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KO ONO:
MUSIC OF THE MIND

요코 오노: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되기에

WORLD REPORT | LONDON

〈Painting to be Stepped On〉1961《YOKO ONO : MUSIC OF THE MIND》
테이트 모던 설치 2024

런던 테이트 모던에서 요코 오노 회고전이 진행 중이다. 세계적인 그룹 비틀즈 멤버 존 레논의 두 번째 부인이 아닌, 70여 년간 작품활동을 지속해 온 예술가로서 요코 오노의 업적을 기리는 전시는 방대한 양의 작업을 시간순으로 가시화했다. 행위예술, 사운드와 비디오 등 폭 넓은 작업 스펙트럼을 지닌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무명 예술가”라는 타이틀의 요코 오노 전시를 살펴보자. 전시는 9월 1일까지


요코 오노: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되기에

전민지 | 미술사, 미술비평


런던 테이트 모던에서 진행되고 있는 요코 오노의 회고전은 실로 포괄적이다. 작가가 지나온 70여 년을 돌아본다는 점에서도 그렇지만, 이번 전시 《Yoko Ono : Music of the Mind》가 내포하고 있는 정서의 스펙트럼을 고려하면 더욱더 그러하다. 추측하건대, 전시장에 발을 딛기 전 누군가는 분명 거부감, 심지어 혐오와 분노라는 감정을 떠올렸을 것이다. 1933년 일본에서 태어나 영국, 미국 등 여러 국가를 오간 요코 오노는 사실 1960년대 플럭서스(Fluxus )의 초기 멤버로서 활동한 인물이다. 그러나 그가 대중적인 명성을 얻은 것은 밴드 비틀즈(The Beatles ) 리더 존 레논(John Lennon )의 두 번째 아내가 된 이후였다. 결혼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비틀즈 해체에 대한 오노의 책임론이 불거지면서, 당시 비틀즈의 일부 팬들은 그를 “일본에서 온 희대의 마녀”로 칭하기도 했다. 결국 문화계를 넘어 사회적 아이콘과도 같았던 이의 아내로 사는 일은 의도치 않게 작가로서의 여정에 훼방을 놓은 셈이었다. 그런 만큼, 미디어에 의해 왜곡된 오노의 모습은 오랜 시간 편견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영국 최대 규모로 개최된 이번 회고전은 그늘에 가려졌던 요코 오노의 예술적 업적을 시간순으로 가시화한다. 전시의 중심에서는 개념미술, 행위예술, 사운드와 비디오 등을 폭넓게 탐구했던 작가의 실험정신이 거대한 축을 이룬다. 존 케이지(John Cage ), 조지 마키우나스(George Maciunas ), 라 몬테 영(La Monte Young ), 백남준 등 당대 아방가르드의 흐름을 이끈 예술가들과 음악 앨범을 제작하고 퍼포먼스를 발표했던 젊은 시절은 물론, 베트남 전쟁 중 반전(反戰 ) 예술 -시위 활동을 펼쳤던 시기까지 기나긴 연대기가 공간에 펼쳐져 있다. 한편, ‘마음의 음악’이라는 뜻의 전시 제목은 “나에게 존재하는 유일한 소리는 마음의 소리다. 내 작품은 사람들의 마음에 음악을 끌어오기 위한 것일 뿐”이라는 오노의 말에서 차용한 것이다. 그의 남편 레논이 일찍이 평가했듯이, 오노는 실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무명 예술가”였다. 이제 이곳에서 작가는 자신을 수십 년간 가리고 있던 베일을 스스로 들어 올리며, 그동안 차분히 탐구해 온 일상과 인생의 조각을 집약해낸다.

〈This room moves at the same speed as the clouds〉1966 《YOKO ONO : MUSIC OF THE MIND》 테이트 모던 설치 2024
사진 : Lucy Green 제공 : 테이트 모던

지시하고, 실현하며, 초대하는 퍼포먼스
전시는 갤러리 입구 바깥에 놓인 〈Wish Trees for London〉(2024 )으로부터 시작된다. 이는 평화를 염원하는 이들의 메시지를 작은 나무에 한데 모은 설치 작품으로, 관람객은 앞서 방문한 사람들의 메모를 살펴보며 본인의 생각을 남겨둘 수 있다. 이처럼 작가가 아닌 이들의 참여로 완성되고, 의미를 (되 )찾는 작업은 전시장 내부 곳곳에도 자리한다. 모든 어머니들에 대한 경의로 벽을 채운 〈My Mommy is Beautiful〉(2004 ) 역시 관객이 직접 작품의 빈 부분에 어머니에 관한 글을 써서 붙이거나, 어머니의 사진을 걸어두는 형식이다. 즉, 사람들이 오고 가는 모습과 그들이 남긴 파편이 조금씩 쌓여 매일의 풍경이 달라진다. 그렇다면, 이와 같이 타인의 중첩된 행위를 통해서야 비로소 이행되는 오노의 작업은 작가의 어떤 과거에 기인하는가?

