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IENNE CHAMBAUD

없음으로 있기

ARTIST REVIEW

에티엔 샴보는 1980년에 태어났다. 프랑스 뮐루즈에서 태어났다. 2022년 파리 과학인문대(Université PSL)의 SACRe 프로그램, 파리 고등사범학교(École Normale Supérieure), 파리 에콜 데 보자르(École Nationale Supérieure des Beaux- Arts)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파리에서 거주 및 작업 중이다. 주요 전시로는 개인전《Color Suite》(팔레 드 도쿄, 2009), 《Lâme》(릴메트로폴 현대미술관, 2022)과 《Danser sa vie》(프랑스 국립현대미술관 – 퐁피두 센터, 2011), 《General Rehearsal》(모스크바 현대미술관, 2018), 《Killed Negatives: unseen images of 1930’s America》(화이트채플 갤러리, 2018), 《Icônes》(푼타 델라 도가나 미술관, 2023) 단체전 등이 있다

에티엔 샴보는 다양한 매체를 넘나들며 우리의 경험, 물건, 규율 등에 부여하는 의미와 그 범주를 탐구한다. 그는 예술의 정의와 방향성을 탐구하며 예술가가 어떻게 작품을 개념화하고 창작하는지 전시를 통해 표현한다. 전시의 형태와 기능, 역사의 개념을 위태롭게 흔들어 놓는 그의 작업은 새롭고 다양한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이해하게 한다. 에스더쉬퍼 서울 갤러리를 통해 국내 첫 개인전을 선보이는 작가의 작품 세계를 함께 살펴보자.

없음으로 있기

권태현 | 독립 큐레이터

《Prism Prison》 에스터쉬퍼 서울 전시 전경 2024 사진: 이현준 제공: 에스터쉬퍼 베를린, 파리, 서울

무언가 전시되어 있다기엔 너무 어두컴컴한 방, 들어오면서 문을 닫았더니 칠흑 같은 어둠이다. 자연스럽게 들어오기 전 입구에 놓여 있던 손전등을 켜 공간을 살핀다. 어둠 속에서 작은 빛을 밝히니 창세기의 첫 부분처럼 어떤 구분이 만들어진다. 빛의 안과 바깥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파악할 수 있는 부분과 알 수 없는 영역 등등. 그렇게 동그란 불빛을 이리저리 비추며 탐색해 보니 공간은 생각보다 좁고, 벽 곳곳에 금빛으로 반짝이는 작업들이 걸려있다. 바닥에는 벗어 놓은양말같은것들도 눈에 들어온다. 어둠 속에서 동그랗게 집중된 부분만 볼 수 있게 하는 디스플레이 방법은 미술관에서도 자주 접하는 스포트라이트 조명과 비슷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여기서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작동한다. 무엇보다 불빛을 손에 들고 있기에 발생하는 유동성과 불안정함이 중요하다. 손전등을 손에 들고 보게 되는 형상들은 관객의 움직임에 따라 끊임없이 모습을 바꾸고, 빛의 방향에 따라서 오묘하게 산란되기도 한다. 벽에 걸린 작업들에 금박이 입혀져 있기에 이러한 성질들은 더욱 돋보인다. 또한, 좁은 빛의 영역을 통해 순차적으로 눈에 들어오는 이미지들은 영화에서 서로 다른 쇼트와 쇼트가 접붙으며 의미를 발생 시키는 몽타주 형식을 떠오르게 한다. 이러한 관람성 때문인지 에티엔 샴보의 전시 공간은 영화 이전의 영화로서의 동굴 벽화를 연상시킨다.

고고학자이자 영화감독인 마크 아제마 (Marc Azéma)는 일련의 연구와 <영화의 선사시대>라는 다큐멘터리 작업을 통해 고대 동굴 벽화의 영화적 성격에 대해 검토한 바 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두운 동굴에서 횃불을 들고 움직이며 동굴 벽에 그려진 그림 곳곳을 비추어보는 행위가 최초의 시네마, 즉 영화 이전의 영화라고 할 수 있는 프로토 시네마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불빛으로 동굴 벽화의 부분 부분을 밝혀나가며 각자의 이야기를 만들어 나갈 수도 있었고, 음각으로 새겨진 동물의 형상에 아른거리는 횃불을 비추어 마치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연출할 수도 있었다. 이는 오늘날 정식화된 영화라는 매체와 비교해 보아도 재미있는 점이 있다. 한 명의 예술가에 의해서 이미 정해진 선형적인 이미지의 구성을 보는 것이 아니라, 관객이 스스로 몸을 움직이며 이미지들 사이의 관계를 설정해 나갈 수 있는 형식은 전통적인 영화 형식보다 이미지와 관객이 더욱 적극적으로 상호작용 할 수 있는 영화적 매체 실험이 된다. 이른바 인터랙티브 시네마가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이것이 새로운 기술적 매체를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고전적인 심지어 고고학적이라고 말할 수있는 차원에서 작동한다는 점이다. 에티엔 샴보의 작업 방법론에서 이렇게 선형적이고 역사적 세계관을 벗어나는 고고학적 차원 나아가 시대착오적(anachronic)이라고도 할 수 있는 지점은 굉장히 중요하게 포착된다. 그렇게 연출된 공간에 전시된 작업들이 고전적인 종교화 형식인 이콘을 차용한 작업이라는 점은 관련한 문제를 더 깊이 생각하게 만든다.

