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TNEY BIENNIAL 2024:
EVEN BETTER THAN THE REAL THING
들여다보아야 들린다
WORLD REPORT | NEW YORK
휘트니 미술관 측은 뒤늦게 데미안 디네야지의 작품에서 ‘Free Palestine(팔레스타인을 해방하라 )’라는
숨겨진 메시지를 찾아냈지만 작품은 철거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데미안 디네야지〈we must stop imaging apocalypse / genocide + we must imagine liberation〉2024
휘트니비엔날레 전시 전경 2024
세계 3대 비엔날레로 불리는 미국을 대표하는 휘트니비엔날레가 개막했다. ‘실제보다 나은 것(Even Better Than the Real Thing)’이라는 주제로 진행된 비엔날레에는 71명의 아티스트와 콜렉티브가 참여했다. 전시는 3월 20일부터 8월 11일까지.
들여다보아야 들린다
정하영 | 독립큐레이터
뉴욕 휘트니 미술관의 5층, 허드슨강이 내려다보이는 창문에 ‘we must pursue + predict + imagine routes toward liberation!’이라는 문구의 네온사인이 깜빡인다. 시위 표지판을 연상시키는 철제 구조물과 시구(詩句 )에서 따온 듯한 문구는 오묘한 조합을 이룬다. 건물을 올려다보는 행인에게 이 메시지가 닿을 수 있을까? 시인이자 활동가인 데미안 디네야지(Demian DinéYazhi)의 이 설치물은 1932년 설립돼 미국의 미술을 포착하겠다는 목표로 이어져 온 81회 휘트니 비엔날레 출품작 중 하나이다. 미술관의 베테랑 큐레이터 크리시 아일스(Chrissie Iles)와 로스앤젤레스 언더그라운드 뮤지엄 디렉터 메그 온리(Meg Onli)는 두 해 전 비엔날레의 공동 큐레이터로 임명된 이후, 팬데믹의 여파로 대면이 제한되는 소통의 어려움 속에서 많은 작가와 대화를 나누었다고 회고한다. 각기 다른 역사, 정체성, 그리고 경험을 지닌 예술가 71명이 이곳에서 어떤 화음을 이뤄낼 수 있을까.
이번 전시의 부제는 ‘Even Better Than the Real Thing’이다. 한때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었던 아일랜드 록 밴드 U2가 1990년대 발표한 동명의 곡을 떠올리는 이들도 있을 테다. 그렇다면 비엔날레와 무슨 상관인가? 전시 서문은 그 관계를 가늠케 한다. 큐레이터는 서문에서 오늘날 일상에 스며든 인공지능(AI)이 우리의 현실 인식을 복잡하게 만드는 가운데, 정체성을 둘러싸고 지속되는 정치적 논쟁이 소외된 이들을 더욱 외면하게 한다는 문제의식을 명확히 밝힌다. 6층 전시장 입구에 걸린 홀리 허든던(Holly Herndon)과 맷 드라이허스트(Mat Dryhurst)의 전사 프린트 연작 〈xhairymutantx Embedding Study〉(2024)는 이 문제의식을 문자 그대로 반영하는 작품이다. 바닥까지 땋아 내린 무성한 붉은 머리에 손발을 덮는 녹회색의 방호복을 입은 이 여성 캐릭터의 이름은 작가와 같은 ‘홀리 허든던’이다. 전시장의 프린트는 대담한 프로젝트의 일부에 불과하다. 이들이 구축한 text-to-image AI 모델은 사용자가 입력하는 텍스트 프롬프트와 상관없이 변형된 버전의 홀리 허든던의 이미지를 창조한다. 휘트니 산하 웹사이트 Artport에 이 모델을 게재함으로써, 이 결괏값들은 신뢰할 수 있는 출처의 데이터로 거듭나며 결국엔 상용되고 있는 AI 모델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시나리오다.
