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를 떠도는 이들의
평평한 세계

《평평한 것들 Flatness of Things》
2023. 6. 9 – 8. 13
성곡미술관

100여 년 전, 신부 ‘최사라’는 낯선 땅 미국에 발을 딛었다. 그녀의 나이 스물셋. 배에 내려 처음 만난 남편은 (당시로서는) 아버지라 해도 이상한 것 없는 서른여덟의 나이 든 남성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사진신부의 척박한 삶은 하와이의 거친 암석과도 같았다.

일제 강점기 하와이 노동 이민 한인과 사진으로
선을 본 후에 결혼을 위해 미국 하와이로 이주한
사진신부의 결혼식 기념 사진.
ⓒ한국이민사박물관

당시 결혼은 성인의 필수 관례였고, 이는 하와이 농장으로 떠났던 독신 남성들에게도 마찬가지 문제였다. 현지의 백인 여성과는 결혼할 수 없었던 그들은 한국에서 신붓감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이에 1910년부터 사진 교환을 통해 신랑·신부를 선택하고 현지에 도착해서 바로 결혼식을 올렸다. 구한말의 피폐해진 한국의 여성들에게 하와이는 낙원처럼 묘사되었다. 그녀들은 먹고살기 위해, 또는 교육에 대한 열망으로, 종교의 자유를 찾아 머나먼 타국으로 향했다. 현지 농장에서도 값싼 노동력에 고용한 한국 남성들의 능률과 현지 안착을 위해 가정을 꾸리는 것을 권장했다. 1910년부터 1924년 사이 1,000여 명의 사진신부들이 하와이와 미국 본토로 건너갔고 그들은 사회의 가장자리에서 자신과 가족의 안정적인 삶을 영위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했다.

〈bsp_ahs130〉 《신부들, 사라 Brides, Sara》 2023, Digital c-print

작가의 신작 《신부들, 사라》(2023)는 최초의 사진신부 ‘최사라’와 이름 모를 신부들에 대한 오마주이자 오늘날 한국으로 건너온 결혼이주여성들의 초상화다. 작가는 담담한 시선으로 동시대 신부들의 얼굴을 마주하게 만든다. 실재성과 명료함을 특징으로 한 다큐멘터리 사진으로 그녀들과 우리 사회를 평평하게 드러낸다. 그뿐만 아니라 베를린으로 떠났던 재독 간호사들과 일본 아다치마을의 재일외국인들을 통해 디아스포라적 삶을 주체적으로 꾸려가는 이들을 소개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선풍기, 탁자, 온도계 따위의 사물을 포함하여 평범한 일상의 존재들에게도 시선을 보낸다. 이를 통해 작가는 우리의 세계가 인간과 자연 그리고 비 유기체적인 사물들이 함께 얽히고 영향을 주고받으며 만들어지는 것임을 상기시킨다.

전시를 설명중인 작가

김옥선은 떠남과 머묾, 다름과 차이의 경계에 선 이들에 주목하며 땅 위를 표류하는 주변적 존재와 풍경을 새겨왔다. 작가가 말하는 ‘평평함’은 굴곡 없이 고른 지면을 딛고 선 우리가 동등한 선상에서 서로를 긍정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카메라에 담긴 대상들은 인종과 젠더 등의 차이와 인간, 자연, 사물의 구분에서 자유로운 평평한 세계에 놓인다. 그것은 곧 나와 다른 존재를 이해하며 우리의 외연을 확장해나가려는 노력이다.

전시 전경

이번 전시는 성곡미술관이 중견 작가들을 집중적으로 지원하는 ‘한국중견작가초대전’의 일환으로 김옥선 작가의 지난 20년을 아우른다. 미술관의 넓은 공간을 활용해 90여 점에 달하는 작품을 선보이며 아티스트 토크와 작가가 직접 진행하는 도슨트 프로그램도 준비되어있다. 자세한 정보는 홈페이지에서 확인 가능하다.

글, 사진: 문혜인
자료: 성곡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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