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츄! 한 번에 집값 6억>72억

미스테리한 아티스트 ‘뱅크시 Banksy
뱅크시의 작품은 이슈가 된다

사진: 뱅크시 홈페이지

얼굴 없는 화가로 유명한 영국의 작가 뱅크시가 새로운 작품을 공개했다. 작품의 이름은 ‘아츄! Aachoo‘, 영어로 재채기 소리를 뜻한다. 작품은 언제나처럼 비밀리에 작업 되었고 작가의 SNS 계정에 공개되면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머리에 스카프를 두른 노인이 허리가 굽어질 정도로 큰 재채기를 한다. 재채기 때문에 쥐고 있던 핸드백과 지팡이를 놓치고 틀니마저 날아가 버린다. 이 주택이 위치한 베일 Vale street는 기울기가 22도로 영국에서 가장 가파른 주택가로 유명한 곳이다. 뱅크시는 이 경사를 활용해 마치 할머니의 재채기에 건물이 기울어지는 듯한 장면을 익살스럽게 연출했다.

뱅크시의 신작 공개로 관광객이 몰리면서 약 6억 원(40만 파운드)이던 집값이 수십억 원을 호가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다음 주 집을 매도할 예정이었던 집주인은 매물을 거둬들이고 작품이 손상되지 않도록 투명 보호막까지 설치했다.

Banksy & Issues

화제가 된 뱅크시의 파격 행보

1. 고작(?) $60에 팔린 뱅크시의 작품

뱅크시는 고상한 예술계뿐만 아니라 사회 권위를 비판하는 제도비판 Institutional Critique 예술을 한다.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고 단지 낙서로 여겨지던 그의 초기 그라피티가 그의 유명세와 함께 가치 있는 작품으로 인정받자 자기 벽에 그림이 그려지면 다투어 보존과 판매에 열을 올렸다. 이에 염증을 느낀 뱅크시는 뉴욕 센트럴파크에 본인의 작품을 걸어놓고 60달러에 판매했지만 7시간 고작 3명이 구매했다. 총 판매 금액은 $420. 뱅크시 원작이라면 각 $160,000원을 웃돌 것으로 추정된다.

 
좌판에 작품을 진열한 모습(좌), 안팔린 작품들을 정리하고 있는 대리 판매인(우)
사진: YouTube/Banksy NY

2. 파쇄된 ‘풍선을 든 소녀’

2018년 가을, 세계적인 미술품 경매 시장, 소더비 런던은 충격에 빠졌다. 뱅크시의 <풍선과 소녀>가 100만 파운드에 낙찰되어 경매사가 낙찰 봉을 두드리는 순간, 작품이 액자에서 밀려 나오며 파쇄된 것이다. 액자에 비밀스럽게 설치된 파쇄기가 누군가에 의해 원격 작동됐다. 뱅크시는 SNS에 파쇄기를 설치하는 영상을 포스팅하면서 ‘파괴하려는 욕망도 창조적 욕망에 해당한다.’는 피카소의 말을 인용했다. 뱅크시의 파쇄 퍼포먼스는 과연 작품의 파괴일까 창조일까? 작품을 구매한 사람은 과연 횡재일까 낭패일까?  전문가들은 이후 작품이 다시 옥션에 나온다면 최소 2배 이상의 가치가 매겨지리라 추측했다.

작품이 파쇄되는 순간, 놀라는 사람들
출처: 뱅크시 인스타그램

3. 뱅크시의 정체 공개

사진: 아트넷news.artnet.com(좌), 에폭타임즈 www.theepochtimes.com(우)

몇 년 전 한 매체에 뱅크시의 신분이 밝혀졌다는 기사가 게시됐다. “그라피티 예술가 뱅크시 런던에서 체포되다; 정체 공개”. 매체는 뱅크시가 반달리즘과 음모, 공략 위조의 죄명으로 체포됐음을 알렸다. 본명은 폴 호너Paul Horner, 영국 리버풀 출신의 35살 남성으로 특정하며 머그샷까지 공개했으나 곧 오보임이 밝혀졌다. 물론 그의 작업이 원칙상 불법임은 틀림없지만 많은 이들로부터 사랑받는 스트리트 아티스트로 그의 정체는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뱅크시는 2004년, 한 인터뷰에서 “대중에게 알려진 사람은 그라피티를 할 수 없다. 그 둘은 양립 불가능한 요소다”라고 정체를 밝히지 않는 이유를 밝힌 바 있다.

미술사적으로 현실에서 작동하는 힘과 시스템을 무력화하기 위한 예술가들의 많은 시도가 있었다. 대표적으로 예술을 부정했던 다다이즘은 ‘파괴’에 사상의 중점을 두고 관습적인 예술의 표준을 거부하고 제도 자체에 과감히 도전했었다. 그러나 많은 ‘시도’들은 예술에 반기를 들었던 처음의 용맹함을 잃고 하나의 양식으로 제도화되거나 사라졌다. 뱅크시 또한 현대 사회 미술의 기능과 그 가치에 대한 의문을 끝없이 제기하며 이를 조롱하고 비판한다. 예술을 지배하는 자본과 권력 체계를 드러내고 전복시킨다. 마치 놀이와 같이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며 지루하지 않은 그의 사상을 전개한다. 그의 작업도 과연 잊히고 사라질 수많은 시도 중 하나일까? 뱅크시에 대한 논쟁은 현재진행형이다. 이슈가 된다는 것, 그 사실만으로도 그의 작업은 가치와 의미를 생산한다. 뱅크시로 의심받았던 로버트 델 나자의 말*처럼 말대로 우리 모두가 뱅크시일 수 있다. 그가 파괴하려는 것은, 우리가 파괴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로버트 델 나자 Robert Del Naja는 2016년 탐사보도기자 크레익 윌리엄스 Craig Williams에 의해 뱅크시의 실체로 지목받았다. 최소한 로버트 델 나자가 이끄는 창작집단이 뱅크시와 그의 작업을 찬조했을 것이라 추측했다. 그러나 델 나자는 이를 과장된 주장이라고 일축하며 “우리 모두 뱅크시예요 We are all Banksy.”라는 말을 남겼다.

글: 문혜인
© (주)월간미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