 빛 등을 소재로 대칭과 중력을 탐구한다. 김영진과 다수의 전시를 통해 인연을 맺었던 정종구 전 대구미술관 큐레이터는 전시 《출구가 어디예요?》에서 동시대 미술의 새로운 출구에 관한 실험을 확장한 김영진이 제시한 세계와 자신의 신체 행위가 만나는 시공간의 흔적을 정교하게 다듬었다. 정종구 전 대구미술관 큐레이터와 김영진 작가가 함께 전시를 돌아봤다.

노재민 우선 다티스트 프로젝트부터 설명해달라.

정종구 다티스트라는 게 대구 아티스트를 줄인 말이다. 그래서 대상 작가가 대구 경북 지역 기반의 작가로 한정돼 있다. 김영진이 선정되고 나서 내부에서는 ‘사실은 조금 더 큰 상을 받고 큰 전시에 초대돼야 하는데, 다티스트는 조금 부족한 자리가 아닌가’ 생각했었다.

노재민 전시 《출구가 어디예요?》의 소회를 말해달라.

김영진 큰 전시를 처음하면서 큰 공간에 적응력이 조금 생긴 것 같다. 이번에 전시를 하면서 두 작품을 조합해서 한 작업으로 마주치는 방법을 써봤다. 여태까지는 안 해본 방법인데, 두 개가 한 작업이 됐을 때 서로 주고받을 수 있는 어떤 느낌을 확인한 것이 나한테는 큰 공부였다.

노재민 전시를 기획하면서 특별하게 신경 쓴 부분은 무엇인가?

정종구 김영진은 오랫동안 작업을 하지 않았나. 작업을 관통하는 중심을 보여주는 게 중요했다. 그 관통하는 점이 설치미술인데, 설치미술에서 주안점을 둬야 할 부분이 무엇인지, 왜 설치미술을 하게 됐는지, 그런 게 결국은 실험, 확장, 혹은 어떤 한계를 넘어서고 싶다는 작가의 욕구하고 관련된 것 같았다. 그래서 그 부분을 표현하기 위해 작업을 적재적소에 배치했다. 전시 소개 글의 첫 문장이 “초기 1세대 설치 미술가다”라고 시작한 것도 그 부분에 초점을 맞추겠다는 이야기다.

김영진 지금도 한곳에 묶여 정체되지 않으려 오만가지 방법을 생각하고 모든 재료를 사용한다. 이번에 기획자가 정리를 해준 것 같다. 360도로 열어 놓는 방향을 큐레이터가 본 길로 다듬어 간 게 좋은 전시로 귀결됐다.

노재민 아쉬웠던 점이 있었다면 무엇인가?

정종구 공간은 한정된 반면, 작업은 너무 많았다. 작가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나 작품을 다 소개하려면 아마 대구미술관 두어 곳 정도는 있어야 될 것 같다. 소개되지 않은 작업이 많은데 그중에 검은색 모포 같은 걸 뒤집어쓴 사람 형상들이 강가에 쭉 서 있는 작업들도 있고, 청바지에다가 흙을 채워 넣어서 다리만 있는데 사람은 없는 작업들도 있는데, 그런 작품들이 전시에 소개되지 못했다. 도록에 넣었다.

노재민 특히 기억에 남은 것은 대구미술관의 선큰가든이다. 그 공간은 날씨에 따라서 조도나 느낌이 많이 달라져서 작가 입장에서는 까다로운 요소가 많은 공간이라고 생각했다.

김영진 : 스티븐 호킹은 지능을 “변화에 대한 적응 능력”이라고 정리했다. 우리가 쓰던 의미의 지능이 아니다. 기획자가 아이디어를 냈다.

정종구 작업이 선큰가든이랑 잘 맞았다. 코너를 둥글게 주면서 빛에 따라서 음영이 달라지고 그 상태에서 관객들이 움직이면서 참여할 수 있는 작업이었으니까. 기막히게 맞아떨어진 것 같다. 

《김영진 : 출구가 어디예요?》 대구미술관 전시 전경 2023 사진 : 박홍순

노재민 작품이 연대기 순으로 배치되진 않았다.

김영진 50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 순서는 나한테 큰 의미가 없다. 그때나 지금이나 연대로 표시할 이유가 없고 거기에 묶일 이유도 없다.

정종구 각각의 작품을 소개한다는 느낌보다는 오히려 작업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보여준다는 것, 어떤 동선이 하나의 작업이 되는 그런 느낌이 더 중요했던 것 같다.

김영진 동선이 바로 설치 작업이고, 처음 들어오고 나가는 과정 전체가 하나의 작업이다. 나보다도 그 공간을 더 잘 아는 기획자가 잘 맞춰줬다. 소통이 잘 됐다.

노재민 작품 정보 기재 방식에 대해서도 말해달라.

