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rculate – Photography Beyond Frames
시대를 소장하는 일:
질주하는 이미지에 제동 걸기
World Report

에메 지토 레마 〈A Body to Come Back〉(사진 오른쪽),
아날로그 프린트, 일포드 펄 사진 용지, 자석으로 고정된 프레임 200×130cm
《Circulate – Photography Beyond Frames》 스테델릭 미술관 전시 전경 2025
시대를 소장하는 일:
질주하는 이미지에 제동 걸기하도경 미술비평
1924년, 암스테르담 시정부는 암스테르담 작가의 작품을 수집할 수 있도록 스테델릭 미술관(Stedelijk Museum)에 보조금을 지급하기 시작했다. 한 세기가 지난 지금, 이른바 시정부 수집은 미술관 소장의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 잡았으며, 국적을 초월해 네덜란드 미술계 전반의 창작 활동을 반영하는 방향으로 확장됐다. 암스테르담 작가의 활동을 지원한다는 사회적 목적에서 시작된 제도는, 수년을 거치며 미술과 디자인의 동시대적 맥박을 짚을 수 있는 중요한 수단으로 자리매김했다. 올해 소장품 제안 전시의 주제는 ‘순환하기 – 프레임을 넘어선 사진’이다. 미술관 소장이 확정된 작가들과 더불어 미술관이 현시점에서 사진 매체를 주요 의제로 꺼내든 이유를 살피며, 전시를 살펴보자.
스테델릭 미술관의 소장품 제안 전시는 히토 슈타이얼(Hito Steyerl)의 ‘순환주의(Circulationism)’ 개념을 온몸에 걸쳤다. 더 이상 이미지 생산이 아닌, 후처리하고, 발행하며, 가속하는 시대의 사진에 집중해, 모든 화면에서 움직이고, 조작되고, 스크롤되며, 정지되는 이미지 흐름과 프레임 너머 요인에 의존하는 매체의 지위, 상호작용 방식에 대한 사유를 이끌어내자는 취지다.
이번 전시는 2003년 소장품 제안 전시로 초점을 맞췄던 사진 매체로 다시 향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이는 사진 컬렉션에 대한 미술관의 방향 전환이자, 특정 매체에 덜 얽매이며 연구 및 아이디어, 개념을 토대로 가장 적합한 형식과 매체를 선택하는 동시대 작업 트렌드를 반영하는 과정이다. 인공지능의 출현으로 카메라 없이도 사진을 제작할 수 있는 시대, 그것이 사진인지 아닌지에 대한 질문이 더 이상 의미가 없어짐에 따라 의미의 예술적 운반체로서 사진에 초점을 맞췄다. 전시 참여 작가는 기존의 오픈콜 방식이 아닌 미술관과 관련이 있고 해당 주제에 뚜렷한 관점을 지닌 전문가 20인을 통해 리스트를 구성했다. 그 결과, 총 21명의 작가들이 선정됐다. 미술관은 전시 기간 어떤 작품을 소장 작품으로 인수할 것인지 계획을 발표함으로써 자신들의 소장 과정에 대중의 관심을 모았다.
전시장 입구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케빈 오세파의 사진 설치 작업이 모습을 드러낸다.
케빈 오세파 《Circulate – Photography Beyond Frames》
스테델릭 미술관 전시 전경 2025 사진: Sangmin Cha
숨김과 드러냄 사이에서
오늘날의 이미지는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 기술 발전으로 인한 이미지의 무한 복제가 예술과 그 아우라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어떻게 바꿀지 예견한 ‘복제’ 시대에서 나아가, 디지털 네트워크를 통해 지속적으로 변화하고, 증식하는 유동적이고 역동적인 실체로서 이미지는 ‘순환’ 시대로 나아간다. 이번 전시는 이미지의 디지털 조작과 그것이 퍼지는 가속도, 그리고 이미지가 화면에 나타나는 친밀하고도 일상적인 방식을 조명한다.
