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D 퍼포머티브 장치-환경’으로
설계한 상상의 실험실
염인화 Inhwa Yeom
Up-and-Coming Artists
사진 : 박홍순
바이오테크와 예술을 비롯한 다양한 분야에서 웹, XR, AI 기술 기반의 연구와 시스템 개발을 수행하는 스타트업 회사 바이오브(BiOVE) 창립. 전시 《서울융합 페스티벌 Unfold X》 (문화역서울284, 2024), 《넥스트 코드》(대전시립미술관, 2024), 《생성세대》(아트센터나비, 2023), 《팬텀 센스》(플랫폼엘, 2023), 《열 개의 달과 세 개의 터널》(토탈미술관, 2022),《프로젝트 해시태그》(국립현대미술관 서울, 2022) 등 참여. 2024 대만당대문화실험장& 화롄 문화창의산업단지 크리에이터 국제 교환 레지던시, 2023 ACC 레지던시×사운드아트랩 ‘듣기의 미래’ 등 참여. 2024 현대자동차 후원 제6회 VH Award 파이널리스트 선정 및 2024 LG아트센터& LG전자 후원 신진미디어 아티스트상 등 수상
‘3D 퍼포머티브 장치-환경’으로 설계한 상상의 실험실
노재민 기자
염인화는 미디어 아티스트이자 연구자로, 기술을 매개로 역사적 소수자의 경험을 재구성한다. 그는 XR(확장현실)1과 AI(인공지능) 기반의 ‘3D 퍼포머티브 장치-환경’을 통해 관객들이 스스로가 아닌 다른 존재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무대를 제공한다. 이 과정에서 관객은 참여를 통해 소수자 중심의 다양한 존재를 체험하고, 매체와 상호작용을 이어간다.
염 작가가 만들어 쓰기 시작한 ‘3D 퍼포머티브 장치-환경’이라는 용어는 그의 작품세계를 설명하는 중요한 개념이다. 이를 반복적으로 사용하며 강조하는 이유는, 작품에 활용된 기술 자체보다는 관객이 이 매체에서 경험할 수행성을 부각하기 위함이다. 염인화는 XR이나 AI 같은 기술적 용어로 작품을 규정하면, 의도했던 ‘퍼포머티브’ 요소가 옅어진다고 설명하며, 이 같은 용어를 창안하게 된 배경을 밝혔다. 그는 자신의 작품이 “관객의 수행적 경험을 유도하기 위해 하나의 무대처럼 설계된 장치와 환경에 다름아니”라고 설명했다.
작가는 머리 착용형 디스플레이(Head Mounted Display, 이하 HMD) 장치의 사용을 지양하고, 주로 PC 및 모바일 기반의 XR 환경을 구성해 왔다. 이는 제한된 수량이 HMD 장치를 착용하지 않은 관객들에게 물리적인 제약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2025년 발표 예정인 신작에서는 HMD 장치를 활용할 계획을 밝혔는데, 해당 작품의 서사에서는 HMD 장치가 관객의 수행적 참여를 더욱 효과적으로 유도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솔라소닉 밴드〉(2024)는 XR을 기반으로 한 관객 참여형 퍼포먼스다. 작품 속 밴드는 기후 위기의 다섯 권역(대기권, 수권, 암석권, 빙하권, 생물권)을 순회하며 공연을 리허설한다. 이 과정에서 관객은 밴드 리더의 역할을 맡게 된다. 기후 데이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악보는 리더의 실시간 상호작용과 수행에 따라 변화하며, 이는 기후 위기 시나리오로 작동한다. 기후 위기를 그저 ‘두고 보는’2 태도가 만연한 상황에서 〈솔라소닉 밴드〉는 관객들에게 보다 참여적이고 능동적인 자세를 제안한다.
