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UNG HYUN

덩어리, 몸, 감각_정동의 조각

ARTIST REVIEW

정현은 1956년에 태어났다. 홍익대 및 동 대학원 조소과를 졸업하고, 1990년에 도불해 파리국립고등미술학교 조소과를 졸업했다. 1992년 원화랑에서의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올해의 작가 2006: 정현》(국립현대미술관, 2006), 《정현》(금호미술관, 2018), 《서 있는 사람》(팔레 루아얄 정원, 2016), 《시간의 초상: 정현》(성북구립미술관, 2022),《덩어리》(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 2023.12.20~2024.3.17) 등 개인전을 열었으며, 김종영미술관 제1회 올해의 작가(2004),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선정한 올해의 작가(2006), 제28회 김세중조각상(2013), 제11회 우현예술상(2017) 등 다수의 상을 받았다.

인체 조각을 꾸준히 탐구해온 정현의 여정은 단일 언어로 요약되지 않는다. 198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한 그는 인체에 심도 있게 접근하기 위해 해부학을 공부하면서 인간 실존에 관해 탐구했다. 이 시기의 작품에는 뼈대가 부각되는 인체 표현이 두드러졌다면, 1990년대와 2000년대를 거치면서 작품세계의 중심에는 ‘재료’가 들어서게 된다. 전시를 재료 탐구의 계기로 활용한 그는 용도를 다한 석유 찌꺼기인 콜타르와 폐철근, 아스콘 등 폐기를 앞둔 재료에 작가의 개입을 최소화하면서 재료 본연의 물성과 거기에서 비롯된 서사를 강조해왔다. 30여 년 동안 그가 해왔다는 ‘잘 헤매기’는 작가의 관찰자적 자세를 보여준다. ‘하찮은 것들의 하찮지 않음’을 향하는 고민을 담아내는 정현의 작업세계를 살펴보자.

덩어리, 몸, 감각_정동의 조각

정현 | 미술비평, 인하대 교수

“걷는다는 것은 잠시 동안 혹은 오랫동안 자신의 몸으로 사는 것이다”
-다비드르브르통, 걷기 예찬』중에서

정현의 조각은 삶의 주변에서 길어온 비조각적인 것들에서 비롯된다. 이 질료들은 오랜 기간 쓸모를 위한 도구,수단, 장치로 사용된 것들이다. 정현에게 이 질료들은 인간과 문명을 위해 자신의 몸을 헌신한 존재와 다름없다. 그의 대표작 <서 있는 사람> 은 인간과 사물, 자연과 문명에 관한 물질적 사유를 담고 있다. 무엇보다 작품의 재료인 침목은 기차의 무게와 회전하는바퀴의 움직임으로 마모되어 해진 몸이라 부를수 있다. 그래서 이 상처투성이의 몸은 가공될 수 없는 것, 즉 인내의 시간이 담긴 물질이다. <서 있는 사람>은 로댕과 자코메티의 ‘걷는 사람과도 연결된다. 고전주의 조각의 육감적인 몸과 달리 로댕의 ‘걷는 사람’은 머리와 팔이 부재하고, 자코메티는 동일한 형상에 양감을 없앰으로써 조각과 철학적 사유가 절합(合)된 근현대조각의 표상이다. 앞으로 나가는 몸짓은 운명에 내던져진 인간의 숙명을 드러내기에 실존주의적으로 해석되곤 한다. 특히 자코메티의 마른 인간 형상은 존재의 유한성을 상기시킨다.

