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어 타부레: 형제자매들

2020. 5. 7  – 7. 10

페로탕 서울

perrotin.com


<생각하는 갈대>
우리는 더 많고 다양한 기준이 필요하다.
희열을 망치는 벌레는 무엇인가?
모든 눈이 되어버린 자는 보지 못한다.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오해를 저지르는 일이다.
알려 하지 말고 계속하여라.
그 무엇이든 거울이다.
끝이 없는 방향이 두 개 있다. 들어가기와 나가기.
 -아그네스 마틴(Agnes Bernice Martin)

 “예술에 대한 보편적 요구는… 내면세계와 외부세계를 하나의 대상으로써 자신의 영적 의식(spiritual consciousness)으로 끌어올려 자아를 다시 인식하고자 하는 인간의 합리적 요구이다.” –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Claire Tabouret, < Zino and Enea (blue) >, Acrylic and ink on paper, 139.7×106.7cm, 2020. | Photo: Martin Elder. Courtesy the artist and Perrotin. 

클레어 타부레(Claire Tabouret, 이하 타부레)가 새로 작업을 시작한 2019년은 모임이 빈번하고 사회적 교류가 활발하던 때였다. 그리고 현재, 전 세계가 봉쇄되고 생활이 근본적으로 바뀐 시점에 그는 작품을 완성했다. 그동안 타부레가 자신의 작품을 보는 관점은 변화했다. 그의 인물화는 공동체의 힘과 분리 속에서도 연대의 중요성을 상기한다. 이번 전시 < 형제자매들 >은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고립된 상황에서의 어떠한 그리움을 담고 있다.

작가는 지난 10여 년간 인물화를 주로 그렸으나 다양한 방식으로 접근해왔다. 인물을 그리는 작업은 그 주인공이 누구이든 간에 타부레에게는 자기 내면을 탐험하는 수단이 되어왔다. 그의 회화 속 인물은 신비로운 가상 풍경을 떠다니며 기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인물은 구체적으로 묘사되지만, 내러티브를 파악하기는 어렵다. 그림 아래 깔린 네온에 의해 인물들은 마치 내면으로부터 빛을 발하는 듯 보이며 동시에, 관람객을 작가의 내면 세계로 불러들인다.

작가는 파운드 이미지(found image)를 사용하는 제작 방식을 고수하며 어린 시절 사진을 이용한다. 반투명의 섬세한 겹으로 구성된 남자아이의 기울어진 얼굴은 고정된 면이 아니라 배경으로부터 떠오르고 물러나기를 반복한다. 물결치는 물감의 흐름은 끊임없이 형태를 바꾸며 진화과정 중에 있는 정체성을 연상시킨다. 수전 손택(Susan Sontag)은 사진을 가리켜 “현실을 가두어 놓는 방법” 즉, 시간을 한 프레임에 집약하고 고정하는 방법이라고 했다. 타부레의 회화는 그 반대다.  “누군가를 그릴 때 나는 그 인물이 시간에 갇히거나 고정되기를 원치 않는다. 진실은 고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작가는 시간을 자유롭게 풀어주려 시도하며, 고정된 경계가 없고 변수는 요동친다.

Claire Tabouret, < The Siblings (orange) >, Acrylic and ink on paper, 139.7×106.7cm, 2020. | Photo: Martin Elder. Courtesy the artist and Perrotin.

아이 네 명이 집 앞에 서 있는 모습을 담은 작품은 작가가 중고품 가게에서 발견한 빅토리아시대 사진을 기반으로 그린 것이다. 파운드 이미지를 회화 작업에 활용하는 방식을 주로 택해온 타부레는 “내가 이미지를 찾을 때도 있고 이미지가 나를 찾아올 때도 있다”고 말한다. 오래된 사진 속 익명의 가족에게 흥미를 느낀 작가는 그들을 위한 배경을 창작한다. 밝은색과 추상 모양으로 꾸민 아름다운 정원은 생기와 활기를 띠지만 미스터리한 느낌 또한 만연하다. 표현적이고 의미심장하지만, 동시에 단편적이고 불완전하며 불가해하다. 역사적인 인물화 작품을 찾아보던 타부레는 특히 에드바르트 뭉크의 < 오스고르스트란의 네 소녀 >(1902)에서 강한 영감을 받았다고 전한다. 어린 소녀 네 명이 장례식에 가기 위한 복장을 하고 뭉크의 집 노란 벽 앞에 서 있는 모습을 그린 수수께끼 같은 그림이다. 뭉크는 상실감으로 가득 찬 어린 시절을 보낸 후 인간존재의 연약함과 극단성에 관심을 갖고 작품을 통해 내면의 삶을 강렬하게 표현했다. 뭉크의 작업에는 아이들이 자주 등장하는데 타부레에게 뭉크의 작품은 화면 구성뿐 아니라 유년기 경험에 대한 반추, 정서적·심리적 상태의 표현, 인간의 내면과 바깥세상 사이의 관계, 개인과 집단 사이의 상호관계에 대한 고찰 등 주제 면에서도 영향을 끼쳤다. 타부레 작품 속 아이들은 순응적이고 의식적으로 정면을 바라보며 어떠한 일체감을 이룬다. 그러나 그들의 개별 표정은 어색하고 조심스러우며 경계하는 등 모호하다. 작가는 이 긴장감이 고조된 장면으로 관객을 끌어들인다. 그의 작품은 직접적인 해석이나 즉각적인 의미 파악은 어렵지만, 대신 회화 속 인물이 마치 말을 걸듯 다가와 관람객의 감상 과정을 주도하고 이끈다.

인간은 외부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는 복잡한 존재다. 타부레는 “끝이 없는 방향은 두 개 있다, 들어가기와 나가기.”라고 주장한 추상화가 아그네스 마틴(Agnes Martin)을 인용했다. 최근 그는 친오빠 등 실재하는 인물을 그리기 시작하며 관심 방향이 ‘안’에서 ‘밖’으로 전환되었음을 암시했다. 우리는 어떻게 연결되고 분리되는가? 개성(individuality)을 형성하는 것은 무엇인가? ‘방향’은 어디로부터 오는가? 안에서 또는 밖에서 시작되는가? 그는 이번 전시에서 작업 방향을 바꾸어 새로운 질문을 제기한다.

자료제공 : 페로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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