그러나 이번 전시에서 인공 지능과 직접 관련이 있는 또 다른 작품을 찾기는 어렵다. 어쩌면 ‘오늘’의 미국 미술을 반영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과한 방점이 찍혔을지 모른다. 전시 구성을 살펴보면 로비층, 3층, 테라스를 포함한 주요 전시 공간인 5층과 6층에서 전반적으로 섹션을 명확히 나누기보다는 유사한 주제나 미학을 공유하는 작업들을 가까이 배치한 흐름이 있다. 이는 마치 끊임없이 이어지는 교집합처럼 하나의 작업이 여러 대화에 참여하며, 보는 이가 다각도로 해석할 수 있는 유연성을 자아낸다. 이러한 구성 속에서 전시는 현실에 존재하는 다양한 몸에 초점을 맞춘다. 큐레이터 메그 온리는 도록을 여는 대담에서 정체성 정치(identity politics)라는 용어가 처음 사용된 1977년 ‘컴바히강 집단 성명서(The Combahee River Collective Statement)’를 다시금 인용한다. 그러나 온리가 단순히 흑인 페미니즘의 계보를 잇는 것은 아니다. 대담 속 ‘우리는 주변 세계와의 관계 속에서 우리의 정체성을 끊임없이 재구성하며 변화하는 상태에서 경험한다’는 그의 말은 이번 전시의 방향을 오롯이 드러낸다.
캐럴린 라자드〈Toilette〉2024
휘트니비엔날레 전시 전경 2024 사진 : Audrey Wang
키얀 윌리엄스〈Statue of Freedom(Marsha P. Johnson )〉2024
휘트니비엔날레 전시 전경 2024 사진 : Audrey Wang
이 중 도드라지는 화두 중 하나는 단연 여성의 몸과 권리이다. 이번 비엔날레 준비 기간 미국에서는 개인의 몸을 규제하는 법안들이 통과되어 끊임없는 사회적 논란을 낳았다. 특히, 2022년 6월 연방대법원은 1973년 이래 임신중지를 여성의 헌법상 권리로 보장해온 ‘로 대 웨이드’ 판결을 폐기했다. 이러한 정치적 흐름에 대한 휘트니 미술관의 입장은 전시장 한 벽면을 가득 메운 카르멘 위난트(Carmen Winant)의 포토몽타주 〈The Last Safe Abortion〉(2023)에서 선명히 확인된다. 판결 폐기에 대한 직접적 대응으로 위난트는 미국 중서부 및 남부 지역 대학병원, 클리닉 등의 의료 기관에서 반세기 동안 기록한 안전한 출산과 임신을 위해 일해온 현장의 사진을 수집했다. 회진을 돌거나 전화에 응대하는 그들의 일상뿐 아니라 벽시계, 세면대, 수술 집기 등에 녹아든 공간의 이미지는 2,700장의 사진으로 한데 모여 육중한 감정의 무게를 담아낸다.
인접한 전시장에는 줄리아 필립스(Julia Phillips)와 하모니 해먼드(Harmony Hammond)의 작품이 재료의 물성을 통해 유사한 문제의식을 보다 감각적으로 풀어낸다. 1970년대 뉴욕 페미니스트 운동의 주요 인물로 여겨지는 예술가이자 활동가인 해먼드의 최근 작품은 그가 오랜 시간 고민해온 재료에 대한 성찰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물질적 참여(material engagements)’라는 작가의 표현처럼, 그의 회화는 닳은 포대, 얼룩진 테이블보, 손수건, 퀼트 등을 이어 붙이며 고통과 트라우마를 쌓아 올린다. 예를 들어, 〈Chenille #11〉(2020~2021)은 표면에 만든 반복적인 구멍, 바느질의 흔적과 사이로 비치는 붉은 실이 피부에 남은 상처를 연상시키기에 충분하다. 또한 줄리아 필립스의 조각 〈Nourisher〉(2022)는〈Conception Drawing〉(2020~2021) 연작과 나란히 설치되어, 최소한의 양감으로 형태를 드러낸다. 비스듬히 내려다보는 얼굴과 쇄골에서 가슴까지 이어지는 몸통은 세라믹으로 치환된 표면으로 존재한다. 이때, 입과 유두에서 바닥의 철제 받침대까지 이어지는 투명한 PVC 튜브는 이 신체가 임신 혹은 수유의 모호한 경계에 있음을 암시한다.
