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keon Chun 전인건
간송미술관장
The Interview
이루이스앤클라크(Lewis &Clark)대 역사학사, 고려대 교육행정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CIIS(California Institute of Integral Studies) 연구원 역임, 간송 C&D 이사(2013~), 간송미술관장과 간송미술문화재단 총괄이사(2018~), ㈜헤리티지아트 대표이사 (2021~),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소 운영위원(2022~), 학교법인 동성학원 법인사무국장(2005~), 대구간송미술관장 (2024~)을 맡고 있다.
사진: 박홍순
보화각을 넘어: 공간과 시간을 확장하는 간송 컬렉션
심지언 편집장
일제강점기, 우리 문화유산을 지켜낸 간송 전형필 선생의 정신을 이어받은 한국미술사의 보물창고 간송미술관이 대구에 새 둥지를 틀었다. 간송미술문화재단과 대구간송미술관의 수장인 전인건 관장을 만나 분관 개관의 의미와 함께, 간송 컬렉션의 보존과 활용, 그리고 디지털 시대에 맞는 새로운 도전과 앞으로의 비전을 들어보았다.
간송미술관의 지역 거점, 대구간송미술관 개관
대구간송미술관의 개관을 축하드립니다. 분관 개관의 배경이 궁금합니다.
처음 논의부터 개관까지 10년 넘게 걸렸습니다. 2013년 간송미술관이 간송미술문화재단으로 법인화가 되었는데 처음부터 목표 중 하나가 지역 공간이었어요. 왜냐하면 1971년 가을부터 봄·가을 정기전을 시작했는데, 어느 정도 알려지면서 지역뿐 아니라 해외에서 오시는 분이 꽤 많았어요. 근데 봄·가을로 2주씩, 1년에 4주의 기간에 맞추어 미술관을 방문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 가까운 곳에서 간송 컬렉션을 보고 싶다는 요청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간송의 ‘문화보국(文化保國)’ 정신에 따라 저희가 해야 하는 역할이라 판단해 지역 거점을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여러 제안 중 대구광역시에 분관을 개관하기로 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대구를 선택한 배경은 몇 가지가 있습니다. 여러 지자체에서 제안을 해왔는데, 그중 대구광역시가 가장 강력한 의지를 보였습니다. 그리고 대구는 국채보상운동과 같이 여러 국란의 시기마다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나서는 민족주의적 시민의식이 높은 곳입니다. 이는 간송 정신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죠. 또 경북지역은 산업화 시기 자본이 축적되어 문화가 발달한 곳으로 컬렉터도 많고, 국제 오페라 축제와 같은 문화행사를 주최할 만큼 문화적인 수요가 높은 곳이라는 점 등이 고려되었습니다.
대구간송미술관은 간송미술문화재단 최초의 지역 분관입니다. 본관과 분관의 차별화된 전시 및 운영 계획은 무엇인가요?
서울 보화각은 1938년에 건립된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역사적인 장소에서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공간이지만 상설로 공개하기 어려운 반면, 대구간송미술관은 현대적이고 여유 있는 공간에서 상시적으로 간송미술관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차이입니다. 또 하나는 경북지역은 서지류 유물의 집적도가 굉장히 높은 곳인데, 서지류는 특히 보관 및 보존이 어렵습니다. 대구 분관에 수장고도 크게 만들고 보존과학팀도 본격적으로 꾸려 그간 간송미술관의 경험을 바탕으로 지역의 서지류 유물 보존에 기여코자 합니다.
개관전인 《여세동보(與世同寶) – 세상 함께 보배 삼아》는 간송미술문화재단이 소장한 국보, 보물 등을 한자리에서 선보이는 역대 최대 규모의 간송 컬렉션 전시입니다. 대구간송미술관의 첫 전시를 통해 관람객에게 어떤 인상과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으신가요?
전시의 제목이 그 의미를 상징적으로 담고 있습니다. ‘여세동보(與世同寶 )’는 위창 오세창 선생께서 보화각 설립을 축하하며 지은 정초명(定礎銘 )에서 빌려온 것으로, “세상 함께 보배 삼아”라는 뜻입니다. 대구간송미술관을 지역 거점으로 만든 이유가 바로 간송이 문화보국 정신으로 수집한 문화유산을 세상과 함께 나누고자 하는 의미로, 더 많은 분이 더 가까이에서 더 편안하게 간송 컬렉션을 만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대구간송미술관 외부 전경 2024
사진 : 김용관
이번 전시에서 〈미인도〉와 『훈민정음』 해례본을 특별한 기획으로 선보였습니다.
