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RATORS’ VOICE & CRITIQUE

홍예지 | 독립큐레이터
최윤정 | 미술비평 · 문화비축기지 전시기획담당주무관
장진택 | 독립기획
하도경 | 기자

Sincerely,
페리지갤러리 1.5~2.3

2022년 7월 말, 4년간 운영한 책방 문을 닫고, 8월 말까지 진행된 2개의 전시를 모두 철수한 뒤 전북 완주군 삼례 가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짐은 가벼웠다. 연고도 없는 지역에 원룸을 얻었고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작은 책박물관에 학예연구원으로 취직했다.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홀로 타지에서 살기로 한 결정에는 두 가지 동기가 있었다. 하나는 그동안 몰입해온 일과 관계에서 벗어나 심리적 거리를 확보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수십 년간 문화재급 유물과 고서, 옛 그림을 수집한 관장님의 안목과 감정 노하우를 배우는 것이었다. 당시 나는 끝없이 생겨나고 휘발되는 것들에 지쳐 있었다. 정신없이 돌아가는 주기에 맞춰 무언가를 기획하고 생산하고 처분하는 일에서 탈출하고 싶었다. 최첨단 유행 대신에 세월이 흘러도 생생히 아름다운 것, 사람들에게 변함없이 깊은 감동을 주는 사물에 눈길이 갔다. 그런 고요한 것들을 찾아내는 과정이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을 다독이는 데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다. 땅에 발을 디디지 못하는 감각과 짙은 허무감, ‘어떻게 살아야 하나’ 망연히 앉아 있던 시간을 벗어날 수 있을 거라고. 그해 삼례에서 보낸 가을, 겨울은 끝없이 흔들리는 나를 직면하는 계기였다. 또한 고독 속에서 천천히 떠오르는 마음의 빛을 관찰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이렇게 큰 변화를 겪는 와중에 고성 작가를 만났다.

페리지 팀 프로젝트에 선정되어 처음 만났을 때 먼저 인사를 건네던 그의 눈빛을 떠올린다. 겨울날 아침 공기처럼 깨끗하고 맑은 눈이었다. 보기 드문 눈이라고 생각했고, 왠지 모를 반가움을 느꼈다. 멀리 떨어져 사는 친구를 아주 오랜만에 만난 느낌. 낯선 사람인데 말이다. 전시를 보러 오신 분들 중에서 ‘서로의 첫인상이 어땠고, 교류를 이어간 뒤로는 상대에 대한 느낌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묻는 분이 있었는데 우리의 대답은 같았다. “처음과 똑같습니다.” 관계의 시작이 본질이자 미래라고 생각하는 나는 종종 우리의 첫 만남을 돌아본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편지를 쓰기 전, 카페에서 나눈 처음 두 번의 대화를 꼼꼼히 복기하곤 한다.

11월 23일, 우리는 예술의전당 테라로사 창가에 나란히 앉았다. 그가 운을 뗐다. “두 가지 길이 있습니다. 하나는 서로 잘하는 걸 하는 겁니다. 저는 제가 해오던 작업을 하고, 선생님께서는 전시 기획과 비평문을 주시는 겁니다. 잘해오던 일인 만큼 위험도 없습니다. 하지만 재미는 없을 겁니다. 다른 하나는 우리가 안 하던 걸 하는 겁니다. 제가 기획에 적극 개입하고 선생님도 적극적으로 창작을 해주셔야 합니다. 완성도 어렵고 위험도가 높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재미는 있을 겁니다.” 우리는 후자를 선택했다. 그는 ‘이때가 아니면 할 수 없는 것을 해보자’는 마음이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시선에 담긴 내 눈도 곧게 빛나고 있었다고 한다. 창밖으로 보이는 시계탑을 응시하며 이런저런 대화를 이어가다 요즘 읽고 있는 책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최근 읽은 책 중에 마리아 포포바가 쓴 『진리의 발견』이 너무 좋았다고 그에게 얘기했다. 『진리의 발견』은 그 자체로 경이로운 직조물이다. 요하네스 케플러, 마거릿 풀러, 에밀리 디킨슨, 엘리자베스 배럿 브라우닝, 레이철 카슨 등 과학자와 예술가, 시인이 서로의 삶에 스며들어 진심을 담은 편지를 주고받으며 각자의 세계를 확장하는 여정을 담았다. 이런 책에서 받는 영감을 이야기하며 앞으로 가장 몰두하고 싶은 작업이 글쓰기라고 말했다. 가만히 듣던 그는 그동안 내가 쓴 글 중에서 단순히 일 때문에 쓴 글 말고 창작의 관점에서 즐거웠던 글을 골라 보내 달라고 했다. 알겠다고 하고 다음 약속을 잡은 뒤 헤어졌다. 전시에서 배포된 서간집에도 나오지만 우리의 프로젝트는 포포바의 책과 그가 기획한 융합적인 페스티벌에서 영감을 받았다. 고성 작가가 편지에 언급했듯 어둠을 밝히는 ‘등대’와 같이 ‘외딴섬 같은 탐구자들을 하나둘 불러모은’ 포포바처럼, 우리 역시 그렇게 살아 움직이는 만남의 장을 만들기를 꿈꿨다. 우리가 포포바와 공유하는 지점은 하나 더 있다. 바로 삶과 예술이 나란히 간다는 믿음이다. “예술은 삶보다 높은 곳에 매달린 고아한 샹들리에가 될 수 없으며 삶과 같은 높이에서 빛을 비추어야 한다”는 것. 1년간의 협업에서 이 믿음은 프로젝트의 중심축을 담당했다.

