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아이치트리엔날레
《A Time Between Ashes and Roses》
강재영 기자
World Report | NAGOYA

물야나〈해류와 꽃피움 사이〉2019~ 아이치아트센터 아이치트리엔날레 2025 전시 전경 2025
사진: 강재영
산업도시에서 피어난 예술의 정치학
강재영 기자
일본 제조업의 심장부이자 도자 문화의 요람, 아이치현에서 열리는 ‘2025 아이치트리엔날레’가 9월 13일 개막해 지난 11월 30일 폐막했다. “우리 모두가 자유로워질 때까지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후르 알 카시미 예술감독의 팔레스타인 연대 발언으로 뜨겁게 시작된 이번 축제는, 한편으로는 선동적인 구호 대신 ‘심연의 시간’을 은유하는 차분하고 정제된 언어로 채워져 있다. 1945년 일본 패전으로부터 80년이 지난 2025년, 역사의 폐허 위에서 장미가 피어오르길 상상할 수 있을까?
일본 아이치현은 도쿄와 오사카 사이, 일본 중부 지방에 자리한 교통과 산업의 요충지다. 곱고 부드러운 흙이 나는 땅으로 예부터 도자기 공예가 발달했으며, 일본 자동차 산업의 심장인 토요타사(社)가 태동한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이치현의 중심 나고야시는 일본 내에서 ‘가장 재미없는 도시’ 1, 2위를 다투는 곳이다. 한국으로 치면 대전의 교통과 울산의 산업 풍경을 섞어 놓은 듯한 무미건조한 인상을 준다.
2010년 아이치트리엔날레는 이러한 ‘문화적 불모지’라는 인식을 불식하고, 지역 문화를 활성화하겠다는 분명한 행정적 목표 아래 출범했다. 공식 명칭에 붙은 ‘국제예술제’라는 타이틀은 이 행사의 성격을 드러낸다. 역설적이게도 아이치트리엔날레는 가장 정치적인 사건으로 세계 미술계에 각인되었다. 2019년, 김서경·김운성 작가의 〈평화의 소녀상〉이 출품된 기획전 《표현의 부자유전, 그 후》가 우익 세력의 협박과 행정 당국의 압박으로 중단된 사태는 예술 검열에 대한 거대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당국의 보조금 환수 소송이 최근 승소하며 검열에 맞선 중요한 선례를 남겼지만, 그 상흔은 여전히 아이치의 토양 아래 깊게 박혀 있다.

바심 알 샤커〈Sky Revolution〉 2023 아이치아트센터 아이치트리엔날레 2025 전시 전경 2025
사진: ToLoLo studio 제공: 아이치트리엔날레 조직위원회
6회째를 맞이하는 이번 트리엔날레는 이러한 맥락 위에서 파격적인 카드를 꺼내 들었다. 아랍에미리트(UAE) 샤르자 예술재단의 이사장이자 2024년 영국 아트리뷰 ‘파워 100’ 1위에 선정된 큐레이터 후르 알 카시미(Hoor Al Qasimi)를 예술감독으로 선임한 것이다. 트리엔날레 역사상 최초의 외국인 감독이자 ‘글로벌 사우스’ 담론을 주도해 온 그가 트리엔날레의 키를 잡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번 전시는 하나의 거대한 지정학적 선언이 되었다.
그가 내세운 주제 ‘재와 장미 사이의 시간(A Time Between Ashes and Roses)’은 시리아 시인 아도니스(Adonis)의 시구에서 차용한 것이다. 1967년 제3차 중동전쟁을 배경으로 쓴 이 시는 전쟁으로 폐허가 된 도시(재)에서 생성의 에너지(장미)를 꿈꾸는, 고통 속에서 회복을 갈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알 카시미는 중동의 비극적 역사를 아이치의 지역성, 더 나아가 기후 위기와 전쟁으로 몸살을 앓는 2025년의 지구적 상황과 정교하게 포개어 놓았다. 22개국 62명(팀)이라는, 압축적인 작가 구성은 세 개의 지역으로 나누어진 이번 트리엔날레 관람 경험의 밀도를 높이는 결과를 낳았다. 14억 엔(약 132억 원)에 달하는 풍부한 예산은 작가들이 아이치현 전역에서 공연예술과 워크숍 등 관객 참여형 프로그램을 강화하는 동력이 되었다.
