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영 Minyoung Choi

Timeless Twilight Zone

Up-and-Coming Artist

1989년 출생. 서울대 회화과 학사 및 석사 졸업, 영국 슬레이드 예술학교 회화 전공 석사 졸업. 개인전 《꿈을 빌려드립니다》(스페이스K, 2024), 《Dark Brightness》 (하이브센터, 베이징, 2023), 《Tangent Worlds》(갤러리 펠라에레스, 스페인, 2023) 등 개최, 단체전 《The Painted Room》(GRIMM, 암스테르담, 2023), 《New Chapter of British Art | PROMENADE》(1690 Art Collection, 상하이, 2023) 등 참여. 올해 영국 런던에서 개인전을 열 예정이다.

〈집〈밤 수영〉 린넨에 유화 220×680cm 2024
《꿈을 빌려드립니다》 스페이스K 서울 전시 전경 2024
사진: 박홍순

Timeless Twilight Zone
강재영 기자

어린 시절 추억 속, MBC에서 방영했던 〈테마게임〉은 현대인의 평범한 삶에서 시작해 기묘한 결말로 이어지는 우화 모음집이었다. 이 시리즈의 모티프가 된 〈환상특급〉 시리즈의 영어 원제 ‘The Twilight Zone’은 밝음과 어둠의 경계라는 뜻을 담고 있다. 최민영의 회화를 감상하는 가운데 그 시리즈의 감각이 떠올랐다. 그 특성에 단순히 비교할 수는 없지만, 그 뜻과 이야기가 주는 기묘함은 작품의 어느 부분들과 분명 공명하는 듯했다.

스페이스K 서울에서 열리고 있는 최민영 개인전 《꿈을 빌려드립니다》(2024.12.12~2.23)는 그의 한국 첫 개인전이자 최대 규모의 전시다. 2023년 베이징에서 공개했던 작품 6점과 더불어 이번 전시를 위해 새롭게 제작된 16점을 선보인다. 전시 연출은 작가가 직접 구상한 것으로, 세 부분으로 나뉘어 점진적으로 낮에서 밤으로 이행하며 시간을 은유하는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 공간에서 만날 수 있는 〈침실〉은 익숙한 풍경 속에서 현실의 틀을 비틀며 낯선 분위기를 자아낸다.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침실을 묘사하지만, 떠오르는지 저무는지 불명확한 빛이 벌어진 블라인드로 틈으로 새어들어 벽과 침대에 드리우는 모습을 연두와 짙은 파랑의 강렬한 색채로 간결하게 묘사한다. 화면을 가로지르는 색으로 연출된 1차적인 분위기는 책상 위에 펼쳐진 공책과 필기구보다는 그보다 오른쪽에 놓인, 마치 어두운 방의 모니터같이 빛나는 느낌의 어항과, 이를 바라보는 듯 어항 쪽으로살짝 기울어있는 불가사의한 분홍의 무엇이 환상적인 분위기를 더한다. 언뜻 별일 없는 보통의 순간처럼 보이다가도 빛나는 어항이 시공과 현실감을 왜곡하며 시선을 사로잡는다.

〈하교〉린넨에 유화 170×130cm 2024
제공: 작가

전시 중간의 두 번째 공간으로 들어서면 벽이 한층 어두워지고 분위기가 달라진다. 이곳의 작품은 한강 위를 유영하는 돌고래, 이를 바라보는 사람들, 봉산탈춤의 사자와 자라 같은 전통적 요소들이 하늘과 물, 잔디밭에 배치되어 익숙하면서도 비현실적인 장면을 만들어낸다. 화면은 러시아 낭만주의의 색채와 신인상파의 구도를 떠올리게 하며, 다양한 시간과 공간을 압축하여 하나의 평면 위에 펼친다. 이는 현실의 기억과 상상 속 풍경이 자연스럽게 융합된 최민영 특유의 조합 방식을 보여준다.

가장 안쪽의 세 번째 공간은 전시장의 어두운 색채와 어우러져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곳은 초현실적인 이미지들로 가득하며, 관람자를 마치 꿈속으로 안내하는 듯하다. 마치 밤, 잠, 꿈이 이어지듯 등장하는 구성에서 공간을 압도하는 것은 가로 7m에 육박하는 〈밤 수영〉이다. 그 외에도 〈대왕장어를 위한 제물〉, 〈달 의식〉처럼 제례나 의식을 떠올리게 하는 작업이나〈우연한 꿈〉이나 〈미지〉처럼 상황이 더욱 모호하게 느껴지는 이미지가 함께 등장한다.

