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Picks
2025 JUNE
안소니 맥콜: Works 1972-2020
푸투라 서울 5.1~9.7
‘확장 시네마(Expanded Cinema)’라는 개념을 급진적으로 구현하는 안소니 맥콜의 아시아 첫 개인전. 1970년대 퍼포먼스와 실험영화로 출발해 시네마, 조각, 설치, 드로잉을 가로지르는 작업을 전개해왔다. 그는 이미지가 아닌 ‘빛’ 자체를 조형의 대상으로 삼으며 현대 미디어아트의 원형을 제시한 인물로 평가된다. 관람객의 신체가 작품에 개입하는〈솔리드 라이트(Solid Light)〉 시리즈는 몰입형 전시 환경의 선구적 모델로, 빛·공간·관객이 삼각 구조를 이루는 작업 방식의 정수를 보여준다.
이번 전시는 1972년 퍼포먼스 기반의 초기작 〈불의 풍경〉부터 2020년 신작까지 맥콜의 50여 년에 걸친 작업 궤적을 압축적으로 구성한다. 특히 푸투라 서울의 10.8m 층고에 맞춰 설계된 〈Skylight〉는 2020년 구상되어 모형으로만 존재하던 작업으로, 이번 전시를 통해 처음으로 실물 크기로 구현됐다. 영화가 퍼포먼스를 기록하는 수단이 아니라 영화 그 자체가 하나의 퍼포먼스가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한 그의 작업은 시네마의 시간성을 넘어 공간성과 신체성을 획득하는 지점을 향한다.
사유하는 책, 빛의 서재: 강애란 1985-2025
수림큐브 4.17~5.31
전시는 책이라는 전통적 매체를 감각적 예술 장치로 확장시켜 온 강애란의 40년 작업 세계를 총망라했다. 매체 실험을 넘어, 책을 통해 여성의 기억, 사회적 상흔, 디지털 시대의 감정 구조를 깊이 사유해 온 작가의 궤적을 따라갔다. 지하부터 지상 3층까지 이어지는 전시 공간은 각 층마다 작가의 예술 여정을 시적으로 펼쳐 보였다. 지하의 초기 석판화와 주조 작업부터 LED 조명을 활용한 〈라이팅북〉 시리즈, VR과 하이퍼북, 미디어 회화 등 기술과 감성이 만나는 복합적 실험의 결과물이 전시됐다. 관객은 VR 설치 속에서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빛과 공간을 통해 서사에 몰입하며 감각적으로 책을 ‘경험’하게 된다. 고서 형식의 미디어북, 여성 인물들의 삶을 재구성한 아카이브 작업은 과거와 현재, 개인과 사회, 기억과 기록 사이의 응답을 이끌어냈다.
강애란은 책을 단순한 정보의 저장소가 아닌 감정의 매개이자 존재의 틀로 바라보며, 기술 시대 속 예술의 감응 가능성을 질문한다. 이번 전시는 책이라는 매체가 감성적 언어이자 시각적 철학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감응의 서재’다.
노혜리: August is the cruelest
두산갤러리 4.2~5.10
사물과 몸을 매개로 개인적 서사를 전개하는 노혜리의 작업은 이주, 도시, 언어, 기억과 같은 다층적 서사가 교차한다. 전시장 중앙에 놓인 〈니로〉(2024)는 아버지가 미국에서 운전하던 한국산 기아 차량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관객은 자동차 안에 앉아 물줄기와 사운드를 마주하며, 끝없이 이어지는 여정의 감각을 경험한다. 그 옆에 놓인〈캐리〉(2025)는 접히지 않는 금속 구조의 텐트로, 안과 밖이 뒤엉킨 불완전한 쉼터를 제시하며 이동도 정착도 아닌 낯선 거리감을 드러냈다. 일방향으로 통제된 전시 공간에 놓인 직립한 카약 조각 〈카탈리나〉(2024)는 본래 기능을 상실한 채, 협력과 동행의 실패를 상징한다.
노혜리는 이번 전시를 통해 뒤틀린 형태, 멈춘 사물, 조각난 언어로 도달할 수 없는 존재에게 편지를 띄운다. 완결되지 않은 이 서사는 상실을 감각하게 하는 동시에, 가장 사적인 기억을 타인과 공유하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수잔나 브루네티: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
공원 5.2~31
이성복의 시 〈그날〉 마지막 행에 등장하는 시구 “아무도 듣지 않는 고통”에서 출발하는 전시는, 고통이 침묵으로 응답받고 인내로 연기되는 비가시적 현실에 대해 말한다.
전시장 1층, 벽과 천장을 엮어내는 검은 코바늘 뜨개 실 작업인 〈Threading Pain〉(2025)은 자궁, 거미줄, 그물을 연상시키며 공간을 섬세하게 감싼다. 그물 사이사이 박힌 진주와 금속 실은 조개가 진주를 품듯 고통의 결을 반짝임으로 변주한다.
전시장 2층, 숯으로 변모한 나무 심장 영상과 퍼포먼스의 흔적은 산화된 심장이 드로잉 도구가 되어 흔적을 남길 때, 파괴가 끝이 아닌 재생의 통로로 기능함을 보여줬다.
불온함의 고통이 아닌, 고통이 새로운 존재로 이끄는 운동으로 읽히는 전시는, 숯이 된 심장, 선이 된 몸, 진주로 남은 ‘몸’이라는 장소에서 출발한 감정적·형태적 전이를 상징한다.
