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rators Voice 

큐레이터스 보이스에서는 미술관의 접근성 문제를 전시와 프로그램으로 구현한 국내 미술관의 실천 양상을 들여다본다. 장애와 비장애를 바라보는 시선의 가장 앞단에는 늘 ‘정상’의 신체와 그렇지 못한 객체를 구분하는 인지가 자리하고 있었다. 유은순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학예사는 이러한 인지 기준에 의해 소외된 공동체를 ‘우리’의 범주에서 다루는 전시를 기획해 왔다. 구정연 리움미술관 교육실장은 장애아동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에서 출발하여 워크숍, 강연, 포럼, 출판으로 영역을 넓힌 ‘감각 너머’의 여정을 소개한다.

진행 김소정 기자

몸의 가장자리에서 타자의 가장자리로
유은순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학예연구사

 《사이드–워크》 윈드밀 전시 전경 2021

‘암밍아웃’이라는 말이 있다. 암과 커밍아웃을 결합한 표현으로 암을 선고받은 후 주변인에게 알리는 것을 말한다. 성소수자의 중대한 결심을 희화화한다는 우려와 더불어 질병을 앓고 있는 것이 왜 이렇게 쉬쉬해야 하는 일인지 생각해보게 된다. 나의 질환을 밝혔을 때 상대방이 “사실 저도…”로 시작하는 고백을 들었던 일이 잦았다. 치료 기간 중 많은 환자가 ‘사라진다.’ 치명적인 정신/신체적 질병이 흡사 전쟁처럼 발발하는 순간, 모든 일을 중단하고 치료에만 전념하게 되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수많은 이들이 걱정스럽게 묻는 안부에 괜찮다며 상대방을 도리어 달래야 하는 상황, 상대방이 괜찮아질 거라고 위로해주는 말이 때로는 상처가 되는 상황에 지쳐 질병을 숨기고, 만남을 피하고 스스로를 고립시키게 된다.

나는 2017년 3월 암을 선고받았다. 아무런 통증도 이상도 느끼지 못했음에도 얼떨결에 중증 환자로 등록되었다. 내 스케줄은 관계없다는 듯 병원이 일방적으로 요청하는 날짜에 맞춰 온갖 검사를 받으면서, 뒤늦게 남들과는 다른 시간선에 도달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수술과 3개월간의 항암 치료, 추적검사는 누구보다도 치열한 삶을 살았다고 자부하던 나를 그보다 더 빠른 속도로 트랙 바깥으로 밀어냈다. 나 역시 1년여 동안 다른 암환자와 마찬가지로 일터에서 사라졌다. 치료를 마친 후 휴직과 복직 두 가지의 선택지만 있었다. 복직 첫날, 그다지 붐비지 않았던 출근길 지하철에서의 울렁거림은 아직도 기억에 선명하다. 복직은 단순히 사회로 복귀한다는 의미뿐만 아니라 환자에서 노동자로 돌아가는 일순간의 복귀를 의미했다. 잠재적인 재발의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즈음 나는 질병의 경험을 다시 곱씹게 되었다.

2019년 온수공간에서 개최된 《틱-톡》은 사적 경험으로만 치부되는 질병의 시간을 전시라는 공적인 장에 펼쳐놓기 위한 시도였다. ‘질병의 경험이 전시가 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은 전시를 준비하는 내내 나침반이 되었다. 투약이라는 반복, 신체의 컨디션에 따라 모든 스케줄이 결정되는 중지의 상황, 환자의 시간에 맞춰지는 돌봄 노동자의 시간은 결코 개인의 경험이라고 할 수 없는 공통의 경험이었다. 《틱-톡》이 질병의 시간적 경험을 다뤘다면 후속 전시인 《사이드-워크》(윈드밀, 2021)는 비표준적인 신체의 공간적 경험에 주목했다. 표준적인 신체를 기준으로 구성된 공간과 주류의 이동으로부터 소외된 이들이 겪는 몸의 상태를 다루는 한편, 이미 타자와 관계하고 있는 몸이 함께 할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하였다.《오프-타임》(아트센터 예술의 시간, 2023)은 앞선 두 전시를 통해 도출된 문제의식을 예술적 실천의 영역에서 고민한 3부작의 마지막 전시다. 전시는 질병과 장애의 당사자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정상적이라고 간주되는 사회의 성장 속도가 실은 비정상적이었다고 역설하면서 그에 대한 저항의 한 방식으로서 예술에 주목했다. 전시는 자본주의, 신자유주의의 강령에 반하여 생산적인 활동을 하지 않기를 ‘선택’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다른 삶의 방식을 제안한다.