주전시장인 아이치 예술문화센터의 큐레이션은 ‘재’와 ‘장미’를 이분법적으로 나누기보단 그 사이의 유동적인 시간을 탐색하도록 설계되었다. 다소 추상적일 수 있는 전시의 주제를 각 작품이 품은 메시지, 그리고 작품 간의 관계 속에서 세밀하게 엮어냈음을 가이드북에서도 알 수 있었다. 순서 없이 자유롭게 관람해도 좋다는 지침이 있었지만, 자연스레 작품에 매겨진 번호를 따라서 전시를 관람하게 되었다. 처음으로 관객을 맞이하는 작품은 훼손되는 해양 생태계에 대한 경각심을 뜨개질 공예로 시각화하는 작업으로 알려진 인도네시아 작가 물야나(Mulyana)의 〈해류와 꽃피움 사이(Between Current and Blossom)〉(2019~)이다. 화려한 색감의 털실로 뜨개질된 거대한 인공 산호초와 해양 생물이 관객을 맞이했다. 이는 곧 스기모토 히로시의 흑백 사진 연작으로 연결된다. 미국에서 학습용으로 사용하는 동물 디오라마를 장노출 촬영한 그의 작업은 실제 자연과 구분하기 힘들 정도의 현실감을 느끼게 하는데, 이런 위상의 전환은 물야나가 뜨개질로 만든 인공해초의 부드러움과 엮여 인간과 자연의 지난한 착취 관계로부터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뒤집어 생각하게 한다. 이는 바로 다음 공간의 오코지마 마키의 대작 〈내일의 수확〉(2017~2018)을 통해 인간과 비인간이 공존하는 혼종적 미래 사회에 대한 전위적 상상을 뒷받침하며 동시대 대형 미술 전시에서 느끼기 어려운 몰입감까지 만들어낸다.
서로 다른 작품임에도 주제-재료 면의 교집합을 통해 관람자의 사고 폭을 확장시키는 큐레이팅 기법은 아이치아트센터의 다른 공간에서도 여러 형식으로 변주되어 관람객에게 제시된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야마모토 사쿠베이의 그림들은 메이지 시기 규슈 지역에서 6살부터 탄광노동에 종사했던 그가 직접 목격한 탄광노동의 처절한 현장을 선명한 채도로 생생하게 드러낸다. 갱도 안의 열기와 육체적 고통, 삶의 지난함이 기록된 그림들을 지나면, 카와베 나호의 설치 작업〈Insulator〉(2025)와 마주하게 된다. 카와베는 바닥에 얇게 깔린 석탄 가루에 꽃 문양을 그려넣고, 아이치현의 특산품인 ‘자기 애자(Insulator, 전선을 지탱하는 절연체)’를 그 위로 설치했다. 일본 근대화의 상징인 전기를 나르기 위해 필요했던 애자와 그 전기를 생산하기 위해 태워져야 했던 석탄(그리고 그 석탄을 캐내기 위해 동원된 일본인, 조선인과 중국인 노동자들)의 관계를 현대인의 편안함과 병치시키며 관람객 각각에 윤리적 질문을 던졌다.

아이치현 도자 미술관 야외 조각공원에서 관람객들이
권병준의〈Speak Slowly and It Will Become a Song〉(2025)를 감상하는 모습
천장과 벽을 둘러싼 이라크 출신 작가 바심 알 샤커(Bassim Al Shaker)의 거대한 회화 작품 〈Sky Revolution〉(2023)은 언뜻 생명의 우주적 순환 따위의 희망찬 발산의 에너지를 표현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2003년 이라크 전쟁 공습 당시 자신이 직접 목격한 폭격 장면을 떠올린것이다. 그에게 공습은 여전히 파괴적인 죽음의 기억이지만, 그는 이 작업이 ‘새로운 시작’이라 말한다. 마치 공습 현장에 있는 듯, 혹은 우주적 환희의 순간에 있는 듯 관람객을 혼란과 경외심에 빠지게 하는 이 공간은 전시 전체에서 주제의식을 가장 선명하고 강하게 드러내며 내러티브를 담은 회화의 힘을 되새기게 한다.
홋카이도 아이누족 출신인 마윤키키(Mayunkiki)의 작업은 개인사와 민족사를 엮어낸 사운드스케이프를 통해 토착민의 생존 감각을 암전된 공간에 옮겨놓았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가 아이누이면서도 일본 근대화의 선봉인 철도 건설에 참여해 원주민 거주지 파괴에 일조했다는 사실에 괴로워했다. 작가는 홋카이도의 폐선된 철도 노선을 따라 채집한 소리 풍경(Soundscape)을 어두운 전시장에 연극적으로 풀어놓았다. 덜컹거리는 기차 소리와 함께 점멸하는 조명 속에서,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지만 분명하게 존재하는 식민의 죄의식과 정체성의 혼란, 그 속에서 희미하게 들리는 애도의 메시지를 발신하고 있었다. 바로 옆 이끼바위쿠르르는 도요타시와 아이치현 지역 커뮤니티와 협업한 신작을 통해, 거대 서사에서 소외된 지역 주민들의 작은 목소리와 연대를 기록하며 ‘장소의 기억’을 소환했다.
