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와 해방을 향한 탈피

하이디 부허: 공간은 피막, 피부
Heidi Bucher: Spaces are Shells, are Skins

2023. 3. 28 – 6. 25
아트선재센터 1, 2 전시실

하이디 부허 Heidi Bucher 가 구축한 작품 세계는 그녀의 인생에 대한 적극적인 반향이다. 부허는 여성에게 친절하지 않았던 1970-80년대 스위스의 가부장적인 가정에서 성장했다. 당시 스위스 가정에서 생활공간은 성별에 따라 명확하게 나뉘어 있었다. 가장의 공간이었던 서재에는 사업을 하던 아버지의 손님들로 늘 붐볐고, 아내의 공간인 부엌에서 어머니는 마치 하인처럼 그들에게 음식을 대접하기 바빴다. 이후 취리히 미술공예학교 Zurich School of Arts and Crafts에서 수학한 부허는 조각과 칼 부허 Carl Buchre와 결혼한 후 뉴욕과 캘리포니아 등지에서 본격적인 예술활동을 시작했으나 1971년 몬트리올에서 열렸던 전시 제목 《칼 부허와 하이디 Carl Bucher & Heidi》에서 알 수 있듯이, 부허는 남편의 조수, 보조 정도로 취급되곤 했었다. 칼 부허와 이혼한 하이디는 취리히 정육점 지하에 스튜디오를 차리고 독립적인 예술가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발전시켰다. 

‹빈스방거 박사의 진찰실›, 크로이츠링겐 벨뷰 요양원,1988, 거즈, 부레풀, 라텍스, 360x525x525cm

스키닝 Skinning

하이디 부허는 불평등한 구조에 의문을 제기하며, 가부장제 관습을 대표하는 특정 공간들에서 ‘스키닝’ 기법을 통해 해방의 의지를 보여주고자 했다. 스키닝이란 공간에 부레풀을 거즈와 함께 바르고 액상 라텍스를 덮어 말린 뒤 벗겨내는 기법이다. 마치 피부의 껍데기를 벗겨내는 듯한 스키닝 작업은 견고한 차별의 역사를 마주하는 것처럼 오랜 시간과 힘을 요구하는 고된 일이었다. 아버지의 서재에서 뜯어낸 〈신사들의 서재〉는 그렇게 만들어진 첫 스키닝 작품이다. 가부장제 가족 구조를 여실히 보여주던 서재의 단단한 벽은 스키닝 과정을 거쳐 부드럽고 유연한 형태로 변형되었다. 더불어 껍질을 벗겨내는 행위를 통해 과거의 관습으로부터 분리되는 과정과 시간의 흐름을 보여주었다.

부허의 건축적 탐구는 사적인 가부장적 공간으로부터 여성의 아픈 역사를 담고 있는 벨뷰 요양원으로 향했다. 벨뷰 요양원은 ‘히스테리아’ 전문가였던 빈스방거 박사 가문이 운영하던 역사 깊은 공간이다. 20세기 초까지 의사들은 여성의 전환장애 증상을 생물학적 특성에 기반하여 설명했는데, 이 과정에서 많은 여성 환자들이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정신병원에 보내지는 등 인권을 침해당했었다. 부허는 벨뷰 요양원의 진찰실, 창문, 출입구 등 곳곳을 스키닝하여 전시장으로 옮겨왔다.

‹신사들의 서재 파르케트 플로어링 ›, 1979, 여행 상자 속 라텍스, 면, 자개 안료, 75x56x56cm (46점)
‹바닥 피부(선대의 집, 오베르뮐) 파르케트 플로어링, 룸 12, 1층›, 1980, 황마, 부레풀, 라텍스, 340x405cm

스키닝 기법으로 제작한 작품의 표면

전시 전경

움직임

움직임은 부허의 작업 세계에서 핵심적인 요소이다. 작가는 움직임으로 흐르고 변화해 자유와 해방으로 향하기를 꿈꿨다. 부허는 입을 수 있고 춤출 수 있는 조각을 통해 단단하고, 견고하고, 끔찍하며, 잔인한 것들로부터 벗어나고자 했다. 〈잠자리의 욕망〉은 작가의 신체와 움직임 그리고 변태(변신) 과정을 보여준다. ‘변신의 과정 Process of Metamorphoses’은 위계적 사회적 조건에서 분리되어 해방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단계로 작가에게 중요한 의미가 있다. 3층 입구에 걸려있는 하이디 부허의 초상에서 하이디 부허가 작품을 입은 모습을 볼 수 있다.

‹잠자리의 욕망 (의상)›, 1976, 텍스타일, 라텍스, 자개 안료, 170x255x15cm, 제공 하이디 부허 에스테이트

신체를 부드러운 스티로폼으로 둘러싼 〈바디랩핑〉과 〈바디쉘〉은 마치 곤충의 번데기같이 보이기도 한다. 이 작업은 탄성 있는 스티로폼으로 만들어졌으며 자개 안료로 표면을 칠해 움직일 때마다 빛에 반사되어 반짝인다. 몸을 감싸는 껍데기 형태는 성별을 모호하게 만드는 장치이자 생명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동시에 성장을 위해 벗어던지고 날아가야 할 외피이기도 하다. 1972년 캘리포니아에 머물던 시절 하이디 부허는 가족과 함께 이 재밌는 의상을 입고 장난스럽게 춤을 추며 서로를 에워쌌다. 전시장에서는 2021년 다시 제작된 스티로폼 조각을 직접 입어 보고 움직이며 작가가 느꼈을 즐거움을 상상해볼 수 있다. 

‹모사 (바디쉘) ›, 1972 2021, 폼, 폴리우레탄 코팅, 190.5x150x150cm, 제공 하이디 부허 에스테이트
‹바디쉘›, 1972, 싱글 채널 16mm 필름 (컬러), 43. 1’57’’, 반복재생, 제공 하이디 부허 에스테이트

하이디 부허의 두 아들

생전 주목받지 못했던 하이디 부허의 작품이 재평가 받는 데에는 2천년대 이후 여성주의와 젠더 연구의 확장과 함께 그녀의 두 아들 메이요, 인디고의 숨은 노력이 있었다. 작가가 박제시킨 해방의 움직임과 일렁이는 물길 사이에서, 정지되지 않은 것은 누렇게 변한 껍데기와 아들의 희끗희끗한 흰머리가 증명하는 ‘시간’이 아니었을까. 이번 전시를 통해 네오아방가르드 미술사에 큰 발자국을 남긴 하이디 부허의 도전과 모험이 21세기에 어떻게 변화하고 움직임을 만들어가고 있는지 질문하고 답을 찾는 시간이 되길 기대한다.

작품을 직접 입어 보이는 하이디 부허의 아들 인디고 부허

글, 사진: 문혜인
자료제공: 아트선재센터, 각주 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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