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ances Mary Morris
프란시스 모리스

테이트 모던 명예관장

The Interview

케임브리지대 킹스 칼리지에서 학사, 코톨드 미술학교에서 미술사 석사 학위를 받았다. 브리스톨의 아놀피니 갤러리에서 큐레이팅을 시작했다. 1987년 테이트에 입사하여 컬렉션 큐레이터 및 책임자를 거쳐 2016년부터 2023년까지 테이트 모던의 관장을 역임 후, 현재 명예관장이다. 2024년 이화여대 초빙 석좌교수를 지냈고, 솔올미술관의 전시 《아그네스 마틴: 완벽의 순간들》을 큐레이팅했다. 2023년 대영제국 지휘관 훈장(CBE)을 받았다.

테이트 모던의 첫 여성 관장, 한국미술과 접속
심지언
편집장

테이트 모던은 개방적이고, 민주적이며, 누구나 접근 가능한 미술관을 지향하며 2000년 템스강 인근 화력발전소를 개조하여 21세기 첫 현대미술관으로 개관했다. 프란시스 모리스는 테이트 모던의 개관을 주도했고, 전 세계의 주요한 작품을 찾아 국제 컬렉션을 구축했다. 2023년 4월까지 7년간 테이트 모던 최초의 여성 관장을 지낸 모리스 명예관장은 혁신적인 전시 방법과 접근으로 현대미술의 방향을 규정해 온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2024년 모리스 명예관장은 한국 미술계와 특별한 인연을 맺었다. 이화여대 석좌교수로 초청되어 국내 미술교육 현장과 연결되는 동시에 강릉의 솔올미술관에서 아그네스 마틴의 국내 첫 개인전을 기획했다. 모리스 명예관장에게 테이트에서의 경험과 한국미술에 대한 인상을 들어보았다.

테이트: 지금, 여기의 현대적 관점을 제시하는 미술관

관장님은 테이트 역사에서 입지전적 인물입니다. 테이트라는 큰 미술 조직에서 큐레이터부터 디렉터까지의 긴 시간에 대한 소회를 말씀 부탁드립니다.
변화가 진행되는 조직에서 중요한 커리어를 쌓게 되어 무척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테이트와 같이 규모가 크고 복잡한 조직에서 의미있는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테이트에서의 업무는 기본적으로 테이트 모던이라는 조직의 비전에 기여하는 것이었으나, 미술관에서 이룬 변화 중 일부는 저의 적극적이고 개인적인 책임하에 진행되었습니다. 이러한 변화의 과정에 참여할 수 있었던 것을 큰 영예로 생각합니다.

2000년 테이트 모던의 개관을 주도하셨는데, 개관 당시 선보인 미술사적 연대순이 아닌 주제별 전시 기획은 매우 파격적이었습니다. 당시의 기획 방향을 어떻게 설정하였나요? 전시 기획의 배경과 이를 통해 테이트 모던이 관람객, 그리고 미술계에 던지고자 한 메시지는 무엇이었나요?
우리는 테이트 모던이 21세기의 첫 번째 미술관 중 하나로서 새로운 틀을 제시하는 것에 매우 열정적이었고, 우리가 한 일을 이후 수많은 미술관에서 필수적인 것으로 인정했습니다. 세계화된 세상에서 지정학적 갈등과 인종 및 신앙의 분열에도 예술은 깊이 연결되어 왔습니다. 광범위한 주제 모델을 채택하면서 우리는 서구의 정통적인 틀로 인해 지워진 예술 작품과 예술가들 간의 국경과 역사를 넘나드는 연결을 탐구했습니다. 그것은 엄청난 해방감을 주는 경험이었죠. 우리는 단일한 버전의 역사에서 다양한 이야기로 옮겨갔고, 예술가들이 언어와 장소뿐 아니라 매체의 경계를 넘나들며 작업하는 방식을 탐구할 수 있었습니다. 동시에 기존의 갤러리 공간과 함께, 터빈 홀을 모든 사람을 위한 공공 공간으로 구상했습니다. 예술가들이 가장 야심 찬 작품을 만들 수 있는 장소이자 미술관이라기보다는 거리나 공원의 환경과 더 유사한 장소로, 다양한 커뮤니티가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장소가 되길 기대했습니다.