이번 전시는 특별한 주제전이기보다 하나하나의 작품에 무게를 실어 국보, 보물 등으로 종합 선물처럼 짜임새 있게 구성했습니다. 그중에서 특히 관람객에게 의미가 있게 다가갈 작품이 〈미인도〉와『훈민정음』 해례본이 아닐까 합니다. 따라서 두 점은 특별한 공간을 마련해 단독으로 소개합니다. 〈미인도〉는 초상화로, 누군가 만나러 간다라는 콘셉트로 기획해 조선 회화의 대표적인 미인을 만나는 느낌으로 작품과 독대 혹은 소규모의 만남을 가질 수 있는 조용한 분위기로 전시장을 조성했습니다.
『훈민정음』 해례본의 경우 세종의 애민 정신에 주목해 문자에 대한 배리어프리를 확장하고자 했습니다. 지금까지 『훈민정음』 해례본은 시각적으로 전시되었는데, 현대미술 작가와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신체적인 장애, 문화적인 차이, 환경적인 특수성을 가진 분들의 접근성을 높이는 시도를 했습니다. 훈민정음의 정신은 세종이 직접 쓰신 어제(御製) 서문에 모두 담겨있어 다양한 배경의 분들이 어제 서문을 읽는 소리가 모여 합창처럼 퍼지며 시각을 넘어 청각적으로 훈민정음을 경험하게 했습니다.
미술관의 건축 디자인은 간송의 철학을 어떻게 담아냈는지 궁금합니다.
본래의 지형을 살려 그 지형에 얹어지는 방식인 고건축의 철학을 반영하여 계단식의 기단과 터의 분절 등 전통 건축 요소를 접목하며 자연훼손을 최소화해 건축물과 자연이 어우러지는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담아내고자 했습니다. 미술관을 설계하신 최문규 교수께서 “간송의 보물을 잘 담아낼 수 있는, 담백한 그릇을 만들고 싶다”라고 했는데, 그런 의미가 잘 반영된 동시에 사용자 친화적인 미술관을 구현했다 생각합니다.
미술관 내 ‘간송의 방’을 통해 수장가, 연구자, 예술가, 교육자로서의 간송의 면모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간송 전형필 선생에 대해 많은 분이 이름은 알아도 어떤 분이셨는지는 잘 모르고 있고, 또 궁금해하는 분도 있습니다. 그래서 충분한 공간의 상설 전시관이 생겼으니 수장가 외에도 연구자, 예술가, 교육자 등 간송의 다양한 면모를 소개하는 상설 공간을 마련한다면 의미있겠다 생각했습니다. ‘간송의 방’에는 소장품 외에 간송이 직접 제작한 그림, 글씨, 도자기, 전각 등 다양한 작품이 있습니다. 이분이 왜 이렇게 다양한 것을 하셨나 생각해보면 어떤 것들을 배우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직접 해보는 거잖아요. 그래서 스스로 창작활동에 정진하며 우리 문화예술을 더 깊이 있게 이해하고자 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 노력의 결과물인 작품과 더불어 연보도 색다르게 구성해 단지 수집가가 아니라 학자, 예술가, 교육자이기도 했고, 또 시대를 앞서간 자애로운 아버지이기도 한 다각적인 면을 보여드리고자 했습니다.
‘보이는 수리복원실’을 운영하며 관람객, 전문가 등과의 소통과 더불어 영남권 지류문화유산 수리 복원 허브로서 역할을 하겠다 한 간송의 지역 사회와의 소통과 공헌 계획이 궁금합니다. 구체적인 계획은 어떤 것이 있나요?
대구간송미술관은 시립으로 간송의 문화유산 수리와 보존, 연구에 대한 오랜 경험을 유림(儒林)의 본고장인 대구 · 경북과 영남지역을 위해 활용할 예정입니다. 대구시에서 보존하고 있는 근대 기록 문화유산 중 상태가 양호하지 못한 것들도 있어 여기서부터 시작하려고 선별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민간에서 천년이 넘도록 보존해온 지류 유물의 수리, 보존, 복원에도 간송의 경험을 나눌 것입니다.
대구간송미술관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가 교육으로, 간송의 경험과 노하우를 지역 교육기관, 연구기관과 연계해 연구, 전시, 교육 등으로 풀어내고자 합니다. 그러려면 이것이 어떤 것이고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많은 분이 아셔야 하죠. 관람객은 수장고와 더불어 보존과학 분야를 궁금해하십니다. 그래서 그 과정을 들여다보고 작업하는 전문가와 대화하는 등의 방식으로 공감을 얻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닐까 하여 ‘보이는 수리복원실’을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대구간송미술관 외부 전경 2024
사진 : 김용관
간송 정신과 컬렉션의 계승
간송 전형필 선생의 예술과 문화에 대한 열정과 헌신은 많은 이에게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현재 재단과 미술관을 중심으로 간송의 유산과 정신을 어떻게 계승하고 있는지?