정종구 코너에 모아서 작품들의 연도랑 재료를 적시했다. 단일 작품이라는 느낌보다는 그 전체가 하나의 작품이 되는 게 중요했고, 작품 하나하나 이해하는 게 크게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중요한 것들은 따로 메모를 했다.

노재민 도록을 보니 작가 노트나 드로잉과 같은 아카이브 자료가 많았다. 전시에서 아카이브를 같이 공개하지 않은 이유도 궁금했다. 사실 그게 반드시 옳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대부분 전시에서 과거 시대를 설명하기 위한 보조 자료로 아카이브를 보여주는 방식을 채택하는 것 같다. 이번 전시는 그러지 않아서 눈에 띄었는데, 그 이유가 있었는가?

정종구 전시에서 아카이브를 놔둘 자리가 없었을 거다. 아카이브가 대부분 작품 사진이거나 작가 노트인데, 사진이나 자료로 보지 않고 작품을 직접 보는 게 김영진의 작업에는 좀 더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예를 들어서 모조품이긴 하지만 고양이 사체를 직접 보는 거와 사진을 보는 거는 차이가 좀 크니까 말이다.

김영진 그 고양이 실물이 있었다. 옛날에 소금에 재놨던 게 있는데, 실물 전시를 하자고 하니까 기획자는 문제가 생기면 해결할 수 없다고 했다. (웃음 ) 나는 할 얘기가 있었다. 동물협회가 와도 방어할 수 있는. 내가 그 동물을 죽여가지고 매다는 게 아니고, 오히려 그 반대로, 시장에 가니까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상황을 보고 (이슈화해서 막아 보려고 ) 거기서 끄집어낸 거다. 오히려 사람들이 동조해줘야 할 일이었다. 공무원은 자기 영역에서 절대 안 물러나려고 하겠지만. 학예사가 중간에서 해결해줘야 할 일들이 있다.

정종구 아쉬운 점이다. 그거 전시됐으면 냄새가 좀 많이 났을 거다. (웃음)

김영진 마른 명태만 해도 냄새는 그렇게 안 나지 않나. 그런 문제들이 특히 내 작업에서는 조금씩 있다. 안 되면 밀어붙이진 않는다. 적응해서 환경에 그대로 수긍을 하는데 정종구 과제가 하나 남은 거다.

노재민 마지막으로 다음에 기획하고 싶은 전시와 참여하고 싶은 전시를 묻고 싶다.

김영진 대구현대미술제가 시작한 지 50년째다. 전시에 참여했던 박현기, 황현욱 두 분은 돌아가셨고 이강소, 최병소 두 분이 지금 살아계시지 않나. 대구현대미술제에 같이 참여했던 김용익, 이건용, 김용민 세 명이 다시 같이 만날 수 있는 전시를 언제 대구에서 한번 마련하면 좋겠다.

정종구 그 중 김영진은 조금 독특하다. 다른 작가들은 대학을 진학해서 제도권 교육을 받으면서 성장했는데, 김영진은 서울대 내에 카페를 운영하면서 연극, 음악, 다양한 영상들을 경험한 것이다. 그게 굉장히 중요한 것 같다. 당신께서 활동했던 1970년대하고 비교해서 지금 대구 경북 쪽 미술이 실험성은 좀 덜한 것 같다. 너무 얌전하고 정체돼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전시는 지금과 좀 다른 느낌, 예를 들어서 정치적인 이슈를 다루거나 미술계 내부에서 어떤 확장을 이야기하는 젊은 작가들하고 같이 전시를 한 번 하는 게 필요할 것 같다.

《김영진 : 출구가 어디예요?》 대구미술관 전시 전경 2023 사진 : 박홍순

8.서울: 서울, 어디에나 있고 아무데도 없는 강홍구의 서울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 5.2~8.4

인터뷰어 강홍구(미술가)
기획자 주은정(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 학예연구사)

《서울 : 서울, 어디에나 있고 아무데도 없는 강홍구의 서울》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 전시 전경 2024 제공 :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의 강홍구 컬렉션은 2018년 작가가 기증한 불광동 작업 컬렉션(5000여 점 )과 2023년 추가 기증한 은평뉴타운 작업 컬렉션( 1만5600여 점 )으로 이루어졌다. 전시는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의 소장자료 기획전으로, 소장한 강홍구 컬렉션을 바탕으로 작가의 작업세계 안에서 ‘서울’이 갖는 의미를 조명한다. 강홍구가 촬영하고 기록한 서울은 이미 사라진 서울이지만 지금도 어디서나 만나볼 수 있는 도시의 모습이고 과거의 서울이면서 현재 서울의 모습이기도 하다. 주은정 학예연구사는 강홍구의 미발표 초기작을 포함하여 작품 88점, 자료 125점과 전시를 위해 특별 제작한 컬렉션북 4권으로 전시를 구성했다. 강홍구 작가가 주은정 학예연구사에게 전시에 관해 질문했다.

