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로 달라진 아트월드
혼재된 게이트 키퍼,
모든 사용자에게 액세스 허용?
하도경 기자
SPECIAL FEATURE
앤디 워홀의 〈브릴로 상자〉(1964)를 보고 기성품과 작품을 인정하는 기준이 ‘예술계(Art World )’에 있다고 말한 아서 단토와 해당 논의를 발전시킨 조지 디키의 ‘예술계(Art Circle )’를 언급하며 이 글의 문을 열고자 한다. 확립된 활동(established practice )을 통해 틀(제도 ) 안에 들어온 이들의 움직임과 목소리가 관문을 만들고, 기준을 부여하며, 나아가 세계를 구성한다는 주장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그러나 변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시대가 만들어낸 다양한 형태의 소통 방식과 창구의 확대일 테다. 열린 접근 통로는 생각보다 엄청나게 큰 가능성을 함유할 수 있다.
많은 이가 SNS 플랫폼을 활용하면서, SNS는 작가와 관람자 모두가 예술에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강력한 도구로 기능하게 됐다. 작가는 갤러리나 비평가 등 중간자를 거치지 않고 작품을 전 세계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으며, 관람자는 뮤지엄이나 갤러리에 가지 않고도 작품을 발견하고 구매할 수 있게 됐다. SNS는 작가에게 자신의 이야기가 전달되는 방식에 관여할 기회를 제공하고, 작가를 마치 알고 있는 것처럼 느끼고 싶은 관객에게는 이들을 발견할 기회를 제공한다. 아트월드와 관객을 연결하고 매개하는 소위 ‘아트 인플루언서’라고 불리는 이들의 영향력도 커지고 있다. 이들은 전시가 공식적으로 열리기 이전에 시행하는 간담회, 프레스 오프닝에 참석해 전시에 관한 설명을 듣고, 작가들을 만나며 습득한 정보를 저마다의 방식으로 SNS 플랫폼에 올려 다양한 관객의 이목을 모은다.
SNS로 인해 가능해진 관계와 연결성은 지리적, 환경적 경계를 뛰어넘는 글로벌 커뮤니티를 육성하기도 한다. 작가들은 전 세계 동료 작가들과 협력할 수 있고 해외 전시 및 행사에 참여하며, 다양한 사람들로부터 피드백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이러한 상호작용은 창작 과정을 풍요롭게 할 뿐 아니라 문화적 이해를 넓히고 예술을 통한 일체감을 조성할 수 있다.
하지만, 독창성과 진정성 문제가 거론될 수 있을 테다. 작품을 전 세계적으로 공유하게 되면 표절의 위험에 쉽게 노출된다. 작가들은 누구나 작품을 복제하거나 변형할 수 있는 온라인에서 자기 작품을 보호해야 하는 과제에 직면한다(SNS 시대에 저작권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 이외에도 SNS가 일으킨 콘텐츠 홍수는 작가와 관객 모두에게 부담이 된다. 매일 엄청난 양의 게시물이 쏟아지면서 특정 작가는 눈에 띄기 어렵고, 관객은 홍수 속에서 작품을 걸러내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온라인 비평에 대한 두려움과 함께 끊임없이 창작 · 공유해야 한다는 압박감은 작가의 정신 건강에 영향을 주고, ‘좋아요’와 ‘팔로우’ 수에 지배되는 문화는 회의감과 함께 창작욕구 소진으로 이어질 수 있다.
실제 세계를 계량화, 단순화하는 네트워크와 알고리즘의 작동 방식도 예외는 아니다. 모든 정보가 측정할 수 있는 값들로 치환되면서 수적으로 반영 불가능한 것, 틈새로 생성되는 가치들, 조그만 가능성이 탈락하거나 빠질 여지는 다분하다. 아울러 SNS상에서 인간의 눈을 사로잡는 강렬한 형태의 이미지가 선호된다는 점도 세계를 얄팍하게 하는 데 일조한다.
관계 활용을 넘어
아트신에 한정해 볼 때 SNS 플랫폼 중에서도 특히 인스타그램의 영향력은 방대하다. 2022년 히스콕스에서 발간한 보고서는 미술 작품 구매자 중 ‘인스타그램’을 사용하는 비율이 가장 높으며, 인스타그램의 활용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아트신에 있어 인스타그램의 중요성은 작품 판매 영역뿐만 아니라 시각문화의 영역에서도 중요하다. 작가이자 디지털 문화이론가인 레프 마노비치는 『인스타그램과 동시대 이미지(Instagram and Contemporary Image )』 제하의 저서를 발간하며 인스타그램 이미지 문화를 사진, 영화, 그래픽 디자인의 중요성과 함께 문화적, 역사적 맥락에 위치시켰다.