전시는 순환의 대표적인 예로 밈 문화에서 가능성을 봤다. 큐레이터이자 문화 철학자인 레거시 러셀(Legacy Russell)은 『Black Meme』(2024)에서 저항 과정에서 밈의 잠재적 역할에 대해 논의했다. 러셀은 밈이 사진이나 무빙 이미지에 강력한 감정적, 정치적 영향을 어떻게 주입할 수 있는지 분석하면서, 밈은 인종적 고정관념을 강화하고 흑인의 몸과 문화를 해로운 방식으로 재생산하기도 하지만, 소외된 커뮤니티의 서사를 재편하는 전략적이고 강력한 매체로 활용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과포화된 시각문화에서 밈은 역설적이면서도 효과적인 방식으로 비판적 참여와 희극적 가벼움을 수렴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큐레이터 미렐바 베르구트(Mirelva Berghout)는 러셀을 인용하며 밈 문화의 가능성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덧붙였다. 그는 파리 올림픽 선수들의 업적을 기념하기 위해 공유된 비디오가 틱톡, 인스타그램, 왓츠앱 등을 통해 GIF 파일 형식으로 퍼지며 집단적 혹은 개인적 승리에 대한 유머러스한 시각적 은유로 사용되는 것을 예로 들고, 이를 통해 이미지와 의미 사이의 진화하는 관계가 사진과 문화, 사회적 맥락과 다양성의 관계를 변화시킨다고 해석했다. 베르구트는 밈 문화를 통한 실천과 참여가 특히 중요하다고 피력하는데, 그 이유는 점점 자신을 지우면서 입지를 강화해가는 미디어들의 전략에 대항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실제로 사진, 비디오, 게임 같은 시각적 미디어는 점점 자신의 경험에서 매체를 숨기는 방식으로 발전하고 있다. 이제 사용자는 콘텐츠의 중재되지 않은 직접적인 경험에 익숙해지고 있다. 사막을 걷고 있지 않지만, 이 사실을 숨기도록 설계되어 고도의 몰입을 유도하는 가상현실 미디어에 익숙해지면서 말이다. 더불어, 세상이 우리에게 이미지로 전달된다는 직접성과 강렬함은 우리가 더 이상 기술의 개입을 알아차리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미래로 향한다. 이러한 미디어의 즉각성은 사회에 깊게 내재하는 구조들의 변화 가능성을 방해하고, 창의성과 상상력을 억누를 수도 있다.
세마 베키로비치 〈Unfixed Galaxies〉고정되지 않은 사진 프린트, 빨간색 플렉시글라스(아크릴)
150×210cm 2024 제공: 스테델릭 미술관
느리게 또는 멈추게 하기 위해
스테델릭 미술관은 글로벌 시각문화를 특징짓는 즉각성과 유동성 아래, 사진 매체의 특수성이 사라지면서 예술 작품을 정의하고 해석할 때 큐레이터, 비평가를 포함한 실무자와 관객 모두에게 다른 접근 방식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접근은 주제, 역사적 맥락, 사회 및 정치적 층위, 물질성과 같은 복합적 요소를 재인식하고, 시각적 복잡성을 다시 탐구하는 데서 출발한다. 전시는 속도를 늦추고, 시각적 요소에 더욱 집중하며 보이지 않는 것들을 느낄 수 있도록 초대하는 것을 목표하면서 기술적, 제도적, 대중적 경계를 넘어서 사진을 (다시) 고려하도록 요청한다. 이에 자신을 숨기는 미디어와 유동하고, 가속하는 이미지들 사이에서 감속하거나 멈추는 지점을 탐구하는 21명의 작가들에게 조명을 비췄다. 미술관은 그중에서도 최근 7명의 작업을 소장하기로 결정했다.
