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C (김희정·정다영·정성규)

CAC의 실험기: 동시대 건축
큐레이팅의 다각적 확장
The Interview

정다영(왼쪽) 『SPACE(공간)』 편집자를 거쳐 국립현대미술관 건축 분야 학예연구사로 활동하며 《그림일기: 정기용 건축 아카이브》(2013), 《종이와 콘크리트: 한국 현대건축 운동 1987-1997》(2017),《젊은 모색 2023》(2023) 등의 전시를 기획했다. 2018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전시 《국가 아방가르드의 유령》을 공동기획했다. 2024년 김정철건축 문화상을 수상했으며, 현재 건국대 산업디자인학과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김희정(가운데) 서울시립 사진미술관 학예연구사를 지냈고, 전시 《어반 매니페스토》(2014), 《젊은 건축가 프로그램》(2015~2017) 등에 참여했다. 2018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의 부(副)큐레이터를 거쳤으며, 서울시립 사진미술관 건립 세미나 《(불) 완전한 미술관》(2021)을 기획했다. 공동 저서로 『파빌리온, 도시에 감정을 채우다』(2015)가 있다.

정성규(오른쪽) 독립 큐레이터이자 원예가. 전시 《집의 대화: 조병수×최욱》(DDP, 2021)에 협력 기획으로 참여했고, 국립현대미술관 전시《올림픽 이펙트: 한국 건축과 디자인 8090》(2020)의 아카이브 연구를 담당 했다. 2018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의 어시스턴트 큐레이터를 맡았으며, TACT 공동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CAC의 실험기: 동시대 건축 큐레이팅의 다각적 확장
노재민
기자

동시대 건축을 탐구하는 큐레이팅 집단 CAC(Curating Architecture Collective)는 각기 다른 경험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기존의 위계와 경계를 자연스럽게 허문다. CAC는 전시 기획을 넘어 공간 CAC 리딩룸을 운영하고 프로젝트를 실행하며, 건축의 언어를 다각도로 확장해왔다. 이들은 건축을 물질이나 도면에만 한정하지 않고, 집단적 지성과 상상력, 주변부의 가치까지 포괄하는 실험의 장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2025 베니스건축비엔날레 한국관의 최연소 감독으로 선정된 CAC는 건축, 도시, 디자인, 시각예술 등 여러 분야와의 유연한 협업을 계속 시도하며 ‘이단아’로서 자신들만의 길을 계속 넓혀가고 있다. CAC의 세 멤버 정다영, 김희정, 정성규를 만나 그간의 활동과 고민, 앞으로의 방향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CAC는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정성규 저희 셋은 2014년 도코모모 코리아와 국립현대미술관이 공동 주최한 《장소의 재탄생: 한국근대건축의 충돌과 확장》을 준비하며 처음 만났습니다. 당시 정다영 선생님은 국립현대미술관 큐레이터, 김희정 선생님은 도코모모 코리아 큐레이터, 저는 국립현대미술관 학생 인턴으로 함께 일했죠. 이후 여러 프로젝트에서 자연스럽게 두세 명이 조합을 달리하며 꾸준히 협업해 왔고, 어느덧 1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습니다.

정다영 처음엔 미술관 전시팀의 일원으로 만났지만, 이후에 서로의 전공과 활동 영역을 달리하면서도 인연을 이어왔어요. 결정적인 계기는 2018 베니스비엔날레에서 세 명이 큐레이터(정다영), 부큐레이터(김희정), 어시스턴트 큐레이터(정성규)로 한 팀이 되면서, 각자의 전문성에서 콜렉티브 실천의 가능성을 발견하게 된 점입니다. 건축 뮤지엄이 사실상 부재한 한국 현실에서, 저희가 가진 문화적 지식과 기획적 고민을 좀 더 적극적으로, 그리고 날카롭게 드러낼 수 있는 새로운 실험의 장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이어졌고, 그 결과 CAC라는 이름 아래 느슨한 연구 모임이 시작되었습니다.