강홍구 지금까지 기획한 전시에 대해 소개해달라.

주은정 상업 갤러리와 비영리 공간에서 전시 기획을 하다가 2013년부터 독립적으로 활동하면서 전시 기획보다는 연구 프로젝트와 번역 일을 주로 했다. 2021년에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 개관 준비팀에 합류해 개관전 《명랑 학문, 유쾌한 지식, 즐거운 앎》(2023 )을 기획했고, 두 번째로 기획한 전시가 《서울 : 서울, 어디에나 있고 아무데도 없는 강홍구의 서울》이다.

강홍구 어떤 과정을 거쳐 이 전시를 맡게 되었으며 전시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주은정 서울시립미술관의 모든 전시는 전시발의회의에서 기획안을 제안하고 심사를 통과해야 진행할 수 있다. 작년 전시발의회의에서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가 소장하고 있는 강홍구 컬렉션을 주제로 한 소장자료 기획전 안을 제출했고 제출한 기획안이 심사를 통과해 전시가 실행될 수 있었다. 제출한 기획안은 강홍구 컬렉션과 그 자료를 바탕으로 제작된 작품을 함께 묶어 작가가 구축한 ‘서울 아카이브’로 해석하는 것이 주요 골자였는데, 근 20여 년에 걸쳐 생산된 자료를 바탕으로 작가의 작업 경로를 통시적으로 훑어보는 계기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전시가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다. 어려운 질문인 것 같다. 전시는 공론의 장을 열고 그 안에서 발화하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이 때문에 전시의 관점과 입장이 분명해야 발화의 형식과 내용의 완결성이 높아질 수 있다. 그리고 공허한 메아리가 되지 않도록 하려면 발화가 대화로 이어져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경청하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강홍구 전시 전체의 콘셉트에서 아카이브와 작품의 관계 설정이 관건인데 어떤 생각으로 계획하고 접근했는가?

주은정 ‘아카이브도 있는 전시’는 기획, 진행해봤지만 ‘아카이브 전시’는 경험이 거의 없었다. 미술관이 소장한 최민 컬렉션을 주제로 다룬 《명랑 학문, 유쾌한 지식, 즐거운 앎》이 처음 기획한 아카이브 전시였다. 그간 직, 간접적으로 경험한 전시를 돌아볼 때 전시에서 아카이브가 소개되는 경우, 특히 작가 아카이브는 작품을 설명하기 위한 보조자료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아카이브는 작품이라는 최종 목적지를 향해 가는 중간 과정의 산물이나 작가 활동의 증거물로서 제시되는 경우가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명랑 학문, 유쾌한 지식, 즐거운 앎》을 기획하는 과정에서 아카이브라는 것이 과연 특정 작가나 작품의 증거물에 그치고 마는 자료인가 하는 물음이 생겼다. 이것은 자연스럽게 아카이브를 최종 결과물인 작품과 동등하게 혹은 독립적인 자료로서 다루어볼 여지는 없는가 하는 질문으로 이어졌다. 그래서 강홍구 컬렉션 전시에서는 자료와 작품의 구분과 위계를 벗어나서 전체를 작가가 서울을 관찰한 기록물인 ‘서울 아카이브’로 해석해 보고자 했다. 작품과는 별개로 아카이브가 갖고 있는 독립적인 맥락과 의미를 발굴해보고 싶었던 것이다.

강홍구 진행 과정에서 어려운 점, 해결해야 할 문제들은 무엇이었고 어떻게 해결했는가?

주은정 강홍구 컬렉션은 2만 점이 넘는 디지털 이미지 파일로 구성되어 규모가 방대했고, 서울을 주제로 제작한 작품의 양도 상당해서 무엇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보아야 할지 막막했다. 물리적인 시간의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 점이 가장 어려운 부분이었는데, 때마침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지원사업 일환인 작가 연구집이 발간되면서 작업의 흐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받았다. 무엇보다 작가가 작업과 관련해 쓴 책과 글이 가장 큰 기본 토대가 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강홍구의 서울 아카이브’의 좌표를 그려볼 수 있었다. 전시를 기획하는 과정은 별다른 어려움은 없었고 오히려 즐거웠다. 팀워크가 너무 훌륭했기 때문인데, 덕분에 전시를 함께 만들어 간다는 것의 즐거움과 보람을 깊이 체감할 수 있었던 소중한 기회였다. 이 자리를 빌려 전시를 함께 만든 선생님을 비롯해 최장원 건축가, 조규형 디자이너, 김지현 코디네이터에게 다시 한번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다.

강홍구 전시를 마치고 난 느낌은 어떤가? 또 연관 강연이 많았는데 소회는 어떠한가?