이에 반해 정현의 <서 있는 사람>은 단단하게 대지와 연결되어 있다. 이미 상처투성이의 물질로 조형된 이 인간상은 천재지변에도 흔들리지 않겠다는 경기가 느껴질 정도다. 정현은 한국에서 아카데믹한 고전주의 조각을 습득한 후 사실주의에 몰두했으나, 1980년대 중반에 떠난 파리 유학을 계기로 서구의 전통적 미학의 틀에서 벗어난다. 유학시절 작품에는 양감이 사라진선적인 형상성과 추상적인 텍스처가 나타나기도 하는데, 조각에 대한 고민만큼이나 인간과 존재에 대한 고민이 깊어진 시기였을 것이다. 당시 프랑스 미술은 1960년대를 견인한 누보레알리즘(Nouveaux Réalisme)과 쉬포르/쉬르파스(Supports/Surface)의 영향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이 두 미술운동은 미술의 전통을 해체하여 모더니즘 이후 미술의 향방을 모색하기 위한 실험에 몰두하는데, 이는 영미권에서 발전한 팝아트와 개념미술에 대한 반향이기도 하다. 소비사회로의 전환은 유럽의 조각 전통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 이탈리아에서 등장한 아르테포베라(Arte Povera, 가난한 예술)도 실존주의의 자장 안에서 나타난 실험으로 작가의 신체와 세계의 현상학적 관계와버려진 재료들을 아상블라주하여 유물론적 세계를 풍자한다. 특히 세자르 (César)는 쓸모를 다한 폐기물을 압축하여 기계문명의 미래를 예견한다.

비체에서 의미로
파리 유학 후 한국으로 돌아온 정현은 조각의 도구를 버리고 각목, 삽,톱 등을 이용하여 흙을 다지고 다듬는다. 예술의 도구에서 노동의 도구로 전환하자 투박하지만 속도와 질감의 강도가 달라지면서 추상적인 부분이 나타나게 된다. 오광수는 당시의 조각을 로댕의 발자크와 비교하기도 한다. 양감만큼이나 표면의 거친 질감과 마치 주상절리를 연상케하는 파편적인 선들은 형상의 재현에서 점점 더 멀어지게 되는데, 이러한 간극은 작업의 과정이 곧 노동의 과정 또는 폴 발레리가 말한 파괴에 의한 창조의 과정으로 부를 수 있겠다. 2006년 국립현대미술관 초대전에 처음으로 등장한 침목을 주재료로 한 <무제>는 익명의 군상으로 특별한 인물이 아닌 수많은 민중의 존재를 떠올리게 했다. 이후 그의 질료는 점점 더 조각의 영역에서 벗어난다. 침목을 비롯하여 아스팔트, 콜타르, 철근 등과 같은 산업 폐기물은 한국의 산업화와 개발주의의 밑바탕을 이루는 가공 물질들이다. 정현은 대리석과 같은 순수조각의 질료 대신 비체와 다름없이 쓸모가 사라지면 곧바로 배출되는 물질을 조각의 물질로 끌어안는다. 다만, 비조각적 물질은 작업하기에는 불편한 재료이다. 정현은 이러한 재료의 특성을 긴 호흡의 시간을 통해 풀어낸다. 작가에게 조각은 곧 물질과 같다. 물질이 작업으로 생성되기 위해서는 자연의 힘을 빌린다. 태양에 노출되고 비를 맞고 산화된 물질은 스스로 반응하고 치유하면서 시간의 흔적에 의해 존재를 드러낸다.

왼쪽〈무제〉 석고, 마닐라삼, 나무 14.5×22.3×90.5cm 1989
오른쪽〈무제〉 석고 16.5×19×79.5cm 1987
제공: 성북구립미술관

작가의 아틀리에 전경

〈무제〉 종이에 콜타르 45×37cm 1990
제공: 성북구립미술관

〈무제〉 종이에 콜타르 45×37cm 1990
제공: 성북구립미술관

《덩어리》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 전시 전경 2024 사진: 박홍순

〈무제〉 유리에 콜타르 38.8×30cm 1999
제공: 성북구립미술관

서울시립남서울미술관의 전시 <덩어리> 는 조각가 정현의 조형세계를 다섯 개의 장으로 재구성하여 초기작부터 현재 실험 중인 작업을 아우르며 다양한 변곡점들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구성한 전시이다. 무엇보다 각 장은 비연대기적 방식으로 구성되어 개별적인 작업에 집중하되 어떤 위계나 내러티브로부터 자유롭게 전시를 즐길 수 있다.