김희정 저희끼리는 각자의 역할을 자동차의 부품에 비유하고는 합니다. 추진력을 담당하는 엔진(정다영), 방향을 계속 조정하는 핸들(김희정), 앞만 보고 가다가 놓치는 부분을 짚어주는 백미러(정성규)로요. 각자의 역량이 다르고, 서로의 강점을 존중하면서 유기적으로 일의 동력을 나누는 조합이 큰 힘이  는 것 같아요. 팀워크가 굉장히 좋아서 서로 의지하며 CAC를 이끌어가고 있습니다.

CAC의 첫 번째 공간 프로젝트로 ‘CAC 리딩룸’을 꼽는데, 이에 대해 소개해 주세요.
정성규 CAC 리딩룸은 책을 매개로 한 연구와 대중 프로그램의 플랫폼 입니다. 삼청동, 서촌 등 공간을 옮겨 다니며 다양한 사람들과의 교류, 건축계 대안공간의 실험, 열린 지식 공유의 장을 꾸준히 시도하고 있습니다.

김희정 CAC를 만들 때 공간이 꼭 필요한지 고민했지만, 무언가를 제대로 하려면 결국 공간이 있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어요. 우리가 가진 자산이나 지식을 다른 사람들과 대중적으로 나눌 수 있는 장이 있었으면 했고, 그래서 처음 삼청동에 CAC 리딩룸을 열게 됐습니다. 이곳에서 저희의 소장 도서 약 450권을 리스트로 공유해 신청자에 한해 공간을 활용할 수 있도록 했고, ‘열한 번째 책’, ‘열한 번째 집’, ‘갈피 프로젝트’, ‘오브젝트’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공간을 더 적극적으로 활용하려고 했죠. 앞으로 이 공간을 단순히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서 나아가, 전시 공간 등 다양한 방식으로 확장해 나가는 변형된 CAC 리딩룸으로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정성규 미술계에 비해 건축계는 대안적 활동을 펼칠 수 있는 공간이 매우 부족하기 때문에 저희가 더 다양한 시도와 도전을 계속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CAC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외부와 관심사를 공유하고 함께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열린 공간을 꾸준히 만들고자 합니다. 더 나아가 도시와 접속하는 지점을 만들기 위해 지속적으로 공간을 기획해야 할 필요성을 느낍니다.

주요 프로그램에 대해 설명해 주세요.
정다영 ‘열한 번째 책’과 ‘열한 번째 집’은 서로 유사한 맥락에서 출발한 프로그램입니다. 담화자가 선정한 10권의 책을 돌아보는 ‘열한 번째 책’은 CAC 리딩룸을 만들면서 처음 시작한 대표적인 프로그램으로, 전시 대신 책이라는 매개를 통해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출발했습니다. 누구에게나 영향을 준 10권의 책을 바탕으로, 그다음에 이어질 ‘열한 번째 책’은 무엇일지 상상하게끔 제목을 정한 것이죠. 본인에게 영향을 준 열 채의 건축물을 공유하는 ‘열한 번째 집’은 책과 건축의 유비 관계에서 착안한 프로그램으로, 책이 2차원 공간에서 완성되는 집이라면, 실제 집은 3차원 공간에서 완성된다는 의미를 담았습니다. 이 두 가지는 어떤 면에서 공유하는 주제가 있는 프로그램이라고 봐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정성규 ‘갈피 프로젝트’는 지금까지 총 24회 진행했는데, 그때그때 우리의 관심사나 사회적 이슈, 혹은 연구 주제를 심층적으로 다룹니다. ‘오브젝트’를 통해서는 건축가와 디자이너의 사고 과정을 담은 모형, 스케치, 드로잉 등을 전시했습니다. 3회를 진행하고 공간을 이동하면서 중단된 상황인데요. 건축가들의 작업 과정에서 나오는 산물 그 자체를 전시하는 실험이었습니다.