SeMA 옴니버스 《나는 우리를 사랑하고 싶다》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전시 전경 2024
제공: 서울시립미술관

작년, 2024년 8월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에서 열린 SeMA 옴니버스 《나는 우리를 사랑하고 싶다》는 사회적 소수자의 공통적인 경험을 살펴보고 이질적이고 다양한 개인으로 이루어지는 공동체를 상상한 전시였다. 앞선 세 전시가 동시대 청년 작가의 작업을 중심으로 당대성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번 전시는 원로작가와 해외작가의 작업까지 포괄하면서 시간과 공간적인 확장을 이루었다. 또한 질병과 장애에서 나아가 퀴어와 페미니즘, 이주를 가시화하면서 다양한 교차성을 사유하고자 했다. 이와 더불어 정체성의 범주화 역시 다른 차별을 불러올 수 있다는 점에서 경계를 흐리고 ‘우리’가 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전시가 소수자를 다루는 만큼, 다양한 신체적, 정신적 조건을 가진 관람객을 고려하여 접근성 콘텐츠를 제작하는 것은 당연하고도 중대한 업무였다.1 미술관에는 비교적 최근에 도입된 접근성 콘텐츠를 시도하면서 매 순간 최선의 선택이 무엇일지 고민했다. 그 과정에서 두 가지를 염두에 뒀다. 첫째로 전시를 보는 비장애인 관람객이 장애인 관람객 또한 전시를 보고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알길 바랐다. 둘째로 장애인 관람객이 홀로 전시를 감상하기보다 친구, 지인, 가족, 돌봄 수행자와 함께 오는 상황을 상정했다. 촉각모형, 음성/자막 해설과 같은 접근성 콘텐츠는 모두 개방형으로 설치하고, 접근성 콘텐츠는 작품의 모든 내용을 아우른다기보다 대화의 길잡이 역할이 되기를 바랐다. 이를 통해 전시 주제의 연장선에서 서로 다른 이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차이를 인정하면서 공동체를 만들 수 있길 바랐다.

2017년 암 선고로부터 어느새 8년이 지났고, 나는 잘 지내고 있다. 이따금 왼팔에 주사를 맞을 수 없다는 사실만이 나 자신이 아픈 사람이었음을 상기시킬 따름이다. 단 1년여의 경험이었지만 기획의 출발점이자 핵심이 되었다. 전시라는 형식을 통해 나의 개인적인 경험에서 우리의 공통적인 경험으로 확장해 나가며 서로 다른 조건을 가진 개인이 연대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이때 나와 타자는 피상적인 존재가 아니라 항상 다양한 감정과 신체적 조건을 가진 구체적인 존재들이다. 양효실 비평가는 《틱-톡》 전시 리뷰에서 “기획자의 사적 경험이 그룹 전시의 출발”이 된 이 전시가 “선례도 계보도 없는” 기획 방식으로, 전시 ‘안’을 평가하는 대신 “모든 사건의 사후성에 기대를 걸면서” 다음 전시에서 기획자가 “자신이 누구인지를 비로소 드러”낼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2 전시를 기획할 때 나는 이 문장을 곱씹어본다. 그리고 매번 나의 전시가 이 예견에 대한 답변이길 바란다.


 1《사이드–워크》 당시 휠체어 이용객을 고려하여 엘리베이터가 있는 윈드밀을 장소로 선정하는 것 외에 다른 시도를 할 수 없었지만, 이번 전시에서는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의 후원으로 보다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었다. 자세한 내용은 웹사이트 ‘SeMA 코랄’에 기고한 「시행착오의 접근성」에서 확인할 수 있다
2 양효실「신체,질병,타자,고백,우회,암시,알레고리,죽음……」 《틱–톡》도록 2019 pp.50~52

