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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어진 링크를 불러오는 데
필요한 시간은?

강재영 기자

Special Feature

《굿-즈》 행사동안 심볼 애드벌룬이 관객을 맞았다.
사진 촬영 및 제공: 김익현

2014년과 2015년을 지나는 그때, 필자가 관찰한 미술신(scene)에는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에너지가 모여 있었다. 마치 주인 없는 운동장에 놀러 나온 아이들이 각자의 모습대로 각자의 방향을 향해 궤적을 그리며 운동장을 자유롭게 가로지르는 모습이었다.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움직이는 점들을 자꾸만 이어 선을 만들고, 또 면을 구축해 어떤 모양이었노라고 말하고 싶게 만드는. 그 시공에 어울리는 배경음악은 TV 프로 쇼미더머니 시리즈가 계속되며 만들어내는 소위 ‘국힙’이나 유튜브 알고리즘을 타고 전 세계를 점령한, 1980년대 일본 버블을 품은 시티팝, 혹은 혁오나 신해경, 선셋 롤러코스터 같은, 무엇이라 하나로 정리해 묶을 수 없는 다성적인 소리였다.

그 에너지 이면에는 ‘생존’이라는 키워드가 동시에 떠올라 있었다. 신자유주의 자본질서는 IMF 외환위기를 거치고 비정규직이 일상화된 2010년 이미 공고화한 시스템이었지만, 예술가들에게는 이를 헤쳐갈 만한 적절한 ‘방법’도 ‘제도’도 없었다. 생활고에 시달리던 예술가들이 배고픔 속에 죽음을 맞이하는, 언어로 바꿔쓰기 어려울 정도로 처참한 상황이었다. 2010년 홍대 두리반 농성 이후 결성된 ‘자립음악생산조합’(2010~2018)처럼 미술신에도 ‘미술생산자모임’(2013~)이 결성되는 등 ‘예술로 먹고살 수 있는 환경과 조건’에 대한 절박한 고민이 실천으로 이어지는 시기였다. 2014년 《공장미술제》 아티스트피 논란은 대안공간으로 대표되던 한국미술의 역동성이 기대고 있는 구조가 너무나 취약한 것임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사건이었다.

박현정 《이미지 추적-분쇄-정렬》 오픈베타공간 반지하 전시 전경 2014
사진: 강재영

제도에 솟은 장벽 때문에, 혹은 제도 그 자체가 드러낸 저열함 때문에, 자신의 작업을 보여줄 공간을 찾지 못한, 혹은 찾기를 능동적으로 포기한 작가 혹은 기획자들은 혼자서, 혹은 삼삼오오 모여 지대(地代)가 낮은 서울의 유휴공간을 파고들어 일시적인 장면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재개발 대상이 되어 임대가 어려워 방치된 빈 곳이나 철거를 앞둔 폐건물, 이해관계가 얽혀 아무도 쓰지 못하게 된 공터나 산업의 부산물로 지어진 창고 등이 공간의 대상이 되었다. 그곳에서 벌어지는 이벤트도 각양각색이었다. 전시, 퍼포먼스뿐만 아니라 좌담, 이벤트, 취미활동의 공유, 영화 제작, 보드게임 등 그 형식도 이전의 미술신에서 보던 것과는 달랐다. 《굿-즈》의 프롤로그를 쓰기도 한 신혜영은 신생공간 현상을 다룬 2017년 자신의 박사 논문에서 33개의 신생공간 목록을 언급했다. 월간 『미술세계』 2016년 12월호에는 그 숫자를 60여 곳으로 언급했다. ‘엮는자’가 2015년부터 2018년 10월까지 구글지도에 매핑한 전국의 신생공간은 운영 종료한 곳을 포함하여 100여 곳에 이른다.

