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정원
장-미셸 오토니엘이 보내는 꿈의 시詩

《장-미셸 오토니엘: 정원과 정원》
Jean-Michel Othoniel: Treasure Gardens
2022. 6. 16. – 8. 7.

《장-미셸 오토니엘_정원과 정원》 전시전경_덕수궁 © CJY ART STUDIO

황금 연못

이른 여름, 노랑어리연꽃으로 뒤덮인 덕수궁의 작은 연못에 장 미셸 오토니엘Jean-Michel Othoniel의 <황금 연꽃>이 피어났다. 정성스럽게 금박을 입힌 구슬을 엮어 만든 연꽃은 주변의 푸른 자연과 대조되며 마치 좌상처럼 고고한 사유의 시간을 즐기고 있는 듯하다. 연꽃은 한국을 비롯한 동양 문화권에서 특별한 존재로 여겨져 전통 건축과 공예, 회화에 자주 사용돼 왔다. 아마도 거친 진흙을 딛고 깨끗한 꽃을 피워내는 그 생명력과 고귀함이 주는 정신적 고양 때문일 것이다. 프랑스의 현대미술가 장-미셸 오토니엘은 혼탁한 세상에 던져진 인간이 연꽃처럼 고통을 넘어 깨달음에 이르기를 바라며, 숭고한 불교적 메시지에 작가의 동화적 상상력을 더했다. 덕과 장수의 뜻을 지닌 궁에 펼쳐진 고행의 열매는 잔잔한 황금빛 물결을 일으키며 관객에게 꿈같은 장면을 선사한다.

《장-미셸 오토니엘_정원과 정원》 전시전경 © 문혜인

연못 중앙의 작은 섬에는 〈황금 목걸이〉가 걸려있다. 연못의 가장자리에서만 관찰이 가능한 이 목걸이는 연못의 부유하는 꿈의 이야기를 한데 모은다. 〈황금 목걸이〉는 서울시립미술관 야외조각공원의 나무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데 나무에 주렁주렁 걸린 모습이 마치 옛 마을에 하나씩 있는 수목신神을 떠올리게 한다. 믿음의 신에게 소원을 빌었던 인류의 오랜 풍습을 연상시키는 〈황금 목걸이〉는 우리의 욕망과 미래의 희망을 상징한다.

〈황금 목걸이〉, 2021, 스테인리스스틸, 금박, 가변크기
© Othoniel Studio / Jean-Michel Othoniel Adagp, Paris, 2022

《장-미셸 오토니엘_정원과 정원》 전시전경_야외조각공원설치 전경  © CJY ART STUDIO

푸른 강

미술관에는 〈푸른 강〉이 반짝이며 흐른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전시되는 〈푸른 강〉은 오토니엘이 지금까지 제작한 작품 중 가장 거대한 크기로, 길이 26미터, 폭 7미터에 이르는 넓은 면적에 설치되어 잔잔한 물결의 푸른 강을 연상시킨다. 작품을 구성하는 유리벽돌은 작가가 지난 10여 년간 인도의 유리 장인들과 협력하여 제작한 결과물이다. 장인들이 하나하나 입으로 불어 만들어낸 유리벽돌은 멀리서 보면 빛나지만 가까이에서 살펴보면 미세한 기포와 불순물이 있어 고행 끝에 피어난 연꽃의 수련 과정을 떠올리게 한다. 벽돌의 푸른빛은 하늘과 물을 상징하며 ‘생명’, ‘생존’ 같은 긍정적 의미를 전달한다.