인스타그램은 철저히 이미지 중심 SNS 플랫폼이다. 인스타그램의 사용자 수가 늘어남에 따라 데이터로서 이미지의 양 역시 대폭 증가했으며, 이에 영향을 받은 미술계는 규모나 속도뿐 아니라 미술을 규정하고 가치를 부여하며 생산 및 수용하는 방식을 바꾸고 있다. 우선, 이러한 변화는 SNS 자체의 발전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동시대인의 시야가 세계를 무대로 확장됐고, 소식을 다양한 형태로 쉽게 접할 수 있는 창구가 늘어났고 또 발전했다. 그리고 그 방대한 무대에서 펼쳐지는 수많은 소식을 한꺼번에 경험하고 싶은 욕망의 불꽃이 시류 속에서 더 활활 타오르게 됐다. 그 결과, 우리는 각종 전시와 행사, 비엔날레, 수상 등의 소식을 누군가가 올린 인스타그램 이미지를 통해 경험하는 일이 일상이 됐다. 그리고 이러한 프로세스를 경험하고 목도한 작가, 큐레이터 등 다양한 아트신 관계자는 인스타그램에 이미지가 효과적으로 보일 수 있도록 구성하고 또 다른 이미지를 양산하는 데 주력하며 인스타그램과 아트월드의 관계를 활용한다.
이미지 데이터 자본주의 역학에 연루된 아트월드
문혜진은 범람하는 이미지 데이터 시대를 푼크툼 발생을 토대로 영화와 사진의 특성을 구분한 바르트의 말을 가져와 설명한다. “천천히 생각에 잠길 수 있는(pensive ) 사진과 달리 많은 정보가 빠르게 지나가는 영화에서는 무언가를 덧붙일 시간이 없다. 생각에 잠길 수 없기에 영화는 원론적으로 푼크툼을 발생시킬 수 없다는 바르트의 지적은 생물학적으로 수용가능한 용량을 초과한 대량 이미지에도 적용된다.”1 수용가능한 이미지 용량을 초과해 무한 증식하는 환경이 도래했고, 이러한 환경은 더 심화할 것이다. SNS상에서 회자된 이미지에 뿌리를 내리고 기생하는 알맹이가 제도권의 선택을 받을 수 있는 검색 엔진 논리가 아트월드 안에서 일반화될 수도 있다. 드넓은 정보의 바다 전체를 헤아릴 수 없으니 접근할 수 있고, 많은 이가 오래 머무른 이미지와 정보에 이목이 쏠리며 권위를 지니게 되는 극단적 상황이 펼쳐질 수도 있다.
SNS로 인해 달라지고 있는 아트월드를 제어할 방법은 없다. 이미 우리는 시류의 가운데에 있다. 실제로 많은 뮤지엄이 전시 기획을 위해 ‘사용자 생성 콘텐츠’를 활용하며 관람자의 참여를 유도한다. 뮤지엄과 대중의 관계는 더더욱 상호작용적이고 협력적인 형태로 변화하고 있다. 일부의 작가는 SNS에서 벌어지는 현상을 자신의 작업 중심으로 끌고 오는가 하면, 개인 작업 과정을 SNS를 통해 엿보게 하고 관객들의 반응을 지켜보기도 한다. 이러한 현상들은 뮤지엄의 기능과 큐레이터의 역할 변화뿐만 아니라 예술의 역할 자체도 변화시킬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러한 현상을 바로 보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이미 마셜 매클루언은 『지구촌의 전쟁과 평화』에서 헤엄치는 물을 인식하지 못하는 물고기를 은유하며, 우리 삶에 녹아 있는 미디어를 인식하지 못하는 우리를 지적한 바 있다. 미디어의 등장에 놀라움을 표하는 것도 잠시, 이내 상용화되고 일상에 자리 잡다 보면 미디어의 보이지 않는 원칙에 둔감해진다. 미디어의 작동 원리와 과정이 가려져 있어 파악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우리는 감각을 더욱 곤두세우고 늘 한 발짝 물러나 제대로 들여다보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과거에 게이트 키퍼 역할을 하는 틀이 명확했다면, 현시대에 게이트 키퍼는 다양하게 혼재돼 있다. 오랜 시간 동안 관객은 철저히 게이트 키퍼 시스템 바깥에 있었다. 그러나 위치는 뒤바뀌고 있다. 우선, 아트월드는 SNS와 예술의 교차점이 혁신, 창의성, 연결 잠재력 가득한 진화의 환경일 수 있다는 기대도 품어봐야 할 것이다. 변화 주체들이 한데 뒤섞인 SNS 세상에서 동력은 헤아릴 수 없이 거세고 빠르기에 그것의 작동 원리와 방식을 지속적으로 파악하고 숙지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관객의 지혜’2가 무엇인지 들여다봐야 할 것이다. 관객의 ‘지혜’를 위해 근본적인 노력을 할 수도 있다. 이 시대의 아트월드는 디지털 영역을 계속 탐색하면서 예술 커뮤니티의 모든 구성원을 지원하고 존중하는 방식으로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사명을 지녀야 할 것이다. 기억 장치에 데이터를 쓰거나 기억 장치에 들어 있는 데이터를 탐색하고 읽는 과정의 몫은 따로 있기 때문이다.
1 문혜진 「대량 이미지 시대와 동시대 미술 현장의 변화」 『한국근현대미술사학회』
제42호 2021 p.117
2 뉴욕의 금융 칼럼니스트인 제임스 서로위키(James Surowiecki )가 전문가보다
다양한 군중이 결정을 내리는 게 더 현명하다는 주장을 펼쳐 호평을 끌어낸 저서
『대중의 지혜(The Wisdom of Crowds )』를 기반으로, 브루클린 뮤지엄은
이 전제가 시각예술 영역에 적용될 수 있는지를 탐구하는 전시 《Click!》(2008 )을
기획한 바 있다
*표 : 「Hiscox online art trade report 2023」 p. 18,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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