위 질문에 대해 우리는 ‘지시문’이라는 간략한 답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무언가를 지시하는 문장이나 간략한 규칙으로 구성된 오노의 1960년대 개념미술 초기 작업은 이번 전시에서도 다양한 형태로 소개된다. 제목에서 드러나듯 관객에게 밟히기 위해 존재하는 〈Painting to be Stepped On〉( 1961 ), 못을 박는 ‘장소’로서 제안된 캔버스〈Painting to Hammer a Nail〉( 1961 ), 작품 사이를 통과해 두 사람이 악수를 할 수 있도록 구상된 〈Painting to Shake Hands〉( 1961 ) 등은 모두 40년이 훌쩍 넘은 텍스트와 컨셉을 기반으로 한다. 전시는 오노의 자필 지시문뿐만 아니라 이를 작품으로 실현한 결과, 그 과정과 관련된 다큐멘테이션을 복합적으로 선보인다. 이는 회화나 퍼포먼스를 텍스트로 대체 및 전환하고자 했던 오노의 급진적 실천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1964년, 작가가 음악, 회화, 해프닝 등을 위해 만든 200여 점의 지시문은 〈Grapefruit〉이라는 제목으로 발표되기도 했다. 자몽은 오노가 자신을 지칭할 때 사용한 표현이기도 한데, 이는 본인의 디아스포라 경험과 배경을 “오렌지도 레몬도 아닌 잡종 과일”에 빗대어 말한 것이었다.

〈Bag Piece〉 1964《YOKO ONO : MUSIC OF THE MIND》 테이트 모던 설치 2024
사진 : Reece Straw 제공 : 테이트 모던

한편, 오노는 자신의 개념을 실현하는 데 있어 관객을 적극적으로 초대해 왔다. 작가의 초기작 중 가장 널리 알려진 퍼포먼스 〈Cut Piece〉( 1964 )를 우선 돌이켜보자. 오노는 무대 한가운데 가만히 앉아 있고, 관객이 순서대로 등장해 그의 옷에 한 번씩 가위질을 가한다. 만류하는 이 하나 없이 잘려나간 옷과 속옷은 점차 작가의 몸 위로 흘러내리지만, 그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같은 자리를 지킨다. 이는 남성으로 대변되는 미디어가 여성에게 취하는 억압적 태도를 비판하기 위함이었다. 그 폭력이 몸을 서서히 옥죄어 올 때, 작가는 이러한 상황을 오히려 ‘움직이지 않기’라는 행위로써 보류시켰다. 다만 퍼포먼스의 주연이 항상 작가 자신인 것은 아니었다. 행위의 주체성이 관객에게만 부여된 예시로, 위 작업과 유사한 시기에 고안된〈White Chess Set〉( 1966 )를 꼽을 수 있다. 체스판은 두 명의 관객이 서로 경쟁하는 구도를 자연스럽게 이끌어내는데, 모든 말이 흰색이라는 점에서 승패와 대결이 무의미해지는 상황이 역설적으로 생겨난다. 작가는 결국 관객을 퍼포머로 탈바꿈하고, 서로의 말을 구분하지 못하는 경험에 직면하게 함으로써 평등과 평화의 가치를 논하고자 했다.

