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미술과 通한 사람들 – 미술은 이동한다_윤동희
미술은 이동한다
출판사 대표 윤동희
“회화는 이동한다.” 세계적인 출판사 리졸리(Rizzoli)에서 출간된 피터 도이그(Peter Doig) 화집에 서문을 쓴 리처드 쉬프(Richard Shiff, 오스틴 대학 모더니즘연구센터 디렉터)는 도이그의 그림을 이렇게 정의했다. 스코틀랜드, 트리니다드, 퀘벡, 온타리오에서 성장해 런던, 몬트리올, 트리니다드에서 작가 활동을 하고, 최근에도 런던과 캐나다를 오가며 작업하며 뒤셀도르프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화가의 지리적 ‘이동’이 만들어내는 일시적이면서도 자유롭게 수정되는 회화의 개념적·기술적 ‘이동’을 간파한 것이다. 쉬프에 따르면 ‘이동’에는 뿌리가 없고, 안정적이지 않으며 그에 따라 인내가 필요한 부정적인 측면과 변화하는 삶의 조건에 유연하게 적응할 수 있는 긍정적인 측면이 한 몸을 이룬다고 한다.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여기저기를 전전하는 사람이라는 뜻의 ‘drifter’를 피터 도이그의 정체성으로 바라본 그의 시각은 미술 안팎을 오가는 나 같은 사람에게 적잖은 위안을 준다.
미술이라는 우연 그리고 운명 그저 막연했다. 밀레니엄 맞이로 세상이 분주하던 시절, 1999년 여름, 낯선 곳에 도착했다. 《 월간미술》. 전통을 자랑하는 미술전문지. 대학시절 애독했던 잡지의 ‘기자(editor)’. 그때까지 미술은 내 시간의 바깥에 있었다. 지하철 2호선 시청역 9번 출구를 나와 중앙일보 7층 사무실에 들어가는 길을 몇 번이나 두리번거렸다. 내가 있을 곳이 맞나, 하는 생각이 내내 이어졌다. 그래도 미술기자 생활은 즐거웠다. 가야 할 미술 현장도, 만나야 할 미술인들도, 써야 할 미술 담론도 넘쳐났다. 마치 미술기자를 하도록 각본이 짜인 듯했다. 그런데 어느 날 이런 질문이 내 안에서 솟아났다. “다음엔 뭘 해야 하는 거지?” 사람들에게도 물었다. 공부를 더해 학교에 자리 잡거나, 큐레이터를 하거나, 미술평론가로 살아가거나……. 거짓말이라도 상관없으니 ‘다른’ 경로를 이야기해주는 이는 거의 없었다. 시대는 탈경계를 넘어 ‘초(超)’경계로 나아가는데 미술은 미술만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때부터 내 삶은 다른 곳으로 흘러갔다. 디자인에 바탕을 두고 책을 만드는 사람. ‘안그라픽스’에서 다음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대학원에서 시각문화를 공부한 직후였다. 실리콘밸리가 세상을 주도할 준비를 마쳤고, 로버트 라이시(부유한 노예), 다니엘 핑크(프리에이전트의 시대가 오고 있다), 세스 고딘(보랏빛 소가 온다), 말콤 글래드웰(티핑 포인트) 등의 ‘구루(Guru)’들이 새로운 삶과 노동, (기술)문화를 예견하고 있었다. 반면 미술은 젊은 작가 전성시대, 미술시장 전성시대, 한국형 팝아트 전성시대, 상업화랑 전성시대 등 난생 처음 찾아온 ‘호황’을 즐기느라 여념이 없었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미술은 진짜 미술이 아닐 수 있다는 의심을 할 수 없는 분위기였다. 1960년대 이후 생산된 동시대미술은 그렇게 낡아가고 있었다. 그래도 미술로 향한 발길을 끊을 수 없었다. 미술대학에서 미술 이론을 강의하고, 광주비엔날레 학술지 편집위원을 병행하고, 젊은 작가들을 집중적으로 소개하는 미술무크지.
《 debut(데뷰)》를 창간하며 버텼다.