〈푸른 강〉(부분), 2022, 청색 인도 유리 벽돌, 26 × 7.1 m
© Othoniel Studio / Jean-Michel Othoniel Adagp, Paris, 2022

《장-미셸 오토니엘_정원과 정원》 전시전경 © 문혜인

《장-미셸 오토니엘_정원과 정원》 작품 사진 일부 © 문혜인

〈푸른 강〉 위로는 14개의 거대한 유리 조각이 설치되어 오토니엘의 작품 세계를 장엄하게 펼쳐 보인다. 천장에 매달린 조각은 3차원 공간에서 풀어지지 않은 채 무한 변형을 거듭할 수 있는 매듭을 일컫는 수학 용어인 ‘와일드 노트’를 표현한다. 〈와일드 노트〉는 프랑스의 정신분석학자 라캉이 주장했던 상징, 상상, 실재계 간의 관계를 참고하며 과학의 분야를 아우른다. 반짝이는 구슬 표면에서 무한히 상호 반사되는 이미지는 물리적으로 재현 불가능한 ‘와일드 노트’의 개념을 시각적으로 구현하며 무한한 변형을 거듭한다. 매듭 시리즈는 구 형태의 거울 모듈들이 보는 이와 주변 환경을 담고 사유와 시공간을 묶어 작가의 우주에서 결합과 해체를 반복한다. 또한 오토니엘은 미술관 입구 양쪽에 <바벨의 매듭>과 <상상계의 매듭>을 설치하여 미의 영원한 가치와 예술에 경의를 표한다.

희망은 부활할지니

〈황금 목걸이〉가 걸린 나무신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고요한 호수를 품은 정원으로부터 강렬하게 흐르는 푸른 강을 지나 인간의 열망은 신에게로 향한다. 오토니엘은 〈오라클〉 연작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의 작업에는 강렬한 신탁적 존재가 서려 있다. 나의 작업에는 직관적인 무언가가 있지만 동시에 신의 계시나 명령 같은 것 또한 존재한다.” 작가의 주관이 개입되는 것을 최소화했던 미니멀리즘과는 달리 오토니엘의 〈황금 목걸이〉는 작가만의 시적 은유를 담아내고 있다는 점에서 주변의 모든 것에 예민한 선지자 혹은 예언자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꿈의 조형물을 공간에 걸고 펼치고 쌓는 과정에서 오토니엘은 자연스럽게 성스러운 건축적 공간에 도달하였다.

〈오라클〉 앞에서 설명중인 장-미셸 오토니엘 © 문혜인

오토니엘에게 아름다움은 개인의 아픔을 극복하고 희망을 일깨우며 인간의 존엄을 수호하는 성스러운 가치라는 믿음이다. ‘제작’이라는 행위를 통해 내면과 외부를 관통하면서 고통을 응시하는 시선을 희망과 기쁨으로 전이시킨다. 오토니엘의 세계는 삶과 죽음, 자연과 인간, 역사와 건축이 어우러진 공간과 조응하며 서로를 엮는 매듭의 형태로 전개된다. 

전시전경

〈자두꽃 3, 4, 5(삼면화)〉, 2022, 캔버스에 페인팅, 백금박 위에 컬러 잉크, 각 164 × 124 × 5 cm © 문혜인

백금박 위에 그려진 회화 연작. 덕수궁 내 건축물에 사용된 오얏꽃(자두꽃) 문양에서 착안한 것으로, 관람객들에게 오얏꽃의 꽃말인 생명력, 저항, 끈기, 부활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한다. 루브르박물관이 영구 소장한 〈루브르의 장미〉를 한국적 정서로 재해석한 것이다.

다양한 매듭 조각 © 문혜인

〈아고라〉, 2019, 스테인리스스틸, 300 × 430 × 370 cm
© Othoniel Studio / Jean-Michel Othoniel Adagp, Paris, 2022

얼핏 보면 동굴이나 무덤처럼 보이기도 하는 〈아고라〉는 대중에게 선사하는 일종의 은신처이자 동시에 자유가 허락된 열린 공간이다. 작가는 새의 둥지 같은 작품 속에서 관람객이 잠시 쉬어갈 수 있기를 희망한다.

《장-미셸 오토니엘_정원과 정원》 전시전경 © 문혜인

《장-미셸 오토니엘_정원과 정원》 전시전경_야외조각공원 © CJY ART STUDIO

글, 사진: 문혜인 에디터
자료: 서울시립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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