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BUSAN 2024

‘아트부산’만의 매력을 위해

Theme Feature | 정소영 기자

아트부산 2024가 진행된 부산 벡스코
제공 : 아트부산

아트부산 2024가 5월 9일 VIP 프리뷰를 시작으로 12일까지 총 4일간 부산 벡스코에서 진행됐다. 올 상반기 일정을 마친 선행 아트페어들이 경기 불황으로 방문자 수에 비해 작품 판매율이 다소 저조했던 상황에서 불안함을 안고 시작한 아트부산의 이모저모를 살펴봤다.

‘아트부산’만의 매력을 위해

정소영 |  기자


플랫폼으로서의 아트페어
예술경영지원센터가 발간한 『2023 미술시장조사』에 따르면 2022년 기준 국내 개최 아트페어는 71개로 2011년 아트부산이 시작된 이래 두 배로 늘었다. 미술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진 만큼 늘어난 아트페어의 홍수 속에 올해 13회를 맞은 아트부산이 택한 전략은 ‘퀄리티’였다. 부스 간의 간격을 넓혀 여유로운 공간에 작품을 설치해 표현의 다양성과 방문자의 쾌적함을 동시에 선사했다. 정기적으로 페어를 찾는 컬렉터를 위해서는 신진작가와 신생 갤러리의 비율을 높여 신선함을 더하고, 대형 갤러리의 대표 작가를 확보해 상반기 최대 아트페어의 품격을 지켰다.

또한 미술품이 거래되는 아트페어의 시장기능을 확장해 작가와 갤러리, 기관과 컬렉터를 연결하는 미술 현장이자 플랫폼으로 페어를 발전시키기 위한 특별전시에도 힘을 실었다. 올해는 홍익대 주연화 교수가 커넥트(connect) 특별전 섹션을 총괄했다. 9개 섹터로 구성된 커넥트는 설치, 퍼포먼스 등 아트페어의 주 판매 장르가 아닌 비주류 장르로의 확장도 시도했다. 그중 시인이자 시각예술가였던 존 지오르노의 작품 〈DIAL-A-POEM〉은 아트부산을 통해 국내 처음 소개됐다. 1968년 처음 발표된 작품 〈DIAL-A-POEM〉은 관객이 전시장에 놓인 전화기로 전화를 걸면 예술가, 시인, 인권운동가가 낭독하는 시를 랜덤으로 들을 수 있는 퍼포먼스이자 프로젝트 작품이다. 많은 작가와의 협업으로 장르의 경계를 탈피하고자 한 존 지오르노의 작품은 아트 플랫폼으로의 도약을 시도한 아트부산의 전략이 고스란히 녹아들었다.

아트페어의 미래
아트페어 측에서 판매액을 공개하지 않았지만 아트부산 2024 공식 보도자료와 참여 갤러리들의 전언에 따르면 신진작가 또는 1000만 원 미만 가격대의 작품 중심으로 판매가 활발하게 이뤄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신진작가와 신생 갤러리의 참여를 늘리고자 한 아트부산의 전략이 유효했음을 반영하는 결과이다. 페어 구성을 메인과 퓨처로 섹션으로 구분해 기성 갤러리와 함께 신진갤러리와 신진작가의 참여를 독려했다. 퓨처 섹션에는 별관, 스페이스 카다로그, 페이지룸8, 푸시투엔터, 프람프트 프로젝트, 갤러리 언플러그드, 로이갤러리, 비스킷 갤러리, 학고재 총 9개의 갤러리가 참여했다.