감각 너머, 서로 다른 몸들과 함께 배우기
구정연 리움미술관 교육연구실장

 감각 너머 2024 워크숍 ‘C♡NTACT+MENT(콘택트먼트)’ 장면 리움미술관 2024

‘접근성’은 쉽게 정의할 수 없는 주제다. 종종 간단한 설비나 제도 개선의 문제로 여겨지지만, 실은 훨씬 더 복잡하고 다층적인 질문을 품고 있다. 한 사람의 감각과 몸이 공간과 만나는 방식, 그로 인해 생기는 거리와 속도, 배제와 초대의 경계—이 모든 것이 ‘접근’이라는 단어에 얽혀 있다. 고민을 시작하면 구체적인 해결책보다 더 많은 질문이 밀려온다. 누구에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리움미술관은 지난 몇 년간 이 질문에 머물며, 답을 찾기보다는 그 질문을 함께 나누기 위한 다양한 시도를 해왔다.

첫 시작은 2021년 청각장애 어린이를 위한 프로그램이었다. 당시로서는 드문 시도였고, ‘선택적 접근성’에 가까운 사례였다. 특정 감각에 집중하는 방식은 다른 이들을 배제할 수 있다는 한계를 지니지만, 그 선택의 과정이 접근성에 대한 인식을 넓히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팬데믹으로 미술관 접근성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던 시기였던 만큼, 워크숍은 비대면으로 진행되었다. 두 차례의 파일럿 프로그램을 거친 뒤, 2023년부터는 다양한 장애 유형을 포괄하는 프로그램으로 확장했다. 시각, 지체, 뇌병변 장애인은 물론 비장애인까지 참여하며, 서울애화학교와 서울삼성학교, 서울농학교 등과의 협력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2023년에는 ‘공간’을 주제로 ‘감각 너머’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미술관은 여러 층위의 공간이 교차하는 장소다. 전시장, 강당, 로비, 화장실처럼 공공성과 사적 공간이 뒤섞인 곳에서 어떤 규범은 암묵적으로 작동하고, 어떤 규칙은 절대적으로 주어진다. 목소리는 낮게, 발걸음은 조심스럽게, 속도는 일정하게 유지해야 한다. ‘감각 너머’는 이런 공간을 다양한 감각과 몸으로 다시 체험하고 해석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먼저〈타인의 공간〉은 김원영을 필두로 송예슬, 장수혜 예술교육가와 함께한 워크숍이다. 송예슬의 인터랙티브 미디어 작품 〈귀를 기울이면〉을 통해 참여자들은 서로의 거리 변화에 따라 소리와 진동의 세기로 존재를 감각하며 관계를 탐색했다. 이 경험은, 우리가 얼마나 시각 중심의 감각 질서에 기대고 있었는지를 되돌아보게 했다.

또 다른 워크숍 ‘감각 풍경, 공간의 울림’은 안무가 노경애와 사운드 작가 헤미 클레멘세비츠가 함께 구성했다. 전시 작품이 없는 빈 공간을 무대로 삼아, 큰 소리와 움직임, 진동이 허용된 이 실험적 환경에서, 장애와 비장애를 넘는 다양한 참여자들이 저마다의 감각으로 공간과 관계를 형성했다. 이 워크숍은 2024년 ‘감각 너머’ 프로그램의 일부이자 마르세유 피랩 크레아시옹(PiLAB Création)과의 협업을 통해 현지에도 소개되었다. 보자르 드 마르세유는 2005년 프랑스 문화부가 지정한 유일한 시범 고등교육기관으로, 청각장애 및 난청 학생들을 위한 미술 교육을 실천해왔다. 이곳의 접근성 지원 프로그램인 ‘피수르(PISOURD)’는 연구와 창작을 위한 아틀리에인 피랩 크레아시옹을 중심으로 청각장애인을 위한 워크숍 및 예술 활동을 운영하고 있다.

위 감각 너머 2023 워크숍 ‘타인의 공간’ 장면 리움미술관 2023
아래 감각 너머 2024 워크숍 ‘감각 풍경, 공간의 울림’ 장면 마르세유 보자르 2024
제공: 리움미술관

이러한 협업과 맞물려 ‘감각 너머’는 2024년 주제를 ‘언어’로 확장했다. 장애를 하나의 언어로 바라보고, 그 번역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특히 몸을 매개로 표현되는 예술 장르를 통해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다양한 감각 경험과 공통 언어를 살펴봤다. 이런 접촉 면의 확장은 이경구, 박소진, 안현민의 워크숍 ‘C♡NTACT+MENT(콘택트먼트)’에서 더욱 뚜렷하게 드러났다. 참가자들은 접촉을 통해 발생하는 움직임, 소리, 진동 등을 각자의 움직임 언어로 표현해보며, 그 과정에서 일상 속 동작을 안무의 재료로 전환하고 예술적으로 재해석하는 시간을 보냈다.