두 번째 만남은 12월 3일, 안국역에서 있었다. 그때도 우리는 나란히 앉아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눴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 모습이 관계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다. 이후 전시를 준비하면서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마다 우리는 한마음 한뜻임을 거듭 확인했고, 우리 앞에 펼쳐진 여러 갈래의 비전 중에서 하나를 골라 끈기 있게 실현해 나갔다. 그 비전은 산다는 것, 안다는 것에 대해 각자 오랫동안 품어오던 질문과 맞닿아 있다. 바로 인간에게 가장 본질적인 것이 무엇이며, 삶을 살아가는 지혜와 단순한 마음이란 어떤 것인지에 대한 물음이다. 고성 작가와 나는 공통적으로 눈에 보이는 것 너머의 초월적 가치와 인간이 땅에 뿌리내리게 만드는 요소의 균형에 관심이 있다. 우리는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에 착안해 편지와 각자 찍은 사진을 주고받기로 약속했다. 이 교류의 틀은 고성 작가가 제안했다. 내가 그에게 보낸 글 중에 릴케의 문장을 인용하며 조각가의 삶과 작업을 풀어낸 글(「믿음으로써 살아지는 조각」)이 있었는데, 그 글을 보고 자연스레 릴케의 편지를 떠올렸다고 했다.

고성+홍예지 서간집 『Sincerely,』 페리지갤러리 2023 사진: 고성 제공: 페리지갤러리

1년 동안 우리는 일상 안에서 묻고 배운 것들을 30여 통의 편지로 공유했다. 고민에 대한 힌트는 때로는 고전, 철학 논문, 시에서 발견되었고 사진과 글쓰기 작업을 지속하면서 스스로 체득한 깨달음에서 얻기도 했다. 겨울에 시작된 편지는 봄, 여름, 가을을 거쳐 다시 겨울을 맞이할 때까지 이어졌다. 사계절을 함께 겪는 동안 두 명의 고독한 탐구자는 서로 긴밀히 연결되었고, 둘의 발견이 셋, 넷, 다섯, 여섯의 발견으로 확장되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우리의 마음을 고양시키고 기쁘게 했던 발견들이 다른 누군가의 마음에도 같은 울림을 줄 거라는 확신이 자리 잡았다. 그렇다면 전시는 무언가를 보여주는 공간이 아니라새로운 교류의 장이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편지를 관통하는 12개의 핵심어를 나타낼 일상 속 물건들을 수집했고 일종의 은유와 상징으로서 전시장 중앙에 배치했다. 그다음 각자의 자리를 맞은편에 놓고 연극 무대처럼 연출했다. 기획자의 서재와 작가의 작업실은 각자 사용하던 사물을 통해 사고의 흐름을 엿볼 수 있는 흔적들로 구성했다. 그리고 안락한 소파를 배치해 관객의 자리를 마련했다. 고성 작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덜어내고 쌓고 덜어내기를 반복하며, 낡은 라디오 주파수를 조심스럽게 맞추듯 우리 각자의 신호가 또 다른 동료를 부르고 나눔의 장으로 나아갈 수 있는지 점검”했다. 감사하게도, 우리가 품었던 희망에 대한 응답을 전시 시작과 함께 즉각 받을 수 있었다. 서간집을 쓰다듬으며 붉어진 눈시울로 하염없이 전시장에 머무는 새로운 동료들이 생겼다. 우리는 이들과 깊고 긴 이야기를 이어갈 것이다. 전시가 허물어져도 남는 것은 결국 진심이다. 그 마음의 민들레 홀씨가 관객의 몸을 타고 곳곳에 퍼져 나가기를 바란다. 그것이 고성 작가와 나의 공통된 소망이다.