소외된 정체성에 대한 이번 전시의 논의는 비단 여성에 국한되지 않는다. 장애가 있는, 나이든, 혹은 성소수자의 그것을 망라한다. 6층의 한편에서, 노년에 접어든 메리 켈리(Mary Kelly)는 달력에 소중한 이들의 죽음을 그들의 이름과 나이로 기록하고, 그 칸에 재로 색을 입힌다. 유한한 존재이기에 피할 수 없는 삶의 이후 공백에 대해 담담히 서술하는 켈리의〈Lacunae〉(2023) 옆, 정확히는 전시장의 바닥에, 캐럴린 라자드(Carolyn Lazard)의 신작〈Toilette〉(2024)이 놓여 있다. 2019년 휘트니 비엔날레에서 미술관 벽에 병원용 TV 모니터를 부착해 병원에 입원한 환자들과 미술관의 관람객이 원격으로 같은 채널을 공유하는 작품을 선보였던 그다. 이번 전시에서 라자드는 병원이나 가정의 화장실 거울 뒤에 설치되어 약을 보관하는 데 쓰일 법한 철제 캐비닛을 미로처럼 배치했다. 성인 정강이 높이의 약장을 허리를 숙여 유심히 보다 보면 매끄러운 표면이 일부 철제가 아닌 미색의 물질로 채워져 있어 궁금증을 자아낸다. 다름 아닌 바세린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윤활제이자 연고로 흔히 활용하는 바세린에서 작가는 의약품의 산업화를 읽은 것이다. 미국의 2차 세계대전 참전 직후 태어나 대량 생산과 소비재 문화의 탄생을 목도한 피파 가너(Pippa Garner)의 설치작 역시 눈길을 끈다.〈Inventor’s Office〉(2021~2024)에서 가너는 자동차, 가전제품과 같은 공산품의 형태를 변형하고 재조합하여 고안해 낸 비현실적 프로토타입의 이미지와 스케치를 미술관 3층 복도의 벽면에 한데 진열한다. 소비재의 디자인이나 광고가 물건에 인간의 개성이나 성별을 덧씌우는 전략에 대한 유쾌한 풍자와 다름없다. 이뿐만 아니라 1980년대 성전환을 시작한 그의 “나 또한 사물이다. 그저 다른 가전제품의 하나일 뿐.”이라는 발언은 이 발명품들이 단순히 우스꽝스러운 프로토타입이 아닌 신체의 은유임을 내비친다.
카르멘 위난트〈The last safe abortion〉2023
휘트니비엔날레 전시 전경 2024 사진 : Filip Wolak
로터스 L. 강〈In Cascades〉2023
휘트니비엔날레 전시 전경 2024 사진 : Filip Wolak
‘미국 뉴욕’ 휘트니 미술관에 자리한 비엔날레의 장소적 맥락과 더불어 작품이 노출되는 미술관의 물리적 환경을 녹여낸 작품들도 눈에 띈다. 통유리에서 쏟아지는 자연광을 한데 받는 공간에 보석 호박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직사각형의 덩어리 〈Paloma Blanca Deja Volar / White Dove Let Us Fly〉(2024)가 서있다. 엘살바도르계 미국 작가인 에디 로돌포 아파리시오(Eddie Rodolfo Aparicio)는 송진이 스며나오는 나무가 미국 서부 지역으로 수입된 1950~60년대가 중앙아메리카 노동자들이 해당 지역으로 본격적으로 이민 온 시기와 일치한다는 점에 주목한다. 전시장의 빛과 열에 의해 서서히 형태가 변하는 덩어리 안에는 백인 활동가들 기록이 적힌 종이가 엉켜있다. 마치 과거의 한 사건이 ‘오늘’의 시점에서 매번 다르게 읽히듯 말이다. 한국계 캐나다 작가로 뉴욕에서 활동하고 있는 로터스 L. 강 (Lotus L. Kang)의 〈In Cascades〉(2023~2024)도 비슷한 전략을 취한다. 천장에 매달린 철제 들보에서 늘어진 회갈색, 적갈색, 혹은 또 다른 색의 막은 다름 아닌 필름이다. 필름을 감기 전 카메라 뚜껑을 여는 바람에 사진을 망쳤던 실수를 기억하는가. 작가가 “태닝(tanning )”이라 명명한, 빛에 노출되어 미묘한 스펙트럼의 색으로 변하는 이 과정은 더이상 실수가 아니다. 어떤 이유에서든 과거와 다른 환경에 처한 몸과 정체성이 새로운 환경에 반응하는 시행착오와 닮아있다.