CAC 리딩룸은 큐레이팅 이론, 국내외 건축·디자인 비엔날레와 전시 도록, 역사·비평서,
프로젝트북과 잡지 등을 비치하고 있다

기억에 남았던 회차는 무엇이었나요?
정다영 ‘다공성 건축’을 주제로 한 갈피 프로젝트에서는 퀴어, 젠더, 도시의 감정, 쓰레기와 도시 재생 등 기존 건축계에서 잘 다루지 않았던 주제들을 논의하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미술계에 비해 건축계는 여전히 무겁고 남성 중심적인 경향이 강한데, 저희는 이런 분위기 속에서 소수자나 젠더, 퀴어와 같은 주제를 직접적으로 이야기하는 시도를 조금씩 해보고 싶었습니다.

그간 CAC가 기획한 전시에 대해서도 소개해주세요.
김희정 먼저 《어셈블리 오브 에어》(팩토리2, 2021)는 건축스튜디오 바래(BARE)에 대한 오랜 애정과 관찰에서 시작된 전시였어요. 목적성을 내세우기보다는 2018년 베니스비엔날레에 참여했던 작가의 언어와 표현을, 자연스럽게 드러내고 싶다는 바람에서 출발했습니다.

정다영 원래는 코로나 시기 임시로 설치된 바래의 에어빔 파빌리온 자체에서 전시를 열 계획이었지만, 여러 현실적 이유로 축소된 형태로 팩토리2에서 전시를 하게 됐죠. 그럼에도 이 전시는 CAC에 전시를 통해 새로운 이야기를 시도할 수 있겠다는 결심을 심어준 첫 프로젝트이기도 했습니다.

《집의 대화: 조병수×최욱》(DDP, 2021)은 DDP의 넓은 로비 같은 공간인 D-숲에서 진행됐던, 기존 미술관 전시와는 조건이 전혀 달랐던 프로젝트입니다. 전시장이 아닌 열린 공간에서, 그리고 기존의 건축전에서 실물의 부차적인 매체로 사용되던 영상만으로 전시를 구성했는데, 이는 저희에게도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관객들도 영상을 통해 건축을 훨씬 편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영상의 형식도 각 건축가가 자신의 작업과 개인적 경험을 자서전처럼 풀어내는 ‘비주얼 다이얼로그’에 가까웠고, 그 점이 관객들에게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었던 요인이었던 것 같습니다.

2021년 정림건축문화재단의 건축 큐레이팅 워크숍(CAW)에서 강연자이자 멘토로 참여한 것 역시 기억에 남는 활동입니다.
정다영 건축 큐레이팅이라는 분야가 체계적으로 정립된 적이 없는 만큼, 저희의 경험을 바탕으로 호스트처럼 큐레이터, 연구자, 비평가를 초청해 함께 토론하고 지식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죠. 이후에는 뮤지엄 안에서 건축 큐레이터의 역할과 힘의 체계 등을 좀 더 깊이 분석하며 워크숍의 형태를 발전시켜 왔습니다. 이를테면 건축 큐레이터에게 조금 더 강한 무기가 있다면 그것은 공간을 기획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실제로 건축 큐레이터가 스스로 공간 디자이너의 역할을 하는 경우도 많고요. 이것을 체계적으로 뮤지올로지의 세계에서 설명하려고 했던 것이 초기 CAW였다면 최근에는 비엔날레라는 제도 속에서 건축 전시가 무엇인지를 정리하고 있습니다. 이번 여름에는 올해 베니스비엔날레의 경험을 공유할 생각입니다.