공간413, 오픈베타공간 반지하, 커먼센터, 시청각 등 초기에 형성된 공간은 그 성격은 달랐지만, 포스팅 한 번에 140자로 제한된 트위터나 이미지와 간단한 글을 공유할 수 있었던 인스타그램을 기반으로 비슷한 취향과 관심사를 지닌 이들로 그 연결망을 강화하고 확장하기 시작했다. 가벼운 포스터와 간단한 행사 정보가 담긴 포스팅에 ‘마음’을 누르고 리트윗하고, 내가 듣고 싶은 말을 족집게처럼 해주는 ‘존잘’, ‘네임드’를 팔로잉 목록에 추가하는 행위는, 나도 이 신에 속해있다는 감각을 줬다. 임근준이 『퍼블릭아트』 2010년 1월호에 기고한 이후 공감과 논란을 동시에 부르며 세간에 회자되었던 「대학졸업을 앞둔 예비작가에게」는 작가로 성장하기 위해 해야 할 것과 하지 않아야 할 것을 아포리즘 형식으로 정리한 글인데, 여기에서 “작업에 관해 터놓고 의논해도 좋을 만큼 탁월한 취향과 감식안을 지닌 동료를 확보하라”든지, “작업을 십분 이해하는 관객 2~3인으로 충만하다는 태도가 때로 중요하다”는 등의 내용을 트위터라는 공간의 작동 역학과 겹쳐보면 흥미롭다. 그곳에 펼쳐진 이미지는 재미있게, 동료들과 함께, 생존하는 법. 어쩌면 그 방법을 찾기 위한 몸부림의 투사였을지 모른다.

이런 일련의 움직임은 분명 무언가 달라 보였다. 여기엔 ‘청년’이라는 이름의 세대론 딱지가 붙기도 했고, 그렇게 모여 노는 곳을 ‘신생공간’이라 부르며 구별하기도 했다. 2015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 ‘청년’을 위한 공간을 신설하라고 주장한 ‘청년관을 위한 미술행동’처럼 제도를 향해 세대론을 무기로 한 운동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런 구별 짓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이 보고 자란 것, 자기 손에 들려 있는 것, 그래서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현대미술의 문법에 녹여 만들고 보여주고 즐기는 데 더욱 시간을 썼다. 혹은 자신들의 ‘플레이’1를 보여주기 위해 일종의 미끼처럼 이러한 ‘딱지’를 전략적으로 활용했다. 《굿-즈》는 외형적으로는 이러한 전략을 가장 성공적으로 완수한 ‘플레이’라고 볼 수 있다.

《굿-즈》의 기초적인 아이디어는 ‘오픈베타공간 반지하B½F’(2012~2017)2에서 2014년 9월 론칭한 프로젝트 ‘굿즈’에서 왔다. 일본 서브컬처에서 애니메이션 캐릭터나 아이돌의 팬덤이 타블로이드, 열쇠고리, 피규어 등의 파생상품과 팬덤에서 직접 만들어내는 2차창작물을 이르는 ‘굿즈’ 개념을 시각예술에 차용한 것이다. ‘굿즈’는 반지하의 전시공간 옆 작은 테이블에서 작가들이 만든 작업을 활용한 패치, 열쇠고리, 드로잉 등을 판매했다. 불특정 다수를 염두에 두고 대량 제작-판매 시스템을 만든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보단 공간 선반을 ‘판매소’로 이름 붙이고 작가들에게 그 선반에서 무엇을 팔지 생각하게 하는 과정에서, 작품 구상과 제작의 과정을 진열될 상품에 전유하고, 그 과정에서 관객과 작가 모두가 새로운 미적 경험을 창출하는 게 목적이었다.

《더스크랩》 설치 전경 2016 사진 촬영 및 제공: 김익현

이렇게 작은 선반에서 작가와 관객을 만나게 해주는 플랫폼이었던 ‘굿즈’의 판이 커진 것은, 이 장을 만들어가던 이들이 무언가 가능성을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교역소’3가 진행한 인터뷰에서 운영자 황아람은 《굿-즈》에 대해 ‘교역소와 비슷한 공간 운영진들과 교류하며, 작품 판매가 가능한, 아트페어는 아니지만 비슷한 형식으로 새로운 플랫폼을 형성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또 다른 운영자인 김영수는 《굿-즈》 마지막 날 토크에서 《굿-즈》의 기획의도를 묻는 사회자에게 “단지 보고 싶었던 장면이 있어요.”라고 말했다. 돈선필은 같은 질문에 “왜 이런 게 없을까? 생각하면서도, 재미있겠다고 생각했던 게 분명히 있어요.”라고 답하기도 했다. 여기서 ‘이런 것’은 애초에 판매를 고려하지 않은 시각예술 창작물과 그 부산물을 판매하기 위한 형식 실험이라 할 수 있다.4