주은정 일단 전시가 별 탈 없이 무사히 마친 것에 안도한다. 그리고 월간미술대상 우수 전시로 선정되어 기분 좋은 소식을 나누며 전시를 마무리하게 된 것도 무척 감사하게 생각한다. 이번 전시는 기획 단계에서부터 전시 기간 중 꾸준히 이야기를 듣고 나누는 자리를 마련해 강홍구 컬렉션의 다른 의미를 발굴하고 해석하면서 전시의 내용을 살찌워나가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그래서 전시 연계 프로그램에 상당한 공을 들였는데, 한 주에 한 개 이상의 프로그램을 진행하자니 조금 버겁기도 해 욕심이 너무 과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들이 강홍구 컬렉션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시각을 더해주고 관람객들이 본인이 경험한 서울의 이야기를 나누어주면서 전시가 계속해서 확장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고 이것이 전시를 만든 중요한 또 하나의 축이었다고 생각한다.

《서울 : 서울, 어디에나 있고 아무데도 없는 강홍구의 서울》
서울시립미술아카이브 전시 전경 2024 제공 :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

《서울 : 서울, 어디에나 있고 아무데도 없는 강홍구의 서울》
서울시립미술아카이브 전시 전경 2024 제공 :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

9.서울의 찬가
보안 1942 2023.12.16~1.6

인터뷰어 김솔지(독립큐레이터)
기획자 최주원(독립큐레이터)

김한주&김도언 《서울의 찬가》보안1942 전시 전경 2023
© I TALK ABOUT CONTEMPORARY 사진 : 유영진

근현대사를 동시대 미술로 바라보고 다시-쓰는 시리즈의 마지막 전시. 이 프로젝트는 《현대1차 : 어디에 기르는가》(2020)에서 시작해서 《신현대》(2021 ) 3부작을 통해 여러 시제를 유기적으로 연결하여 새로운 지금 이 시대, 현대를 실존적으로 독해했다. 2022년에는 서울의 현대사를 관통하는 한강을 주제로 《한강》을 선보였다. 전시 《서울의 찬가》는 이 프로젝트의 최종 종착지이자 미래적 대안을 제시하는 희망을 노래했다. 전시는 노래 <서울의 찬가>의 상징성과 의미에 대해 민족지학적 연구를 시행하고 현재 서울의 맥락과 연결하여 살폈다. 그리고 이를 동시대 미술 문법으로 재맥락화해 여전히 척박한 서울 안에서 대안적 틈새를 제시했다. 김솔지 독립큐레이터가 최주원 독립큐레이터의 행적을 살폈다.

김솔지 《서울의 찬가》는 그 자체로 하나의 독립된 전시이자, 2020년부터 진행해 온 전시 프로젝트의 마지막 전시이기도 하다. 2020년부터 2023년 《서울의 찬가》에 이르기까지, 그동안 시리즈로 개최해 온 전시를 소개해달라.

최주원 2020년 원주 캠프롱 전 미군기지가 개방되었다. 캠프롱에서 장소 특정적 전시 《현대1차》를 준비하면서 한국 현대사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졌다. 이원 시인의 〈사람들은 아파트의 어디에 큰 개를 기르는가〉를 읽으며, 왜 한국 현대사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은지 답을 내리게 되었다. 아파트에 적응해서 사는 큰 개처럼, 우리는 이 나라 어딘가에 적응해서 어떻게든 살고 있다. 우리가 적응해 살아가는 이곳에 묻혀 있는 감각들과 과거의 것들에 초점을 맞춰 《신현대(新現代 )》라는 전시 시리즈를 만들게 됐다. 《신현대》는 조금 어두웠는데, 1970~1980년대 사이키델릭 음악에 대해 유지완 작가와 의견을 나누면서 ‘네오-현대이즘’을 끌어와 현대사를 이야기하는 전시를 했다. 이 전시에서 ‘한강’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 파생되었다. 한강이 서울에서 중요한 슬로건이자 지명인 만큼, 1960년대 후반 강국진, 정강자, 정찬승 선생님의 〈한강변의 타살〉이나 《서울의 찬가》에 참여하신 임민욱 작가가 유람선을 타고 한강 둔치와 상호작용을 하는 퍼포먼스 〈S.O.S〉처럼, 예술가들에게도 많은 영감을 준다.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한강에서 유실되는 한국 현대사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자는 취지로 《한강》을 만들었다. 부유하는 것들, 떠오르는 것들이 있는 전시였다. 한강에서 떠오르는 것들, 유실된 것들을 이야기하다 보니 정리하는 작업이 필요해져서 《서울의 찬가》도 만들게 됐다. 서울을 작은 마을로 생각했을 때, 개인의 이야기는 무엇일지, 우리는 어떻게 서울에 살고 있는지에 대해 전시로서 정리해보고 싶었다.

