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제4회 제주비엔날레
《아파기(阿波伎) 표류기: 물과 바람과 별의 길》

제주도 일대
2024.11.26~2.16
Theme Feature

타오 야 룬〈방랑자〉
VR, 컴퓨터, 3D 스테레오 카메라, 5G 네트워크, 로봇 15×25×100cm 2023

성긴 표류기
노재민 기자

양쿠라〈이름없는 자들〉(사진 왼쪽)
철 프레임, 해양쓰레기, 유목 
250×250×500cm 2024
사진: 월간미술

졸속 행정으로 존폐 여부까지 거론되며 갑론을박이 끊이지 않았던 제주비엔날레가 개막했다. 제4회 제주비엔날레는 제주특별자치도가 주최하고 제주도립미술관이 주관했으며, 이종후 제주도립미술관장이 총감독, 강제욱이 전시감독을 맡아 진행되었다. 예산이 13억 원으로 이전 회차 대비 5억 원이 삭감돼 존폐 논란이 일었는데 삭감 사유로 도민 관람률 저조(제3회 도민 관람률 3.1%)가 지적되었다. 이에 따라 기획을 외부 대행사에 맡기던 방식에서 벗어나 도립미술관이 자체적으로 비엔날레를 준비했다. 제주도립미술관장이 직접 제주비엔날레 감독을 맡은 점이 논란이 된 가운데, 이번 제주비엔날레가 기존 제주도립미술관의 전시와 어떤 차이를 보여줄지 관심을 끌었다.

이번 비엔날레는 바다 한가운데 떠있는 섬 제주의 ‘표류’의 역사와 정체성에서 출발해 이동과 이주, 생존과 변용의 생태계를 탐구하며 이를 시각적으로 풀어내고자 했다. 쿠로시오 해류를 따라 형성된 남방과 북방문화가 공존하는 제주의 독특한 문화 지형을 바탕으로, 14개국 87명의 작가들이 자연과 문명, 문화예술의 이동에서 발생하는 의제를 조명한다. 《아파기(阿波伎) 표류기: 물과 바람과 별의 길》은 실제 표류를 경험한 적이 없는 이야기꾼 아파기의 가상 표류기에서 영감을 받아 관람객이 항해와 표류를 경험하도록 설계된 여섯 개의 소주제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가상의 섬 ‘운한뫼’에서 시작되는 항해는 ‘네위디’, ‘사바당’, ‘칸파트’, ‘누이왁’으로 이어지며, 바람과 별, 물이 이끄는 여정을 통해 성숙과 이상향에 도달하는 과정을 담았다. 마지막 에필로그인 ‘자근테’에서는 가상의 표류기를 통해 우리 삶 자체가 하나의 항해임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본전시는 ‘표류’를 키워드로 각종 사회, 문화, 정치적 문제를 환기하는 한편, 참여작품은 표류기에 등장하는 여섯 개의 섬과 느슨하게 연결됐다.

