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Dialogue: Letters Unreeling

월간미술(심지언 편집장, 김소정 기자),
북서울미술관
(김성은 운영부장, 한누리 학예연구사)

Special Feature

월간미술은 회화의 본질과 가치, 실험 정신에 주목한 전시를 기획한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이하 북서울미술관)과 함께 이번 특집의 논점들을 짚었다. 대화는 양측이 시간 차를 두고 서신(이메일)을 주고받으며 이루어졌다. 코너 제목 “Letters Unreeling”은 영상을 빠르게 돌리는(reel) 숏폼의 구조와는 반대로, 편지를 한 장씩 펼쳐가며 의견을 주고받는 방식을 연상시키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

Painting, Now

월간미술 현재 미술계에서는 회화 매체에 집중하는 전시가 다수 열리고 있습니다. 이는 전통 매체로 분류되는 회화가 고도의 기술시대에 어떠한 시의성을 어떤 방법으로 확보하고 있는지에 대한 일련의 공통된 관심을 보여줍니다.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이하 북서울미술관)에서는 왜 이 시점에 회화 장르에 집중하는 3건의 전시를 준비했는지 그 배경이 궁금합니다. (2025.5.26)

북서울미술관 2019년 북서울미술관에서 열렸던 한국근현대명화전 《근대의 꿈: 꽃나무는 심어 놓고》는 서울시립미술관에서 관객 수로 전시를 논할 때 해외걸작전들과 함께 자주 언급됩니다. 이름이 잘 알려진 작가들, 친숙한 화가들에 관객이 호응하는 것이야 자연스러운 현상일 테지만, 다른 매체보다 유독 회화에 대한 대중적 장벽이 낮다고, 자의든 타의든 그렇게 여기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인류가 처음 만든 예술의 근본적 형태, 가장 역사가 긴 오랜 형태의 예술이기 때문일까요? 미술사에서 ‘순수예술’이란 개념이 무너진 지 오래이지만 회화는 여전히 예술의 순수한 보루로서 남아 있는 것일까요?

북서울미술관이 “다시 그림을 전시할 때”라는 논의를 본격적으로 하게 된 것은, 6년 전 보았던 관객의 열광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혹은 여전히 같은지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이미지의 생산과 소비에 관련된 기술의 비약적 전개, 이를 통해 범람하는 이미지 속에서 그림을 곧 이미지와 동일시하는 경향, 미술시장에서 날로 공고해지는 회화의 입지 등 회화에 대한 보편적 관심이 지속되는 동력을 다시 들여다보아야 할 때가 되었음을 느꼈습니다. 그러기 위해 북서울미술관은 올해 상반기를 순전히 회화에만 몰두하는 시기로 삼기로 하였습니다. 전시실 전관에 걸쳐 주제와 방법론이 다른 다양한 회화 작품들을 집중 조명하는 ‘회화 반격’은 그렇게 기획되었습니다.

매체로서 월간미술은 누구보다도 숨 가쁘게 미술계의 움직임을 목격해 왔으리라 생각됩니다. 7월호 특집 주제로 ‘회화’를 선정하고, 미술관과 ‘회화’에 대해 생각을 나누게 된 계기가 있나요? (2025.6.2)

월간미술 최근 월간미술이 본 회화는 묘한 위치에 놓여 있었습니다. 미술관이나 크고 작은 전시 공간에서 비물질, 미디어 매체에 집중하는 경향이 강해지면서 회화는 소외되는 듯 보였습니다. 그러나 작품이 비물질화되면 될수록 물질성을 담보하는 순수예술, 그중에서도 회화에 다시 눈을 돌리는 추세도 동시에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한편, 미술시장에서 회화는 여전히 가장 유효한 장르입니다. 그 안에서도 젊은 세대의 작가를 중심으로 현재 ‘트렌딩’이 되는 회화의 특정한 물결이 분명히 일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월간미술은 ‘동시대 현장에서 회화의 위상은 어떻게 달라지고 있으며, 환경의 변화에 회화는 어떻게 반응하고 있나’라는 질문을 품고 현장의 움직임을 지켜보며 이 이야기를 풀어낼 적절한 때를 찾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타이밍은 북서울미술관의 ‘회화 반격’ 전시 소식과 함께 왔습니다. 3년 전 《조각충동》 전시를 통해 매체 중심의 연구와 전시기획력을 보여준 북서울미술관과 회화에 집중한 논의를 본격적으로 전개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겼습니다. (2025.6.10)

오늘날의 회화는 정말 위태로운가?