물론 이번 전시에서 ‘몸’이 단순히 정체성을 논의하기 위한 도구로 환원되는 것은 아니다. 검정, 회색의 벽면으로 둘러싸여 희미한 핀 조명이 내려앉은 니키타 게일(Nikita Gale)의 그랜드 피아노에는 연주자도 피아노 고유의 음색도 존재하지 않는다. 제목 〈TEMPO RUBATO〉(2023~2024)가 의미하듯 누군가가 악보에 정해진 박자에 얽매이지 않고 내키는 대로 연주했던 흔적은 이제 피아노 건반의 기계적 움직임으로만 남아있다. 연주자의 몸 없이 기술만으로 재현된 이 연주의 주인공, 그리고 더 나아가 법적 소유권을 지닌 이는 과연 누구일까. 인간 사회를 넘어, 자연과 인간이 맺는 관계는 또 어떠한가. 한적한 흰 벽면에 영사된 디온 리(Dionne Lee)의 〈Challenger Deep〉(2019)은 수맥 탐지기를 들고 이동하는 작가의 손과 끝없는 들판을 흑백의 화면에 담는다. 과학적 근거보다 일종의 믿음에 의존하는 이 행위는 소리 없는 영상으로, 어쩌면 자연과 공존하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지식이 아닌 믿음일지 모른다는 메시지를 간결히 전달한다.
한편, 여느 회차와 다름없이 이번 전시에 대한 현지의 반응은 엇갈린다. 일부 매체는 크리시 아일스가 기획했던 2000년대 초 버전과 비교 분석하며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모하는 그의 미학을 언급하거나, 매 작품 옆에 붙어 있는 상세한 설명이 오히려 해석의 폭을 제한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기도 했다. 또한, 참여 작가의 다양성을 확보하려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들 중 대다수가 몇몇 특정 학교 출신이라는 지적 등 다양한 의견이 쏟아졌다. 특히 위험을 감수하고 실험적이거나 정치적인 오늘날의 미술을 소개하기보다는 잘 다듬어진 미감에 충실한, 비교적 ‘안전한’ 기획은 아닌가 하는 질문이 논쟁의 중심에 있었다. (경계인으로서 미국 사회를 이해하는 제한된 관점일지 모르지만) 적어도 과거에 충분히 다뤄지지 않았던 몸에 대한 담론은 전시장에서 존재했다. 다만, 이곳에서 몸은 미술관 밖의 이슈와 미술 사이를 매개하는 동시에 그 사이에서 일종의 완충재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서두에 언급한 디네야지의 네온사인으로 돌아가보자. 다른 출품작에 비해 상대적으로 직설적인 시각적 화법의 이 작업은 개막 이후 매체로부터 남다른 주목을 받았다. 네온사인이 깜빡일 때 이따금 ‘Free Palestine’이라는 구절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후 미술관 관계자는 이러한 작품의 세부 사항, 혹은 숨은 메시지에 대해 모르고 있었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남은 전시 기간 더해질 필름과 퍼포먼스 프로그램, 그리고 어쩌면 전시장에 점잖게 자리 잡고 있는 이 작품들도 자세히 들여다볼 때 의외의 대화를 건넬지 모른다. 휘트니 비엔날레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White Chess Set〉 1966 People Who Stutter Create
(PWSC)〈Stuttering Can Create Time〉2023
휘트니비엔날레 전시 전경 2024 사진 : Audrey Wang
달라 나세르 〈Adonis River〉
레바논 산의 아도니스 동굴과 사원에서 채취한 목탄, 침대 시트,
재, 레바논 산의 산화철 점토, 인디고 염료, 호두 껍질 염료,
나무 막대 외 혼합 재료 가변 크기 2023
커미션 : Renaissance Society, University of Chicago
후원 : Graham Foundation and Maria Sukkar ©Dala Nass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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