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Basel in Basel
56번째 생일을 맞이한 바젤이 탁월함을 증명하는 법
World Report
 
카타리나 그로세〈Choir〉
아스팔트 위에 아크릴릭, 천 1600×9100×5500cm 2025 아트바젤 인 바젤
제공:아트바젤
56번째 생일을 맞이한 바젤이 탁월함을 증명하는 법
하도경 미술비평
6월 10일부터 16일까지 열린 제56회 아트바젤 인 바젤(이하 ‘아트바젤’)은 예년과는 또 다른 감각에서 출발했다. 고가의 블루칩 작가부터 중가대 작품까지 한 부스 안에서 유연하게 공존하고, 섹터 구성과 큐레이션 전략은 더욱 정교해졌다. 아트페어를 넘어 도시 전역을 무대로 삼은 공공성과 실험 정신은 올해 아트바젤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었다. 복합적인 경제 변수가 전 세계 미술시장을 흔드는 가운데, 스위스의 고즈넉한 자연과 어우러진 이 도시는 여전히 예술과 시장, 제도와 일상이 교차하는 가장 역동적인 현장이었다. 올해 아트바젤의 특별한 장면들을 함께 짚어본다.
이글이글 타는 듯한 더위 속, 6월의 바젤은 마젠타 색이었다. 독일 작가 카타리나 그로세(Katharina Grosse)의 대형 페인팅 설치작〈Choir〉(2025)은 아트바젤이 열리는 메세플라츠의 5,000㎡ 공간을 강렬하게 물들이며, 전례 없는 스케일의 시각적 경험을 선사했다. 이 작품의 존재감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불확실한 시장에서 여전히 바젤이 중심에 있다는 선언처럼 보였다.
이번 행사는 개막 전부터 유례없이 많은 변수에 직면해 있었다. 뉴욕 경매의 부진, 달러 약세, 고금리 기조, 지정학적 리스크 등이 복합적으로 얽히며 일부 컬렉터와 갤러리들 사이에서는 관망세가 뚜렷할 것이라는 예상이 제기됐다. 여기에 지난해 처음 선보인 아트바젤 파리가 성공적으로 자리 잡으며, 블루칩 작품의 일부가 가을의 파리로 이동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있었다. 그러나 행사장에 들어선 관객들은 이런 우려를 잊을 만큼 북적였고, 갤러리 부스마다 진지한 대화와 계약 협의가 오갔다.
섹터와 경계의 흐름
올해 아트바젤은 총 42개국에서 289개 갤러리가 참여해 전년(285개) 보다 소폭 증가했으며, 관람객도 약 8만8,000명을 기록해 규모 면에서 전년도와 유사하거나 소폭 상승세를 보였다. 그리고 불확실한 글로벌 시장과 미술계 변화 국면 속에서 두 가지 전략을 뚜렷이 드러내며 존재감을 재확인했다. 하나는 리스크 분산을 위한 중가대 작품의 유연한 배치이고 다른 하나는 블루칩 작가 권위를 유지하면서도 다양한 가격 층을 겨냥하는 포트폴리오 확장이다.
섹터 구성은 지난해에 비해 더 촘촘하게 세분화됐다. 기존의 피처(Feature), 스테이트먼츠(Statements), 언리미티드(Unlimited)라는 3대 축에 올해 새롭게 프리미어(Premiere) 섹터가 마련돼, 최근 제작된 동시대 작업과 소규모 기획전을 아우르는 10개의 프로젝트가 추가됐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피처 섹터가 20세기 미술사적 주요작에 초점을 맞추고, 스테이트먼츠가 신진 작가들의 데뷔 무대를 전담하는 방식으로 역할을 구분했다. 올해 프리미어는 그 경계를 유연하게 해소하며, 블루칩, 중견, 신진 작가와 대형회화 및 소형 에디션이 자연스럽게 공존하는 전시 흐름을 형성했다. 여기에 카비넷(Kabinett) 프로그램이 강화돼, 여러 갤러리가 부스 안에 별도의 소규모 큐레이션 존을 마련해 주제별 기획, 미술사적 조망, 단독 개인전을 병렬적으로 선보였다. 동시에 파쿠르(Parcours)와 언리미티드 섹터는 상업성을 넘어서는 미술적 담론과 공공적 실험의 장으로 기능하며, 아트바젤이 단순 거래를 넘어 문화적 권위의 무대로서의 위상을 공고히 하는 데 한몫했다.