반짝이는 금박으로 뒤덮인 작업들은 모두 이콘 위에 금박을 덧입힌 것들이다. 손전등으로 비추었을 때 영롱한 빛을 내는 그 작업들은 화면의 대부분이 금박으로 가려져 있다. 드러난 부분들은 일관성을 가지는데, 모두 말(馬)이 그려져 있다. 그리고 라는 같은 제목을 가지고 있다. 종교화인 이콘에서 말들은 인간과 결합된 형태로만 등장한다. 그렇다 보니 에티엔 샴보의 작업에서 드러나는 말의 형상들 역시 온전한 것이 하나도 없다. 안장이나 마구 혹은 사람이 올라타 가려진 부분 역시 모두 금박의 배경으로 처리된다. 여기에서 먼저 형상과 배경의 관계라는 이미지 내부의 정식이 뒤집힌다. 이콘에서 주요한 도상이자 형상을 이루었던 것들은 모두 다 배경에 잠식되고, 중요한 인간 형상의 일부를 이루는 도구였던 말들이 유일한 형상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통해 말들이 갑자기 해방되어 길들지 않은(Untamed)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다만 인간과의 관계 속에 놓인 말의 위상이 특별하게 다시 감각되기는 한다. 작가는 연작 이외에도 비슷한 방법론으로 인물의 눈만을 드러내는 이콘 작업 등 여러 작업에서 ‘un-‘이나 ‘in-‘같은 부정적 의미의 접두사를 사용한다. 이러한 언어적 장치는 머리 앞에 붙였다 뗐다 할 수 있는 접두사의 작동 방식처럼 존재와 부재를 동시에 사유하게 만든다. 오직 구멍을 통해서만 존재에 대해 사유할 수 있다는, 정신분석 이론에서 강조하는 양가성의 문제를 생각해 볼 수 있다.

〈Untamed〉(부분) 나무 판넬에 템페라와 금박 49.2×37.8×4.9cm 2023

〈Untamed〉 나무 판넬에 오일과 금박 30.3×24.5×5.1cm 2023
사진: Aurélien Mole 제공: 에스더쉬퍼 서울

없음을 통해서 있음을 사유 하는 것, 같은 방식으로 길든 것과 길들지 않은 것의 관계 속에서 그사이의 복잡한 문제를 설정하는 것. 이를 통해 인간과 동물의 관계 자체가 복잡하게 성찰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것은 배경과 형상이라는 이미지 내부의 정치와 엮인다. 인간을 비롯해 말을 제외한 모든 형상을 지웠을 때, 그곳에서 말은 구멍이 뚫린 존재로 모습을 드러낸다. 부재와 존재가 공존하는 모습으로 이는 한 층위에 전시된 또 다른 작업 와 연결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인간은 오랜 시간 말을 길들여 도구로 삼았다. 그렇기에 수많은 역사화, 그리고 에티엔 샴보가 작업에 차용한 이콘 들에서도 말의 형상은 반복해서 등장한다. 그러나 말은 대체로 독립적인 동물로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인간의 형상을 나타내기 위한 도구로 모습을 드러낸다. 말 도상은 미술사적, 인류사적 이미지 전반에서 거의 초역사적으로 등장한다.오늘날에도 누군가를 영웅으로 보이게 만드는 도상으로 말이 사용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러나 말이 온전히 전지구적이고 초역사적인 도상이라고 할 수는 없다. 아프리카 지역에 주로 서식하는얼룩말은 인간이 쉽게 길들일 수 있는 종이 아니었다. 아프리카 문화권에서 말은 다른 문화권과 다른 존재가 되었고, 일부 학자들은 이러한 문제를 역사의 중요한 변인으로 짚어내기도 한다.