김솔지 《서울의 찬가》에서 서울을 하나의 ‘로컬’로 바라보며 다양한 면모를 담아내려 한 것 같다. 참여 작가 선정 이유가 궁금하다. 또, 로컬로서 서울의 면면이 현대미술을 통해서 잘 반영되었던 지점이 있다면 무엇인가?

최주원 흔히 로컬이라고 하면 홍대앞, 연남동, 연희동 등 좁은 지역이나 하나의 동네를 이야기한다. 지금, 이 시대와 연관 지어 서울을 거대하게만 바라보면, 서울이란 곳에 대해 무감각해지며 체감하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서울을 조금 더 작은 규모로 쪼개는 느낌으로 ‘로컬’이라고 바라보고 싶었다. 이 마을이 나에게 무엇인지 이야기할 수 있는 규모로 다룬 것이다. 참여 작가를 다양한 세대와 다양한 이야기를 가진 분들로 구성해서 다성적 화법으로 서울을 들여다보고자 했다. 즉 어떤 것에 국한될 수도, 개인의 이야기일 수도 있고, 반대로 개인의 이야기가 아닐 수도 있는, 열린 관점에서 서울의 로컬을 이야기하는 다양하고 작은 이야기들로 전시가 시작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만들었다.

김솔지 서문에서 《서울의 찬가》는 “아름다운 서울에서의 현재를 살아가겠다는 의지를 대안적으로 제시”하는 전시라 소개했다. 전시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기획 의도를 어떻게 담아냈는가?

최주원 팬데믹을 지나고, 국내나 국외 모두 상황이 좋지 않았다. 무차별적 살인 예고가 올라오고 빚에 허덕이는 사람이 다수가 되는 서울에 사는 것에 대해서 공포와 불안을 느끼며, 무기력해진 자신을 마주하기도 했다. SNS나 유튜브를 보며 우리 세대를 다루지 않는다고 느끼기도 했다. 왜 청년세대가 ‘포기하는 세대’, ‘캥거루족’ 등으로 불리는지 역추적하다 보니, 거대한 현대사에 대한 것이 와닿았다. 과거 역사에서 시작된 것들이 묻어나서 지금의 나에게,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치는 현상을 관찰하고 전시라는 방법론으로 작성하고 있다. 현대 사회에 대한 보고서, 저만의 보고서를 작성하는 것이다. 이때 1966년 발표된 가수 패티김의 〈서울의 찬가〉에 담긴 그때 서울의 상황이 지금 우리가 서울에서 느끼는 어둠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고, 정치적 목적으로 만들어져 아름다운 서울에서 산다고 하는 희망찬 노래를 역설적으로 차용해 봤다. 조금이라도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어떤 의지를 모색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있었다.

신신 《서울의 찬가》 보안1942 전시 전경 2023
© I TALK ABOUT CONTEMPORARY 사진 : 유영진

김솔지 《서울의 찬가》 전시 타이틀이 기획자의 마음을 담고 있는 듯하다. 디자이너, 작가와의 작업에 대해 듣고 싶다.

최주원 신신에서 《서울의 찬가》 전시 전체 아이덴티티를 만들었다. 내가 패티김의 〈서울의 찬가〉를 차용했다는 것을 알고, 패티김의 LP를 찾아보았다고 한다. 100년 가까이 된 보안여관 건물 유리창에 패티김의 앨범 ‘하얀집’ 커버 왼쪽 상단에 인쇄된 ‘서울의 찬가’를 집자해 설치해보자는 논의를 했다. 그렇게 〈적재적소서울의 찬가〉라는 작업이 나왔다. 장소와 맞게 잘 구성해서 보여준 작업이었던 것 같다. 지나가다가 들어오는 관람객이 봤을 때 어렵거나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을 수 있는데, 건물 외벽 유리창에 “서울의 찬가”를 배치해서 서울의 찬가에 대해서만 이야기할 것이라는 따뜻한 마음이 전해질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만들면서 기뻤고, 실제로도 많이들 좋아해 주셔서 뜻깊었다.