최민영은 다양한 삶의 기억, 그리고 꿈 같은 것들을 평면에서 불연속적이고 비선형적으로 조합한다. 이 과정에서 상징적인 사물이나 대상, 인물을 반복적으로 화면에 구성하여 초현실적 세계를 만든다. 이 대상들은 인간이기도 하고 동물이기도 하고 비인간이기도 하다. 화면에 등장하는 대상을 선택하는 방법은 편집과 차용에 가깝다. 이것은 비선형적이다. 화폭에서 시간은 압축되고 중첩되고 중화된다. 그가 만들어내는 회화적 상황과 내러티브는 인스타그램으로 대표되는 동시대 이미지 생산의 감각을 떠오르게 한다.

이러한 조합의 바탕 원리는 빛이다. 최민영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명화의 구도나 재현 방식을 차용하여 자신이 맞닥뜨린 현실이나 비현실의 감각을 빛과 색채라는 회화의 시원적 원리로 조화롭게 평면에 정착시킨다. 캔버스 작업 전 드로잉을 통해 먼저 이미지를 구상한다. 하늘이나 광원의 위치와 방향 등을 먼저 설정한 후 이 빛이 닿는 사물들의 색과 모양, 위치를 조화롭도록 설계한다. 작가의 작업은 초현실적 요소를 다루면서도 화면의 전반적 구성에서 각 요소 간의 조화가 흐트러지지 않도록 ‘중화 (Normalize)’하는 균형을 추구한다. 그는 “돌고래처럼 비현실적인 요소가 등장하더라도, 물의 표현이나 빛의 반사 같은 사실적 디테일을 통해 관람자가 몰입할 수 있도록 한다”라고 말한다. 이처럼 그의 작업은 사실성과 초현실성이 균형을 이루며 관람자를 하나의 장면 속으로 끌어들인다. 이렇게 만들어진 장면의 의미는 불분명하지만, 이 모호함이 관람자에게 해석의 영역을 만들어낸다.

〈침실〉 린넨에 유화 160×210cm 2023

이 불가해함은 그가 이미지를 바라보고 재현하는 방식을 차근차근 들여다보는 과정에서 그 논리의 단초를 조금씩 찾을 수 있다. 이를테면 학창시절 애니메이션 동아리 활동을 할 정도로 움직이는 2차원 이미지에 매혹되었으면서도, 그 이미지들이 멈춰있는 순간에 감동이 사라져버리는 것에 한계를 느꼈다든지 하는 것이다. “한 화면에서 완벽하게 조화로운 하나의 이미지”를 항상 원했다는 그의 말에서 이러한 조합의 논리를 유추할 수 있다.

작가는 화면 위에 등장하는 요소들이 살아 움직이는 듯한 느낌을 주기를 원한다고 말한다. “사물이 빛과 그림자 속에서 깜빡이며 살아 있는 느낌을 주는 것”은 작업의 중요한 축이다. 이런 접근은 단순히 정지된 이미지를 넘어 시간과 공간의 감각을 화면 위에 구현하는 데 작용한다. 또한, 그의 작품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명화의 구도와 재현 방식을 차용하면서도, 자신만의 감각으로 이를 변주한다. 빛과 그림자, 색채의 밀도는 그의 화면에서 모든 것을 조화롭게 연결하는 원리가 된다. 특히 그는 하늘과 같은 광원의 설정을 통해 작품의 분위기와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그를 둘러싼 시공은 지금 이 순간에도 변화할 것이고, 그는 이를 감각하여 또 다른 이미지를 떠올릴 것이다. 그가 만들어낼 더욱 깊은 레이어와 그 속에서 창안될 이야기들은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전개될까. ‘초시간적인(Timeless)’ 이미지를 추구하는 그만의 진동이 더욱 깊고 단단해질 다음 전시를 기다리게 하는 이유다.

〈달 의식〉린넨에 유화 162×227cm 2024
사진: 이준호 제공: 스페이스K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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