이런 맥락에서 에티엔샴보가 작업의 제목으로 붙인 지브로이드(Zebroid)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얼룩말과 다른 동물의 잡종을 뜻하는 말이다. 에티엔 샴보의 고전적인 말 조각의 형상에 칼질을 한 뒤, 벌어진 틈을 넓게 벌려 놓은 듯한 형상을 하고 있다. 하나의 말이 분절되어 서로 다른 방향을 보고 있는 복수의 존재처럼 보이기도 한다. 말의 형상을 한 물질 부분과 비어 있는 부분이 교차된 모습이 그 자체로 얼룩말을 연상시키는 구석도 있다. 존재와 부재의 잡종. 이렇게 기이한 혼종성은 또다시 없음을 통해 있음을 사유하게 만드는 개념적 방법론과 연결된다. 이는 아래층 전시장에 이콘 작업들과 함께 전시된 와도 엮이는 문제이다. 누군가 허물처럼 벗어 놓은 듯한 양말은 그 주인의 부재를 통해 역설적으로 어떤 존재의 양상을 드러낸다. 물론 그 양말은 브론즈로 캐스팅된 사물이지만 그토록 일상적이고 하찮은 것으로 여겨질 수 있는 사물이 신성한 이콘과 함께 놓이면서 발생 시키는 효과도 중요하게 짚어야 한다. 이번 전시에서 이렇게 함께 놓이는 사물들의 관계를 조율하는 방법은 와 함께 전시된 에서도 탁월하게 작동하는데, 은빛으로 빛나는 그 작업이 사실 정육점에서 쓰던 도마라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이상한연결들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Zebroid〉 청동에 페인트 35×31.5×23.8cm 2024 사진: Aurélien Mole 제공: 에스더쉬퍼 서울

칼로 썰린 것처럼 보이는 말 조각들과 도마라는 사물이 함께 놓이면서 발생하는 오묘한 감각적 연결도 있지만, 무엇보다 이콘을 차용한 작업들을 보고 올라와 같은 방식으로 벽에 걸려 있는 보았을 때, 그것을 신성한 이콘과 같은 위상에 놓고 보게 된다는 점을 생각해보자. 이러한 교차에서는 도마를 이콘으로 보게 만드는 힘과 이콘을 일반적인 사물의 위치로 끌어내리는 힘이 동시에 작용한다. 정교회의 세계관에서 이콘은 단순히 이미지를 품은 시각적 대상, 혹은 예술품이 아니다. 그것은 신의 존재 그 자체로 여겨진다. 그러나 에티엔 샴보에게 그것은 미술의 주요한 방법론인 파운드 오브제(objet trouvé)의 대상이 되어버린다. 그리고 흥미롭게도 이번 전시에 놓인 그의 작업들은 대부분 발견한 사물들, 혹은 구입한 사물들이다. 금박으로 뒤덮은 이콘들은 빛을 입혀 벽에 건 도마, 잘라 비틀어 놓은 말 조각품들도 모두 원래 있던 사물에 물질적으로 개입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특히 이콘과 도마는 그것이 원래 가지고 있던 쓰임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전시장에 놓여 있다. 흥미로운 점은 그 사물들을 크게 변형하지 않고 단지 물질적 층위를 조금 더 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표면에 켜켜이 쌓인 금박과 은박은 예술 작업 제작에서 흔히 발견되는 물감층 같은 수준이 아니다. 물질의 지질학이라고 할 수 있는 지점이 그곳에서 발생한다.

기독교 세계관을 공유하는 정교회 이콘에서 금이 주로 사용되는 이유 중 하나는 그것이 영원성을 상징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에티엔 샴보의 이콘 작업 나 만 보아도 알 수 있듯이 형태에서나 색에서나 영원을 상징한다는 금은 남아버린다. 그런 점은 새로운 금박을 씌우면서 더욱 명확하게 드러난다. 특정한 부분을 제외하고 모두 금박으로 덮어 형상과 배경의 구분을 뒤집어 버리지만, 낡은 부분과 새로운 부분이 서로 다른지층이 되면서 또 다른 형상을 드러내는 것이다. 저 밑에서 배어 올라오는 가려짐으로 드러나는 부재함으로 존재하는 이미지들. 이콘처럼 보이는 도마인 역시 비슷한 방식으로 감각된다. 알루미늄, 금, 팔라듐 등 금속으로 뒤덮인 표면은 반짝이지만, 거울이라는 제목처럼 세계를 명료하게 비추지는 못한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 무언가 비춘다. 거울을 보듯 들여다보면 유령처럼 어떤 존재가 얼핏 드러난다. 예술의 역사와 역사적 사물 사이에 놓이는 지금 여기 관객의 얼굴. 이상하게도 나의 얼굴이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그곳에 여전한 동양과 서양의 식민주의적 관계, 결코 초역사적일 수 없는 미술사에서의 불화, 글로벌 미술시장에서 서울의 오늘날 위상 같은 맥락이 복잡하게 엮여 있기 때문일까. 전시장을 떠나며 보게 된 1층의 쇼윈도에 전시된 는 취소선을 긋는 제스처를 형상화하고 있지만, 무언가 지우기보다는 밝게 빛을 내뿜으며 그것이 놓여 있는 공간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계속해서 반복되는 현전과 부재의 뒤섞임 배경과 형상의 엮임, 그리고 없음으로 존재를 드러내기. 유령과 이미지의 정치학.

〈Erasure〉 네온관 200×200 cm 2024
《Prism Prison》 에스터쉬퍼 서울 전시 전경 2024
사진: 이현준 제공: 에스터쉬퍼 베를린, 파리, 서울

© (주)월간미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