간송이 일제강점기 때 한 역할은 우리 문화유산을 지켜내기 위해 모으고, 그것을 연구할 수 있는 배경을 마련한 것으로, 요즘 스타일로 ‘간송 1.0’이라 표현하겠습니다. 일제강점기가 끝난 다음, 수집을 멈춘 간송이 가장 먼저 했던 일이 ‘고고미술동인’이라는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 미술사학회를 만든 것입니다. 학회를 발기하고 전반적인 지원을 통해 사람을 키우고 미술사 연구를 위한 기반 마련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셨죠. 간송미술관이 흔히 ‘간송학파’라고 부르는 일군의 학자를 지원하고, 연구와 교육, 보존에 집중했던 시기를 ‘간송 2.0’이라고 봅니다. 지키고 보존 · 연구하는 간송의 기조가 바뀐 것은 2000년대 초반입니다. 드라마 ‘바람의 화원’이 인기를 끌면서 당시 《풍속인물화전》을 보러 정말 많은 분이 오셨어요. 급작스러운 관심에 무척 놀라면서도 우리 전통 예술에 대한 수요를 확인하게 됐죠. 이러한 배경과 함께 ‘간송 3.0’으로 접어들었고 재단도 같은 맥락에서 설립되었습니다. 지속 가능성과 공공성 담보와 더불어 더 많고 다양한 분들께 더 편하고 재미있게 전통문화를 알려드리고자 하는 방향성으로 간송의 유산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말씀하신 바와 같이 간송미술관은 미술품을 소장하는 공간을 넘어, 우리 문화유산의 가치를 알리고 보존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관장으로서 앞으로 지속가능한 미술관을 위한 어떤 계획이 있나요?
말씀드린 대로 더 많고 다양한 분께, 더 가까이에서 편하고 재미있게 간송 컬렉션을 보여드리기 위해서는 지속 가능성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미래 세대와의 호흡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IT, 미디어, 디지털화 등이 필수적인데 특히 이러한 환경을 편안하고 즐겁게 여기는 세대와 소통을 위한 기반 역할을 합니다. 문화유산의 경우 전시 환경, 기간 등 제한 사항이 많습니다. 그렇다면 공간과 시간의 제약을 뛰어넘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디지털화라고 생각했죠. 미래 세대들이 디지털 콘텐츠를 좋아하기도 하고요. 즐겁고 편안하게 보고 재미있게 즐기는 것을 가볍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저는 그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관심을 갖게 하고 재미를 느끼고 궁금하게 만든다면 그것이 가장 좋은 첫 스텝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대구간송미술관 개관전 《여세동보 세상 함께 보배 삼아》 전시 전경 2024
사진 : 김용관
간송 3.0: 보화각 재개관, 간송 IP의 디지털 콘텐츠화
보화각이 오랜 보수 공사를 마치고 5월에 재개관 했습니다. 앞으로 운영에 있어 어떤 변화가 있을까요?
지난 5~6년 동안 간송의 가장 큰 변화는 지하에 수장고 시설을 마련한 것으로, 이 공간을 바탕으로 80여 년 만에 처음으로 보화각을 철저하게 비운 상태에서 보수-보강 공사를 했습니다. 새로 만드는 것이 아닌 6 · 25전쟁 이전의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이 목표 중 하나였고, 두 번째는 전시 공간의 한계를 개선하는 것입니다. 기존에는 전시당 2주밖에 전시를 못했는데, 조명 등을 현대화해 문화유산에 손상 없이 1년에 90일을 전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재개관전을 시작으로 다년 프로젝트를 가동했는데, 간송 컬렉션을 연대별로 한 꼭지씩 정리해 가는 것입니다. 5월 전시에서 1938년 간송이 보화각을 만들기 이전 유물들을 정리해서 보여드렸고, 가을 전시에서는 보화각을 개관한 직후의 모습으로, 위창 오세창 선생 50주년을 맞아 위창과 간송의 컬렉션을 함께 선보일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보화각을 중심으로 한 봄 가을의 학술적인 기획전을 계속 이어갈 계획입니다.
새로운 세대의 관장으로 신사업도 다양하게 시도했습니다. 그중 NFT 사업은 기대도 있었지만 우려의 목소리도 높았습니다. NFT 사업의 진행 배경과 자체적인 평가는 어떤지 궁금합니다.