유지완의 경우에는 《신현대》 때부터 사라진 변사의 목소리를 발췌해서 무빙이미지와 사운드 작업을 하고 있다. 작가가 연구하는 한국 현대사와 내가 연구하는 한국 현대사가 맞닿아있어서, 전시를 기획할 때 많은 영감을 받는다. 장영혜중공업은 2020년 《현대1차》부터 《서울의 찬가》까지 매해 그룹전에 참여해주셨다. 중학교 때 로댕갤러리에서 열린 장영혜중공업 개인전 《문을 부숴!》를 보고, 현대미술에 대한 꿈과 강렬함을 갖게 되었다. 그것을 계속 이야기하고 논의하게 될 수밖에 없는, 나의 모티프이자 원천인 팀이다. 《현대1차》가 열린 곳, 캠프롱이 미군기지였을 때 과거 원주에서 일어났던 사건 뉴스를 픽션이 있는 영상으로 만들었던 〈px파전어때〉가 정말 좋았다. 예술을 통해서 현대사를 어떻게 말할 수 있는지, 구현 방법에 대한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작업으로 알려주는 작가라고 생각하고 늘 존경한다. 이우성은 인스타 라이브 방송에서 항상 한강을 그린다고 했고, 들어가서 ‘좋아요’를 누르곤 했다. 《한강》을 준비하면서 함께 한강에 자주 간 작가 중 한 분이다. 유람선도 타고, 한강 상류, 하류, 다 함께 갔다. 인스타 라이브 방송에 대한 작업을 하시려나 생각했는데, 원효대로를 배경으로 한 한강 걸개그림을 그려주셨다. 그림을 펼치던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굉장히 감동적이었다. 신작의 경우에는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작품을 보게 되었을 때, 나보다 더 깊이 이 전시를 읽어간 작가의 작업을 마주할 때마다 감사하고,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한다.

김솔지 캡션의 형태가 인상적이었다. 어떻게 만들게 됐나.

최주원 캡션을 따로 붙이고 싶지 않았다. 관람객이 작품을 바로 체감하면 좋겠기에 이전 전시부터 작품의 번호를 매기고, 캡션은 가이드북에 넣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한강》에서처럼 《서울의 찬가》에서도 현대사의 거대한 모뉴먼트를 전시에 녹여내고 싶어서 이런 요소를 전시 디자인에 활용했다. 《한강》을 준비하며 공간 디자인팀 ‘괄호’와 그래픽 디자이너 ‘신신’과 논의해 캡션도 모뉴먼트처럼 기념비로 만들자고 해서 실제로 묘에 쓰는 비석 제품에 흰색 그래픽을 넣어 만들어 썼고, 《서울의 찬가》에 가지고 와서 재사용했다.

김솔지 전시를 기획하면서 아쉬웠던 지점, 달리 질문하자면 더 구현해 보고자 했던 부분이 있었나?

최주원 《서울의 찬가》 같은 경우에는 김한주+김도언의 공연과 유지완의 퍼포먼스가 오프닝에 있었다. 여건이 되었다면 아카이브 해서 전시장 한쪽에서 선보이고 싶었는데, 여건이 마땅치 않아서 현장에서 공연하고 증발해 버려 아쉬움이 있다, 어떤 면에서는 이번 전시의 톤앤매너와 맞았지만, 공연이 너무 좋았기 때문에 두 뮤지션의 공연을 영상으로 기록해 놓지 않은 것에 아쉬움이 생겼고, 다음 기회에는 오프닝을 못 본 관람객에게도 조금 더 친절하게 다가가는 장을 더 만들고 싶어졌다.

김솔지 앞으로 기획하고 싶은 전시, 향후 계획을 듣고 싶다.

최주원 지금까지 1970~1980년대 한국 현대사를 중심으로 전시를 해오면서, 그 이후 작업에서는 점점 미래로 갈 줄 알았는데, 점점 과거로 가게 된다. 시류일 수도 있는 냉전에 대한 기억을 한데 모아서 기억하는 것들, 어둠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은 생각이 있고, 한국의 지형에 대한 지리적 연구에도 관심이 있다. 특히 한국의 산이 흥미로워, 점점 산으로 가고 있다. 또 동료 큐레이터분들과 공동의 이야기를 정말 해보고 싶다. ‘기억해가는’ 기획자들과 공통의 주제로 이야기하는 것은 또 다른 모색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충녀》시리즈, 여성 서사 이야기도 계속 저희 ‘아이토크어바웃컨템포러리’ 팀과 이야기해 나갈 예정이다.

김솔지 《서울의 찬가》로 제20회 월간미술대상 전시 부문 우수 전시를 수상했다. 수상했을 때 기분과 함께
월간미술대상의 방향성에 대한 의견이 있다면 말해달라.

최주원 좋아했던 전시들과 함께 상을 받아서 기뻤다. 전시는 하고 나면 잊힐 수도 있는데 회자되고 소개되니까 뜻깊었다. 계속 드러날 수 있어서 좋았다. 전시가 끝나고 지나쳐버릴 수 있는, 기억에서 사라져 버릴 수 있는 전시들을 그때마다 모아서 격려하고 칭찬을 해주면 그것을 통해서 누군가는 굉장한 동기가 될 것이고, 굉장한 응원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응원과 격려에 인색한 사회이기 때문에, 그런 것들이 있으면 어떤 부분에서는 긍정적으로 영향을 줄 것이다. 선정되어 상을 받은 감사한 마음 한편으로는, 모든 전시와 모든 작업은 누군가에게 의미 있고, 기억에 남겨둘 소중한 것이라는 생각도 있다. 독립 큐레이터들이 응원과 격려를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지면 좋겠다.