한 해 동안 진행한 프로그램을 마무리하는 자리로, 2023년과 2024년에는 각각 ‘경험으로서의 미술관’, ‘또 다른 언어, 몸짓’을 주제로 포럼을 열었다. 포럼은 매년 선정한 주제를 좀 더 깊이 다루는 강연과 토론으로 구성했고, 특히 워크숍 참여자 간의 감각적인 경험을 언어로 정리하고 이를 다음 해 프로그램 기획의 단서로 삼는 역할을 해왔다. 그 연장선에서, 기록과 출판 역시 중요한 축으로 자리 잡았다. 2023년에 발간한 책자의 편집 후기에 밝힌 것처럼, 듣는 독자와 읽는 독자를 모두 고려하며 가능한 한 일관된 체계를 유지하려 노력했다. 김동신 디자이너와 함께 대체 텍스트, 본문 판형, 제본 방식까지 제작 전 과정에서 접근성의 조건을 세심하게 반영했다. 물론 모든 감각과 몸을 아우르는 편집은 불가능했지만, 선택적이되 의식적인 방향으로 제작이 진행되었다.

같은 해, 새롭게 시도한 프로그램 중 하나는 전 직원을 대상으로 한 ‘함께 만드는 미술관’이었다. 신재 연출가와 청각, 시각, 뇌병변 장애인 퍼실리테이터들과 함께한 이 워크숍에서, 참가자들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드나드는 공간이 누군가에게는 진입 자체가 쉽지 않은 장소일 수 있음을 직접 체감했다. 접근성의 관점에서 보면, 로비의 육중한 데스크, 높은 계단, 복잡한 동선은 물리적 장벽으로 작용한다. 이 워크숍에서는 물리적 시설의 접근성뿐 아니라, 왜 우리가 이런 프로그램을 기획하는지, 이를 위해 미술관 구성원 모두가 어떤 인식과 태도로 협력해야 하는지, 특히 전시장 현장 스태프들이 다양한 관람객을 어떻게 맞이하고 소통해야 하는지를 함께 고민했다.

이제 리움미술관에서 접근성은 단순한 프로그램 차원을 넘어, 미술관이라는 환경 자체를 어떻게 구성하고 사유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으로 옮겨가고 있다. 특정 대상을 위한 서비스로 간주하지 않고, 감각과 지식이 새롭게 생성되는 조건으로 접근성을 바라보려는 시도다. 2023년 포럼에서 김성은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운영부장이 언급했듯, 만약 미술관을 하나의 생성형 인공지능으로 상상한다면, 그 안에 쌓인 데이터는 기존 감각과 규범에 기반한 지식일 것이다. 그리고 다른 감각과 언어를 가진 관람객이 등장하는 순간, 그 AI는 새로이 학습하고 갱신될 수 있다.

김원영은 체화된 지식이 교과서가 아닌 몸의 경험에서 출발한다고 말한다. 이와 같은 관점은 접근성을 기존의 보조적 장치나 제도적 배려의 차원에서 벗어나, 감각적 차이와 신체적 경험을 통해 지식을 재구성하는 인식론적 조건으로 이해하도록 이끈다. 접근성은 시혜의 논리가 아니라 상호적 학습의 과정이며, 미술관은 다양한 감각과 속도를 지닌 몸들을 초대함으로써 그 차이 속에서 서로 배움이 일어나기를 기대한다. 이러한 실천은 미술관의 구조와 작동 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요구하며, 나아가 새로운 지식이 생성되고 신체에 각인되는 하나의 페다고지로 기능한다.

올해 ‘감각 너머’는 ‘미디어’를 주제로 다시 탐색을 이어간다. 미디어는 때로 서로 다른 몸들을 연결하고, 정상성을 비틀며 감각을 재조정하게 만든다. 결국 이 실험이 가닿고자 하는 지점은, 예술을 매개로 새로운 공동체의 가능성을 상상하는 자리다. 접근성은 이 전환의 중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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