홍예지 | 독립큐레이터

《Sincerely,》 페리지갤러리 전시 전경 2024 사진: 고성 제공: 페리지갤러리

서용선 서용선프로젝트 암태도
문화비축기지 T5이야기관, 영상미디어관, T6문화아카이브 2023.11.23~5.5

문화비축기지에서는 개원 이래 문화비축기지 조성단계를 홍보하는 데 쓰던 전시관을 2020년을 기점으로 ‘시대와 문화사’라는 주제에 특화된 기획전시관으로 운영하고 있다. 이번 전시는 역사와 설화, 인간의 본성을 성찰적 주제로 담아왔던 서용선을 초대하여 한국근현대사에서 많은 이에게 생소했던 한 장면, ‘암태도소작쟁의’에 주목한다. ‘암태도소작쟁의(1923~1924)’는 1923년 전남 무안군 암태면 암태도에서 소작인들이 주체가 되어 7~8할에 이르는 과도한 소작료를 4할로 인하할 것을 요구했던 사건이다. 1894년 동학농민운동과 1919년 3·1운동의 정신을 이어 당시 주민들의 단결과 조직력, 섬이라는 장소성, 비폭력저항을 통해 일제강점기 비호를 받고 있었던 지주들로부터 이루어낸 ‘통쾌한 역사적 사건’이자 승리의 역사로 당대 전국적인 소작쟁의의 도화선이 되었다.

‘암태도소작쟁의’는 역사연구보다는 1969년 박순동의 중단편소설 『암태도 소작쟁의』와 1981년 송기숙의 장편소설 『암태도』를 통해 널리 알려졌다. 또한 한국농민운동사 연구 논문에서 간간이 소개되었지만, 한국사 역사교육에서 다뤄진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그래서 많은 이에게 생소한 우리 역사다. 마침 2023년은 암태도소작쟁의 100주년을 맞는 해였고, 서용선은 오래전부터 이 주제에 천착하여 암태도를 오가며 2022년부터 작업을 잇고 있었다.

서용선의 이번 암태도 작업에 대한 열정과 성의는 놀라웠다. 그는 격주마다 작업실이 있는 경기도 양평에서 암태도까지 약 5~6시간의 거리를 직접 운전하며 현지에 가서 작업을 했다. 늘 현장에서 드로잉 작업과 자료 리서치, 관련 연구자 혹은 여러 주체들과의 대화를 통해 주제에 대한 영감을 받고 자신의 생각을 정리했다. 작가는 그 장소에 자신의 온도를 맞추며 ‘그곳’이 함의하는 서사와 현장성에 골몰하면서 그로부터 생성된 의식과 감정을 스케치로 남겨왔다. 그렇게 시간과 장소를 아우르는 그의 도상과 드로잉들은 주제에 임하는 그의 태도를 증명한다. 이를 시작으로 작가는 역사와 설화, 삶의 터 곳곳에 깃든 서사를 통해서 그 속에 얽혀있는 다양한 인간상과 인간의 마음에 접근하며 화업을 이었다. 또한 힘의 작용과 반작용, 팽팽한 긴장을 연상시키는 과감한 색채 표현과 거칠고 직선적인 필치로 구사하는 그의 조형어법은 역사적 사실과 상황 그 자체보다도, 개인의 주관적 감정과 그로부터  떠오르는 실존적 상황을 마주한 인간의 모습, 개별의 고통과 번민, 새로운 자각과 인식에 대한 기억감정을 추출하게 하는 힘을 지니고 있기에, 그의 작업은 역사를 주제로 한다면 응당 가질 법한 ‘공동체의 기념비적 성격’으로 갈무리되지 않는다.

암태도, 프로세스, 문화비축기지의 서용선프로젝트

기획 과정에서 그가 암태도소작쟁의와 관련한 벽화작업을 하고 있는 암태창고미술관(전남 신안군 암태면 단고리 소재)을 2차례 방문하였다. 첫 번째 방문 시 벽화 등 작품은 약 50~60% 진행된 상황이었고, 전시관으로서 공간 공사도 동시에 이뤄지고 있어 그야말로 생생활활의 현장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때는 작품창작 현장과 장소성을 탐구하기 위한 답사였다. 작가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기억을 되살릴 수 있도록 암태도소작쟁의의 전개 과정을 글과 형상이 조화롭게 혼합된 형식으로 구성하여

〈아사동맹〉(사진 왼쪽) 캔버스에 아크릴릭 246×879cm(3pcs) 2023
《서용선프로젝트 암태도》 문화비축기지 전시 전경 2023 제공: 서울시 문화비축기지