다음을 위한 전략
이번 아트부산은 타이베이 당다이 아트페어와 일정이 겹치면서 갤러리현대, 아라리오갤러리, 갤러리바톤, 에스더쉬퍼 등의 국내외 크고 작은 갤러리들이 불참했다. 국내 아트페어 최대 규모라 홍보했던 2023년과 비교하면 참여 갤러리 수에서부터 힘이 빠진 모양새다. 아트부산 2024에는 총 20개국 129개의 갤러리가 참석한 가운데 약 7만여 명의 관람객이 방문한 것으로 공식 집계됐다. 한국 ‘제2의 도시’이자 ‘한국의 마이애미’라 불리는 부산은 수식어에 걸맞은 매력적인 해안가와 첨단 도시의 매력을 모두 갖추어 그 자체로 지역적 이점을 지닌다. 아트부산 역시 이 점을 이용해 ‘창조적 휴양’이라는 콘셉트 아래 부산 내 미술관과 갤러리, 레스토랑과 편집숍 제휴를 통해 아트부산을 방문한 글로벌 인사들에게 미식(美食 )과 휴양을 제공하는 등 예술 밖 체험을 확장했다. 하지만 프리즈 서울과 키아프를 통해 아트위크를 경험한 관계자들은 부산위크에 참여한 갤러리의 수가 현저히 적다는 평이다. 물론 작년과 달리 부산시립미술관의 장기적인 리모델링 여파로 부산을 대표하는 굵직한 전시장의 규모가 줄어들었다는 점과 팬데믹 종식 이후 컬렉터의 자금이 분산되었다는 점이 이유가 될 수는 있다. 하지만 대체 가능한 아트페어의 수가 증가하고 있는 현실에서 명실상부 국내 대표 아트페어로서 아트부산의 시도가 더이상 새롭지 않다는 평가다. 아트위크라는 이름으로 미술관과 갤러리, 아트페어가 예술의 발전을 목표로 연결된 것처럼, 넘쳐나는 아트페어 속에서 경쟁을 넘어 상생을 위한 방법을 모색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커넥트 특별전으로 진행된 존 지오르노의 〈DIAL-APOEM〉1968~2019
사진 : 박홍순

월간미술 5 PICKS

아트페어의 묘미 중 하나는 참여 갤러리의 대표 작품과 전시 방식을 통해 갤러리의 방향과 미술계의 흐름을 예측하는 것이다. 전략적인 전시 방식부터 신선함이 돋보이는 갤러리까지 월간미술이 주목한 5개의 부스를 소개한다.


가나아트

4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가나아트는 대형 갤러리로는 유일하게 솔로 부스를 선보였다. 일본 작가 시오타 치하루의 입체와 평면 작품으로 구성된 부스는 아트부산 초입에 위치해 페어 입장부터 시선을 강탈했다. 2015년 베니스비엔날레 일본관 대표 작가로 선정된 시오타는 2019년 도쿄 모리미술관 개인전을 기점으로 국내에서 인기를 얻었다. 그리고 2019년과 2020년 부산시립미술관과 가나아트센터에서 개인전을 진행해 국내 팬덤을 확보했다. 붉은 실타래를 무수히 엮어 공간을 가득 메우거나, 열쇠나 의자와 같은 일상의 익숙한 오브제를 사용해 조형물을 제작하는 것이 특징인 작가는 경험에 의한 공포나 외로움의 심상, 존재에 대한 성찰을 작품으로 표현한다.

소시에테

소시에테(SOCIÉTÉ)는 프리즈 런던과 스위스 아트바젤에 주로 참여해온 베를린 기반의 갤러리다. 2019년 처음 아트부산에 참여한 이후 5년 만에 아트부산 2024에 참여했다. 올해는 중국 상하이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루양(Lu Yang)의 미디어 작품으로 부스 전면을 장식했다. 루양은 젠더, 종교에 반영된 삶과 죽음, 신체성에 대한 이야기를 몰입형 미디어 설치를 통해 표현하는 작가다. 이번 아트페어 부스에는 파리 루이비통 재단에서 전시 중인 신작 〈DOKU〉 시리즈와 쿤스트할레 바젤에서 전시했던 라이트박스 작품을 소개해 관람객의 주목을 끌었다.

워킹위드프렌드

디자인, 사진, 음악 등 갤러리 전시 장르에 제약을 두지 않는 파격적인 시도를 선보이는 워킹위드프렌드(이하 WWF)는 12명의 아티스트와 함께 이번 페어에 참여했다. 아트부산 중 유일하게 음악과 제작 스피커를 판매 작품으로 선보인 WWF는 음악 프로듀서이자 DJ인 라디오피어(Radiofear)의 음악과 사진작가 목정원의 작품을 한 곳에 배치했다. 부스 앞쪽은 화이트 큐브 형식의 일반적인 작품 배치방식을 택하고, 부스 가장 안쪽은 목정원 작가의 개인전에 사용된 빨간 배경과 함께 라디오피어의 비트감 넘치는 음악을 송출하면서 페어장의 분위기를 전환시켰다. 음반 구매와 함께 스피커 역시 컬렉터의 요구에 맞게 제작, 구입이 가능한 작품으로 페어 판매 작품의 장르를 확장했다.