소장작은 기억과 흔적, 트라우마의 물질적 재현에서부터 시작된다. 에메 지토 레마(Aimée Zito Lema)는 사진과 몸을 매개로 개인·사회적 트라우마를 은유적으로 시각화한다. 자신의 몸을 사진지에 감싸 인화하며 남기는 주름은 단순한 흔적이 아니라, 과거의 상처와 기억이 사라지지 않고 왜곡된 형태로 남아 있음을 드러낸다. 작가는 이 주름을 통해 역사적 고통과 기억의 층위를 탐구하며, 이를 시각적 언어로 풀어낸다. 기억의 시각적 재구성이라는 주제 의식은 멘디 프랑카(Mandy Franca)의 작업에서도 이어진다. 프랑카는 일상의 이미지를 휴대전화로 기록한 후, 사진 위에 오일 파스텔을 덧칠해 개인적 기억과 감정을 재해석했다. 작업은 사진이라는 기록 매체의 기능을 해체하고, 감정과 기억의 물리적 흔적을 시각적 풍경으로 변모시킨다. 이 과정에서 일상적 순간은 개인적 서사로 확장되고, 감각적 층위로 재구성된다.
멘디 프랑카〈Fluttering Leaves Make the Wind Blow 3〉(사진 오른쪽)
오일 파스텔, 지클레 프린트 147. 2 ×112cm 2024
《Circulate – Photography Beyond Frames》 스테델릭 미술관 전시 전경 2025
사진: Sangmin Cha
기억과 현실의 경계를 허물며 시각적 환영을 만들어내는 비타우타스 쿰자(Vytautas Kumža)는 사진과 조각을 결합해 관객의 인식 방식을 흔드는 방식을 취했다. 그의 작업은 이미지 속 오브젝트가 실제인지 혹은 조작된 것인지 모호한 경계를 형성해,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시각적 관습을 다시 질문하게 했다. 이 같은 현실의 재구성은 카챠 노비츠코바(Katja Novitskova)의 작업에서 기술적 시각과 연결된다. 노비츠코바는 자동 카메라에 포착된 야생 동물의 이미지를 기반으로 인간, 기술, 자연 사이의 관계를 탐구했다. 작가는 기계적 시각이 자연을 재현하는 방식을 재구성하며, 기술이 단순한 기록을 넘어 권력과 통제의 메커니즘으로 작용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기술적 시각을 다룬다는 점에서 로버트 흘라스(Robert Glas)의 작업도 연장선에 있다. 흘라스는 네덜란드 이민자 구금 시설을 시각화하며, 규제와 통제 속에서 인간의 자유가 어떻게 흐릿해지는지를 탐구했다. 그의 작업은 일상적 공간과 감시의 시선을 통해 권력과 통제의 시각적 구조를 드러내며, 사회 시스템의 억압적 메커니즘을 조명한다.
한편, 케빈 오세파(Kevin Osepa)는 시각적 아카이브와 개인적 기억을 결합해 아프로-카리브 정체성을 탐구한다. 퀴라소의 토착 유적지와 민속적 자료를 시각 요소로 활용해 과거와 현재, 현실과 신비가 공존하는 마법적 사실주의 공간을 창조했다. 작업은 식민지 이후의 정체성과 기억의 층위를 새롭게 재해석하며, 과거의 서사를 현재로 확장했다. 마지막으로, 자야 펠루페시(Jaya Pelupessy)는 현대 시각문화의 이미지 과포화 현상과 네트워크적 관계에 주목했다. 그는 사진의 기술적 역사에서 영감을 받아 이미지가 생성되고 순환하는 과정을 시각화했다. 이는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수많은 이미지 속에서 서로 얽히고 연결된 시각적 흐름을 다시 보게 만들며, 디지털 이미지 시대의 시각적 네트워크에 질문을 던진다.