가고시안 부스 전경 아트바젤 인 바젤 2025
작품과 가격 사이의 풍경
페어의 구조가 복합적인 형태가 되자, 각 갤러리에서는 다양한 가격대 작품을 함께 보여주며 리스크를 분산하는 전략을 취했다. 판매 데이터에서도 이러한 전략은 선명하게 드러났다. 런던에 위치한 안넬리유다파인아트(Annely Juda Fine Art)는 데이비드 호크니의 〈Mid November Tunnel〉(2006)을 1300만~1700만 달러(약 179억~234억원)라는 올해 최고가로 판매했다. 이어, 데이비드즈워너도 루스 아사와의 조각을 약 950만 달러(약 131억원),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회화를 680만 달러(약 94억원)에 계약하며 블루칩 작가들의 권위를 다시금 입증했다. 페이스갤러리에서는 아그네스 마틴의 〈Untitled#5〉(2002)가 약 400만 달러(약 55억원), 글래드스톤에서는 키스 해링의 〈Untitled〉(1983)가 350만 달러(약 48억원)에 거래됐다.
그럼에도, 올해 아트바젤의 풍경을 더욱 역동적으로 만든 것은 1000만 달러(약 138억원) 이하, 특히 100만~400만 달러 구간 작품이 활발하게 거래된 점이다. 하우저앤워스 부스에서는 마크 브래드포드의 대형 회화 〈Ain’t Got Time To Worry〉(2025), 〈Sin and Love and Fear〉(2025)가 각각 350만 달러(약 48억원)에 빠르게 판매됐다. 같은 부스에서 조지 콘도의 2025년 작업 〈Streets of New York〉,〈The Insanity of the Devil〉도 각각 245만 달러(약 33억원)에 계약됐다. 트레이시 에민의 〈Hunter〉(2025)가 약 134만 달러(약 18억원), 로즈마리 트로켈의 〈Golden Brown〉(2005)은 약 97만 달러(약 13억원), 바바라 크루거의 신작 〈Untitled (WAR TIME, WAR CRIME)〉(2025)은 65만 달러(약 9억원)에 거래되는 등, 동일 부스 안에서 다양한 가격대 작품을 함께 소개하는 다층적 배치가 돋보였다.
이러한 중가대 작품 확대는 리스크 분산과 동시에 신규 수요를 공략하기 위한 전략적 대응으로 보인다. 『UBS 글로벌 아트마켓 리포트』에 따르면, 2024년 기준 거래된 작품 중 신규 구매자의 비중이 38%로, 전년 대비 5%포인트 상승했다. 하우저앤워스나 화이트 큐브 등 대형 갤러리는 동일 작가의 회화, 조각, 에디션을 다양한 가격대로 배열해 구매자의 선택지를 넓혔다. 실제로 하우저앤워스에서는 브래드포드와 콘도의 작품이 300만 달러대(약 41억원)에서 판매되는 동시에, 조나스 우드나 샘 길리엄의 작품은 90만 달러(약 12억원) 선에서 거래돼 중견 컬렉터와 젊은 수요층 모두에 접점을 마련한 것으로 관측됐다.
전체적으로 올해 아트바젤은 고가 블루칩 작품에 대한 견고한 관심과 더불어, 다양한 가격대를 한 부스 안에 병렬 배치하는 전략을 통해 새로운 구매층의 유입 가능성을 탐색하는 양상이 두드러졌다. 이러한 흐름이 향후 시장의 방향성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바꿀지는 단정하기 어렵지만, 올해 행사는 적어도 복합적인 수요층과 취향에 대응하는 조심스럽고 다층적인 전략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

국제갤러리 부스 전경 아트바젤 인 바젤 2025

뮌스터플라츠에는 히말리 싱 소인(Himali Singh Soin)과 데이비드 소인 타페서(David Soin Tappeser)의〈Hylozoic Desires〉가 설치됐다.