2015년 10월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행사 혹은 전시, 《굿-즈》는 이렇게 2013년 즈음부터 가시화되던 이른바 ‘신생공간’의 모음집 같은 것으로 여겨지며 그 시작 전부터 많은 이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고, 동시대 미술계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폭발적인 화제를 끌었다. 누적관객 6,000명, 총수익 1억3000만 원.5 정량적으로는 그렇다. 정성적으로는 어떤가. 1980년대 이후 태어난 작가와 기획자가, 트위터라는 네트워크 시스템을 기반으로 미상의 ‘관객’과의 접촉을 시도했던, 오로지 상상의 영역이었던 이 실험이 ‘세종문화회관’이라는 물리적 환경에서 실제로 작동함을 확인하는 계기였다.6 한편으로 이러한 성취는 기획단 내-외부에서 다른 파장을 만들어냈다. 크게는 두 가지, 또래집단의 미학적 실천 차원과 미술유통이라는 차원에서 질문을 남겼다. 10년이 지났고, 그동안 이에 관하여 여러 차원에서 논의가 이루어졌다.

《헤드론 저장소》 교역소 전시 전경 2016 제공: 교역소

먼저 언뜻 돌아보면 연결되어 있는 듯 아닌 듯 비선형적인 순간만이 떠오르고, 이를 알기 쉬운 역사적 서술로 재구조화할 수 없다. 오늘의 감각과 경험 아래로 잠긴 어제의 감각과 경험을 다시 불러오는 일에는 필연적으로 깨진 링크가 만드는 빨간 엑스 박스와 이것이 깨져있음을 인정해야 하는 물리적 고통의 시간이 수반된다. 그럼에도 이를 다시 불러오기 하려는 이유는 무엇인가. 대안공간이 더 이상 대안적 기능을 수행하기 어려워진 상황에서, 생존을 모색하기 위한 각자의 운동이 몇몇 담론을 참조점으로 삼아 물리적 인터페이스를 획득한 것으로 신생공간 현상을 읽을 수도 있을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모여서 재미있는(그동안 없었던) 무언가를 한다는 개념, 《굿-즈》가 아이디어에서 현실이 되는 과정을 돌아보는 것이 지금 시점에서 의의를 만들 수 있을까 묻고 싶다.

『호버링 텍스트』 (미디어버스, 2019) 표지

해버린 오늘, 작동하지 않는 서버에 던지는 질문
영화 〈백투더퓨처〉 시리즈에서 돌아가려던 미래도 이미 10년 전이 되어버린 지금, 무엇이 그때와 2025년을 달라 보이게 할까. 권시우, 윤태웅 공동기획으로 진행된 전시 《호버링》(2/W, 2018)은 이러한 질문을 도출하고 모종의 정리를 시도한 기획이었다. 도록 서문 「유령 서버에서 로그아웃하는 방법」에서 권시우는 “신생공간 이후의 시점에서 보다 면밀하게 신생공간을 바라보”고, “지속가능한 신”을 전망하기 위한 시도라며 전시와 도록 출판의 의도를 밝힌다.7 다시 말하면, 2015년 이후로 미술계 안에서 달라진 조건들, 이를테면 2016년 ‘#미술계_내_성폭력’ 운동 이후 ‘동료’ 관계의 변화라든지, 2020년 이후 코로나19라는, 삶의 인터페이스를 통째로 뒤흔든 거대한 사건 같은 것들 말이다. 지금 인스타그램은 삶과 취향을 공유하는 이미지 콜렉티브가 더이상 아니다. 그저 홍보를 위한 포트폴리오 페이지일 뿐이다. 가장 가까이는 챗GPT 서비스의 보편화와 2024년 벌어진 충격적인 정치적 사건 등도 분명 과거를 바라보는 준거점을 흔드는 요소일 것이다. 혹은 무선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언제 어디서든 문을 잠그고 열 수 있는 도어록이 상용화되었다든지 말이다(2015년만 해도 이러한 종류의 상품은 먼 미래의 일인 것처럼 회자되었다). 이를 통과하는 가운데 회화는 여전히 납작한가, 조각은 인터페이스로 치환돼 버렸을 뿐일까, 굿즈는 혹시 ‘아트상품’의 힙한 이름이 된 것은 아닐까 등 그동안 바라보던 관점이 어떻게 업데이트 될 수 있을까 등등 질문을 갈고 닦고, 다시 현장으로 이 질문을 던지는 작업은 여전히 유효할 것이다.