북서울미술관 최근 5년 사이 우리는 몇 개의 변곡점을 마주했습니다. 코로나19의 창궐과 생성형 인공지능의 등장은 우리의 삶과 세계에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디지털 대전환의 시대는 가속화하고, 접촉 없이 접속만으로도 무엇이든 가능한 세상이 되었습니다. 현실 속 재난을 벗어날 유일한 출구로 가상세계가 건설되고, 가상에서 자유롭게 유영할 수 있는 비트(bit)만이 물질로서 가치를 갖게 되었습니다. 2019년 코로나로 미술관의 문이 닫히고 작품을 가상현실 안에서만 감상할 수 있었던 그때, 2022년 이후 생성형 인공지능이 소설을 쓰고 특정 작가의 화풍을 재현한 그때, 누군가 “예술의 위기다”라 선언하지 않아도 그 위기를 직감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염려 섞인 시선 속에서 회화는 자신을 증명해야 했습니다. 가상의 세계에서 활발히 유통되고 소비되는 ‘이미지’라는 유령과 생성형 인공지능이 만들어내는 그림과 다르다는 것을 말입니다. 오늘날의 회화는 정말 위태로운가? 우리는 이 질문을 띄우고 실체 없는 적과 분투하고 있는 회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2025.6.2)

유영국 〈산〉 캔버스에 유채 130×130.5cm 1968
전남도립미술관 이건희컬렉션 제공: 전남도립미술관

월간미술 주지하다시피, 실제 세계의 재현으로서 기능하였을 때도 회화는 휴머니즘에 기반한 철저한 예술가의 자기 독백이었습니다. 실재를 완벽에 가깝게 구현하는 회화적 기술이 도입된 때도 예술가는 회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개입했습니다. 그래서 사진과 영화라는 새로운 테크놀로지의 등장이 회화의 존립을 위협했던 때에 회화는 살아남을 수 있었죠. 이후 비디오, 설치, 사운드, 퍼포먼스 등 예술가의 표현을 다변화하고 무한대로 확장하는 새로운 미디어가 출현함에 따라 회화의 위상에 의문이 더해진 것은 사실이나, 본질은 흔들리지 않고 자리를 지켰습니다. 오늘날의 변화가 전례 없는 폭풍 같기는 하나, 회화가 시대에 뒤처진다는 주장은 회화의 본질을 간과한 판단으로 보입니다. 결국 시대와 변화를 막론하고 회화의 본질은 그 매체성에 대한 인식, 그리고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태도가 예술가의 의지와 맞물리는 교점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역설적이게도 회화는 (사회의 변화가 아니라) 그 자신을 하나의 매체로 인식할 때, 순수성을 지키고자 할 때, 즉 회화를 회화에 가둘 때 위기를 맞는 것 같습니다. 최근의 위기론에는 ‘좀비’라는 수식어로 회화의 죽음 논쟁을 다시 소환한 비평도 존재했습니다. 그런 차원에서 회화는 “실체 없는 적”과 분투하고 있긴 합니다. 그 적은 결국 20세기 모더니즘의 유령이 아닐까요? (2025.6.10)

박아람 〈AUTO Drive 5〉 캔버스에 페인트 97×194×4.7cm×(6)
2021~2025 《떨어지는 눈》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전시 전경 2025

북서울미술관 말씀하신 것처럼, 회화는 언제나 그 자리를 지켜왔습니다. 자기반성과 함께 스스로를 갱신해 왔습니다. 그러나 갱신은 매체에만 머무르지 않습니다. 물론 ‘좀비 형식주의’에 의거해 회화의 위기에 대한 논쟁이 가열됐지만, 전염병에 휘말리지 않은 생존자가 있습니다. 오늘날 회화는 (바깥) 세계를 향해 몸을 돌리고 있습니다. 미술사학자 데이비드 조슬릿이 언급한 “회화의 외재화”는 이미 시작되었으며 캔버스 위 안료나 시장의 논리만으론 설명할 수 없는, 세계로 진입한 회화가 우리 눈앞에 있습니다. 시대에 대한 반응으로서 회화는 적극 응답하고 있습니다. “실체 없는 적”은 어쩌면 회화의 위기를 상정하고자 하는 시선이 빚어낸 것일지도 모릅니다. 분명 위기론은 계속해서 제기될 것입니다. 그러나 회화는 이전에도 그랬듯이 자신을 재정의하고 확장할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2025.6.13)