세토시(市)에 위치한 아이치현도자미술관은 도자기 생산과 관련한 각종 역사적 기록을 보존하고, 전통 방식의 가마를 정기적으로 가동하며 그 생산과정을 체험할 수 있는 곳이었다. 이곳 조각공원에서 공연예술 프로그램으로 선보이는 권병준의 〈Speak Slowly and It Will Become a Song〉(2025)을 체험하기 위해 아이치현도자미술관을 찾았다. 이른 아침인데도 꽤 많은 관람객이 헤드폰을 낀 채로 잔디 언덕을 누비고 있었다. 고해상도 GPS와 3D 오디오 기술을 결합한 이 작업은 180개의 가상 포인트에서 청자의 머리 각도, 높낮이 등에 따라 각기 다른 소리를 들을 수 있다. 헤드폰을 쓴 관객이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숲속에서는 아이치현이나 한국의 민요나 타령 같은 노래들이 아련히 들려온다. 공원 끝자락에 숨겨진 듯 전시된 조선인 석상 앞에서 들려온 권병준의 블루스는 만남과 떠남을 반복하는 이가 일상을 회복하기를 간절히 원하는 내용의 노래가 울리며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가만히 있으면 조금씩 잦아드는 볼륨에 소리의 근원을 찾아 헤매는 사이 제한시간인 한 시간이 끝나버렸다. 언어는 다르지만 희로애락 앞에서 만들어지는 가락의 보편성이 역사와 감정을 뛰어넘는 연대의 가능성임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 여러겹의 질문을 던지는 수작(秀作)이었다.
아이치트리엔날레는 매 회차 트리엔날레에 협력하는 인근 도시를 추가로 선정한다. 이번 회차에는 나고야에서 대중교통으로 40분 정도 거리에 위치한 세토시가 선정됐다. 세토시는 지난 천 년간 일본 도자기 및 산업용 점토를 채굴해 온 역사를 지닌 곳으로, 장대한 지질학적 시간에 인간이 지금까지 어떻게 관계 맺어 왔는지를 물리적으로 사유하는 장소로 설정되었다. 특히 참여작가들은 세토시 구시가지에 운영 중단된목욕탕, 폐교, 점토 채굴장 등을 전시 장소로 점유하여 지역의 역사적 맥락과 소멸과 생성이라는 전시의 키워드를 얽어 주제가 지닌 시공의 범위를 증폭시킨다. 사사키 루이는 폐업한 목욕탕을 무대로 지역에서 채집한 식물과 유리를 이용한 빛의 설치 작업을 선보였다. 낡은 타일 위로 쏟아지는 영롱한 빛은 과거의 시간을 정화하는 제의처럼 느껴졌다. 호주 원주민 출신의 로버트 앤드루(Robert Andrew)는 세토시에서 토출한 점토로 만든 거대한 큐브 안에 실을 숨기고 이를 천천히 감아 점토의 지층을 드러내는 〈What Lies Within〉(2025)를 통해 지워진 원주민의 언어와 역사를 드러내는 설치 작업을 선보였고, 아드리안 비야르 로하스는 폐교된 초등학교 전체를 3D 스캔한 뒤 디스토피아적 상상력을 더해 인간 이후의 종이 거주하는 듯한 기묘한 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왼쪽 로버트 앤드루〈What Lies Within〉 세토시 카센 광산 터 아이치트리엔날레 2025 전시 전경 2025
오른쪽 위 사사키 루이〈Unforgettable Residues〉2025 아이치트리엔날레 2025 전시 전경 2025
오른쪽 아래 아드리안 비야르 로하스〈Terrestrial Poems〉2025 아이치트리엔날레 2025 전시 전경 2025
사진: Kido Tamotsu 제공: 아이치트리엔날레 조직위원회
나가며: 아이치가 남긴 과제와 가능성
2025 아이치트리엔날레는 ‘지역성’과 ‘국제성’이라는 비엔날레의 오래된 딜레마에 대해 유의미한 해답을 제시했다. 후르 알 카시미는 1세계 백인 남성 큐레이터들이 쉽게 포착하지 못했던 ‘제국의 그늘’과 ‘토착민의 서사’를 전면에 내세우면서도, 이를 일본 현지 큐레이터 팀과의 긴밀한 협업을 통해 아이치라는 지역의 맥락 안에 성공적으로 안착시켰다.
물론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14억 엔이라는 막대한 예산에도 불구하고 일부 섹션에서는 구작의 비중이 높아 신선함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또한 개막식에서 감독이 외친 “팔레스타인을 해방하라”라는 정치적 선언이, 전시장 내부의 차분하고 시적인 톤과 다소 괴리감을 준다는 비평도 존재한다. 지역 관객들이 이 먼곳에서 뜨거운 정치적 이슈를 얼마나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였을지도 미지수다.
그럼에도 아이치트리엔날레는 3년마다 돌아오는 미술 행사가 단순히 관광객을 모으는 축제를 넘어, 아시아와 세계, 과거와 미래, 가해와 피해의 역사를 중재하는 플랫폼이 될 수 있음을 증명했다. ‘재’처럼 부서진 역사 위에서도 예술은 끊임없이 ‘장미’를 피워내야만 할까. 아이치트리엔날레는 적어도 우리가 갖는 본능적 희망이 보편적이며,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고 주장하는 듯하다. 꿈꾸는 미래는 항상 우릴 배신해 온 것만 같은 지금에도 꽃을 피울 토양을 찾아야 한다고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