첫 번째 공간 점유하는은여수장도에 위치한 레지던시에서 보낸 몇 달간의 시간의 흔적을 담았다. 정현이 버려진 사물에 관심이 많은것은 이미 주지하는 바인데, 돌에도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여수에서는 작업보다는 걷기에 집중했다고 한다. 그에게 걷기는 어떤 의미일까? 그는 생각을 비우고 걸으면서 우연히 발에 걸리는 돌을 주위 작업실에 모아 놓기 시작했다. 걷기가 조각이 될 수 있을까? 한 예로 영국의 개념미술가 리처드 롱은 반복적인 걷기로 땅에 기하학적인 형태를 만들기도 했고, 나아가 롱은 1969년에 영국의 습지 다트무어의 걷기를 조각으로 만들었다고 전한다. 걷기 행위를 조각적 차원으로 개념화한 건 흥미로운 지점이다. 그렇다면 정현의 걷기도 조각적인 행위로 볼 수 있겠다. 걷기와돌줍기는하나의 수행이 되었고 전시로 이어진다.

두 번째 공간’ 얼굴들’은 조각 행위의 바탕을 다룬다. 두상은 조소과 입학을 위한 첫 번째 관문이다. 당연히 기능적인 면에 치우칠 수밖에 없다. 여기에서는 앞서 언급한 작업의 질료와 도구가 어떻게 의외성을 끌어올 수 있는지를 알려준다.

세 번째 장 ‘누워있는 사람’은 그의 대표작 <서 있는 사람>의 대구(對句)로 볼 수 있겠다. 이 작업이 누워있는 이유는 아스팔트가 연성의 재료이기 때문이다. 거칠게 가공된 인물의 모습에서 작가는 비애감을 언급한다.

〈무제〉 철근 141×31×30cm 2008 사진: 임장활 제공: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

〈무제〉 석탄 39×29×52cm 2005 사진: 임장활 제공: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

네 번째 장 ‘순간의 포착’은 드로잉을 다룬다. 오늘날 드로잉은 단순한 에스키스나 크로키로 제한되지 않는다. 정현에게 드로잉은 포착하기 어려운 심리적 상태, 기분, 느낌과 같이 현상학적인 감응을 되찾는 일종의 표지와 같다. 작가는 이 드로잉을 통해 감정을 재충전해 어떠한 형상을 그리거나 재현하지 않고 원래의 감정을 작업으로 이입시킨다고 한다. 이번 장에서는 비공개된 작업들이 소개되는데, 폐기한X-ray 필름을 모아서 그 위에 석유찌꺼기로 드로잉한 작업으로 그 성분에 따라 발현되는 화학적 반응에 의하여 유일한 감응을 끌어낸 작업이다.

다섯 번째 장 ‘더께:일의 흔적’은 무엇보다 시간의 켜를 떠올리게 한다. 정현의 연금술은 일반적인 연장이 만들어내는 조형성이 갖는 비전형성과 아스팔트나 산화된 철과 같이 불완전한 질료 덕분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시간의 힘이 만들어낸다고 말할 수 있다. 정현의 녹드로잉은 철판위에 흠집을 내고 비를 맞혀 녹스는 과정에서 비롯된다. 적어도 5년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조각과 정동
덩어리는 무조건 무겁고 단단하지 않다. 조각에서 양감은항상시간을 초월하여 존재해야 했다. 그래서 단단하고 우뚝 서 있는 모습이 하나의 전형으로 자리 잡은 셈이다. 정현은 이러한 조각의 문법을 전방위적으로 재배치한다. 단순히 구조를 바꾸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구부리고 눕히고 상처를 입혀 딱지를 만든다. 또한 버려진 것들을 통해서도 존재의 상태를 건드린다. 그가 지속적으로 다뤄온 ‘인간과 존재’에 대한 애정과 물음은 애초부터 생명의 물질과 연결되어 있었을 것이다. 앞으로는 정현의 예술세계를 생태와 환경의 관점에서도 다뤄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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