CAC 리딩룸의 서가에 전시된 ‘오브젝트’ 현장 사진

2025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전시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정성규 《두껍아 두껍아: 집의 시간》은 한국의 유명한 전래동요인 ‘두껍아 두껍아’를 은유적 틀로 삼아 한국관의 과거-현재-미래를 탐구하고자 합니다. 한국관 건축 아카이브에서 수집한 자료를 토대로 제작한 도큐멘테이션 영상을 통해서는 전시 제목의 두꺼비를 비롯한 다양한 존재들의 시선으로 나무, 땅, 바다로 둘러싸인 자르디니 공원 내 한국관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김희정 참여작가들은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의 미래와 자르디니 공원 내 타 국가관과의 공존 가능성을 제시하는데요. 이를테면 이다미는 한국관의 지난 역사에서 드러나지 않았던 숨은 존재들을(나무, 고양이, 단군, 여성) 화자로 내세워 다양한 존재들이 공존하는 한국관의 의미를 돌아봅니다. 양예나는 몇천만 년 동안 묻혀 있던 가상의 땅속 이야기의 허구적인 전개를 통해 자르디니 공원의 원초적 시간과 한국관의 지하 공간을 다루고, 박희찬은 한국관을 둘러싼 나무에 반응하는 건축 장치를 만들어 자르디니 공원의 중요 유산인 나무를 응시합니다. 김현종은 한국관만의 독특한 공간인 옥상에 작업을 설치하여 환대의 공간을 작동시키고, 모든 국가관이 공유하는 하늘과 바다라는 자원을 보게 합니다.

어떤 점을 가장 중점에 두었나요?
정다영 이번 전시에서는 한국관이라는 장소 자체가 모든 작업의 출발점이 되길 바랐습니다. 한국관은 다른 국가관들과 달리, 가볍고 비정형적인 철골의 필로티 구조를 가지고 있어요. 벨기에관이나 독일관처럼 견고하고 고전적인 건물이 아니라, 오히려 일시적이고 열린 구조라는 점이 굉장히 아이러니하면서도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한국관의 역사와 용도, 물질적인 조건 및 구조적 특성에 대한 세밀한 연구를 토대로, 건축가 및 작가들과의 필드 트립 및 협업을 통해 한국관이 가진 특질을 최대한 전시에 녹이고자 했습니다. 이 특질이 한국관 너머 베니스비엔날레 무대가 되는 자르디니 공원의 생태적 가치와 지속가능성과 연결될 수 있다고 봤습니다. 참여 작가들의 작업은 조금씩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결과적으로 자르디니 공원의 공통 자산-땅, 바다, 나무, 하늘, 동물 등-과 자연스럽게 연결되며, 비인간적 요소와의 공존을 섬세하게 조명하는 데 중점을 두었습니다.

CAC는 건축물의 설계자 이름이나 완공일 같은 기본 정보를 명패처럼 만들어
작품에 
캡션이 붙은 것처럼 한국관 곳곳에 설치했다.
뿐만 아니라 한국관 조형의 근간이 된 주변 
수목에도 이름표를 붙여주었다.
제19회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전시 전경 2025

사진: 최용준 제공: 2025 한국관 추진단

참여 작가는 어떤 기준으로 선정했나요?
정다영 단순히 유명세나 이력보다는 저희와 함께 소통하고 협업한 경험이 있는지, 비엔날레와 전시라는 문법에 대한 이해가 있는지, 그리고 성비의 균형을 고려했습니다.

본 전시의 주제(Intelligens. Natural. Arti cial. Collective) 와는 어떻게 호응하나요?
김희정 저희가 한국관 감독으로 선정된 이후 대주제가 나왔지만, 결과적으로 콜렉티브 인텔리전스, 즉 집단 지성이라는 흐름과 자연스럽게 맞닿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올해 비엔날레에서는 각 국가관의 큐레이터들이 콜렉티브로 구성된 경우가 특히 많았고, 완전히 다른 분야의 사람들이 협업하는 전시가 두드러졌어요.

정다영 아르세날레 전시는 모르겠지만 자르디니 국가관 전시의 경우 총감독인 카를로 라티가 내세운 ‘인텔리전스’라는 키워드를 단순히 기술이나 스마트시티, AI 같은 협의의 의미에만 머무르지 않고, 광의적으로 확장하는 국가관이 많은 것 같아요. 오히려 태고의 원시 지식이나 내재된 경험을 존중하고 인텔리전스라는 개념을 한쪽 방향으로 보는 것을 반성하며 자연의 지식이나 비인간 존재와의 공존, 생태계에 대한 성찰 등으로 확장해서 해석하는 것이 흥미로웠습니다. 도나 해러웨이가 평생 공로상을 수상한 것도 인간과 비인간의 관계, 다양한 존재들의 연결이라는 메시지와 맥락을 같이한다고 느꼈어요. 그런 의미에서 저희 역시 이번 전시에서 건축의 물리적 조건뿐 아니라 그 장소에 머무는 땅, 바다, 나무, 하늘, 동물 같은 다양한 존재들을 함께 조명하면서 비엔날레의 대주제와 자연스럽게 연결되고 있음을 실감했습니다.

