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ngkok Art Biennale 2024

그들만의 예술이 아닌, 우리 모두를 위한
World Report

하리톤 아카라파트 〈The Horde〉
백색 에나멜 페인트로 코팅된 유리섬유
2~5m 높이의 조각 작품들 2024
제공: 와차라콘 루안캄

그들만의 예술이 아닌, 우리 모두를 위한
변선민 문화예술기획자

모두를 위한 예술 축제를 지향하는 제4회 방콕아트비엔날레(The 4th Bangkok Art Biennale)가 태국 방콕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동양의 베니스로 불리며 화려한 금빛 사원과 현대식 초고층 건축물, 세계 그 어느 곳보다 다양한 스펙트럼의 미식(美食)으로 전 세계의 관광객을 끌어모으는 태국의 수도 방콕은 이제 동남아시아 동시대 예술의 뜨거운 중심지로 발돋움할 준비를 마쳤다. 예술의 열기로 가득한 현장을 돌아보자. 비엔날레는 2월 25일까지.

방콕 출신이거나 방콕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사람들은 스스로를 방콕키안(Bangkokian)으로 칭한다. 친절하고 다정한 미소, 타이 스마일을 가진 사람들이지만 한번 화가 나면 어떤 모습을 보일지 모르는 이들은 고요와 혼돈의 두 가지 매력을 동시에 가진 도시 방콕을 그 누구보다 애정한다. 자타공인 방콕키안 아피난 포샤난다(Apinan Poshyananda)는 아티스트이자 태국 문화부 사무차장 겸 장관 대행을 지낸, 국제적으로 명망이 높은 큐레이터로 제50회 베니스비엔날레에 최초로 태국 국가관을 세우는 업적을 달성했다. 방콕 출신의 그는 지난 2018년 태국 최초의 국제 비엔날레인 방콕아트비엔날레를 설립하고 아트 디렉터를 맡아 4회째 성공적으로 이끌고 있다. 현대미술을 견인할 하드웨어와 인프라가 부족하던 방콕에서 비엔날레라는 유연한 구조가 이 도시의 현대미술을 이끌어가기에 오히려 적합할 수 있다는 판단이 있었다. 2017년 발족한 방콕비엔날레 재단은 태국 최대의 식음료 기업 타이베브(ThaiBev)의 후원으로 설립된 이래 태국 관광청을 포함한 정부의 기관과 여러 사기업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지속될 수 있었다. 2018년 34개국 75명의 작가들과 함께 제1회 방콕아트비엔날레 《천상의 기쁨을 넘어(Beyond Bliss)》를 성공적으로 치른 뒤 제2회 《탈출 경로(Escape Routes)》, 3회 《혼돈과 평온(Chaos:Calm)》을 거쳐 4회 《가이아를 돌보다(Nurture Gaia)》가 지난해 10월, 4개월간의 대장정을 시작했다. 사실 방콕비엔날레는 3회로 기획되었다. 하지만 국내외 예술계와 대중의 뜨거운 관심으로 3회를 더 진행하기로 했다. 기대속에 39개 국가에서 76명의 아티스트가 240여 점을 선보인 이번 4회 방콕아트비엔날레는 지난번에 이어 방콕의 대표적 예술 기관뿐 아니라 역사와 문화가 깃든 방콕의 사원들, 그리고 이번 비엔날레의 개막에 맞춰 개장한 방콕의 새로운 랜드마크 원 방콕(One Bangkok) 등 방콕 시내 11개의 베뉴에서 펼쳐진다. 이전에 비해 한층 확장된 규모로 다양한 전시를 통해 동남아시아 출신 작가들의 작품에 관한 관심을 소구하는 한편, 서구권 작가들의 작품과 어우러진 방콕의 매력을 전 세계에 내보이고자 한다.‘가이아를 돌보다(Nurture Gaia)’라는 주제는 대지(Mother Earth)의 모성적 상징에서 영감을 받았다. 여러 문화권에서 대지는 생명을 품고 키우는 존재로 여겨지는데, 이를 개념적으로 확장하여 인류학, 집단주의, 생태학, 페미니즘, 시간과 장소의 정치 같은 중요한 동시대적 이슈들로 발전시켜 예술을 통해 깊게 들여다본다. 지구가 하나의 유기체처럼 기능한다는 가이아 가설은 제임스 러브룩(James Loverock)이 1970년대 처음 주장했지만, 지금 우리가 당면한 시급한 이슈들, 특히 기후 변화와 전염병, 인간의 자연 파괴와 같은 환경 문제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인류가 현재 심각한 상황에 직면해 있다는 인식 확산에 도움을 주기를 기대한다.