그중 흥미로웠던 작품 일부를 언급하자면, 메인 전시장 입구에 설치된 박준식과 자원·식물박사 김경훈의 협업 프로젝트〈도항(渡航)추적자〉는 제주의 여러 항구를 탐사하며 외래종 식물이 제주도에 자리 잡은 과정과 흔적을 기록한다. 대만 작가 타오 야 룬(Tao Ya Lun)의 〈방랑자(Drifter)〉(2023)는 전쟁으로 인해 고향을 떠나야 했던 사람을 전시장으로 소환한다. 작가는 우크라이나 리비우에 있는 맥스의 고향을 방문하여 디지털 기기를 들고 가상 아바타를 통해 맥스를 고향으로 안내한다. 맥스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후 망명을 신청하거나 유학을 떠난 우크라이나 학생 중 한 명으로, VR 3D 헤드셋을 착용하고 가상 공간에서 가족과 함께 식사한다. 타오 야 룬은 기술 장치를 고안해 물리적 거리를 넘어서고 가족 및 공동체와 재회하며 연대하는 방법을 모색한다. 제주 태생 양쿠라는 대마도에서 발견된 해양쓰레기를 추적한다. 그의 설치작 〈이름 없는 자들〉(2024)은 제주 4·3 사건 희생자들의 시신이 해류를 따라 표류해 대마도에서 발견된 비극적 역사를 조명한다. 양쿠라는 대마도에서 수집한 해양쓰레기와 유목을 이용해 5m 높이의 토템 조각을 제작했으며, 이를 통해 쓰레기뿐만 아니라 시신마저 떠밀려간 역사적 표류의 흔적을 시각화했다. 이 조각은 4·3 희생자들의 시신을 묻고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대마도 주민들이 세운 위령탑과 연결되며 현대의 환경 문제와 과거의 비극적 역사를 한데 엮는 상징적 장치로 작동한다. 작품은 삼다수 상표의 페트병과 부표 같은 실물 자료를 활용하고, 대마도 주민들의 증언과 인터뷰 영상으로 역사의 서사를 구체화했다.

부지현〈궁극 공간〉
LED, 
폐집어등, 포그 머신, 레이저, 모터 가변
설치 2022 제공: 제주비엔날레

미술관 전시와는 달리 비엔날레는 미술관 밖 여러 공간을 활용해서 전시를 꾸린다는 점이 두드러지는 특징이다. 다시 말해 관람자의 입장에서 비엔날레만의 묘미 중 하나는 지역과 지역민의 역사가 담긴 장소를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제4회 제주비엔날레의 각 베뉴에서 예술작품이 장소와 어떻게 조응하는지 혹은 특정 장소가 비엔날레의 베뉴로 선정되어야만 했던 이유나 서사는 전면에 드러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부지현은 단연 돋보였는데 그의 〈궁극 공간〉(2022)은 제주아트플랫폼의 기존 맥락을 다시금 생각하게 했다. 부 작가는 옛날에 극장으로 사용되던 건물의 가장 큰 상영관을 활용하여 장소 특정적 설치 작업을 선보인다. 상영관의 좌석을 모두 제거한 공간에는 레이저와 포그, 소리, 시각, 냄새를 종합적으로 결합한 이머시브 영상 작품이 약 20분 동안 상영된다. 관람객은 천천히 아래로 내려가며 물속에 잠기는 듯한 체험을 하게 되며, 극장 특유의 완벽한 어두움이 이러한 몰입감을 강화한다. 〈궁극 공간〉은 과거 서울 아라리오뮤지엄을 비롯한 여러 공간에서 선보인 적이 있으나, 부지현의 활동 기반인 제주에서는 처음 공개되며 공간의 물리적 특성과 극장의 상징적 맥락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특히, 위에서 아래로 시점이 이동하는 극장의 공간 구성을 재해석한 연출은 〈궁극 공간〉을 더욱 인상깊게 한다.

한편, 예산 대비 도민 참여율이 저조하다는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이종후 예술감독은 참여율을 높일 수 있는 여러 수단과 방법을 모색했다. 연계 전시로 도민들이 호응할 만한 《모네에서 앤디 워홀까지: 서양미술 400년, 명화로 읽다》(제주현대미술관, 2024.11.26~3.30)를 협력 개최하며 방송인 마케팅, 7080 챌린지, 제주도 및 제주관광공사와 협업한 관광상품 개발 등을 해결책으로 내놓았다. 제4회 제주비엔날레는 졸속한 행정 속에서도 자구책을 찾으며 제주 고유의 역사를 조명하고 예술적 담론을 제시하고자 했다. 타 비엔날레에 비해 현저하게 적은 예산으로 치러지는 제주비엔날레가 향후 충분한 예산과 전시 기간을 확보해 구조적인 논의를 진행할 수 있길 기대하며, 지역의 문화적 정체성을 묻고 답하는 장으로 거듭나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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