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Curators Voice & Critique 

《소소하고 소중한》
《털보 윤상과 뮤-즈의 추억》
《홍지윤 스타일》
《빛나는 여백: 한국 근현대 여성 미술가들》

이제현·유제욱·이주희·이선영

《소소하고 소중한》
국립경주박물관 2024.12.10~3.9
이제현 국립경주박물관 학예연구사

경주 황오동 주차타워 부지에서 출토된 통일신라 7~8세기 토제〈동물모양벼루〉

안압지에서 출토된 길이 4.8cm의 통일신라시대 금동손이 월지에서 발굴된 소형 불상과 함께 전시되어 있다

평범함에서 특별함을

특별함은 평범함 위에 존재하기 때문에
박물관 수장고에는 얼마나 많은 문화유산이 잠들어 있을까?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모두를 놀라게 할 만한 문화유산이 숨어있지는 않을까? 박물관에 대해서 어렴풋이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품어 봤을 궁금증이다. 안타깝게도 현실은 정반대이다. 사실 박물관에서 가장 화려하고, 또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을만한 문화유산은 대부분 전시실에 전시되어 있다. 오히려 수장고에는 작고, 깨지고, 형태가 온전하지 않은 문화유산이 보관되어 있다. 자연히 전시실에 나와 관람객들을 만날 기회가 적다. 어쩌면 수십 년, 아니 수백 년 동안 수장고에만 얌전히 있을지도 모르겠다. 특별하지 않다고 해서, 평범하다고 해서 의미가 없을까? 무엇인가 특별하다는 것은 수많은 평범함이 있기에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이번 특별전시는 바로 이런 고민 속에서 수장고에 있는 문화유산을 소개하자는 취지에서 기획되었다.

물건만 보여주는 전시는 가라! 이제는 사람이다!
전시의 취지는 십분 공감하지만, 관람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수장고에서 한 번도 전시실로 나와본 적이 없고, 전시되어 있었으나 관심에서 비켜나 있었던 문화유산을 다루다 보니, 화려함은 떨어졌다. 신라의 금관과 거대한 황룡사 치미, 우리에게 에밀레종으로 더 잘 알려진 성덕대왕신종과 같은 전시품을 보던 관람객들이 과연 이렇듯 소소한 전시품에 눈길을 줄까, 걱정이 앞섰다. 고심 끝에 이번 전시는 문화유산이라는 물건만이 아니라, 큐레이터라는 사람을 함께 보여주자고 방향을 잡았다. 기존의 박물관 전시가 대부분 문화유산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구성하는 방식이었다면 이번에는 문화유산에 이야기를 입히고 의미를 부여하는 큐레이터도 함께 소개하기로 했다. 문화유산과 함께 큐레이터를 전시 전면에 내세울 때, 문화유산이 과거에 존재했던 물건에 머물러있지 않고, 현재를 살아가는 나와도 연결될 수 있으리라 기대했기 때문이다. 전시 기획자들이 전시품을 볼 때, 혹은 관람하는 시민들을 떠올릴 때 어떤 생각을 하는지,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문화유산을 어떻게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지, 또 관람객도 전시품에 나름의 의미와 메시지를 부여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바랐다.

서로 다른 사람, 서로 다른 생각
이 역시 취지는 좋았으나, 실제 전시를 준비하는 과정은 고역이었다. 기본적으로 열두 명 큐레이터의 일정과 의견을 조율하며 전시를 준비하다 보니, 어려운 일이 한둘이 아니었다. 전시품 선정부터 원고 작성, 음성 녹음, 영상 촬영 등 뭐 하나 쉬운 일이 없었다. 또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고 관심사와 전공이 각기 다른 열두 명이었기에 자연히 선정된 문화유산은 특정 시대, 재질, 주제로 엮기도 어려웠다. 모든 전시품을 하나로 관통할 만한 키워드나 메시지도 없어 보였다. 또 다른 난관이었다.