저는 간송미술관의 코어 팬 커뮤니티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팬덤을 만들고 유지 관리하면서 소통하는 방법으로 블록체인에서 그 가능성을 봤기에 NFT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처음 시작했을 때는 성과가 있어 재정적으로도 도움이 되었습니다. 현재는 적극적으로 하진 않지만, 아직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희는 투기와는 전혀 상관없이 커뮤니티를 만들기 위한 정확한 철학과 방향성을 바탕으로 진행해 왔고, 그 방향성이 틀리지 않다고 생각하기에 앞으로도 가능성을 확인하면서 계속 준비할 겁니다.
간송미술관은 IP를 활용한 디지털 콘텐츠 개발에 선구적인 역할을 해왔습니다. 그동안 해온 시도는 어떤 것이 있나요?
2014년부터 2019년 사이 DDP(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전시를 통해 다양한 시도를 시작했습니다. DDP에서 전시를 시작하면서 기존 전시장과 달리 디지털 콘텐츠가 중심이 되는 공간을 실험했습니다. 초기 간송의 생애를 소개하는 흑백 애니메이션의 다큐멘터리를 시작으로, 심사정의 12m 길이의 「촉잔도권」 속을 걸어 다니며 감상하는 영상을 제작하고 횡 스크린을 설치해서 공간을 이동하며 보는 시도를 처음으로 했습니다. 이후 삼성전자의 고해상도 4K TV가 처음 나왔을 때 『훈민정음』과〈미인도〉를 고해상도로 촬영해 선보였는데 그것도 최초의 사례였습니다. 사군자 전시에서는 융복합적 시도도 했고요.
영화와 협업도 했는데, ‘취화선’ 제작사와 협업한 《조선 최후의 거장-장승업x취화선》에서 플로팅 스크린을 처음으로 시도해 영화에 나오는 상징적인 이미지들이 떠 있고, 그 뒤쪽에 오원의 산수화가 쫙 펼쳐져 있는 형태와 조향사와 협업하여 갈대숲과 풀 냄새 등의 향을 최초로 접목했습니다. 그 외에도 삼성전자에서 오큘러스를 선보일 때 VR 보화각을 시도했고, 샌드박스와 메타버스 콘텐츠 등 IP를 활용한 다양한 실험을 이어 왔습니다. 그리고 지금 DDP에서 전시 중인 이머시브 & 인터랙티브 미디어아트 콘텐츠인 《구름이 걷히니 달이 비치고 바람 부니 별이 빛난다》는 한국 전통 미술만을 소재로 한 간송 최초의 몰입형 전시로, 키네틱아트, 모션그래픽, 라이다 센서 등의 다양한 기술력을 도입하여 오감을 자극하는 요소들을 시도했습니다.
몰입형 미디어 전시 등의 디지털 콘텐츠와 IP 사업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여 왔는데, 관장님이 생각하는 이 분야의 가능성은 무엇인가요?
지금까지 몰입형 미디어가 모두 서양의 IP로 만들어졌는데 우리도 충분히 활용할 IP가 많고 우리나라 감독과 테크니션 등 뛰어난 인력과 기술력을 바탕으로 시도하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동안 순수한 우리 제작팀이 고유의 IP로 제작하는 최초의 사례를 만들어 왔습니다. 앞으로 주제별, 작가별 스토리를 무수히 풀어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희가 간송의 IP를 활용한 디지털 콘텐츠를 계속 제작했던 목적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벗어난 우리 고미술 전시의 한계 극복이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우리 문화와 기술을 알리는 데 효과적인 미디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이며 고생했지만 가치있는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처음 시작은 간송 IP로 했지만, 앞으로 우리나라 전체 문화유산 IP를 활용해서 콘텐츠를 만드는 역할을 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의 중장기적인 계획이나 포부는?
간송과 아버님, 이사장이신 숙부님 등 많은 분께서 지금까지 해오신 일이 결국은 ‘문화보국’이라는 네 글자로 수렴 되는데, 그것이 1.0, 2.0, 3.0 버전으로 계속 발전하고 있지만, 2.0이 됐다고 1.0이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항상 전 단계가 기반이 되고 가장 중요한 요소로 남아 지속되고 있습니다. 다만 그 방법은 계속 변화하고 다양해져야 합니다. 변화하는 사회와 사람들과 발맞추어서 저희도 거기에 맞는 방법으로 따라가고 또 가능하다면 선도해야겠죠.
간송미술관의 이머시브 전시 《구름이 걷히니 달이 비치고 바람 부니 별이 빛난다》
DDP 전시 전경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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