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is der nationalgalerie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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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국립미술관협회가 주최하는 프라이스 데어 나치오날갤러리(Preis der Nationalgalerie)의 권위는 그간의 수상자들이 대변한다. 올라퍼 엘리아슨(Olafur Eliasson), 모니카 본비치(Monica Bonvicini), 티노 세갈(Tino Sehgal) 등이 바로 그들이다. 2017년 이 상의 영광은 폴란드 출신 아그니스카 풀스카(Agnieszka Polska)에게 돌아갔다. 이번엔 4명의 수상후보가 모두 여성이고, 민감한 주제를 다루고 있으며 독일 국적 작가가 포함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함부르거반호프에서 열린 수상후보 전시(2017.9.29~1.14)는 예년과 마찬가지로 화제를 낳았다. 어떻게 보면 이 전시는 독일이 동시대 미술에 고하는 일종의 자신감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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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이 세계미술의 중심이라는 증거
독일 국립미술관협회(Verein der Freunde der Nationalgalerie)에서 주최하는 프라이스 데어 나치오날갤러리(Preis der Nationalgalerie)는 2000년 시작해 9회를 맞은 권위 있는 수상제도이다. 격년으로 시행되며 자격 조건은 국적 불문 40세 이하로 독일에서 거주하면 된다. 이쯤 되면 한국 출신 작가도 도전해볼 만하다. 우선 미술관 관장과 쿤스트퍼아인이 작가를 추천한다. 이 추천리스트에 오른 작가를 대상으로 한 1, 2차 심사를 거쳐 최종 4명의 작가가 본선에 올라가며 이들 작가에게는 함부르거반호프에서 전시하는 기회가 주어진다. 2011년까지는 최종 수상자에게 5만 유로의 상금이 주어졌으나 2013년부터는 상금 대신 국립미술관 한 곳에서 개인전을 할 수 있는 자격을 준다. 심사위원이 주는 상 외에 관람객이 주는 상도 있는데 달리 상금이나 혜택은 없다. 역대 선정작가 면면을 살펴보면 올라퍼 엘리아슨, 크리스티안 얀코프스키, 카타리나 그로세, 다니엘 리히터, 모니카 본비치, 시프리앙 가이아르, 티노 세갈 등 한국에서도 잘 알려진 작가들이다. 2009년에는 아시아 출신으로서는 처음으로 베트남 출생 단 보가 최종리스트에 오르기도 했다. 2015년에는 안네 임호프가 선정작가에 들어 라는 작품으로 최종수상 작가로 선정되었다. 그는 이후 2017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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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에는 이 상 제정 이후 처음으로 선정작가 모두가 여자인 점에서 더욱 주목된다. 출신 국가도 다양한 행운아들의 리스트는 다음과 같다. 솔 칼레로(Sol Calero, 1982~, 카라카스, 베네수엘라), 이만 이싸(Iman Issa, 1979~, 카이로, 이집트), 주마나 만나(Jumana Manna, 1987~, 프린스턴, 미국), 아그니스카 풀스카(Agnieszka Polska, 1985~, 루블린, 폴란드). 결과부터 이야기하자면 폴란드 출신 아그니스카 풀스카가 이라는 애니메이션 영화로 2017년 최종수상자로 선정되었다. 본상, 관람객상 외에 독일 영화아카데미와 협력, 1만 유로의 상금이 걸린 영화부문 수상자는 오스트리아 출신 잔드라 볼너(Sandra Wollner)다. 그가 70분짜리 영화 으로 수상했다. 본상이건 영화상이건 상금 액수가 더 높은 수상제도는 다른 국가에도 많다. 하지만, 독일 동시대미술이 세계미술계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한다면 이는 결코 금액으로 매길 수 없는 가치라 하겠다. 파죽지세로 올라오는 안네 임호프 그리고 이미 세계적 스타가 되어버린 올라퍼 엘리아슨이나 티노 세갈을 보라. 2017년 수상자인 아그니스카 풀스카는 1985년생으로 현재 베를린을 베이스로 활동하고 있다. 시상식은 2017년 10월 20일 함부르거반호프에서 있었으며 심사위원장이며 신국립미술관(Neue Nationalgalerie) 관장인 우도 키텔만이 최종수상자를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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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 입구는 두 곳으로 미술관 상설 전시관인 2층에 있다. 전시실에__ 들어서자마자 베네수엘라 출신 솔 칼레로의 설치작품 가 세상에서 쓸 수 있는 색을 다 사용하기로 작정한 듯 관람객을 맞는다. 쇼핑몰을 재구성했다는데 미용실, 환전소, 인터넷 카페, 영화관 그리고 요즘에 거의 사라진 듯한 공중전화기 등의 구조물이 설치되어 있다. 네온사인이 현란한 영화관에는 영화가 상영되며 관람객은 자연스럽게 설치의 일부가 된다. 이외 크고 작은 소품과 벽화가 시선을 고정하거나 집중하기 어려울 정도로 전시공간을 꽉 채우고 있다. 독일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감성과 색감이다. 베네수엘라가 라틴문화를 대표한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이들 고유의 문화코드는 감지할 수 있다. 