그렇지만 꼭 전시가 하나의 주제로 관통되어야 할까? 서로 다른 열두 가지의 이야기가 독립적으로 존재하면 어떤가? 하나의 전시지만 서로 다른 열두 명이 펼쳐내는 열두 가지 이야기의 전시로 꾸며내는 것도 새로운 시도라고 생각됐다. 34년 차, 곧 퇴직을 앞둔 관장부터 3년 차 막내 큐레이터까지, 나이와 직책을 떠나 한 사람의 큐레이터로 전시품과 마주하였다. 수많은 문화유산 중 하나에 시선이 머물고, 이를 연구하고 고민해 전시로 선보이는 일련의 과정을 ‘선정 이유, 작품해설, 관람 포인트’로 구성해 글에 담았다. 그랬기에 하나하나의 전시품이 각자의 개성을 띨 수 있었다. ‘열두 큐레이터의 전시 프로젝트’라는 소제목은 여기서 나왔다.

《소소하고 소중한》
국립경주박물관 전시 전경 2025 제공: 국립경주박물관

자세히, 처음처럼, 다르게
전시는 총 3부로 구성되었다. 1부 ‘자세히 보니, 놀랍다’는 기존에 전시되었거나, 알려졌던 문화유산이지만 형태가 작고, 온전하지 않아 관심에서 벗어나 있었던 전시품을 소개한다. 손톱만 한 금관총의 중층 유리구슬, 덩그러니 혼자 남은 월지 금동불의 오른손, 무언가 붙었다가 흔적만 남은 토우 달린 토기의 이야기이다. 2부는 ‘처음 보니, 설레다’로 최근에 발굴되어, 박물관에서 처음으로 공개하는 문화유산의 이야기로 꾸몄다. 동물을 닮은 황오동 출토 벼루, 황용동 절터에서 나온 나는 듯한 형상의 사자와 짐승 얼굴 무늬의 꾸미개, 경주 소현리 돌방무덤에서 나온 십이지상을 소개한다. 3부 ‘다르게 보니, 새롭다’는 늘 보던 문화유산도 다른 시각으로 볼 때, 새로운 면을 발견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평범한 바둑돌에서 살펴보는 신라의 바둑 문화, 무늬 속에 숨은 매듭을 찾아보는 고대 직물, 배례석이란 통설에 이의를 제기하는 향로석, 일상의 이야기를 살펴보는 나무 빗, 고된 작업의 흔적인 청동기시대 석기, 내면을 파헤친 조선 전기 목조관음보살상의 이야기를 담았다.

‘소소(小小)’하지만 소중했던
이번 전시의 전시품 자체는 작고 대수롭지 않아 보여 ‘소소’하다. 그러나 그 자체로 의미와 가치가 있고, 나와 교감한 이야기가 담겨 있기에 소중하다. 큐레이터만이 교감하는 것이 아니라, 관람객들도 전시품을 보며 자신만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의미를 부여할 수 있기에 또한 소중하다.

수장고 속 소소한 문화유산을 끄집어내며, 인생을 생각해보게 되었다. 우리는 모두 특별하고 화려한 인생을 꿈꾸지만, 삶이 늘 그렇지 않다. 많은 사람은 그저 평범한 삶을 살아간다. 전시실의 화려한 전시품 뒤 수장고에 남겨진 소소한 문화유산처럼 말이다. 나의 삶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별 볼 일 없는 삶이라 여길 때도 있었다. 그러나 때로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것은 평범함을 자세히 혹은 다르게 볼 때 발견되는 특별함일 것이다. 모든 특별함은 평범함 위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가 누군가에게는 나처럼 평범함에서 특별함을, 소소한 것에서 소중함을 발견해 가는 기회였길 기대해 본다.

《털보 윤상과 뮤-즈의 추억》
OCI미술관 1.16~3.22
유제욱 학예연구사

김시헌 〈털보 윤상과 뮤-즈의 추억〉
작품 속 AI로 재현한 윤상과 
20세기 운보 김기창이 수묵으로 그린 윤상의 초상화

낯설면서도 친숙한 1950년대 한국 현대미술 컬렉터 윤상의 부활

미술계에서 먼지밥을 먹고산 지도 어언 20여 년이 넘어가 천명을 알 나이를 앞두고 있다. 이제 뭔가 알만할 때도 됐건만 일을 하면 할수록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 미술관 수장고에서〈윤상 수집 현대화가작품전 기념 서화첩〉(이하, 서화첩)을 처음 펼쳐봤을 때 친숙하면서도 낯선 기분이 들었다. 서화첩 속 화가를 비롯한 예술가들은 익숙지만, 막상 주인공인 윤상은 생소했다. 서화첩을 처음 봤을 때 맞닥뜨린 상반된 감정을 시각적으로 전시에 담고 관람객들에게 전달하고 싶었다.