아트바젤 인 바젤의 파쿠르 섹터 전경 2025 
도시와 습관의 재발견
아트바젤이 다른 국제 아트페어와 구별되는 지점은 작품이 거래되는 규모에만 있지 않다. 도시 전역으로 뻗어나가는 파쿠르와 페어 공간의 물리적·개념적 한계를 해체하는 언리미티드 섹터야말로 페어의 제도적 야심과 큐레토리얼 비전을 동시에 증명하는 장치라 할 수 있다. 올해 이 두 섹터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관습화된 질서와 그 경계를 교란했으며, 이를 통해 동시대 예술이 시장과 담론, 도시의 일상에 개입하는 역동적인 방식을 실험했다.
올해 파쿠르 섹션은 스위스 인스티튜트 디렉터 스테파니 헤슬러(Stefanie Hessler)의 두 번째 기획으로 구성됐다. 주제는 ‘제2의 본성(Second Nature)’으로 매일같이 반복돼 무의식적 패턴으로 굳어진 사회적·생태적 습관과 인간과 자연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순간에 대해 다뤘다.
라인강을 가로지르는 가장 오래된 다리인 미들 브릿지(Mittlere Brücke) 아래에 설치된 스터터번트(Sturtevant)의 〈Finite Infinite〉 (2010)는 반복과 집착이라는 키워드를 시청각으로 극대화한 작업이다. 20m의 스크린 위를 부단히 오가는 개의 영상과 9초 분량의 자동차 경주 소리가 계속 재생되면서, ‘디지털 이미지의 무한 루프’에 빨려 들어가는 감각을 유도했다.
상하이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유지(Yu Ji)의 〈Foraged〉(2025)는 관람자에게 시선을 낮춰 기억과 물질의 흔적을 더듬어보기를 요구했다. 1860년부터 운영돼 온 가족 경영 연회장 라인펠더호프 (Rheinfelderhof)에 놓인 작가의 콘크리트 오브제와 중고 거울은 인간의 흔적과 장소의 기억이 뒤얽힌 풍경을 형성했다. 빵, 조개 껍데기, 과일을 닮은 조각들은 소비된 것과 남은 것 사이의 관계를 상기시켰다.
또 하나의 중요한 장면은 ‘트로피컬 존(Tropical Zone)’이라 불리는 식료품점에 설치된 마사 아티엔자(Martha Atienza)의 3채널 비디오였다. 필리핀 어부들의 위험한 조업 과정을 담은 영상은 인간 활동으로 변형된 생태계와 소비경제의 구조가 어떻게 얽혀 있는지를 직접적으로 드러냈다. 이는 아프리카 상품을 진열한 매장 풍경과 겹치면서 ‘제2의 본성’이 단지 생태적 담론에만 국한되지 않음을 말해줬다. 이외에도, 셀마 셀만(Selma Selman)의 자동차 보닛 추모작, 하이로직 디자이어스(Hylozoic Desires)의 80m 직물 설치작 등이 도시 곳곳을 점령하며 관객이 일상적으로 지나치는 공간을 다시 바라보게 했다.