남미라는 지역적 특성과 열대기후와 상충하는 문화코드가 건축과 생활양식 전반에 깔려 있음을 반영하는 동시에 사회 구조와 구성원의 생활 방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솔 칼레로는 이를 극대화함으로써 역설적인 효과를 끌어내려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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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용력에서 나오는 독일현대미술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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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문화의 강렬한 색감으로 채워진 공간뒤로 폴란드 출신 아그니스카 풀스카의 어두운 공간이 이어진다. 영상작업 이 상영되는 어두운 전시공간에는 매트리스 정도의 두께가 다른 하얀색 스펀지 4장이 바닥에 깔려 있으며 또 다른 유사한 크기의 스펀지 6장이 케이크처럼 쌓여있다. 관람객은 하얀색 스펀지에 앉거나 누울 수 있다. 영상에는 맑고 깊은 검은색 눈을 가진 주황색 얼굴 모양 태양이 마치 여자 어린아이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태양 얼굴은 클로즈업되었다가 금방 얼굴 전체가 드러나는가 하면 빙글빙글 돌아가기도 하는데 아련해 보이는 눈빛에서 애처로움마저 자아낸다. 또한, 천장에 비치는 모습은 태양이지만, 한국 연못에 뜬 달을 노래하는 시 같은 분위기를 뿜어내고 있다. 사운드는 마니페스트처럼 독백으로 이어지는데 영원할 것만 같은 태양도 자신의 패망을 막을 수 없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아그니스카 풀스카는 수상작인 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전했다. 이 영화는 시처럼 구성되어 있으며 개개인의 책임감을 주제로 담았다. 태양을 매개로 인간 내면에 잠재한 의식을 대화 형식으로 유도하고자 했다. 태양이지만, 달과 겹치는 듯한 필자의 느낌이 꼭 우연이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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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과 뉴욕에서 활동 중인 이만 이싸는 조형물과 텍스트를 조합한 작품시리즈 를 선보였다. 건축이나 공예에서 접할 수 있는 전통적 이슬람 문화유산을 현시대의 감각으로 재구성했으며 이에 역사적 컨텍스트도 부여했다. 디테일이 강하기로 유명한 이슬람문화의 무늬나 건축 형식을 과감히 제거하고 단순화함으로써 사물의 가장 기본적인 구조로 변형했다. 전통문화의 무조건적인 계승이 아니라 이를 분석, 재해석하려는 작가의 의도가 잘 나타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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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마나 만나의 출품작에는 역사의 진실과 허구 그리고 작가의 개인사가 녹아들어 있다. 미국 출생이지만, 팔레스타인인으로서 예루살렘에서 자랐으니 정치, 역사에 관련된 현실의 문제점에 대하여 상당한 괴리감을 느꼈을 것이다. 영상과 조형물이 설치된 공간에는 전시를 지키는 이가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작품 가까이에 가지 말라고 종종 소리를 지른다. 그도 그럴 것이 영상이 돌아가는 전시공간은 어두우며 공간 뒷벽에는 흰색의 평면작업이 걸려 있어 관람객이 이 작품을 보지 못하고 기댈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영상이 돌아가는 정면에는 공사장에서 볼 수 있는 나무자재와 스캐폴딩에 무엇인가 설치되어 있다. 이 조형물들은 일상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물건인 것 같은데 그 기능성이 파괴, 박탈, 변형되어 원래의 형태를 그저 상상할 수 있을 뿐이다. 영상작업 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역사를 이미지와 사운드를 통하여 다각적인 측면에서 접근했다. 이 영상작업에 사용되는 음악은 독일계 미국인 음악학자 로버트 라흐만의 자취를 도큐멘테이션 하는 형식으로 구현했다. 이에 콥트족, 베두인족, 쿠르드족, 예멘 유대인 종족 등 다양한 민족과 종교의 상징적 의미를 사운드에 접목했다. 인상 깊은 부분은 지금은 거의 찾아보기 어려운 카세트테이프의 존재감, 사마리아 노인과 그의 늙은 손 그리고 그의 손에 들려 있는 600년이나 된 가죽 책을 들 수 있을 것이다. 한편에는 국적과 종교를 알 수 없는 남녀 한 쌍이 있다. 남편인 듯 보이는 남자는 무엇인가를 열심히 설명하고 있는데 상대편 탁자에 앉아 있는 여자는 그저 커피를 마시는 데 집중할 뿐이다. 별다른 사건도 일어나지 않으며, 각 챕터마다 연관성도 모호한데 관람객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작가는 동시대에 진행되는 사건과 현상에 민감하며 이를 또한 주관적인 관점에서 작품으로 승화시킨다. 종교, 정치, 사회적 분쟁이 심한 국가 출신이거나 선조가 그 나라 출신이면 역사성 또한 작품에 자주 반영된다. 비교적 이러한 문제가 적은 독일 관점에서 바라보면 그저 남의 일일 뿐이다. 그런데도 2017년 Preis der Nationalgalerie에는 민감한 주제를 이슈화한 작가들이 선정되었으며 독일은 이것을 보여주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독일 동시대미술을 지켜보고 배워야 할 부분인 것 같다.
글:최정미 | 전시기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