서화첩 속에는 서양화가 차창덕, 임직순, 박득순, 동양화가 김기창 등 화가들이 저마다의 솜씨로 그린 한 사람의 초상화가 있었다. 1950년대 현대미술 개인 컬렉터이자 화상(畫商)이며, 전시를 기획하는 등 다재다능한 역할을 했던 윤상(尹相)이었다. 1956년 7월 윤상이 수집한 현대미술작품 전시를 응원하고 축하한 유명 화가들과 예술가들의 서화첩 속 그림과 기록은 언뜻 봐도 윤상을 잘 아는 것을 넘어 꽤 친해 보였다. 그는 서화첩 속에서만 살아 있는 사람 같았다.

서화첩을 기초 조사하고 연구하기 전에는 막연히 1950년대를 한국 미술계가 내홍을 겪은 시기로만 여겼다. 그러나 윤상을 중심으로 모인 서화첩 속 화가들의 기록은 서로 반목하던 관계라기보다 오히려 화목해 보였다. 당시 신문에 기고한 칼럼에서 윤상은 어느 화파(畫派)에 치우치지 않고 수집한 작품 60여 점을 선보인 편협하지 않은 전시라고 밝혔다. 서화첩을 보고 1950년대가 갈등의 시기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흑백 TV화면같이 단조로운 원로화가들의 전통 수묵화와 컬러TV같이 다채로운 후배 서양화가들의 추상화를 수집하고 함께 전시했다. 마흔에 요절하는 바람에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억하지 못하지만 도량이 컸던 현대미술 컬렉터 윤상의 수집과 전시 취지를 되살리고 싶었다. 그래서 2025년 《털보 윤상과 뮤-즈의 추억》에는 윤상이 수집하고 전시했던 당시 현대화가들을 위주로 출품 작품을 꾸렸다. 1층에는 청전 이상범의 〈모운〉(1938)과 유영국의 〈도시〉(1955)를, 2층에는 김환기의 〈무제〉(1968)와 운보 김기창의〈청록산수도〉를 함께 걸었다. 사실 전시를 구상할 때 동양화와 서양화로 대비되는 상반된 작품들을 함께 걸어도 될지 고민이 매우 컸다. 21세기에 살고 있는 나조차도 그런 전시 작품 구성은 모험이었다. 하물며 70여 년 전 윤상은 전시를 기획할 때 어떤 심정이었을까. 고민 과정에서 1985년 클리블랜드 미술관에서 “동ㆍ서양은 만날 것이다(The Twain Shall Meet)”라는 주제로 열린 전시에 대한 글이 떠올랐다. 서화첩을 처음 펼쳤을 때 낯설면서도 친숙한 상반된 감정의 시각화는 윤상의 칼럼과 20여 년 전 내가 흥미롭게 읽었던 글의 힘으로 전시에 구현되었다.

유영국〈도시〉(사진 오른쪽 두번째) 1955, 청전 이상범〈모운〉(사진 왼쪽 첫번째) 1938
《털보 윤상과 뮤-즈의 추억》OCI미술관 1층 전시 전경 2025
사진: 박홍순