한편으로는 “신생공간에서 비롯했지만 당사자들조차 미처 해결하지 못한 다양한 문제”로 뭉뚱그려진, 여러 종류의 관점과, 여기서 발생하는 간극을 가시화하려는 것일 테다.8 여러 기획자와 작가가 얽혀 한 번에 만들어낸 에너지는, 그 영향은 광범위했지만 그만큼 《굿-즈》, 혹은 그와 얽힌 여러 공간들의 결을 직시하는 일을 어렵게 한다. 단 한 번도 “지속 가능한 신”을 가져본 적 없는 우리가 여전히 지속 가능함은 어떻게 실현되는지 그 조건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지속 가능함을 이야기할 때는 사례연구도 필수다. 지층을 쌓아가던 공간은 거의 사라졌다. 새로운 공간이 새로운 작가를 채워 다시 관객을 기다린다. 지금, 같은 고민을 다른 형태로 구현하고 구축하고 있는 이들은 어디에 있는가? 이들의 움직임은 어떤 형태를 띠고 있나? 그것은 공간을 점유하는 방식이 아닐 수도 있으며, 유통을 전제하고 있지 않을 수도 있다. 이를 유형학적으로 분류하는 것은 시기상조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놓칠 수 없다는 약간의 조바심을 발동시킨다. 그들의 운영 방식과 태도 등에서 이른바 ‘신생공간’으로 일컬어지던 독립적 시도들과 어떤 차이를 발견할 수 있을까? 그 차이가 말하는 것은 무엇일까?

《더스크랩》 설치 전경 2016
사진 촬영 및 
제공: 김익현

《취미관 TasteView 趣味官 대림점 Not for Sale》 대림미술관 설치 전경 2020
사진: 홍철기 제공: 취미가

우리는 이 구체화를 제대로 보고 있었을까? 놓쳐온 것은 아닐까? 예술활동으로서 추상적 미술을, 언제나 불성실하게 호명되는 추상적 대중(관람자)에게 가닿게 하는 것은 어쩌면 작품 창작 과정과 그 구조는 비슷하면서도 실제는 완전히 다른, 구체화 작업의 연속이 아니었을까? 10년간 여러 사업이 시작되고 종료되는 동안 제도의 형식은 어떻게 변화해 왔는가. 그것은 현재 미술인의 실천으로서 미술을 얼마만큼 구체적으로 담고 있으며, 이를 얼마만큼 손실이나 압축 없이 유통해내고 있는가.

“500 Internal Server Error” 끊임없이 이어지는 질문 쿼리(Query)에 서버는 그만 답을 내지 못하고 뻗어버리고야 말았다. 이를 복구하는 데 과연 시간이 어느 만큼 더 필요할까? 질문을 서버로 보내던 엔터키를 누르길 잠시 멈추고 질문 목록을 정리해보아야 할 시간이다.


1 비디오릴레이 탄산을 운영하며 작가로 활동했던 강정석은 그가 다양한 플랫폼으로 발표한「서울의 인스턴스 던전들」에서 서울을 중심으로 형성되는 미술공간을 ‘인스턴트 던전’이라는 롤플레잉 게임의 개념을 차용하여 서술했다. 여기서 관람자-작가는 게임에 임하는 플레이어로 비유했다.
2 돈선필, 박현정이 공동 운영한 ‘오픈베타공간 반지하B½F’는 중랑구 상봉동에 위치해있었으며, 이름처럼 다세대주택의 반지하 공간에서 운영했던 공간이었다. 시각예술가가 구현하고 싶은 무언가를 게임이나 소프트웨어의 ‘오픈베타서비스’처럼 보여줄 수 있는 공간이었다. 2012년부터 5년간 총 59개의 시각예술 프로젝트가 이루어졌다 출처: https://vanziha.tumblr.com/ 참조
3 김영수, 정시우, 황아람으로 구성된 콜렉티브 ‘교역소’는 중랑구 상봉동의 자전거 정비소 2층 공간을 임시 점유하는 형식으로 운영되었다. ‘상봉동에 위치한 무슨 공간 교역소입니다’라는 소개문과 함께 동료 작가의 전시, 퍼포먼스, 상영회 및 좌담회가 이루어졌다. 신혜영 「스스로 ‘움직이는’ 미술가들: 자립적 미술 신생공간 주체들의 생활 경험과 예술 실천 연구」 연세대 박사학위 논문 2016 참조
4 정시우 「사쿠라 드롭: 굿-즈 기획자 노트」출처: https://vanziha.tumblr.com/ 참조
5 기획자 권순우 인터뷰 (2025.3.1)와「《굿-즈 2015》 실적보고서」 참고
6 이와 같은 평가와 관련해서는 다음 논문을 참조. 신혜영 앞의 논문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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