〈솔라소닉 밴드〉 3D 퍼포머티브 장치-환경
(PC기반 VR, 모바일 AR, 스테인리스, 거울, 크리스탈 재질의 장치 등) 2024
《서울융합예술 페스티벌 언폴드엑스 2024-2084: 스페이스 오디세이》
문화역서울284 전시 전경 2024
〈사우나랩〉3D 퍼포머티브 장치-환경 (멀티 채널 영상, 프로젝터, TV 모니터, 의자)
2024《넥스트 코드: 누구든 낙오하지 않을 항해에 관한 기록》
대전시립미술관 전시 전경 2024
한편 〈이너뷰티 스파〉(2023)는 다양한 신경 유형의 고객을 위한 신경 케어 서비스를 제공하는 서사를 지닌다. 관객은 스파의 관리사가 되어 XR 장치를 통해 고객을 응대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관리사는 AR 기반 태블릿을 활용해 고객 맞춤형 관리 매뉴얼을 수행하며, 각자의 고민과 요구에 주파수를 맞추고 채널링하며, 이에 공명한다.
이외에도 노화를 주제로 한 레스토랑의 직원으로 참여하는 〈임포스터 키친〉(2022), 〈코코 킬링 아일랜드: 식도락 투어〉(2022) 등은 염인화의 작품 세계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그는 바이오테크, 기후 위기, 신경다양성과 비판적 정신의학 등의 주제를 탐구하며, 관객이 ‘되어볼 수 있는’ 다양한 존재와 그로 확장될 수 있는 현실의 가능성에 주목한다.
염인화와의 대화를 통해 그가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고려하며 작업하고 있음을 알았다. 그의 상상은 작업의 근간을 이루며 부유하는데, 이는〈사우나랩〉(2024)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과학 기술 자본이 특정 계층에 집중되는 현상에 주목한 그는, 과학 기술 자본이 기후 위기 약자들에게 무상으로 공유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를 상상했다. 대전 유성구의 과학 기술 연구 자본과 온천 시설을 재활용해 설립된 시민 참여형 기후 연구소인 사우나랩은 노년층과 미래 세대가 함께 기후 위기를 연구하는 공동체다. 염인화가 ‘기후 위기 취약계층’ 대신 ‘기후 위기 생존자’라고 재명명한 노년층은 합성생물학에서 등장하는 전문용어 대신 유머러스한 언어3를 사용하며 기후 문제를 해결하는 연구에 대해 발화한다.
〈코코 킬링 아일랜드: 식도락 투어〉 3D 퍼포머티브 장치-환경
(PC 기반 VR, 마우스, 크리스탈, 초, 웹, NFT 등) 2022
《프로젝트 해시태그》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전시 전경 2022
〈임포스터 키친〉 3D 퍼포머티브 장치-환경
(PC 기반 VR, 영상, 스테인리스 가구, 마우스 등) 2022
이미 국내외 대다수의 지역자원 연계형 및 시민 주도형 연구소들은 국가와 연구기관들의 지원과 협력을 토대로 운영된 바 있다. 여기에서 주목할 지점은 대안 자본주의적 사유를 담은 연구소들이 지속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경제성이 없으면 오래가지 않아 그치고 마는 세상에서 자본이 아닌 다른 가치가 화폐처럼 통용되면 어떠한 모습일까? 염인화에게는 눈앞에 없는 현실에 불과하다. 다시 말해 그는 이러한 상상이 더 이상 비현실이 아닌 몹시 가능한 현실임을 설득한다.
〈이너뷰티 스파〉3D 퍼포머티브 장치-환경
(스테인리스 가구, 모니터 영상, 연꽃 크리스탈 장치 등) 2023
《행성공명》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전시 전경 2023
1 가상현실(VR)과 증강현실(AR)이 상호연결 및 운용
2 Gitanshu Choudhary와 Varun Dutt은 기후 위기 문제를 미루거나 전가하는 경향이 팽배함을 지적하며, 기후 위기에 대해 소극적이고 이를 “두고 보는(wait and see)” 현상이 두드러진다고 저술했다
3 작품 속 발화자는 우리가 소위 하위문화라고 취급할 법한 화법을 사용한다. 염인화는 기존 언어의 규범을 벗어난 표현도 사용자 수가 늘어나면 새로운 표준어로 자리 잡을 수 있다는 점을 언급하며, 그의 작품 속 유머러스한 언어와 밈은 온라인에서 빈번하게 사용되며 동시대성을 반증한다는 점을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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