앞서 흑백, 컬러TV 운운한 이유가 있다. 〈윤상 서화첩〉에는 그의 전시가 최초로 ‘테레비 방송’에 소개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1956년은 우리나라에 ‘뉴미디어’, 흑백 TV가 처음 도입된 때고, 70년이 지난 지금은 그땐 상상도 못했던 미디어아트라는 미술 장르가 생겼다. 당시 미술계의 유명인사 윤상은 지금의 내 나이보다 어린 마흔에 세상을 뜨는 바람에 거의 잊힌 존재이고, 그런 윤상을 기억할 수 있게 기록을 남긴 20세기의 뮤즈(Muse)인 예술가들도 이제 대부분 세상에 없다. 그렇다면 1956년과 2025년 사이 미술사의 시간적인 괴리를 가깝게 연결시켜줄 방법이 없을까 노심초사하던 끝에 미디어 아티스트 김시헌을 만났다. 작가와 함께 우리시대에 1956년 윤상 전시에서 있었을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어떻게 휴머니즘으로 불러 일으킬 수 있을지를 논의했다. 열띤 소통 끝에 작가는 털보 윤상과 예술가들을 AI기술로 부활시켰다. 작가는‘신ㆍ구의 만남과 예술과 기술의 접점을 미디어로 어떻게 이끌어 낼지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자신의 미디어 작품을 창작했다고 말한다. 작가의 21세기 미디어아트 작품 덕에 전시가 생명을 얻었다.〈윤상 서화첩〉을 중심으로 한 아카이브 전시는 자칫 지루하고 단조로울 수 있다는 우려를 깊게 했던 나는 예술가만이 할 수 있는 창조적인 작업 덕분에 큰 시름을 놓을 수 있었다.

서양 신화 속 뮤즈(Muse)는 일반적으로 우리들에게 영감을 주는 예술가들을 의미한다. 그리고 뮤즈들의 어머니인 ‘므네모시네(Mnemosyne)’는 기억을 뜻한다. 이탈리아의 위대한 시인이자 작가 단테는『신곡』에서 ‘뮤즈’를 더없이 높은 경지의 지성으로 찬미하며, ‘내가 본 것을 기록하는 기억이여! 여기서 그대의 고귀함을 드러내 주소서!’라고 기도한다. 지천명을 바라보는 나이에 《털보 윤상과 뮤-즈의 추억》을 준비하던 지난한 과정에서 나는 속으로 수없이 뮤즈를 불러댔다. 그 뒤를 이어 21세기 OCI미술관에 둥지를 튼 미술관장, 학예사, 연구원, 미디어아티스트 등 뮤-즈들의 노고로 털보 윤상 전시가 열렸다. 윤상을 신뢰하고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봤던 20세기 예술가들의 기억과 기록의 덕택으로 윤상은 기억됐다. 〈윤상 서화첩〉속 우리나라 초대 국립중앙박물관장 김재원 박사의 기록으로 이 글을 맺는다. “예술은 영원하다(Ewig Bleibt Die Kunst)”

