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Artist-Kondo Yukako
곤도 유카코
“아픈 똥개, 흰돌이를 위해서 아버님은 특별하게 요리해 도자기 그릇에 담으셨다. 그냥 서 있기에도 다리가 떨리는 흰돌이. … 낯설은 긴장감 때문에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그 풍경 모두가 평소와 달라 보였다. 흰돌이의 밥 한 그릇의 무게가 느껴졌다. 나는 작업을 통해서 덧없이 반복되는 일상에 무게를 준다. 잠시 멈추게 하거나 쉬고 바라보기도 한다. 그러한 시선으로 정물을 보고 있다.”
– 곤도 유카코
너무나 익숙한 공간
한국에서 작업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한국에 온 지 10년이되었다. 아마가사키(고베와 오사카 중간에 위치) 출신인데 오사카에서 활동하며 전시를 하고 있을때 우연한 계기로 오사카의 전시를 보러 온 한국의 한 화랑 운영자에 의해 한국에서 교류전을 하게 되었다. 이후 KIAF 등의 아트페어에 참여하며 일년에 두세 번 한국을 방문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한국어를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라디오를 통해 한국어공부를 시작했다. 생각보다 쉽게 익혀지는 한국어가 몸에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쯤 주변에서 유학을 권유했다. 30세에 유학을 결심해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전문사 과정을 졸업하게 되었다. 모든 과정이 자연스레 이어져왔다.
일본에서는 추상화를 그리다 한국으로 건너와 정물화 작업을 하고 있다. 작업하는 장소가 바뀌면서 변화가 있었으리라 생각된다 단순히 한국으로 이주했기 때문에 일어난 변화는 아니다. 한국에 건너오던 당시 작가로서, 개인적인 삶에서 많은 변화가 있던 시기였다. 모든 것을 지우고 다시 시작하고 싶은 생각이 강했다. 한국에 홀로 건너와 집을 구했다. 아무것도 없는 텅빈 집에서 내게 가장 필요했던 것은 생수였다. 근처 마트에서 생수 한 병과 종이컵을 사왔다. 텅빈 집에 놓인 생수병과 종이컵은 그 가벼운 물리적 무게에도 불구하고 나의 생존에 없어서는 안될 큰 무게로 다가왔다. 일상의 오브제에 관심을 가지고 정물작업을 하게 된 결정적 계기다. 처음에는 정물이 남기고 간 자리를 그렸다. 사물은 사라져도 그 공간은 남아있다는 점을 나타내고 싶었다. 그렇게 작업을 하다보니 내 주변에 있는 일상의 물건들이 눈에 들어왔다. 오브제가 스쳐지나간 불특정한 공간에서 내가 직접 생활하고 경험하는 일상의 물건들을 그리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외국인 예술가로서의 삶은 어떤가 한국에서 활동하는 외국인 작가로서 불편한 점보다 오히려 외국인이기에 누리는 이득이 있다. 외국인작가라는 이유로 관심을 가지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나라와 달리 한일관계의 독특한 특성 때문에 일본인인 내 작업에 색안경을 끼고 해석하는 사람들이 가끔 있다. 그렇지만 기본적으로 한국에 산 지 오래되어 외국인 작가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일본과 한국의 작가에 대한 시선, 대우 등에 차이가 있는지 궁금하다 일본보다 한국이 작업환경이 더 좋다. 현대미술에 대한 지원이 다각도로 이뤄져 다양한 기회가 있다. 대안공간이 발달해 있고, 다수의 공모전이 개최되는 등 작가 지원 시스템이 잘 되어있다. 또 미술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더 큰 편이다. 일본에선 미술을 하이컬처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한국에선 오픈된 느낌이 강하다. 미술시장 규모는 일본이 더 클지 모르겠지만 관객의 관심도는 한국이 훨씬 높게 느껴진다. 일본은 국·시립 미술관이 민영화됨에 따라 현대미술가에 대한 지원 및 전시 기회가 줄어들었다. 고전미술 전시가 많아지고 현대미술의 실험적인 전시는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한국의 경우는 한국미술의 오리지널리티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깊기 때문에 일본처럼 쉽게 변하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
곤도 유카코는 1973년 일본 아마가사키에서 태어났다. 일본 오사카예술대와 한국예술종합학교 조형예술과 전문사과정을 졸업했다. 한국과 뉴욕에서 개인전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