비타우타스 쿰자 〈Straight Inside〉
아카이벌 잉크젯 프린트, 새겨진 유리, 알루미늄 프레임 140×100cm 2024
《Circulate – Photography Beyond Frames》 스테델릭 미술관 전시 전경 2025
작가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현대 이미지 문화의 과잉과 유동성에 저항하며, 감춰진 맥락과 정치적·사회적 서사를 재구성한다. 이는 단순히 새로운 이미지를 생산하는 데 그치지 않고, 기존 이미지의 맥락을 비판적으로 고찰하며 새로운 시각적 대화를 형성하려는 노력이다.
알고리즘과 네트워크가 우리 대신 이미지를 선택하고 보여주는 시대, 예술적 시선은 단순한 생산을 넘어, 그 흐름을 비판적으로 재구성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오늘날 우리는 끊임없이 이미지들을 스크롤하며, 피드(feed) 속에서 이를 소비한다. 그러나 이 이미지들은 어디에서 오고, 어디로 향하는가?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으며, 관계적 교환이 단절된 채 축적되는 이미지들은 단순한 데이터의 반복에 불과하다. 하지만 예술은 이러한 흐름을 멈추게 혹은 느리게 하거나 방향을 전환하며 새로운 관점을 제시할 수 있다.
작가들은 오늘날의 이미지 흐름 속에서 피드 개념을 재해석하며 개인적인 아카이브를 구축한다. 이들은 인터넷과 미디어 공간에서 얻은 이미지들을 수집해 정치적, 역사적, 혹은 개인적 맥락에서 재맥락화하며, 이를 통해 새로운 시각적 서사를 제시한다. 새로운 이미지 생산이 아닌, 기존 이미지와 데이터에서 출발해 자신만의 예술적 차원인 위조된 피드(fake feed)를 창조하며, 지속적인 대화에 참여하는 것이다. 결국, 이는 우리가 피드 속에서 무작위로 소비하는 이미지들이 단순한 시각적 파편이 아니라, 역사적 맥락과 사회적 구조 속에서 의미를 생성하고 변형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기술이 이미지를 압도하는 시대, 예술은 한발 물러나 그 흐름을 재고하고, 다시 보는 방식을 제안해야 한다. 이제, 방점은 더 많은 이미지를 생산하는 것에 있지 않다. 무엇을 보고, 어떻게 보고, 그 속에서 어떤 위치를 점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번 소장품 제안 전시는 단순한 수집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이미지와 세계를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일 것인지에 대한 지속적인 질문이며, 그 질문이야말로 동시대 시각문화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자야 펠루페시 〈Pictorial Fields No. 01 to 09〉
다중 색상 노출 실크스크린 프레임, 새겨진 플렉시글라스(아크릴), 나무
135×861×6cm 2024 《Circulate – Photography Beyond Frames》 스테델릭 미술관전시 전경 2025
사진: Sangmin Cha 제공: 스테델릭 미술관
전시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전시 디자인을 통해 시각적으로 구현하며, 구조적 완성도를 높였다. 선형적 내러티브를 벗어난 순환적 동선 속에서 관람객은 이미지 간의 관계를 다시 구성하고, 새로운 연결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체험하게 된다. 전시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구조를 적극 활용하고, 이를 강화하며 질문을 던진다. 프레임을 넘어 순환하는 이미지의 흐름 속에서, 단순한 스크롤링을 넘어 어떤 내러티브를 구성할 것인가? 전시는 무수히 순환하는 이미지들이 넘치는 가속화 시대에 ‘소장’이라는 물리적인 행위를 통해 한껏 가벼워진 매체인 사진에 무게를 더한다. 그것은 단순 수집 행위 이상으로 우리가 이미지와 세계를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멈추지 않는 일이다. 멈추는 일이 가장 어려워진 시대다. 그 틈바구니에서 이미지의 순환 속에서 멈춰 서는 순간, 우리 모두가 능동적인 해석자가 될 수 있다는 믿음, 이를 큰 목소리로 외치는 일. 동시대 시각문화의 흐름을 재구성하는 비판적 장치로서 미술관이라는 장소의 마땅한 입지는 시대의 흐름과 더불어 지속적으로 재고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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