《홍지윤 스타일》
금호미술관 2024.11.29~2.27
이주희 미술비평

〈음유, 낭만, 환상 – 원효로와 청파동에서〉혼합매체 가변 설치 2007

생생한 서정, 홍지윤 스타일

금호미술관에서 열린 홍지윤 개인전은 “서권기(書卷氣) 문자향(文字香)”이 그윽한 전시였다. 30년의 화업을 집약적으로 보여준 이번 전시에서 특별히 돋보이는 것은 작가가 다루어온 서사의 기(氣)와 향(香)이었다. 시서화(詩書畵)가 공존하면서도 한눈에 주제를 파악할 수 있는 화면은 홍지윤의 작업이 지닌 특별함 중 하나가 되었다. 또한, 시서화의 운영과 매체의 확장에 따라 작가의 서사가 지닌 ‘생동’과 ‘환희’, ‘고요’와 ‘애수’ 등의 분위기가 변주되는 양상은 그의 작품이 지닌 또 다른 특별함으로 자리 잡았다. 이번 금호미술관 4개 층 전관에 펼쳐진 《홍지윤 스타일》 전에도 작가의 자전적 기록인 〈큰새 ‘붕(鵬)’〉(2003)에서 나아가 작가의 어머니가 운영하던 의상실 ‘스왕크(SWANK)’, 단테와 장 그르니에, 윤동주와 이상 등 다양한 언어로 자신들의 삶을 기록해 온 이들을 향한 스타일리시한 헌화(獻畵)를 펼쳐냈다. 작가도 화면 위에서 꽃을 피우고 별을 띄우듯 타인의 존재들과 함께 피어난 꽃과 별 같은 순간들을 포착했는데 이러한 순간들에 말을 붙이고 상을 띄우는 것으로 떠나간 이들을 향한 물음이거나 어떤 그리움의 건넴 같은 ‘향기(香氣)’를 담는 미적 실현을 이루었다. 앞서 언급한 ‘서권기·문자향’ 개념은 우리의 관점에선 추사 김정희(金正喜, 1786~1856)로부터 명나라 동기창(董其昌, 1555~1636)의 남종문인화를 계승한 ‘태창화파’까지 거슬러 확인된다. “회화의 기(氣)는 학문·인품과 일치한다”라거나 “그림은 시처럼 반드시 서권기가 있어야 한다” 같은 이러한 화법(畫法)이자 인식은 당대의 인문과 예술을 추구하던 이들에게 공유되었고 법고(法古)의 일례로 현재에 이르렀다. 이로써 ‘서권기·문자향’은 “회화(예술)에 내재한 작가의 학문적 이력 혹은 학문적 이력으로 인해 회화(예술)가 지닌 품격”으로 자리 잡았다. 이러한 의미가 과거와 현재 모두에 절대적인 미의식으로 요청되는 것은 아니지만 과거에도 끊임없이 수양(修養)적인 미적 이해를 추구했다는 것과 이렇게 축적된 이해를 바탕으로 개성적인 사유를 구축하고 시대적 해석을 시도하는 것이 고아(高雅)한 인문·예술로 인식되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홍지윤은 지난 30년간 누구보다 면밀히 시대를 주시하며 호흡해 온 작가이다. 동양화라는 자신의 근간에 대한 이해를 축적함과 동시에 세계 곳곳의 서사를 탐미하고 그곳의 미감을 진취적으로 받아들이며 꽃을 피웠다. 그의 색과 조형에서 느낄 수 있는 천연을 웃도는 자연에 대한 해석은 그가 딛고 있던 다각적 시대상에 대한 해석이었으며, 터지듯 생명력을 발산하는 꽃송이와 만개한 서(書)는 지필묵의 생리적 확장과 함께 전지구적이고 마술적인 서정성(抒情性)을 구축했다. 동양화라는 장르적 공고함을 직시하면서도 그것의 단단함 앞에 멈춰 서는 것이 아니라 오래도록 살아있는 것의 생명력을 활용해 자신의 생기를 한껏 끌어올린 것이다. 이러한 생기로서 세계 곳곳의 서사에 깃든 정을 풀어내는 생생(生生)한 방식을 ‘홍지윤 스타일’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자신을 둘러싼 시공간과 인문적 체계에 대한 해석을 지속하며 새로운 생기를 불어넣는 홍지윤의 작업에서 ‘서권기 문자향’을 느낄 수 있는 것은 당연하다 할 수 있겠다.

 〈분홍인생〉혼합매체 가변 설치 2020, 2024
《홍지윤 스타일》 금호미술관 전시 전경 2025
제공: 금호미술관

많은 예술가들이 바랐듯 중견을 지나는 홍지윤의 예술은 누구보다 전위적이었던 시기를 양분 삼아 보다 넓은 사유로 나아가고 있다. 전시공간 1층에는 그의 대학원 시절 창신(創新)을 궁구하며 밥상 뒷면에 혼합재료로 표현한 〈나무〉(1995)와 최근의 작업이라는 디지털 드로잉, 그리고 그것을 활짝 펼쳐낸 대형 작업들이 공존하고 있다. 이렇게 시작과 현재가 한곳에서 어울리듯 순환하며 조우하는 작가의 감성은 이미 넓은 영역에서 재해석되어 왔다. 복고 또는 레트로(Retro)라 불리는 최근의 스타일 혼용에서도 과거에 대한 해석의 참신함에 현재의 존재가치가 새롭게 빛났다. 한국의 패션위크뿐만 아니라 프랑스의 오튀쿠튀르(Haute Couture)와 프레타포르테(Prêt-à-porter) 같은 패션계의 최일선에도 여전히 치열하게 브랜드의 스토리와 철학 그리고 스타일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시도되고 있다. 홍지윤 역시 쉼 없는 사유로써 자신의 스타일을 개척해 나가고 있다. 작가의 작품에 등장하는 붕(鵬)은 가녀린 날개로 수 천 년을 날아 현재의 우리에게 이야기를 전하고, 지나간 시인들의 시어는 그의 서화로 새로운 생명력을 얻었다. 인류의 인문이 딛고 있는 무한한 가치에 희망을 더하는 ‘홍지윤 스타일’이 보다 많은 이들에게 닿을 수 있길 바란다.

