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니 홀저 개인전
IT’S CRUCIAL TO HAVE AN ACTIVE FANTASY LIFE
2020.12.10 – 2021.01.31
국제갤러리
“나는 언어가 시연되는 방식을 구상하기 좋아한다.
언어를 공간적으로 만드는 것을 좋아한다.
언어를 다양한 방식으로 접근해 다양한 결과를 도출하길 좋아한다.”
– 제니 홀저
국제갤러리는 지난해 12월 10일부터 1월 31일까지 미국의 현대미술가 제니 홀저(Jenny Holzer)의 개인전을 지난 2004년과 2011년 이후 국제갤러리에서 9년 만에 세 번째로 K2와 K3 공간에서 개최한다.
지난 40여 년 간 언어를 주요 재료로 삼아 작업해온 홀저는 다양한 원전의 문구를 여러 매체로 전달하며 역사 및 정치적 불의를 고찰한다.
이때 작가의 목소리를 빌어 소개되는 글귀는 보는 이로 하여금 사회의 당대적 현안을 직시하게 함으로써 냉정하고도 감정적인 공공의 장(場)을 구축해낸다.
일상을 돌아보게 하는 간결한 경구들을 담은 LED와 대리석 벤치 작품부터 비밀 정부 문서에 금박을 입혀 정보의 은폐와 공유에 대해 고찰하는 회화 작품에 이르기까지, 관람객에게 다양한 감각 경험을 통해 다채로운 텍스트를 읽을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감각의 영역과 지식의 영역, 개인의 영역과 공동의 영역 각 경계를 유희한다.
제니 홀저가 꾸준히 제작하고 있는 검열 회화(Redaction Painting) 연작이 K2 벽면을 장식한다. 린넨에 유화를 입히면서 미국 정보 공개법(Freedom of information Act)에 따라 공개된 정부 문서를 회화로 번안해내는 방식이다. 이미 상당히 검열된 상태로 기밀 해제된 미국 정부 및 군부 문서가 작가의 손을 거쳐 거대한 추상화로 변모하고, 이때 정부문서 상의 검정색 검열 막대기는 다채로운 금박 및 은박으로 호환된다.
한편 K2 의 다른 벽은 홀저의 최신 수채화 연작으로 꾸린 그리드로 채워진다. 2016 년도 미국 대선 당시 러시아 정부가 트럼프 후보의 당선을 도왔다는 의혹에 대하여 FBI 수사 결과를 담은 “뮬러(Mueller) 보고서‟를 바탕으로 제작한 작품이다. <힐러리 클린턴에 대한 추문>, <궁극의 죄악> 등 각기 대담한 제목을 단 이 36 점의 신작 수채화는 지난 분열의 시대를 돌아보며 곧 도래할 화합의 시대를 내다보고자 한다. 이들 회화 및 수채화 앞에는 벤치 모양을 한 대리석 작품이 여러 점 자리한다. 상판에 새겨진 텍스트를 손가락으로 따라 읽는 과정에서 관람객은 본능화된 독해 과정을 새삼스럽게 의식하며 감정의 범주와 이해의 범주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를 갖는다.
K3 에는 네 점의 LED 작품이 설치된다. 다양한 물질성을 매개로 전달되는 텍스트의 영향력에 대한 작가의 관심을 다시금 엿볼 수 있는 LED 라는 매체는 작가가 1980 년대 초반부터 즐겨 사용해왔는데, 이에 대해 홀저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 바 있다.
“LED 사인의 주요 기능 중 하나는 움직일 수 있는 능력에 있는데, 나는 이것이 구두로 전달하는 말과 너무 비슷하여 좋아핚다. (LED 사인을 통해서는) 글자를 강조할 수 있고, 흐르게 하거나 멈출 수도 있는데, 내게는 이것이 마치 우리가 목소리로 내는 억양의 동적 등가물처럼 느껴진다. 작가가 선별한 문장 및 글자는 전시장의 LED 를 타고 다채로운 속도로 깜빡이고 반짝이며 흘러 지나간다.
천장으로부터 수직으로 설치된 LED 작품의 시각적 리듬은 상부에 위치한 턴테이블의 회전 같은 움직임 혹은 안무와 결부되기도 하는데, 3 미터 가량의 본 LED 작품 제목은 <경구들(TRUISMS)>(2020)이다.
작가가 장난스럽게 “동서양 철학에 대한 제니 홀저 버전의 “리더스 다이제스트(Reader‟s Digest)”라고 설명하기도 했던 ‘경구들(Truisms)’이란, 작가가 1970 년대부터 꾸준히 모아 다양한 방식으로 시각화 해온 일련의 격언 문구들을 칭한다. 엄격한 동시에 유머러스하고, 공격적이면서 때로는 모순적인 일련의 경구들이 K3 전시장에서 국문과 영문으로 번갈아 제시된다. 이 밖에 가로 LED 형태의 ‘서바이벌(Survival)’과 ‘리빙(Living)’ 등도 함께 선보인다.
글: 하연지
자료 제공: 국제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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