젯사다 탕트라쿨웡
〈The Notes from Lower to Higher〉
대나무, 합판, 석고 가변 크기 2024
사진: 세니 춘하차 제공: 작가

루이즈 부르주아 〈Eyes〉 1995
방콕 아트 비엔날레 설치 전경 2024
제공: 방콕 아트 비엔날레
© The Easton 
Foundation

포샤난다를 필두로 태국을 기반으로 한 큐레이터 포자이 아크라타나쿨(Pojai Akratanakul), 브라이언 커틴(Brian Curtin), 파라마폰 시리쿨차야농(Paramaporn Sirikulchayanont) 그리고 일본 나오시마의 뮤지엄의 디렉터인 아키코 미키(Akiko Miki)가 큐레이터 팀을 구성했다. 전시는 방콕예술문화센터(Bangkok Art and Culture Centre), 퀸 시리킷 내셔널 컨벤션센터(Queen Sirikit National Convention Center, 이하 QSNCC), 원 방콕, 센트럴 월드의 현대적인 전시장들이 포함된 시티 루트와 방콕의 역사가 담긴 새벽사원 와트 아룬(Wat Arun)과 누워있는 부처가 있는 와불사원 와트 포(Wat Pho), 철로 된 담이 있는 와트 프라윤(Wat Prayoon), 그리고 올해 처음 전시 공간으로 활용되는 와트 보원(Wat Bowon)과 뮤지엄 시암(Museum Siam), 내셔널 갤러리(National Gallery of Thailand), 내셔널 뮤지엄(National Museum Bangkok) 등이 있다. 이러한 헤리티지 장소들을 전시 공간으로 활용한 것에 대해, 비엔날레 팀은 “태국의 유산과 다양한 방식으로 오랜 시간 수행되어 온 종교적인 신념, 현대적인 믿음의 모습들을 이 성스러운 공간들에 버무려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온 도시를 아우르는 전시 베뉴 선정에는 방콕의 사람들이 사랑하는 도시의 면면을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아트를 매개로 보여주고 싶다는 의지가 깔린 듯하다. 그중 2009년 개관한 방콕아트센터는 방콕 내 가장 큰 퍼블릭 아트 스페이스로 이번 비엔날레에서 142점에 달하는 가장 많은 작품이 전시된 곳이다. 연간 무료 개방으로 운영되는 이곳은 지역 사람들의 사랑방으로 자리하고 있으며, 특히 청소년들이 편하게 찾아 전시를 즐기는 곳이다.