테이트 모던에서 여성 예술가와 비유럽 작가들의 작품에 집중하며 미술사 서술의 경계를 확장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이러한 변화를 추구한 개인적, 사회적, 미술계 안팎의 배경과 이 역할에 있어서 당신의 소신이 궁금합니다.
케임브리지와 코톨드에서 미술사를 공부한 학문적 배경은 매우 고전적이지만, 존 버거(John Berger), 페미니스트 린다 노클린(Linda Nochlin) 같은 사상가들에게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편견, 가부장제, 권력 구조에 뿌리를 둔 기존과 매우 다른 이야기를 서술하고 있었죠. 이후 브리스톨의 아놀피니라는 매우 혁신적인 공간에서 큐레이터로 경력을 시작했고, 그곳에서 알게 되고 함께 작업한 많은 예술가, 특히 여성 예술가들은 테이트를 포함한 기득권에 소외감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1980년대 후반 영국과 미국에서 흑인 및 소수 민족 예술가와 여성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가시화되는 큰 변화를 목격한 시기였으며, 그들 중 많은 사람이 저와 같은 세대였죠. 이후 제가 테이트에서 큐레이팅을 시작했을 때, 미술관의 역사에 도전하는 것은 개인적이자 집단적인 책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테이트 모던을 건립함으로써 우리는 마침내 방향을 바꾸고 다른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것이죠. 

루이스 부르주아 〈Maman〉1999 테이트 모던 전시 전경 2000
©The Easton Foundation. Photo ©Tate ( Marcus Leith)

유니클로 테이트 플레이(UNIQLO Tate Play) ‘Please Draw Freely’ Tate Modern
2021 제공 : 프란시스 모리스

테이트 모던 관장으로서 가장 보람 있었던 성과와 가장 도전적이었던 과제는 무엇이었나요?
2021년부터 유니클로의 지원을 받아 놀이를 기반으로 한 ‘유니클로 테이트 플레이(UNIQLO Tate Play )’를 기획함으로써 어린이와 가족을 미술관에 참여시키고자 한 전략을 성공적으로 추진한 것은 매우 흥분되는 일이었어요. 이 프로젝트를 통해 우리는 처음으로 관객의 인구 통계에서 변화를 확인할 수 있었는데, 지역사회와 매우 어린 관람객층이 크게 증가했습니다.

가장 도전적이었던 부분은 코로나19에 대응하는 것이었습니다. 바이러스로 인해 미술관이 수개월 동안 폐쇄되며 우리의 야심 찬 프로그램들이 크게 축소되었고, 수익과 직원 수 또한 감소했습니다. 그러나 코로나19에도 긍정적인 측면이 있었어요. 우리는 디지털 프로그램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고, 터빈 홀을 백신 접종 센터로 제공함으로써 신뢰받을 수 있는 지역 장소가 되었습니다. 테이트 모던에서 백신을 접종한 많은 지역 주민은 이전에 한 번도 테이트를 방문한 적이 없었다는 점에서 그것은 큰 의미가 있습니다.

테이트 모던에서 이루어진 변화 중 가장 의미있게 여기는 것은 무엇인가요?
2016년 53개국의 작가 300명의 작품 800점이 포함된 진정으로 국제적인 상설 컬렉션 전시 《The New Tate Modern》 을 개최한 것은 매우 특별한 순간이었습니다. 이 전시는 제가 국제 컬렉션 디렉터로 재직하는 동안 주로 수집한 작품들로 구성되었으며, 작가의 성별 비율이 50 :50으로 균형을 이루었습니다.

현대 미술계의 다양성과 포용성을 향상시키기 위해 큐레이터로서 어떤 노력을 기울여왔나요?
테이트 모던의 저희 팀은 아마도 전 세계의 어떤 현대미술관보다 더 다양한 큐레토리얼 팀 중 하나였을 것입니다. 우리 큐레이터들은 런던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영국과 유럽은 물론 아시아, 아프리카, 중동, 아메리카에서 모인 이들이었고, 남아프리카, 콜롬비아, 호주에 있는 외부 큐레이터들의 보조를 받았습니다. 제가 총괄한 전시와 프로그램 또한 테이트 모던의 역사상 가장 다양성을 존중했습니다. 그러나 관객의 다양성과 포용성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지금은 다른 미술관에서도 널리 채택하고 있는 야간개장 프로그램인 ‘Friday Tate Lates’와 앞서 언급한 ‘유니클로 테이트 플레이’와 같이 광범위한 대중에게 호소력을 가진 무료 공개 프로그램이었습니다.