전시라는 무대 위, 회화의 상상적 표지들

월간미술 북서울미술관의 ‘회화 반격’은 한국 근현대 회화의 연대기를 전시로 펼쳐놓은 듯한 구성을 보여줍니다. 《그림이라는 별세계: 이건희컬렉션과 함께》 전시의 참여 작가들은 1912년에서 1952년 사이 출생한 한국 근대미술의 거장으로 분류됩니다. 《떨어지는 눈》에는 대부분 1980~1990년생 작가들이 참여했습니다. 《하늘이 극장이 되고, 극장이 하늘에 있으니》의 크리스찬 히다카는 미술관에서 3주간 머물며 전시 개막 직전까지 벽화를 그렸습니다. 실시간 생중계 격인 작품을 보여준 셈입니다. 서로 다른 시간대에 존재한 작가와 작품들의 이야기가 ‘회화 반격’이라는 하나의 주제로 묶인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2025.5.26)

크리스찬 히다카 〈땅 아래 펼쳐진 산수〉(사진 가운데) 벽면에 천연안료와 페인트 가변 크기 2025
《크리스찬 히다카 하늘이 극장이 되고, 극장이 하늘에 있으니》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전시 전경 
사진: 이손 제공:서울시립미술관 제공

북서울미술관 위 세 개의 전시는 회화의 근본적인 속성과 가치, 그리고 실험 정신을 탐구합니다. 각 전시에 참여한 작가와 작품들은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을 품고 있지만, ‘회화’라는 공통된 몸을 통해 서로 연결된 고민을 공유합니다. 《그림이라는 별세계: 이건희컬렉션과 함께》(4.30~7.20 )는 혼돈의 한국 근현대사를 지나면서, 그림만이 할 수 있는 표현을 찾아 나선 여덟 명의 작가 여정을 살펴보는 전시입니다. 전쟁과 전후 혼란기 등 격동의 역사 속에서, 작가들에게 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자신의 정체성을 탐구하는 동시에 시대를 가늠하려는 절박한 시도였습니다. 같은 시기에 열리는 《떨어지는 눈》 전시는 회화에 얽힌 이미지와 시각의 문제에 주목하며 동시대 회화의 전략을 조명합니다. 더불어 오늘날 이미지가 우리 시각에 어떤 방식으로 영향을 미치고 충돌하는지를 드러내며, 인지적 전환을 모색하는 동시대 회화를 통해 우리의 눈이 나아갈 행로를 상상하고자 기획되었습니다. 《크리스찬 히다카: 하늘이 극장이 되고, 극장이 하늘에 있으니》(6.5~2026.5.10)는 동서양의 원근법과 역사적 이야기, 신화적 상징을 한 화면에 담아내는 일본계 영국인 작가 크리스찬 히다카의 독특한 회화적 실험을 소개하는 전시입니다. 작가는 초문화주의적 관점에서 삶과 우주가 만나는 회화의 무대를 펼쳐 보입니다. (2025.6.2)

월간미술 오늘날 세계는 기술의 고도화를 경험하면서 그 파편으로 세대 간, 계층 간의 분열을 체감하고 있습니다. 하나의 사회적 사건을 놓고 이를 해석하는 관점에, 개인·집단별 편향된 사고가 미치는 영향의 폭은 깊고 넓습니다. (우리는 지난 반년간 이를 직접 체험한 바 있습니다!) 북서울미술관을 찾는 다양한 배경의 관객이 미술관의 ‘그림 전시’를 각각 어떻게 감상하고 돌아가는지 궁금합니다. 관객이나 작가가 그림을 보는 시선에 동시대 회화가 겪은 변화만큼의 균열이 생겼다고 보나요? 미술관 입장에서 세대별 작가/관람자의 회화를 대하는 태도가 어떻게 달라지고 있다고 느끼는지요? (2025.6.10)

이은새〈Mite Life 1〉캔버스에 유채 218.2×290.9cm 2023
제공: 작가

북서울미술관 유튜브에 업로드되는 영상의 길이가 1분 미만일 경우 시청률이 가장 높고, 10분 내외의 영상이면 그나마 이탈 없이 시선을 붙잡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마저 빠른 배속으로 감상 됩니다. 이처럼 우리의 감상 체계는 빨라지는 시간에 맞춰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림 전시는 오히려 유리해 보입니다. 그림을 보는 데 필요한 절대적인 시간은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60초, 10분, 심지어 100분까지도 가능합니다. 회화가 제공하는 이러한 시간의 유연성은 빠른 배속 재생에 익숙한 세대와 본방 사수를 유지하는 세대 모두를 포용합니다.