강서경 〈자리 검은 자리〉염색해서 짠 화문석, 나일론 실, 일반 실 각각 380×170cm 2022~2023 아트바젤 인 바젤의 언리미티드 섹터 전경 2025
신체와 설치의 대화
지오바니 카민(Giovanni Carmine)이 6번째 큐레이션을 맡은 2025년 언리미티드 섹터에서는 문명의 유토피아적 꿈과 디스토피아적 현실이라는 거창한 주제 의식을 읽어낼 수 있었다. 홀 좌측에서 가장 먼저 포착된 것은 제약된 신체가 스스로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시도들이다. 티나킴갤러리가 선보인 강서경의 〈자리 검은 자리〉(2022~2023)는 조선 시대 춘앵무의 규범성과 화문석의 형식을 참조하며, 엄격한 예법으로 규정된 개인적 표현의 한계를 탐구한다. 제한된 공간 안에서도 개인의 동작이 집단적 의식을 불러일으킬 수 있음을 시사하는 이 작업 바로 앞에는,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의 퍼포먼스 작업 〈Untitled (Go Go Dancing Platform)〉(1991)이 있다. 하우저앤워스에 의해 하루 두 번 공지되지 않은 시간에 구현되는 이 퍼포먼스는 은빛 속옷 차림의 남성 댄서가 헤드셋을 끼고 관객이 알 수 없는 음악을 들으며 약 5분간 춤을 추는 내용으로 구성됐다. 사적 슬픔을 공적 공간에서 몸짓으로 드러내는 이 작업은 에이즈로 세상을 떠난 작가의 파트너를 애도하며 제작됐으며, 퀴어의 사랑과 상실을 가시화하며 개인적 트라우마를 집단적 치유의 순간으로 전환시킨다. 그 옆에는 나사포나사(nasa4nasa)의〈Sham3dan(Candelabra)〉 퍼포먼스가 펼쳐진다. 7명의 무용수가 머리에 촛대를 얹고 움직이며 전통적 노동과 통제에 맞서는 신체적 저항을 이야기한다. 관객은 화문석 위의 절제된 움직임에서 플랫폼의 해방적 춤으로, 그리고 촛대를 이고 추는 저항의 몸짓으로 이어지는 신체 정치학의 스펙트럼을 경험하게 된다.
홀의 안쪽으로 들어서면 물질과 공간에 대한 근본적 인식이 해체되고 재구성된다. 칼 안드레의 〈Thrones〉(1978)는 100개의 목재 빔이 교차 배열되며 ‘장소로서의 조각’ 개념을 구현하고, 전현선의 대형 회화 설치는 비스듬한 각도에서만 관람 가능하도록 아치형으로 배치되어 회화의 전통적 시각 관점을 해체한다. 니콜라 터너의 〈Danse Macabre〉(2025)는 말총과 양모로 만든 압도적 설치로 15세기 바젤 벽화를 동시대 팬데믹 맥락에서 갱신하며, 이우환의 〈관계항〉(2025)은 돌과 철판의 조합으로 침묵의 언어를 통해 관계에 주목하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전시의 클라이맥스는 아틀리에 반 리에스하우트(Atelier Van Lieshout)의 〈The Voyage–A March to Utopia〉가 장악한다. 이 작품에는 인간이 더 나은 삶을 위해 고안해낸 수레, 도구, 화장실부터 무기, 실험실, 수술대에 아기를 품은 군인, 구걸하는 예술가, 우주비행사까지 기괴한 대열을 이룬다. 그렇게 80개가 넘는 오브제들은 서로 연결되지 못한 채 맹목적으로 나아간다. 1만6,000㎡ 홀을 가로지르는 이 장대한 여정은 유토피아적 꿈이 디스토피아적 현실과 마주하는 문명의 역설을 드러내며, 그럼에도 희망의 손짓은 여전히 앞을 향해 뻗어있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카이로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나사포나사의 집단 퍼포먼스는 약 30분간 이어졌다. 매달린 펜던트들이 부딪치며 울리는 맑은 소리가 공간을 가득 메우고, 거대한 머리장식의 무게에 짓눌린 듯한 몸짓이 펼쳐졌다. 이 작업은 누라 세이프 하사닌(Noura Seif Hassanein)과 살마 압델 살람(Salma Abdel Salam)이 2023년에 구상했으며, 결혼식에서 종종 선보이는 전통 이집트 춤인 샤마다(Shamadan)를 보다 사유적인 차원으로 재해석한 것이다 
아트바젤 인 바젤의 언리미티드 섹터 전경 2025
올해의 아트바젤은 거래의 기록을 넘어, 예술이 시장과 제도의 틈에서 어떻게 스스로를 갱신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탁월한 예시였다. 시장에 대응하는 치밀함과 도시 전체를 무대로 삼은 공공적 실험, 신체적이고 감각적인 설치와 퍼포먼스, 그리고 기억과 집단의 상상력이 교차하는 복합적 큐레이션은 이 행사를 단순한 페어로 환원되지 못하게 했다. 아트바젤의 56번째 생일은 여전히 예술이 세계의 불확실성과 불안을 야심 차고 노련하게 다루는 언어일 수 있다는 점을 새삼 확인시키는 자리였다. 그리고 그 언어야말로, 탁월함이라는 이름으로 불릴 만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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