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yuichi Sakamoto
seeing sound, hearing time
제행무상(諸行無常)
World Report

류이키 사카모토와 협업을 진행한 나카야 후지코의 안개 퍼포먼스가 도쿄도현대미술관에서도 진행됐다.
나카야 후지코〈London Fog〉안개 퍼포먼스 #03779
《BMW Tate Live Exhibition: Ten Days Six Nights》테이트 모던 전시 전경 2017
협업: 다나카 민(무용), 타카타니 시로(조명), 사카모토 류이치(음악)
사진: 코시다 노리코
제행무상(諸行無常)
마정연 미술비평
일본을 넘어 세계적인 연주자이자 음악가인 류이치 사카모토의 전시가 일본 최대 규모로 도쿄도현대미술관에서 진행되고 있다. 사카모토의 음악은 영화와 CF를 통해 한국에서도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었다. 2023년, 그가 사망한 이후에도 다양한 분야의 아티스트들이 그의 작품을 활용해 끊임없이 협업을 이뤄나가고 있다. 음악가 사카모토의 업적을 미술관에서는 어떻게 전시했는지 이번 기회를 통해 살펴보자. 전시는 3월 30일까지.
지금으로부터 15년 전 무렵, 도쿄예술대학에서 유학하던 시절의 기억이다. 연구실 책장 정리를 돕고 있던 필자에게 당시의 지도 교수님께서 책더미에서 한 권을 꺼내어 일독을 권하셨다. 『소리를 보기, 시간을 듣기』라는 제목으로 1982년에 처음 출판된, 철학자 오모리 쇼조(大森荘蔵)와 류이치 사카모토(坂本龍一)의 대담을 기록한 책이었다. 6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장마다 많은 내용이 녹아들어 있었다. ‘제1강: 보는 것은 듣는 것 / 제2강: 지금이란 어떤 시간인가 / 제3강: 이미지란 두개골 속에 있는가 / 제4강: 풍경을 투시하기 / 제5강: 미래가 모습을 나타내다 / 제6강: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로 나누어진 테마의 강의를 사카모토가 수강하는 형식이었다. 책 속에서 능동적으로 질문하고 자신의 관점을 피력하는 사카모토 덕분에 철학과 음악이라는 전문 분야의 차이나 서른 살의 나이 차이를 넘어 주고받는 두 사람의 지성과 감수성을 즐기며 함께 배울 수 있었다.
이런 사카모토 류이치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1978년에 솔로로데뷔해, 신시사이저와 컴퓨터를 활용한 음악으로 시대를 대변했던 Yellow Magic Orchestra(YMO)를 결성하고, 배우로도 출연한〈전장의 크리스마스〉(감독: 오시마 나기사, 1983)의 영화음악으로 영국 아카데미상 작곡상을, 〈마지막 황제〉(감독: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1987)로 아카데미상 작곡상, 골든글로브상 등을 수상한 음악가로서 국내에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산림보전단체 More Trees를 창설했으며, 동북유스오케스트라를 설립해 2011년 동일본대지진의 피해를 당한 지역 어린이들의 음악활동을 지원하는 등, 환경과 평화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발언하는 모습은 국외에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을지도 모른다. 약 10년간의 암 투병 끝에 71세를 일기로 타계하기 직전인 2023년 3월에도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지사와 문부과학성, 문화청 등 관련 관공서에 도쿄의 메이지 신궁 재개발 사업을 재고하기를 촉구하는 서한을 보내는 등, 사카모토는 사회를 향해 목소리를 내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예술가였다.
사카모토 류이치 + 다카타니 시로〈async–immersion〉 2013
《AMBIENT KYOTO 2023》교토 신문 빌딩 지하 1층 전시 전경 2023
사진: 나가레 사토시
뒤돌아보면 그의 사후 지금까지 그를 추모하는 움직임이 끊이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아들인 소라 네오(空音央, 1991)가 완성해 발표한 콘서트 영화 〈Ryuichi Sakamoto | Opus〉(2023)를 비롯해 수많은 장르와 형태의 기록과 출판이 이어지고 있다. 그 가운데 사카모토가 2000년 이후 다양한 협업자들과 제작한 대규모 설치 작업들을 포괄적으로 소개하는 일본 내 최초의 대규모 전시가 열린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생전 사카모토가 이 전시를 위해 구상한 신작 〈TIME TIME〉(2024)을 비롯해 지금까지 각기 다른 시기에 각기 다른 장소에서 발표된 대표적인 작업들을 개인전 형식으로 볼 수 있는 드문 기회라고 하겠다. 2018년 서울의 전시관 피크닉에서 발표한 설치 작업《LIFE, LIFE: RYUICHI SAKAMOTO EXHIBITION》을 흥미롭게 본 관객이라면 이번 전시에도 관심을 가질 것이라 생각한다.
협업자들은 다카타니 시로(高谷史郎)를 필두로, 자쿠바란(Zakkubalan, Neo Sora와 Albert Tholen의 듀오, 일본어로 거침없이 솔직함이라는 뜻), 마나베 다이토(真鍋大度), 아피찻퐁 위라세타쿤(Apichatpong Weerasethakul), 카르스텐 니콜라이(Carsten Nicolai, a.k.a. Alva Noto), 이와이 도시오(岩井俊雄), 그리고 나카야 후지코(中谷芙ニ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세대와 분야의 아티스트들이다. 한편, 협업의 방식도 다양하다. 1970년 이후로 나카야가 전개해 온 안개의 조각을 스페셜 협업 형식으로 미술관의 안뜰에 전시하고, 이와이는 1996년에 미토예술관에서 처음 발표되고 1997년 오스트리아의 미디어아트 페스티벌 아르스 일렉트로니카에서 공연한 작업을 미디(MIDI) 데이터와 기록 영상 데이터를 바탕으로 재현한 작업을 아카이브 특별 전시라는 형식으로 선보였다.