《빛나는 여백: 한국 근현대 여성 미술가들》
이응노미술관 1.17~4.6
이선영 미술비평

 《빛나는 여백: 한국 근현대 여성 미술가들》 이응노미술관 전시 전경 2025

여백의 반전

이미 미술사의 반열에 올라있는 작가들이 포함된 전시 《빛나는 여백: 한국 근현대 여성 미술가들》은 제목만으로도 문제적 키워드가 다수 포진해 있다. 먼저 시대와 성(性)이다. 리타 펠스키(Rita Felski)는『근대성의 젠더』에서 ‘근대성의 성별(gender)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역사적 시기와 같은 추상적인 것이 성을 가질 수 있는가?’를 물은 바 있다. 저자는 우리 시대에 ‘텍스트성(textuality)의 역사성과 역사의 텍스트성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음’을 진단하면서, ‘성별의 역사성’이라는 문제와 함께 ‘역사의 성별화’를 화두로 삼았다. 이러한 페미니즘적 관점에서 본다면 ‘근대의 성별’은 남성이다. 전통으로부터의 해방이자 진보인 근대 또한 타자들에게 온전한 것일 수 없었던 것이다. 다음으로 ‘여백’은 작품의 많은 수를 차지하는 한국화의 중요한 개념이다. 고대부터 존재했던 원자론에서의 빈 공간 같은 역할을 한 여백은 세상의 근본인 원자의 운동과 변화가 가능한 잠재적 공간으로, 잉여가 아닌 필수다. 역사, 즉 남성의 이야기로 풀이되는 담론의 주체, 요컨대 세상의 가시적 주인공이 남성이었다면, 그 옆 혹은 배후에 있었던 존재들이 조명을 기다리고 있으며, 이 전시는 빈 곳을 반전시킨다. 실제로 여성의 그림자 노동은 공식 부문의 경제가 유지되는 단초였다. 이 전시는 여백, 빈 공간, 그림자 등 또한 수면으로 올라와 상호작용에 가속도를 붙여가는 문화적 추세를 반영한다.

이응노미술관이라는 특성을 살려 고암(顧菴)과 직간접적인 관련을 지니며, 영향을 주고받은 작가 11인의 작품이 전시작으로 선정되었다. 한국 근현대미술사가 형성되던 시기라 단순히 우연적 인맥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고암의 동반자였던 박인경을 비롯해 스승과 제자 등의 연으로 맺어진 예술을 매개로 한 동지, 화우들이다. 40여 점의 작품 그 자체로도 충만한 경험을 가능케 했던 것은 그 시대만의 시공간 감각이 오롯이 배어 있는 작품이 많아서이고, 그 이유로 평생을 걸쳐 작업해 온 내공이 작품마다 스며있음을 들 수 있다. 한 작가가 한 세계인 밀도와 강도를 가진 몇 점의 작품들을 계기로 또 다른 시간 여행을 권유받는다. 그 어느 시대고 예술을 하기에 녹록할 때는 없었다. 하지만 압축 성장으로 몸살을 앓았던 한국의 근현대, 가부장제의 그림자가 여전했던 시기를 관통했던 여성 작가들의 노력은 때로는 소설 같은 일대기를 낳기도 했다. 관념주의에 빠질 기회나 여력이 없던 여성의 작품은 초월적 승화가 아니라 수렴의 장이다. 한 개인의 생로병사와 희로애락 그 모두가 수렴되는 미술은 어느 장르보다도 함축적 단층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1958년 이응노와 프랑스로 건너간 박인경의 〈숲〉 연작에서 나무줄기 하나에 가득 매달린 잎들은 그 자체가 하나의 세계이고 숲을 이룬다. 자연은 숱 많은 머리처럼 빈틈이 없고 풍부하다. 짙은 녹음은 짙은 먹으로 번역되었다.