〈Add Colour (Refugee Boat )〉concept 1960 《YOKO ONO : MUSIC OF THE MIND》
테이트 모던 설치 2024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1
위와 같이 평화의 가치를 전파하고자 한 요코 오노의 실천적 면모는 베트남 전쟁의 맥락과 적확하게 교차한다. 작가는 제2차 세계대전 도쿄 대공습 중 피란을 경험한 인물이다. 그는 머나먼 땅에서 전쟁포로가 된 아버지, 쌀을 구하기 위해 집안 곳곳의 가재도구를 팔며 연명했던 어머니를 보며 학창 시절을 보냈다. 이러한 과거를 지닌 그에게 어쩌면 평화운동은 당연한 수순이었을지도 모른다. 이에 작가는 각자의 과거를 돌아보고, 이를 기반으로 현재를 재차 바라볼 것을 촉구한다. 베트남 전쟁을 극렬히 반대하던 오노와 레논은 창작과 평화운동에 있어서도 동료애를 공유했다. 두 예술가가 공동 구상한 〈War is Over (If You Want It)〉( 1969 )은 뉴욕, 도쿄, 파리 등 세계 대도시 곳곳에 광고판을 설치해 “(당신이 원한다면 ) 전쟁은 끝났다”는 강렬한 메시지를 전하려는 시도였다. 당시 광고판이라는 매체는 대중 문화와 액티비즘의 중간 지대에서 “미술 노동을 재규정함”과 동시에, “미술 창작과 정치적 시위의 새로운 형식을 마련”하는 데 기여했다.또한, ‘당신’이 원해야만 평화가 도래한다는 전제조건은 두터운 연대와 의지 없이는 전쟁이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불변의 법칙을 역설한다.

물론, 그로부터 약 50년이 지난 지금도 전쟁이 마치 불가피한 수단인 듯 선동하는 이들이 존재한다. 테이트 모던 6층 레스토랑 창문에 영어뿐만 아니라 중국어, 아랍어 등으로 설치된 〈Peace is Power〉(2017 )는 그런 의미에서 모종의 시의성을 띠며 신랄하게 다가온다. 템즈강 너머 풍경은 이스라엘에 의해 무차별적으로 폭격당한 2023년 가자지구의 모습과 겹치고, 평화로이 흘러가는 강물은 2년 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전격 침공한 이래로 지속되어 온 전쟁과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다시 전시장 내부로 시선을 돌리면, 관객 참여형 작품인 〈Add Colour (Refugee Boat)〉( 1960 )가 바다 및 파도를 상징하는 파란색과 흰색으로 공간을 물들인다. 이는 전쟁과 결부된 난민 위기를 다룸으로써 관객 모두가 하나의 세상을 공유하고 있음을 명확히 보여주며, 작가의 뿌리 깊은 인도주의적 태도를 재차 부각한다. 세계에 팽배해 있는 잔혹함에는 그 어떤 명분도 존재할 수 없다는 오노의 음성이 전시장을 아득히 투과하는 듯하다.

이론과 역사, 능동적 실천의 장으로
‘큐레토리얼 액티비즘(Curatorial Activism )’이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제시한 큐레이터 모라 라일리(Maura Reilly )는 큐레이팅 행위를 두고 “이론과 역사를 실천으로 옮기는 것”, 즉 수동적으로 존재하는 텍스트에 능동성을 불어넣는 것이라고 칭한 바 있다.이러한 시각을 기초로 한다면, 요코 오노의 지난 70년을 ‘회고’하는 테이트 모던의 태도에는 미디어가 재현(represent)해 온 작가의 모습을 재편하여 다시금 보여주겠다는(re -present) 의지가 투영되어 있다. 최근 영국 내에서 개최된 《Women in Revolt!》(테이트 브리튼, 2023.11.8~4.7 ), 《RE/SISTERS: A Lens on Gender and Ecology》(바비칸 센터, 2023.10.5~1.14 ), 《Marina Abramovi》(영국 왕립예술원, 2023.9.23~1.1 ), 《Monica Sjöö : The Great Cosmic Mother》(모던 아트 옥스퍼드, 2023.11.18~2024.2.25 ) 등 여성의 목소리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일련의 전시 역시 마침내 아내가 아닌 예술가로서 실재하게 된 요코 오노와 궤를 같이한다. 포스트잇을 붙이고, 체스 게임을 하는 단순한 행위로부터 구축된 일생은 이제 광대한 장을 형성하기에 이르렀다. 그 누구도 아니었던 이들의 삶은 그 무엇도 아닌 듯한 일상성을 거치며 흔적을 짙게 남기고 있다. 오노의 말처럼, 혼자 꾸는 꿈은 꿈일 뿐이지만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되기 때문이다.


1 저널리스트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Svetlana Alexievich )의
1985년 저서 제목이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박은정 역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문학동네 2015
2 줄리아 브라이언 윌슨 신현진 역 『미술노동자』 열화당 2021. p. 27
3 Connie Butler, Amelia Jones, and Maura Reilly Curating and
the “Return” of Feminist Art The Feminism and Visual Culture Reader
2nd ed. Routledge 2010 p. 40

〈White Chess Set〉 1966《YOKO ONO : MUSIC OF THE MIND》 테이트 모던 설치 2024
사진 : Reece Straw 제공 : 테이트 모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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