전시의 아카이브와 도록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세요.
정다영 비엔날레나 대규모 건축 전시는 미술관 전시처럼 아카이브와 도록이 1:1로 대응하기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저희는 작가들에게 작업의 당위성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자료, 즉 아카이브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미술가는 본질적으로 무용한 것을 만들고 그 자체의 미적 가치를 드러내는 존재이지만, 건축가는 다릅니다. 건축가가 근거 없이 사변적인 작업을 하면 “그 작업이 건축가에게 어떤 의미가 있느냐”는 비난을 받기 쉽기 때문입니다. 특히 건축비엔날레에서는 이런 비판이 더 직접적으로 제기될 수 있기에, 저희는 아카이브를 적극적으로 내세웠고, 이를 통해 새로운 시도와 작업의 의미를 스스로 설명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고자 했습니다.

이번 도록 앞부분에는 과거의 아카이브 자료를 저희만의 시선으로 해석해 정리한 내용이 들어가요. 이 아카이브는 공동 설계자 프랑코 만쿠조의 기증 자료를 비롯해, 베니스 현지 기록과 백남준의 자료 등 다양한 출처에서 가져온 이야기들을 연결하고자 했습니다. 단순히 중립적으로 자료를 모으는 것이 아니라, 저희가 강조하고 싶은 관점을 담아 선택적으로 엮어낸 편향된 아카이브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기존 건축 전시 도록의 구조적이고 완결된 디자인을 피하고자 했습니다. 대부분의 건축 전시 도록이 기승전결이 뚜렷하고, 깔끔하면서도 드라이한 완성 형태를 지향하는 반면, 저희는 오히려 다양한 정보와 이미지가 서로 오버랩되고 적층되는 방식에 주목했습니다. 경계를 흐트러뜨리며 복수의 시각과 정보가 공존할 수 있도록 편집했습니다.

이다미 〈덮어쓰기, 덮어씌우기〉 제19회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전시 전경 2025
사진: 최용준 제공: 2025 한국관 추진단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김희정 올가을 남산 피크닉에서 힐튼호텔에 관한 전시를 선보일 예정입니다. 최근 건축물의 생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가운데, 이번 전시는 철거를 앞두거나 이미 철거가 진행 중인 건축물들이 맞이한 생애의 전환기에 주목합니다. 오랜 시간 서울의 주요 풍경 속에 자리해 온 힐튼호텔이 상징하는 도시 변화와 기억을 출발점으로 삼아, 유사한 상황에 처한 건축물들의 이야기와 그들이 품고 있는 시간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정다영 이번 베니스비엔날레 이전까지는 연구모임에 가까워서 지식 공동체를 만들고자 하는 소망이 있었던 상황이라면, 이제는 베니스비엔날레를 계기로 국내외 다양한 분야와의 협업을 넓히고, 건축뿐 아니라 미술, 미디어, 공연 등 여러 분야와 함께 경계 없는 하이브리드 작업을 계속 이어가고자 합니다. 사실 건축계는 저희를 이단아처럼 보기도 하지만, 그 점이 오히려 CAC의 개성이라고 생각해요. 단적인 예로 이번 베니스비엔날레 참여작가들만 봐도 기성세대가 아니었거든요. 앞으로도 CAC는 유명 작가를 전면에 내세우기보다는, 건축물이나 사물, 동물처럼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존재와 그 주변부의 맥락에 더 집중하고자 합니다. 건축물의 생애와 그 안팎의 다양한 생태계를 기획자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말하지 못한 이야기들에 응답하는 전시와 프로젝트를 만들어가는 것이 CAC만의 특화된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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