어둑한 배경에 태양처럼 밝은 복숭아 하나가 놓여있는 김순련의 〈복숭아〉(2005)는 여성성의 상징을 조명한다. 1978년 파리에서 이응노의 동료 조각가 문신을 만난 최성숙의 〈뒷모습의 여인〉(1982)은 익명의 한 여성이 빛을 가득 받는다. 〈빛나는 아침〉(1984)에서도 동물처럼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하지만, 자신이 속한 주변 영역을 최대한 활용하여 자신은 물론 그 주변까지 빛나게 하는 여성적 실존을 빛나는 식물로 표현한다. 이 전시의 많은 작품이 오래된 공기를 품고 있다. ‘한국 근대 최초의 서양화 전공 여성 화가’로 평가받는 나혜석의 〈시흥 녹동서원〉(1934)은 초록 자연 속에 식물처럼 대지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듯한 옛 건물이 있는 풍경으로, 인공과 자연을 하나의 아우라로 묶어낸다. 고암화숙에서 이응노를 사사한 금동원은 바랜 종이에 초가집이 있던 시대의 따스한 공기를 담는다. 〈세검정〉(1985)에서는 달의 여러 단계가 공존하며,〈속초 대포리 어촌〉(연도미상)은 속살 같은 언덕이 특징이다. 작년에 이응노미술관에서 《아르헨티나에서 온 편지》전을 연 김윤신은 1세대 여성 조각가로 평가받는다. 〈미상의 나무〉(1984)와 〈소나무〉(1979)는 자연인 나무와 인공인 예술적 의지의 합작품으로, 끊어질 듯 이어지며 수직적 균형을 잡는다. 그의 드로잉은 단단한 도구를 이용하여 붓의 궤적을 기하학적으로 남긴, 구축적 이미지로 속도감 있고 힘 있는 구성을 보여준다.

금동원〈속초 대포리 어촌〉 종이에 먹, 색 36.5×47.5cm 연도미상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김윤신〈무제〉종이에 잉크 드로잉 23.5×31.5cm 1964 제공:이응노미술관

나혜석의 조카인 나희균은 날카로운 마름모꼴 형태가 화면을 사선으로 가로지르는 기하적 추상으로, 전시의 다양성을 충족시킨다. 작품 제목부터 〈구성〉, 〈중심〉, 〈흐름〉 등의 키워드를 가진다. ‘동양화 작가로서는 최초로 수묵 누드를 시도했다고 평가받는’ 문은희는 필획의 강도가 감지되는 최소한의 획으로 표현한 여성 누드가 특징이며, 군상의 경우 다양한 포즈의 누드가 흑백이나 빛과 그림자 같은 대조적인 명도의 얼룩 속에 배치된다. 자연과 여성의 친화력은 유기적인 작품을 낳는다. 박래현의 작품에서 얼룩진 주름들이 뭉쳐 만들어내는 형상들 사이의 붉은색은 유기적 생명력을 강조하는 듯하다. 심경자는 오래된 물건이나 자연물을 한지로 탁본하고 콜라주해서 전통적인 화법에 새로움을 불어넣는다. 추상이지만 깊은 공간감이 특징인 이번 전시 작품은 화면에 포함된 탁본이라는 이질적 영역도 하나의 흐름으로 종합한다.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는 비정형 형태들은 마치 여성의 내부 기관 같다. 1940년대 일본에서 수학한 천경자의 자연은 화려하고 이국적이며, 나른함과 욕망이 깃들어 있다. 〈아열대2〉(1978)는 꽃과 나비라는 주제를 화병이 아니라 꽃보다 더 붉은 화면 바탕에서 바로 피어난 듯한 구도로, 화면 안에서 시선이 계속 움직이게 되는 역동성이 특징이다. 만개한 꽃다발이 함께하는 작품에서 여성적 주체의 욕망은 화려하게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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