김홍석〈Solitude of Silences〉
2017~2024 제공: 작가, 국제갤러리

방콕아트센터에 들어서면 전시장 중앙에 높이 매달린 최정화의 커미션 작업 〈골든 걸(Golden Girl)〉이 맞아준다. 뒤셀도르프의 비너스가 떠오르는 거대한 어머니 형상의 조형물과 전시장 중간에 위치한 컬러풀한 대형 야채와 과일들이 관객들을 친근하게 아트의 세계로 초대한다. 싱가포르의 선구적인 여성 예술가이자 큐레이터인 아만다 헹(Amanda Heng)은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30년에 걸친 시간 동안 어머니와 자신을 사진으로 기록했다. 연작 〈Always by my side〉를 구성하는 여러 사진이 전시장 한쪽을 가득 채웠다. 딸과 어머니의 관계를 통해 가족 내에서 여성의 위치와 정체성을 탐구하려는 작업으로 설치된 작품들을 따라 눈으로 읽게 되는 시간의 흐름과 두 여인의 모습이 관람객들의 시선을 오래도록 붙잡았다. 커다란 회화 작품이 포함된 키네틱 설치작업 〈Artificial Green by Nature Green〉은 인도네시아 작가 바구스 판데가와 일본의 게이 이마주(Bagus Pandega & Kei Imazu)의 첫 번째 협업 프로젝트로 두 작가가 각자의 작업을 결합해 만든 실험적인 작업이다. 커다란 평면 작품 앞쪽에 설치된 기계는 눈에 보이는 규칙에 따라 실제로 그림을 그리는 듯한 장면을 연출한다. 〈Mapping the Land Body Stories of its Past〉는 인도네시아가 직면한 환경 및 생태학적 문제에 대한 작품이다. 열대 우림에서 난개발로 뿌리 뽑힌 야자수에서 추출한 생체 전극으로 제어되는 브러시로 그림을 그리고, 이 과정에서 분사된 물이 역설적으로 이미지를 지우는 과정이 반복되는 작품으로 환경에 대한 관람객의 이목을 끈다. 한국 작가 김홍석은 〈침묵의 고독(Solitude of Silences)〉 시리즈의 신작을 선보였다. 다학제적 접근과 냉소적인 유머, 사회 권력구조와 불평등, 노동 문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회 이슈를 비판하는 작가는 태국 현지의 노동자들을 인터뷰해 태국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와 노동 이슈를 수면으로 끌어 올렸다. 작가가 태국의 노동자 3명을 인터뷰하고 이들을 작품의 주인공으로 무대에 세워 그간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았던 이들의 이야기에 모두가 귀 기울이게 한다. 32세의 고양이 가면을 쓴 오토바이 배달원 콘, 20대 중반의 공룡 가면을 쓴 슈퍼마켓 계산원 부아, 안정적인 직업을 꿈꾸는 48세의 쥐 가면을 쓴 장거리 버스 운전사 솜키앗. 부드러운 카펫 위에서 쉬고 있는 이들을 바라보는 관람객에게 오히려 긴장된 느낌을 주는 것은 휴식 시간 마저 자본주의의 끊임없는 요구에 대한 조용하지만, 강력한 항의의 표시로 변모했기 때문이 아닐까. 네덜란드에서 활동하는 미얀마 출신 작가 모 셋(Moe Satt)은 2005년에 진행했던 퍼포먼스를 재해석했다. 허공에 걸린 텅 빈 티셔츠 〈Body Inside T-shirt〉는 미얀마의 정치 상황에 대한 국제 사회의 모호한 인식을 상징한다. 전시 기간 작가는 금색 펜을 비치하여 현 미얀마의 상황에 대한 관람객들의 생각과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작품 표면에 남길 수 있도록 하기도 했다. 모 셋은 자아, 정체성, 정치적 저항이라는 주제를 탐구하기 위해 자신의 신체를 상징적인 도구로 활용한다. 군부가 통치하는 미얀마의 사회적, 정치적 문제를 비판적으로 다루며 아시아, 유럽, 미국 전역의 주요 라이브 아트 페스티벌에서 퍼포먼스를 선보인 바 있다. 또 다른 전시장인 퀸 시리킷 내셔널 컨벤션센터의 작품 중 눈길을 잡아끈 건, 알제리계 프랑스 작가 아델 압데세메드(Adel Abdessemed)의 대형 설치 작업이었다. 비행기 3대의 잔해가 사용된 〈Telle mère tel fils(Like Mother Like Son)〉은 전시장을 가득 채웠다. ‘아버지처럼 아들처럼’이라는 일반적 문구를 ‘어머니처럼 아들처럼’으로 바꾸어 아버지가 아닌 어머니를 중심에 두고, 사연을 알 수 없는 비행기의 잔해들을 펠트와 연결해 새로운 의미를 부여했다. 한때 하늘을 날던 비행기였던 커다란 덩어리를 지나 뉴질랜드 출신의 다학제적 예술가 리사 레이하나(Lisa Reihana)의 영상 작품 〈GROUNDLOOP〉를 만났다. 전체 작품을 집중해서 한 번에 볼 정도로 몰입감이 대단했던 이 작품은 여러 세대를 아우르는 바다의 항해사들이 아오테아로아 뉴질랜드와 호주를 잇는 바다에서 미래 여행을 떠난다. 각기 특징적인 의상으로 구분되는 마오리족, 파시피카족, 호주 원주민 여행자들은 울루물루의 해안가에서 항해를 마무리하고 즐거운 의식으로 서로를 축하한다. 고대 원주민의 기술, 문화적 지식, 그리고 조국에 대한 깊은 애정을 공상과학 스토리텔링에 녹여내는 리사 레이하나는 뉴질랜드 아오테아로아 현대미술과 현대 마오리 예술 발전에 큰 영향을 주었고, 예술가이자 프로듀서, 문화 대담가로 명성을 얻었다. 방콕아트비엔날레가 시작되고 8년여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태국 현대미술 시장과 인프라가 한결 넓어졌다. 국가 주도의 태국 비엔날레가 방콕 비엔날레와 격년으로 도시를 바꿔가며 진행되고, 얼마 전에는 처음으로 방콕에서 국제아트페어가 열렸다. 태국 출신의 아티스트 혹은 태국에 문화적 뿌리를 두고 있는 글로벌 아티스트들이 방콕에 다양한 아트 스페이스와 독립 공간, 비영리 단체를 운영하고 있고, 나라티와스 소이(Narathiwas Soi) 22 같은 예술 클러스터가 활성화되었다. 짐 톰슨 아트센터(Jim Thompson Art Center)가 새롭게 단장해 영향력 있는 비영리 현대미술 복합 공간으로 자리 잡아 예술적 담론 형성에 기여하고 있다. 빈부격차가 점점 심화되는 사회에서 변방으로 소외된 이들의 서사에 주목하고, 모두가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예술 행사가 열린다는 것, 자국의 작가 비율이 높다는 비판이 있을지라도, 예술을 즐길 기회를 지속해서 만들어주는 것이 우리가 서로를 이해하고, 어떤 시대에 살고 있는지를 알 수 있게 하는 데 하나의 실마리가 되어 주지 않을까.

아델 압데세메드〈Telle mère tel fils〉비행기, 펠트, 알루미늄, 금속 2700×400×500cm
2008 Yuz Foundation 소장
사진: 아리나 마트베이 제공: 방콕 아트 비엔날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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