큐레이터로서 전시를 기획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는 무엇인가요?
제가 기획한 모든 전시는 심도 있는 연구를 바탕으로 새로운 세대에게 예술가를 소개하고, 그 예술가와 그들의 시대에 대한 이해를 확장시킬 수 있는 새로운 시각이나 다른 관점을 제시하려는 노력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전문가보다 일반 대중에게 다가가는 것을 선호하는 큐레이터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연구 결과를 관람객의 경험으로 번역하는 과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전시 준비 초기부터 작품을 어떻게 설치할지, 관람객에게 어떻게 강렬한 경험을 제공할지 고민합니다. 저의 가장 큰 기쁨은 갤러리 공간에서 작품을 디스플레이 하는 순간입니다.

기억에 남는 작가들과의 에피소드가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작가들과의 에피소드는 정말 많아요. 터빈 홀에서 제가 처음 경험한 것은 2000년 미술관 개관을 위해 루이스 부르주아의 《I do, I undo, I redo》 전시 작품을 설치하는 일이었어요. 작업이 너무 더디게 진행되어 전시 오픈 기한을 맞추지 못할까 봐 무척 걱정했었죠. 결국 첫 개관 프리뷰 기간에 거대한 거미 작품 〈Maman〉 설치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그 긴박한 상황에서 당황하지 않은 유일한 사람은 위대한 작가 본인밖에 없었죠!

《Performer and Participant》 테이트 모던 전시 전경 © Tate Photography

한국의 미술대학과 미술관에서의 활동

테이트 관장 퇴임 후 첫 선택이 이화여대 석좌교수였습니다. 당신의 활동에 대한 다양한 기대와 제안이 있었을 텐데 한국의 이화여대를 선택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2007년 테이트 아시아 태평양 수집위원회(Asia Pacific Acquisition Committee )를 설립한 후, 한국 미술과 작가들에 대한 오랜 존경심을 키워왔지만, 그동안 한국을 방문한 것은 몇 번의 짧은 일정에 불과했습니다. 이화여대의 석좌교수 초청은 솔올미술관의 아그네스 마틴 전시 기획과 시기적으로 맞물렸습니다. 그래서 한국의 학계와 예술계와 더 깊이 소통할 기회를 얻게 되어 매우 기쁘게 생각하며 한국행을 선택했습니다.

백남준 이후 이화여대의 첫 석좌교수로 초빙되었는데, 소감은 어땠으며 석좌교수로의 역할을 어떻게 설정했는지 궁금합니다.
이화여대의 석좌교수 초청은 매우 흥분되고 자랑스러운 일이었습니다! 백남준처럼 저도 학자가 아니기에 특정 ‘과목’을 가르치는 것은 맞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대신 제가 설계한 과정은 학생들이 자신이 활동하는 세계, 로컬과 글로벌을 모두 아우르며 우리가 일하는 복잡한 미술계를 규제하는 제도, 시장, 네트워크를 비판적으로 인식하는 힘을 기르게 돕는 것이었습니다.

이화여대에서의 강의, 그리고 학생들과의 호흡은 어땠는지요?
학장님과 총장님 등의 지원 덕분에 강애란과 문경원, 두 명의 작가이자 교수와 긴밀하게 협력할 수 있어서 매우 운이 좋았습니다. 제 강의는 비공식 강의였지만, 때로는 30명이 넘을 정도로 많은 학생이 참석했습니다. 한국 학생들은 매우 똑똑하지만 처음에는 예상보다 수동적이었어요.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학생들이 수업을 더 편안하게 여겼고 저도 그들을 더 잘 알게 되었죠. 특히 소규모 그룹으로 나누어 제가 제시한 미술관과 갤러리 방문 후 발표하게 한 것이 매우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많은 학생을 알게 되었고 그들의 작업실을 방문한 것이 정말 좋았습니다. 잊을 수 없는 경험이었죠.

한국의 미술교육 시스템과 학생들에게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무엇인가요?
짧은 방문으로 한국 미술교육 시스템의 단면만을 확인할 수 있었지만, 이화여대 학생들의 학구열과 헌신에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특히 미술대학의 스튜디오 환경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교수진 건물은 마치 24시간 내내 창의성으로 가득 차 있는 것처럼 보였어요. 또한, 학생들이 전통적인 방식으로 기술을 습득하는 것과 동시에 자신의 목소리를 찾도록 격려받는 교육 방식도 매우 인상적이었어요.