별관

2018년 망원동에 개관한 문화예술공간인 별관은 사진작가 안부가 운영하는 아티스트 런 스페이스이다. 더 프리뷰를 기점으로 아트페어에 참여하기 시작한 별관은 올해 처음 퓨처 섹션으로 아트부산에 참여했다. 주로 신진작가를 발굴하고 기획자의 실험적인 전시를 진행하는 별관은 이번에 윤일권 작가의 솔로 부스를 설치했다. 판화를 전공한 작가는 매체 특징을 살려 일상에서 쉽게 접하는 두루마리 휴지와 냅킨에 실크스크린으로 기억 속 인물을 찍어내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의식하지 않으면 쌓이고 버려지는 휴지의 형태가 기억과 비슷하다고 생각해 시작한 연작으로, 작가는 이번 아트페어에서 축적된 기억과 같이 탑처럼 냅킨을 쌓아 올려 프리뷰 첫날부터 주목을 받았다.

푸시투엔터

서울 인사동에 자리 잡은 푸시투엔터는 2021년 설립된 신생 갤러리다. 건축을 전공하고 큐레이터로 일한 대표의 경험을 토대로 작품의 구조와 형태, 공간 점유 방식에서 건축적 시도를 확인할 수 있다. 이번 페어에는 1992년생인 조현민의 솔로 부스로 참여했다. 의상디자인을 전공한 작가는 전통적 유화나 아크릴 물감이 아닌 여러 재료를 혼합해 작가만의 조형적 사고를 표현한다. 평면의 캔버스를 설치 작업처럼 바닥에 세워 입체감을 표현한 연출 방식은 갤러리의 특징인 예술과 건축요소의 조화를 잘 살려 작품의 형상을 그라피티 효과로 인식될 수 있도록 했다.

ZOOM IN

Connect 특별전

아트부산 특별전으로 진행된 9개의 커넥트 전시 중 가장 많은 관심을 받은 기획전《허스토리(Herstory)》와 올해 11회를 맞는 신진작가 지원 프로그램인 아트 악센트를 소개한다.


Art Accent 2024

최원교 〈Waterfall〉(사진 가운데) 혼합 매체 90 × 127cm 2023

아트부산 내 신진작가 지원 프로그램인 아트 악센트는 현재까지 약 100여 명의 신진 작가를 조명했다. 올해는 런던왕립예술대학과의 협업을 통해 동시대 미술 교류를 통한 발전을 추구하고자 했다. ‘The fruit is not there to be eaten’을 주제로 각기 다른 매체로 회화, 조각, 설치 작업을 하는 작가들이 ‘탈-현상’에 초점을 두고 전통적인 프레임에 내재된 이분법적 헤게모니를 재고하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했다. 한국 작가로는 이하은, 최원교가 참여했고 런던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작가 중에는 빌리 크로스비(Billy Crosby), 대니 레이랜드(Danny Leyland), 마거릿 량(Margaret Liang)이 참여했다.

빌리 크로스비와 대니 레이랜드는 이번 아트부산에서의 전시가 아시아 첫 데뷔다. 부산 출신 작가인 최원교는 디지털 시대에 물질과 비물질의 경계에서 이미지의 경험을 다양한 방식으로 실험한다. 2023년 홍티아트센터 개인전을 통해 선보인 적 있는〈Waterfall〉은 사진의 경험 방식을 실험하는 작업이다. 일정 시간 간격을 두고 블라인드에 프린트된 이미지는 전시 공간에 펼쳐지며 평면으로서의 이미지가 아닌 다면의 공감각적 경험을 선사한다.

《Herstory》

샤오루 〈Open Fire〉(사진 가운데) 사진 디지털 프린트 2004

아트부산 2024 특별전으로 진행된 《허스토리》 중 한국 최초 여성 미디어
아티스트 김순기의 10년간의 활 쏘는 장면을 담은 영상 〈일화〉(사진 왼쪽)와
활을 쏘아 맞춘 과녁을 그린 작품 〈색따기 과녁〉(사진 오른쪽)
사진 : 박홍순

《허스토리》는 1세대 현대미술 여성 작가들의 작품을 재조명하는 특별 전시로 신디 셔먼, 제니 홀저, 키키 스미스, 정강자, 샤오루와 같은 거장 10명의 작품을 소개했다. 특별전을 총괄한 홍익대 주연화 교수는 “미술관 전시에 비해 단기간에 많은 방문자가 몰리는 아트페어를 판매의 장뿐만 아니라 대중 미술교육과 새로운 담론 생성의 장으로 활성화하고자 이번 전시를 기획했다”고 밝혔다.

남성 작가가 주류를 이루었던 1960년대와 70년대 미술계에 여성 작가들은 작가로서 살아남기 위해 파격적이면서도 남성과 다른 신체성을 이용한 행위예술을 작업으로 표현했다. 이번 전시에는 당시 퍼포먼스가 담긴 샤오루의 영상과 한국 최초 여성 누드 퍼포먼스를 한 정강자의 모습을 사진으로 만나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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