장영혜중공업 《서울의 찬가》 보안1942 전시 전경 2023
© I TALK ABOUT CONTEMPORARY 사진 : 유영진

10.극장
부산시립미술관 2023.9.26~12.17

인터뷰어 정다영(독립큐레이터)
기획자 황서미(부산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극장》 부산시립미술관 전시 전경 2023 제공: 부산시립미술관

《극장》은 2023년 미술관 건축물 자체에 주목한 국내 주요 미술관 전시들의 흐름을 반영하는 동시에 가장 적극적인 공간 개입을 선보였다. 1998년 개관한 부산시립미술관이 리노베이션을 위해 잠시 문을 닫기 직전에 치른 전시였다(2026년 재개관 예정 ). 기획자는 이러한 공간적, 시간적 조건 위에서 극장이라는 이름의 임시 장소를 전시장, 복도, 로비 등의 공간에 세웠다. 그는 작가들과 함께 미술관 공간에 대한 물리적 해석뿐만 아니라 미술관의 기능과 그것의 확장 가능성이라는 두 가지 주제를 중첩시켜 보여주고자 했다. 2016년 미술관에 합류한 이후 주로 평면이나 프로젝션 매체를 다뤄왔다는 황서미 학예연구사는 2025 베니스건축비엔날레 공동 예술감독 정다영에게 “《극장》이 큐레이터로서 향후 실천에 변화의 기폭제가 된 전시”였다고 말했다. 더 나아가 “앞으로 2차원 매체의 한계에서 빠져나와 물리적 장소에 집중한, 좀 더 입체적이고 공간적인 측면을 고려한 전시를 추진하고 싶다”고 전했다.

정다영 수상 소감과 전시 기획 배경을 말해달라.

황서미 《극장》의 전시 부문 수상 소식을 들었을 때 무엇보다 먼저 참여 작가들이 생각났다. 이 전시는 큐레이터 혼자가 아닌 작가들과 함께 오랜 시간 논의하며 만든 전시라는 점이 특별하다. 작가들과 협력하면서 함께 공간을 탐구한 것이 전시의 질을 높였다고 생각한다. 이 상은 그들과 함께 만든 성과다. 《극장》은 부산시립미술관 리노베이션 전 마지막 전시라는 점을 고려한 프로젝트였다. 그 맥락에서 내가 발의했던 내용은 미술관의 물리적 공간과 그 기능적 역사와 기억에 대해 말하는 것이었다. 같은 시기 개최한 부산시립미술관의 다른 전시가 미술관이 주최한 전시의 역사에 대한 것이었는데, 이와는 또 다른 관점에서 미술관을 조명한 셈이다. 물론 곧 건축 공사에 들어가는 시기여서 공간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기에 《극장》이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미술관 시설 관리 측면에서 공간을 훼손하는 것에 대한 내부의 우려가 컸다. 전시 기간 내내 안전 문제나 유해 물질 검출 여부 등 신경 써야 할 점이 많았다.

정다영 작가 선정 기준과 전시 주제에 관하여 소개해달라.

황서미 총 13명의 작가가 참여했다. 그중 11명이 커미션 작업을 진행했다. 초대 작가는 크게 두 개의 서로 다른 주제를 각각 잘 해석할 수 있는 분들로 구분해서 선정했다. 하나는 물리적 공간 자체를 해석하는 작가군이었고, 다른 하나는 미술관 공간의 기능적 역사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줄 수 있는 작가 그룹이었다. 작가들과 작품 제작을 위해 소통한 셈이었지만 결국 나도 이 과정에서 미술관 공간과 그 역할에 대해 깊이 들어가면서 몰랐던 사실을 많이 알게 됐다. 두 그룹을 대표하는 작가로는 각각 다이아거날써츠와 무진형제를 들 수 있다. 다이아거날써츠는 내가 잘 몰랐던 부산의 지리적 특징과 도시 맥락, 그리고 그 조직 위에 놓인 미술관의 건축 요소들을 이해할 수 있게 해주었다. 무진형제는 어떤 장소나 공간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작가의 관점으로 새롭게 아카이빙하는 작업을 해왔는데, 미술관 안을 채우고 떠나는 예술가들의 입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나아가 이 두 작가(팀)와의 대화를 좀 더 발전시켜서 도록에 수록하고 싶었다. 결과적으로 전시 리뷰의 형식보다 두 작가가 탐구한 내용을 책에 담게 되었다.

《극장》 부산시립미술관 전시 전경 2023 제공 : 부산시립미술관

정다영 작업의 전개 과정은 어떻게 되는가?