프리즈 서울과 이화여대의 협업으로 진행된 EMAP(Ewha Media Art Presentation)×프리즈 필름 2024를 총괄 디렉팅했습니다. EMAP 2024 디렉팅의 방향과 기존과의 차별화 지점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EMAP는 국제적인 영화 및 비디오 프로그램을 엄선하여 이화여대의 캠퍼스로 가져오는 오랜 역사를 가진 이벤트입니다. 올해의 프로그램은 ‘우주를 엮는 모든 것들, 그 양자적 관계에 대하여(All that Weaves the Universe : A Question of Quantum Enganglements)’라는 제목으로 진행되었으며, 인류가 비인간과 교차하는 방식을 이해하려는 예술가들의 다양한 시도를 다룬 것이 특히 시의적절했다고 생각합니다. 이 프로그램은 신진 큐레이터 발렌타인 우만스키(Valentine Umansky)와 박주원에 의해 훌륭하게 기획되었습니다. 올해 특별히 프리즈 서울과의 협업으로 국제적인 관객들이 이화여대 캠퍼스를 많이 찾게 되며 EMAP가 국제적인 이벤트로 발돋움했습니다.

《아그네스 마틴 : 완벽의 순간들》 솔올미술관 전시 전경 2024 제공 : 솔올미술관

솔올미술관의 아그네스 마틴 개인전을 기획했습니다. 아그네스 마틴의 작품을 한국에 처음 소개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여긴 부분은 무엇인가요?
아그네스 마틴은 동아시아를 여행한 적이 없지만, 그녀의 작품은 선불교의 영향을 깊이 받았습니다. 마틴의 정교하게 측정된, 그리고 매우 아름다운 추상 캔버스와 한국 원로 작가들의 추상 작품 사이에는 강력한 유사성이 있습니다. 이러한 초국가적 대화를 형성하는 것이 《아그네스 마틴 : 완벽의 순간들》을 기획한 이유입니다.

전시를 기획하며 특별히 주안점을 두었던 부분은 무엇인가요?
저의 비전은 아그네스 마틴의 가장 매력적인 작품 중 몇 점을 최상의 조건에서 전시하는 것이었습니다. 전시의 관건은 작품 대여 여부였는데, 미국, 한국, 일본의 주요 미술관 소장품에서 아그네스 마틴의 주요한 작품을 대여받을 수 있어서 무척 행운이었습니다. 또한 개인 소장품에서도 놀라운 작품들을 추가로 대여받을 수 있었어요. 설치는 솔올미술관 김석모 관장의 도움으로 진행되었고, 결과는 놀랍도록 아름다웠습니다. 덕분에 각 작품은 명상의 장소가 되었고, 그 경험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죠.

미래지향적이고 야심 찬 한국미술

한국미술과 작가들에 대한 인상과 평가가 궁금합니다.
한국미술은 진지하고 혁신적이며, 명료하고 야심 차고, 더 많은 국제적인 관심을 받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미술이 가진 독창성, 또는 특성은 무엇이라고 보나요?
제가 존경하는 많은 한국 작가에게서 미래와 관련된, 가장 미래지향적인 측면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발견했습니다. 그들은 과거를 깊이 존중하고 관계를 맺으며 미래를 바라보는 방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최근 세계 곳곳에서 한국미술 전시가 개최되었고, 한국미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관심을 이어 한국 작가들의 국제적인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한국 작가들에 대한 세계적인 관심을 높이기 위해선 교류와 대화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프리즈 서울을 통해 확장되고 있는 네트워크와 함께 한국 미술관과 갤러리가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덕분에 다방면에서 교류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런던에서 조민석 건축가의 서펜타인 파빌리온을 비롯해 최근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양혜규와 이미래의 놀라운 전시가 열리고 있는데, 두 작가는 모두 큰 주목을 받고 있죠. 대추무파인아트가 프리즈 런던 기간에 피츠로비아(Fitzrovia)에서 소규모 그룹 쇼를 여는 등 유명 작가들과 함께 소규모 기획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것이 좋은 예가 될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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