그런데 이전과 다르게 포착되는 장면이 있습니다. 우리의 눈과 그림 사이에 위치한 또 다른 ‘눈’의 존재입니다. 핸드폰 뒷면에 달린 이 눈은 그림을 SNS에 업로드하거나, 용량이 차면 언젠간 삭제할 사진으로 저장합니다. ‘그림을 그리는 것이 또 하나의 이미지를 더하는 행위는 아닐까’하는 작가들의 고민이 무색하게, 그림은 핸드폰의 눈에 먼저 담깁니다. 그러나 회화는 이미지가 될 자신의 운명을 이미 끌어안고 있습니다. 동시대 작가들은 오늘날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차용하며 그 생리와 작동 방식을 탐색합니다. 마치 앞선 세대의 작가들이 회화를 통해 세계를 이해하고자 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2025.6.13)

평면 위 물감으로 이뤄진 이것이 무엇이기에
우리의 세계를 이토록 넓혀 주는가?

월간미술 북서울미술관에서는 2022년 《조각충동》 전시를 통해 순수장르의 표면과 이면을 동시대의 눈으로 해석하는 기획을 시도한 바 있습니다. 젊은 조각가들의 작업세계를 집중적으로 들여다본 전시는 동시대 조각의 정의에서부터 미술사적 위치, 확장된 범주에서의 형상과 특징까지 아우르는 개념을 새로운 관점에서 탐구한 시도로 기록됩니다. 지금 미술관은 회화를 집중 조명하고 있습니다. 동시대의 ‘눈’을 접속시킴으로써 미술관에서 궁극적으로 하고자 한 이야기는 무엇인가요? (2025.5.26)

북서울미술관 2022년 《조각충동》 전시가 촉발했던 쟁점과 이의 안팎에서 벌어진 토론을 보며, 미술관이 예술의 근본에 대한 질문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점, 담론을 발생시켜야 한다는 미술관의 책무를 새삼스럽지만 깊이 실감하였습니다. 북서울미술관의 전시가 매체에 초점을 맞추는 경우는 바로 이러한 근본적 탐문을 수행하는 임무를 전면화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회화의 지평이 끊임없이 확장되어 온 기저에는 작가들의 굴하지 않는 모색이 있었습니다. 특히 2020년대 두드러진 작가들의 회화 실험은 회화의 가능성에 대한 전망을 넓힐 뿐만 아니라 이제 회화의 고도마저 새롭게 설정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게 만듭니다. 이는 회화가 가진 평면성에 대한 재고에 기인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2차원의 평면이라는 사실은 그 매체의 위기를 설명하는, 태생적으로 불리한 회화의 조건으로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온갖 납작한 디지털 화면을 통해 살아가는 지금, n차원의 평면들이라 할 수 있는 화면 속에서 아예 살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지금의 시대에, 평면 안에 세계를 구축하는 회화야말로 가장 첨단의 매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현실의 재연에서 재현으로 변화해 온 회화가 오늘날 세계의 생성과 삶의 방식에 대해 가장 절실하게 발언할 수 있는 최전선의 예술이지 않을까요? (2025.6.2)

윤미류 〈Hunter Eyes 1〉 캔버스에 유채 130.3×97cm 2023

월간미술 ‘현대인의 삶을 구성하는 디지털 화면도 결국 회화가 이끌어낸 세계’라는 해석에 시야가 트이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인류는 오랫동안 화면 위에, 화면 속에, 그리고 화면 바깥에 셀 수 없는 세계를 세우고 허물며 왔습니다. 이를 총체적으로 인식하고 이해하기 위해 다양한 철학적 시도가 진보와 전복을 반복하며 이어져 왔습니다. 회화는 21세기 디지털 시대에도 여전히 주효한 의식과 활동이 되겠지만, 조금 달라진 조건에 놓이게 될 것입니다. 화면 속 무한 깊이를 탐험하며 좀처럼 화면에서 벗어날 수 없는 세대는 회화의 미래에서 무엇을 발견할 수 있을까요? (2025.6.10)

북서울미술관 ‘현대인의 삶을 구성하는 디지털 화면도 결국 회화가 이끌어낸 세계’라는 해석에 시야가 트이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인류는 오랫동안 화면 위에, 화면 속에, 그리고 화면 바깥에 셀 수 없는 세계를 세우고 허물며 왔습니다. 이를 총체적으로 인식하고 이해하기 위해 다양한 철학적 시도가 진보와 전복을 반복하며 이어져 왔습니다. 회화는 21세기 디지털 시대에도 여전히 주효한 의식과 활동이 되겠지만, 조금 달라진 조건에 놓이게 될 것입니다. 화면 속 무한 깊이를 탐험하며 좀처럼 화면에서 벗어날 수 없는 세대는 회화의 미래에서 무엇을 발견할 수 있을까요? (2025.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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