사카모토의 앨범〈async〉(2017)를 입체적으로 들려주려는 의도로 제작된 아피찻퐁이나 자쿠바란과의 협업에서는 사카모토가 기존 곡을 영상용으로 편곡하거나, 뉴욕의 스튜디오나 거실, 정원 영상들과 리믹스한 결과가 전시되었다. 앨범 제작이나 라이브를 통해 음악가 대 음악가로서 교류했던 카르스텐 니콜라이는 자신의 첫 장편 영화〈20,000〉의 각본 24장 가운데 2장에 사카모토의 마지막 앨범 〈12〉의 수록곡 ‘20210310’와 ‘20220207’를 사운드트랙으로 활용한 영상을 선보였다. 비동기(非同期)라는 의미를 가진 ‘async’처럼 개성적인 아티스트들과의 다양한 협업 방식은 사카모토의 음악 세계를 고정되지 않고 항상 변화하는 것으로 만드는 동력이 되어 온 것으로 보인다.
사카모토 류이치 with 다카타니
시로《IS YOUR TIME》2017/2024
사진: 미시마 이치로
《사카모토 류이치 | 소리를 보기 시간을 듣기》 도쿄도현대미술관 2024 전시 전경
이번 전시회에 소개된 12편의 작업 가운데 6편의 작업에 사카모토와 이름을 나란히 한 다카타니는 1984년 미술, 영상, 프로그래밍, 댄스, 음악, 디자인 등 다양한 영역의 멤버들로 구성된 아트 콜렉티브 덤 타입(DUMB TYPE)의 활동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리고 덤 타입이 일본관을 대표했던 2022년 제59회 베니스비엔날레에서는 사카모토도 프로젝트 멤버로 참가한 바 있다. 1999년에 사카모토가 발표한 오페라 〈LIFE〉를 바탕으로 두 사람이 함께 제작한 물과 안개를 활용한 설치 작업 〈LIFE – fluid, invisible, inaudible…〉(2007) 이후, 기상위성의 데이터에서 전시장을 포함한 지역의 강수량 데이터를 추출해 천장의 장치에서 수면에 비처럼 물방울을 떨어지게 하며 소리와 빛을 변화시키는 〈water state 1〉(2013), 동일본대지진 쓰나미 피해를 입은 고등학교에서 찾은 피아노를 일종의 자연에 의한 ‘조율’이라고 재해석해 세계 각지의 지진 데이터에 의해 소리가 나게 한 〈IS YOUR TIME〉(2017/2024)에 이르기까지, 유동성은 이들 작업의 공통적인 특징이며, 테크놀로지는 인간의 지각 능력 너머에서 쉼 없이 흐르는 자연의 순간을 감지할 수 있게 하는 역할을 한다. 사카모토가 게스트 디렉터를 맡아 ‘도시와 자연’을 테마로 한 삿포로 국제예술제 2014에서 처음 발표된 이후, 도쿄, 히로시마, 광주, 베이징, 홍콩, 청두 등에서 전개된 마나베와의 협업 〈Sensing Streams – invisible, inaudible〉도 인간이 지각할 수 없는 전자파라는 흐름을 감지해 가시화, 가청화하는 장소특정적 설치 작업으로 유사한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 작업은 생전 사카모토와 가까이 교류하며 〈바이 바이 키플링〉(1986) 등에서 협업했던 또 한 사람의 아티스트, 백남준이 남긴 말을 떠올리게 한다.
사카모토 류이치 + 다카타니 시로《 LIFE-fluid, invisible, inaudible… 》2007
사진: 미시마 이치로
《사카모토 류이치 | 소리를 보기 시간을 듣기》 도쿄도현대미술관 2024 전시 전경
“자연이 아름다운 것은, 아름답게 변하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변화하기 때문이다.”
이 글을 준비하며 서두에서 언급한 책을 오랜만에 책장에서 꺼내 다시 읽었다.
“다른 감각, 색, 형태, 맛, 냄새, 감촉 등과 비교할 때 소리는 감각의 본질적인 성격인 ‘무상성(無常性)을 가장 선명하게 나타내는 감각이다. 소리는 생겨나는 순간이 사라지는 순간이다. … 이와 같은 시간적인 특성을 가진 소리는 공간적으로도 특이하다. … 그것은 사물과는 별개로 ‘장소’적이다…. 음악가는 끊임없이 시간의 흐름에 흘러가며, 그 흐름 속에 뜨고 가라앉지 않으면 안 된다. 작품이란 그 수십 수백분의 일만이 현재라는 짧은 시간 속에 드러나고, 다른 부분은 이미 사라졌거나 아직 울리지 않은, 그런 것이다.”
‘강의를 마친 뒤’ 제하의 오모리의 짧은 후기에 적힌 이 문장은 당시 서른 살이었던 사카모토가 일흔하나의 나이로 삶을 마칠 때까지 쉼 없이 전개했던 다양한 활동들을 꿰뚫는 문장처럼 읽힌다. 이번 전시를 통해 접할 수 있는 영상과 설치는 아티스트의 부재 속에서도 짧은 시간 속에 드러나고, 이미 사라졌거나, 아직 울리지 않은 예술을 일시적으로 담을 수 있는 또 다른 형식이란 의미를 갖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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