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미술과 通한 사람들 – 옛 그림은 나의 친구이자 멘토_손태호

옛 그림은 나의 친구이자 멘토

여행사 대표 손태호

꾸벅. 고개가 살짝 꺾이다가 깜짝 놀라 고개를 들지만 교실 화면에 떠있는 사진자료는 이내 초점이 흐려지고 만다. 점심시간 이후 오후 수업시간은 항상 이 모양이다. 졸음을 참으려 해도 자꾸 고개가 숙여지곤 한다. “이게 무슨 사서 고생이람” 눈을 비비면서 혼잣말로 중얼거려본다. 40대 중반이 넘은 나이에 다른 아빠들은 자녀 교육문제로 고민할 나이에 강의실에서 앉아 있는 내 모습이 지금도 그리 익숙하지만은 않다. 어린애들 손잡고 사적지나 문화재를 재미삼아 보러 다니던 내가 점점 옛 그림에 빠진 것은 30대 후반. 미술책에서만 보던 옛 그림을 간송미술관에서 직접 보면서 느낀 감동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그 후 시간만 허락되면 국립중앙박물관과 간송, 호림, 호암미술관 가는 것이 취미였고 옛 그림 전시회가 있다는 소식만 들으면 지방까지 달려가 관람했으며 인사동, 북촌, 동대문, 장안동 고서화점들을 찾아가 그림 감상하러 왔다고 소장품을 보여달라는 뻔뻔함도 그 당시 새로 발견한 나의 모습이었다. 그림을 감상하며 너무 감동스러워 눈이 빨개지기도 했고 화가의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서 먹먹하기도 했으며 그런 감정들은 내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곤 했다. 지쳤을 땐 어깨를 툭 쳐주는 친구가 되기도 했고 소심할 때는 같이 용기 내서 앞으로 걸어가자고 손을 잡아주는 동료가 되주기도 했다. 게으르고 나태할 때는 회초리 들고 호되게 나무라는 선생이기도 했으며 온 세상이 회색으로만 보일 때는 손가락으로 멀리 아름다운 곳을 가리켜주는 멘토이기도 했다. 어느새 옛 그림은 나에게 그런 의미가 되었다.
그렇게 혼자 좋아 그림을 보러 다니면서 처음에는 느끼지 못했던 스스로의 안목 부족을 절감하고 보다 전문적인 시각과 이론적 토대의 필요성을 느껴 대학원에 입학하게 되었다. 낮에는 직장 다니고 밤에 학교를 가는 야간 대학원이었지만 새로운 그 무엇을 배운다는 설레임에 피곤한 줄도 모르고 학교를 다녔다. 딱 반은 즐겁고 반은 힘겨웠던 석사과정 중 그림을 통해 느낀 감동을 한 편 한 편 글로 정리하여 블로그에서 벗들과 소통했던 글들이 어느새 제법 양이 쌓여 책으로 묶여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내 이름과 사진이 인쇄된 책을 받아들고 내가 너무 전문가 행세를 한 것 같아 조금은 쑥스럽기도 했지만 그동안 그림을 보며 웃고 울고 감동스러웠던 순간들을 정리했다는 뿌듯함도 느꼈다. 책을 출간한 후 여러 매체와 글로 인연을 맺기도 했고 저자와의 만남 형식으로 강연을 통해 독자들과 직접 소통하기도 하였다. 나로서는 참으로 예상치 못했던 도전이자 새로운 경험이었다.
거기에 이젠 한술 더 떠 지금은 미술학과 박사과정에 도전 중이다. 굳이 박사과정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고민도 많이 했지만 석사 때 공부했던 불교조각에 대한 미련을 완전히 떨쳐내지 못했으니 미혹되지 않아야 할 나이라는 불혹이란 말이 참으로 무색하다. 일 년에 한 번도 미술전시회를 가지 않았던 30대 중반 시절부터 생각해보면 참으로 엉뚱한 길에서 엉뚱한 일을 하고 있는 셈이다. 애초에 여기까지 오리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고 그럴 생각도 없었지만 인생은 알 수 없다는 말을 실감하고 있다. 물론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다.
학교를 가지 않는 날에는 본업인 여행사를 운영하면서 고객들에게 세계 곳곳을 소개하며 그곳의 문화와 풍물에 대해 설명하고 상담을 한다. 여행업이 실제 출국하기 전까지는 말로 떠드는 서비스업이다 보니 늘 이런저런 일로 스트레스가 쌓이곤 한다. 하지만 아무리 머리가 지근거리고 속상한 마음이 있어도 힘겹게 찾아간 심산유곡에 자리한 사찰에서 너무나 잘생긴 불상을 만나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옛 그림 전시회에서 가슴을 울렁이게 하는 그림 한 점을 보면 나도 모르게 머리가 맑아지고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니 어찌 하겠는가. 늦깎이 학교생활도 학기가 시작되기 전 어마어마한 학비 고지서를 보며 손이 부르르 떨리는 것을 제외하면 좋아하는 것을 공부하고 같은 관심사의 동료들과 함께 한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하고 즐거운 일인가?
사람마다 좋아하는 취미와 여가활동이 다 있겠지만 그중에서 그림과 조각, 즉 미술을 좋아하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생각해본 적이 있다. 여행과 운동은 좋아해서 여행을 다니거나 여러 운동을 취미로 여기는 것에 충분히 공감하지만 동, 식물을 가꾸고 키우거나 장난감을 모은다거나 쇼핑이 취미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과연 즐거울까 의심스러운 생각이 든다. 사람마다 다 취향이 다른 법이니 나에게 안 맞다고 해서 안 좋다는 건 아니고 다만 내 취향이 아니라는 거다.
오늘도 난 사무실에 앉아 이런저런 일로 씨름하고 있다. 조각과 그림을 감상하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딱딱한 일을 반복한다. 여행업이란 게 고객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는 일이란 사명감을 잊지 않으려 노력하지만 가끔은 언제까지 일을 해야 하나 하는 자조감이 들기도 한다. 역시 즐기면서 하는 것과 해야 하기에 하는 일은 하늘과 땅만큼 느낌이 다르다. 하지만 조선후기 화가 조영석과 김홍도의 풍속화에 등장하는 일하는 자의 모습에 고단함만 있는 그림이 어디 있는가? 윤두서와 윤용의 <나물 캐는 여인>에서 삶에 억눌린 기색이 어디에 있는가? 모두 힘겨운 노동 속에서도 땀의 신성함과 노동의 즐거움도 함께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역시 옛 그림은 여전히 나에게 멘토이자 선생이다. 앞으로도 그런 옛 그림과 함께 잘 살아보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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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태호는 남에게 즐거움을 주는 일을 찾다가 여행사, 항공사 등에서 근무했고 현재 인도 서역 전문 여행사를 경영하고 있다. 2005년 간송미술관 봄 전시에서 단원의 〈황묘농접도(黃猫弄蝶圖)〉를 보고 우리그림에 푹 빠져들었다. 40대에 들어와 불교미술로 관심사가 넓어져 동국대 문화예술대학원에 입학해 2011년 조선후기 조각승을 주제로 석사 논문을 썼다. 불교미술과 조선회화를 쉽게 풀이하는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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