장르의 경계, 분야의 이동 그리고 새로운 척도 미술기자 5년, 편집자 5년. 10년의 시간을 채우고 2007년 대형 출판사의 투자를 받아 ‘북노마드’라는 출판사를 만들어 현재까지 130여 종의 책을 만들었다. 연예인 책으로 ‘대박’도 쳐봤고, 달콤한 (여행) 에세이로 지속 가능한 출판을 가능케 했고, 조금씩 미술, 디자인, 건축 곁으로 다가갔다. 그사이 미술은 거품이 꺼진 미술시장을 빠져 나왔다. 많은 이가 위기라고 호들갑 떨었지만 본래의 자리로 돌아온 셈이다. 이제부터 다시 미술을 이야기해도 좋다고 생각했다. 대신 미술이 아닌 것으로 미술을 이야기하자고 다짐했다. 2000년대 중반 이후 그래픽디자인, 기술문화, 인문학, 고전 등의 화두가 문화계를 구성하고 있었다. 디자인은 미학적 기능을 넘어 우리 시대의 중요한 틀을 형성했다. 이름만 들어도 믿음이 가는 ‘제너럴그래픽스(문장현), ‘워크룸’(김형진 박활성 이경수), ‘슬기와 민’ ‘김영나’ 등은 인문학과 예술이 어디에서 왔고, 어디에 있으며, 어디로 나아갈지를 아는 그래픽디자인의 ‘선수들’이었다. 그 곁에 전시 도록, 단행본 등의 형태로 문경원, 전준호, 정재호, 유근택, 이동기, 권오상, 문성식, 서용선, 김주현, 임근준, 정은영, 사사(44), 사무소(samuso), 플라토 등의 미술이 함께했다. ‘JOH&Company’의 조수용은 디자인을 플랫폼 삼아 기술문화(네이버), 건축(네이버 그린팩토리), 매거진(B), 외식문화(1호식)의 틀을 바꾸었다. 장르의 경계와 분야 사이의 이동은 새로운 장소와 척도에 적응하고 그것과 관계하게끔 영향을 미친다는 마리아 린드(Maria Lind, 스톡홀름 아트센터 관장)의 말이 옳았다는 것은 독립서점(북소사이어티, 유어마인드, 땡스북스, 가가린, 포스트 포에틱스)이라는 새로운 장소에 적응한 독립출판물들이 보여주었다. 이게 과연 책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호기심으로 바꾸어버리는 대안적 움직임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미술이 다른 영역과의 접점을 모색했던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알렉스 콜스가 《 디자인과 미술》에서 정리한 대로 19세기 말 비평가 존 러스킨이나 미술가이자 디자이너였던 윌리엄 모리스를 시작으로 20세기 초 아방가르드 운동(소련의 구축주의, 네덜란드의 데 스테일, 데사우 바우하우스 등) 그리고 장소-기능-미술 양식을 자유자재로 활용하는 호르헤 파르도, M/M, N55, 토비아스 레베르거, 슈퍼플렉스 등 미술을 디자인세계에 팔고, 디자인을 미술세계에 판매하는 예술가들의 실천으로 이어져왔다. 네덜란드 디자이너이자 비평가인 키스 도르스트가 강조한 것처럼 미술과 다른 영역 사이의 경계는 단지 미술로부터 향하는 것이 아니라 “넘나들 수 있는 것”이다. 어느 시대나 예술이라는 이름의 통섭-융합-협업은 있었다.
자율과 대안이라는 이름의 통섭-융합-협업 최근 나는 또 다른 ‘일’을 저질렀다. 자율적-대안적 미술학교를 꿈꾸며 ‘a. school(에이스쿨)’이라는 소규모 미술학교를 꾸렸다. 인문학적 관점으로 미술을 바라보는 아카데미를 진행하고, 미술대학(원) 학생들이 짝을 이루어 협업을 실천하는 ‘art duo(아트 듀오)’, 외부 전문가들을 모시고 학생들의 작업을 깊이 있게 점검하는 ‘critic(크리틱)’ 등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학생) 작가들에겐 기획전을 열어주고, 미술평론가가 인터뷰 또는 비평함으로써 미술무크지《 debut》에 소개하고 있다. 이제 시작인지라 a. school은 아직도 자유파행(自由爬行) 중이다. 하지만 미술이라는 드넓은 대지에서 이리저리 굽이치면서 흐를 그날을 기대하며 지속하려 한다. 돌이켜보면 나는 늘 미술이 현실이라는 실재와 대면할 수 있는지 보고 싶어 했던 것 같다. 미술과 접속 가능한 또 다른 공간을 만들기 위해 ‘조정해온(coordinating)’ 지난 시간의 출발과 끝은 결국 미술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미술의 영토에 머물 생각이 없다. 북노마드를 출판-디자인-미술-교육이 어우러진 ‘스튜디오’로 만들고 싶다. 물론 시대는 수상하기만 하다. 세상의 모든 분야는 ‘기업형’ 독과점에 넘어간 지 오래다. 하지만 내겐 그 사이를 비집고 자율적인 생존을 이어가는 각양각색의 스튜디오문화가 미술, 출판, 디자인의 대안이 될 것이라는 무모한 믿음이 있다. 나는 그 믿음을 믿으려 한다. 기술문화 잡지《 와이어드(wired)》를 창간한 케빈 켈리(Kevin Kelly)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궁극적인 디지털화로 인해 모든 분야가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바뀔 거라고 예견했다. 산업이든 예술이든 복제 가능한 것은 무료로 나눠주어야 생존할 수 있는 시대에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유연성과 분권화, 열린 마음일 것이다. 자신이 속한 특정 분야에서 전형성에 머물기보다 그것이 갖는 사회적・문화적 영향력을 염두에 둬야 한다는 그의 말에 밑줄을 그어본다. 이 사실을 일찌감치 깨달은 에드 루쉐는 “자신이 전문 사진가로 인식되기를 바라지 않으며, 유행에 민감하지 않은 구성을 만들려고 애쓴다”고 고백했다. 루쉐는 그렇게 함으로써 “눈에 띄는 스타일”을 이루어냈다. 이제 예술은 고유한 목적을 최대한 달성할 수 있는 각자의 방식으로 삶의 요소들을 배치해야 한다. 내용보다 인기와 상업성으로 일관하는 미술, 출판, 디자인, 기술에 대한 것이 아니라 (미술의, 출판의, 디자인의, 기술의) ‘문화’를 생각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늘 의심해야 한다. 이것은 미술이 아니라고, 이것은 출판이 아니라고, 이것은 디자인이 아니라고 말이다. ●
윤동희는 연세대 영상대학원에서 영상커뮤니케이션을 공부했다. 월간미술, 안그라픽스, 광주비엔날레 학술지 《눈(noon)》 편집위원으로 일했다. 세종대, 성신여대, 이화여대 대학원, 서울대 대학원, 인천가톨릭대, 동국대 대학원 등에서 미술 이론을 가르치고 있다. 현재 북노마드 대표, 미술학교 a. school(에이스쿨) 대표, 세종대 회화과 겸임교수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