기후 위기의 경계 1.5℃
구하우스 4.30~9.7
우리는 언제부터 기후 위기의 심각성에 무뎌졌을까? 아마도 그 언어와 실천 양상에 트렌드가 입혀지면서부터였을 것이다. 미술계에서도 기후 위기 주제는 유행을 탔고 지금은 매일 새롭게 쏟아지는 국제 이슈에 조금씩 가려지는 모양새다.
현재 가속진행형인 이 위기를 다시 상기시키는 전시가 양평 구하우스에서 개최되고 있다. 전시 제목에 명시된 1.5℃는 지구의 연평균 상승온도를 1.5℃ 아래로 유지해야 한다는 국제협약의 목표를 나타내는 지표다. 전시는 구체적인 과학적 수치를 주지시키며 예술의 사회적 발언력을 지지하고, 이를 통해 공공의 대응을 촉발시키려는 계기를 드러낸다.
김선우, 김은하, 변대용, 박세은, 이채원, 양쿠라, 송수영은 멸종동물, 무방비의 소비, 시멘트 토양, 해양 쓰레기, 생태계 파괴 등 인간활동에 의해 희생되는 자연을 반추하며 기후 문제의 탐색을 이어간다. 김시하, 백정기, 장한나, 한기애는 기후 위기의 본질과 시간을 결합한 작업을 통해 문제의 시급성을 짚어내는 한편 일상에 깊숙이 개입된 위기를 수면으로 끌어올린다.
Cell Struggles
파운드리 서울 4.12~5.31
인간 존재의 복잡성과 지속성에 대해 다층적 질문을 던지는 여성 작가 다섯명의 그룹전. 생명 활동의 최소 단위인 ‘세포’를 메타포로 개인과 사회, 인간과 자연, 기술과 감정 간의 끊임없는 변화와 투쟁을 탐구했다.
뉴욕, 런던, 파리, 서울을 기반으로 각각의 작업을 이어가는 작가들은 현대 사회의 다양한 상호작용을 전시를 통해 드러냈다. 아나스타샤 코마는 회화와 폴리머 조각을 결합해 과학적 발견과 신화적 상징을 교차시켜 새로운 내러티브를 구성하고, 에피 완이 리는 보이지 않는 지각을 형상화하고 내면적 혼란의 감각을 표면화한다. 페르난다 갈바오는 공상과학적 상상력을 통해 미래 식물 생태계를 구현하며, 오묘초는 SF적 서사를 기반으로 가상의 세계를 창조해 존재를 물질화된 형상으로 표현한다. 도현희는 한지를 매개로 감각과 기억의 축적과 해체를 시각화한다. 활동 무대와 표현방법은 각기 다르지만 이들의 서사는 결국 변화하는 환경 속 인간 존재의 긴장, 투쟁, 회복력에 관한 깊은 사유를 제시했다.
캐치볼
스페이스 애프터 5.7~6.1
박종호, 오종, 최수앙이 판화라는 매체를 매개로 조형 실험을 펼쳤다. 회화, 조각, 설치 등 각자의 주력 분야에서 벗어나 모노타입, 동판화, 실크스크린 등의 기법을 적용하며 자신만의 시각 언어를 새롭게 조율한 작업으로 공간을 채웠다.
박종호의 모노타입은 하나뿐인 이미지가 주는 단회성과 즉흥성, 오종의 동판화는 구조적 긴장과 섬세한 화면 구성, 최수앙의 실크스크린은 반복 속의 조형적 밀도를 통해 조용한 강도를 드러낸다. 세 작가는 공통적으로 익숙한 방식에서 벗어나 판화라는 ‘새로운 공’을 받아들이며, 그 과정을 통해 감각적 발견과 조형적 희열을 실현한다.
전시는 작가들의 실험을 관객과 공유하는 장이기도 하다. 작품은 작품함에 아카이빙되어 관객이 직접 보고 감상하며,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고, 소장으로 이어지는 경험이 하나의 예술적 행위로 확장된다. 감상자 또한 작가와의 ‘공 주고받기’에 참여하는 셈이다. 전시는 매체 실험과 예술 향유 방식에 대한 새로운 제안을 통해 미술시장의 구조를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예술 실천의 확장 가능성을 보여준다.
소피오: The Sound of Spring
Art Space X 4.8~27
작품은 청량한 원색의 대비, 자유로운 표현, 복잡한 조형 요소들이 하나의 견고한 화면 구조를 이루며, 강렬하면서도 고요한 시각적 인상을 남긴다. 소피오에게 ‘순수한 즐거움’이란 고요함이며, 혼란과 격정이 가득한 세상 속에서도 흔들림 없는 평온에 대한 시각적 구현이다. 유채, 수채, 아크릴, 먹물 등 다양한 재료를 혼용하면서도 정연한 색채 배열과 기하학적 구조를 통해 복잡함을 정돈된 질서로 수렴한다.
선명한 시각적 인상을 주는 동시에 깊이 있는 감각을 전달하는 것이 특징인 작품 속 곡선과 꽃의 반복성은 생과 소멸, 순환의 질서를 따르는 자연의 이치이자, 특정 존재에 대한 존경과 공양의 상징이다. 직설적 언어나 설명 대신 상징, 은유, 암시를 통해 자연과 인간 삶을 사유하며, 그 속에서 고요한 행복의 본질을 포착한다
© (주)월간미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