황서미 작가들에게 미술관이라는 공간이 가지는 과거, 현재, 미래를 픽션의 형식이어도 좋으니 관객들이 각자 다르게 볼 수 있는 이야기로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다. 그 요청에 작가들이 큰 흥미를 보였다. 작품 구상과 제작을 위해 미술관의 과거 기록들을 최대한 찾아서 작가들에게 전달했다. 물론 그 자료들도 유실되거나 소실되어 충분하지 않았던 점도 있지만, 작가들은 그보다 미술관이 리노베이션 된 이후의 모습을 상상하는 일에 더 매력을 느꼈던 것 같다. 기존 로비-복도 공간이 사라지고 새로운 전시 공간이 된다는 지점에 관심을 가진 작가가 많았다. 예를 들어 로비의 진달래 박우혁 작업이 앞으로 전복될 공간 상황을 적극적으로 해석한 설치라고 할 수 있다.

정다영 작업을 매개하는 전시 디자인도 궁금하다.

황서미 김동희는 전시에 초대된 참여 작가이자 공간 디자이너라는 두 가지 역할을 모두 수행해야 했다. 그는 공간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트인 전시 디자인을 구현하고자 전시장 동선이 강제되지 않도록 작품과 공간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 벽을 세우고 집기를 만드는 통상적인 전시 디자인이 아니라 공간의 흐름을 만들어 냈다는 점이 중요하다. 실제로 김동희가 들춘 물리적 건축 요소에 시선이 머물면 그다음 다른 작가의 작품으로 자연스럽게 발걸음이 이어지는 식이다. 그의 작품이 《극장》의 전체 개념을 잘 대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정다영 관객과의 교감은 어떠했는가?

황서미 관객 수가 블록버스터 전시처럼 폭발적으로 많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하지만 다른 전시에 비해 관객의 반응이 직접적으로 느껴진 전시였다. 미술관이 리노베이션을 앞두고 곧 문을 닫는다는 소식이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문을 닫기 전에 전시를 보러 가야 한다는 목적으로 온 관객도 많았다. 이들은 전시장에 도려낸, 파낸, 허문, 혹은 다시 세운 파격적인 부분들을 꽤나 즐겁게 감상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도 그런 관객들의 반응을 현장에서 지켜보며 공간 자체를 이렇게 즐길 수 있구나라고 다시금 확인하게 되었다.

정다영 전시의 후속 효과와 미술관의 사회적 역할은 무엇인가?

황서미 이 전시는 단순히 미술관의 물리적 변화를 다루기보다 미술관이 사회적 공간으로서 어떻게 기능할지 탐구하고자 했다. 관객들로 하여금 미술관이 단순히 작품을 감상만 하는 공간이 아닌, 다양한 목적으로 방문할 수 있는 장소로 볼 수 있도록 만들고 싶었다. 전시 제목을 ‘극장’으로 정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이런 관점에서 이 전시는 내가 2022년에 기획했던 부산시립미술관 《나는 미술관에 00하러 간다》 전의 문제의식과 연결되어 있다.

리노베이션 후 미술관 공간이 어떻게 바뀔지 그 물리적 변화 자체를 정보 차원에서 알려주고자 만든 전시는 아니다. 내가 이 전시에서 탐구한 것들이 재개관 후 실제 공간에 직접적으로 적용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다만 미술관이 ‘극장’의 역할을 한다는 것은 단순히 작품을 시각적으로 감상하는 것을 넘어 누군가에게는 쉼과 교육의 공간이 되기도 하는, 미술에 국한되지 않은 복합적인 기능을 하는 공간이 되자는 바람이 있다. 동시대 미술을 전시하는 공간을 넘어 사회적 장소로서 미술관이 기능할 때 미술관은 진짜로 과거와 달라진 새 미술관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자체가 1998년 부산시립미술관이 개관했을 때 관객이 미술관에 걸었던 기대와는 다른, 25년이 지난 지금 우리가 미술관에 거는 변화일 것이다.

정다영 기획자로서 앞으로의 방향은 무엇인가?

황서미 《극장》을 통해 오프라인 공간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전시의 매력을 느꼈다. 관객과 현장에서 교감할 수 있었고, 그간 내가 했던 전시 중 가장 힘들었지만 그만큼 의미있는 경험이었다. 평면 중심의 작업을 전시하는 것에 갇혀 있던 나의 한계도 열어볼 수 있는 계기였다. 다음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직접 체험할 수 있는 대형 설치 작업을 하고 싶다는 욕구가 커졌다. 지금은 미술관이 공사로 휴관 중이라 온라인 전시를 준비하고 있지만, 오프라인 전시에서 느낀 희열이 그립다. 

《극장》 부산시립미술관 전시 전경 2023 제공 : 부산시립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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