공간에 생동감을 주려 하였다. 내부의 벽화는 동학, 포츠머스 회담, 3·1운동의 장면으로 시작하여 암태도 농부의 형상과 본격적인 4할 투쟁의 장면, 목포법원을 향해 배를 타고 바다너울을 건너는 암태도 주민들의 모습과 법원의 판결장면, 이름들, 이어 주요 소작인회 지도자들이 구속수감되고 아사(餓死)를 불사하는 투쟁과 저항의 장면을 다루었다. 이어 작가는 주요 인물들을 담고 있는 벽면에 암태도소작쟁의의 핵심인물이자 정신적 기둥이라 할 수 있는, 그가 이번 문화비축기지 전시에서도 형상적으로 더욱 천착한, 서태석1 의 죽음을 공들여 그리고 있었다. 작가는 분명 서태석을 통해 인간의 마음과 행동에 대한 복합적인 심상을 가졌을 것이다.

두 번째 방문했을 때는 내외부 벽화가 거의 완성된 시기였고, 작가는 자체적으로 ‘오픈스튜디오’를 열어 공간 안에서 공연 퍼포먼스 등 다양한 액티비티를 실험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작가가 현장에서 캔버스를 펼치고 즉흥적으로 그 모습들에 집중하며 드로잉하는 귀한 장면도 보았다. 그렇게 전시 스태프들과 암태도에 3일간 머물면서 신안군청과 신안군농민운동기념사업회의 도움으로 전시자료 수집은 물론 현지 인터뷰를 진행할 수 있었다.

전시 영상 제작 초반은 주로 문화비축기지에 모여 작가와 함께 방향성과 인터뷰이의 범위에 대해 긴밀히 논의하였고, 본격 제작 시기에는 전시 스태프들과 자체적으로 움직여 농민운동가 후손은 물론 암태도소작쟁의 관련 연구자, 주민구술 등 인터뷰를 진행하고 구술채록을 완성하였다.

서용선은 암태도에서 작업을 하는 와중에도 문화비축기지 전시를 위한 별도의 신작들을 구성하였다. 〈아사투쟁〉과 〈우금치 전투〉등 걸개 형식의 대형회화 작업이며, 드로잉 등 미발표 작품들을 소개하면서 이번 전시에서 다량의 신작을 선보였다. 기획과정에서 신명을 결정하는 것은 작가와의 소통에 있다. 수시로 작가와 연락하여 각자의 현재 상황과 진척과정을 공유하고 논의하는 과정이 흥미로웠고 원활하였다. 이 과정에서 기억과 구술을 통한 맥락적 이해를 담은 〈암태도 이야기〉 등 단채널 영상작업과 작가가 이번 전시에서 특히 중요하게 생각했던 T5영상미디어관의 360°이머시브 영상〈암태도 소작쟁의 100년을 기억하다〉가 완성되었다. 특히 이 작업은 암태창고미술관 내부의 벽화들을 문화비축기지 탱크 벽면으로 옮겨오며 암태도소작쟁의에 대한 작가의 코멘터리와 드로잉퍼포먼스를 통해 서용선의 암태도소작쟁의에 대한 주제의식을 역동적으로 보여주고자 한 것이다. T5이야기관에서는 암태도소작쟁의와 그 역사적 배경을 다룬 다양한 회화와 드로잉들, 역사자료 및 작가자료가 다수 전시되고 2편의 다큐영상이 함께 소개된 T6문화아카이브에서는 역사적 배경(동학, 3·1운동 관련)을 다룬 대형 회화들이 전시됐다. 야외설비동과 T5녹색섬에는 왜곡되고 비일상적 현실을 상징한 ‘농민상’을 상징적으로 배치하였다.

작가는 양평의 작업실과 암태도를 오가며 우리 삶과 호흡하는 예술현장으로서 의미있는 장소성을 구축해왔으며 문화비축기지 기획전〈서용선프로젝트 암태도〉는 암태도의 장소성을 넓히는 동시에 동학농민운동(1894) -3.1운동(1919)-암태도소작쟁의(1923)에 이르는 서사를 맥락적으로 확장한다. 마침 전시가 펼쳐지는 2023~2024년은 각각 ‘암태도소작쟁의100주년’과 ‘동학농민운동 130주년’을 기념하는 뜻깊은 해이다. 그 뜻을 기려 산업화 유산으로서 문화비축기지가 지닌 역사적 자원을 확장하면서 ‘인간·역사·삶의 서사가 결합된 예술’을 조우하는 현장이자 ‘보편적 공간’으로서의 가치를 만들고자 시도한 전시였다.

최윤정 | 미술비평 · 문화비축기지 전시기획담당주무관

(사진 왼쪽부터)〈3.1운동〉 프린트된 현수막 위 아크릴 172.3×227.5cm 2013~2014,
〈동학〉 프린트된 현수막 위 아크릴 172.3×227.5cm 2016~2023,
〈동학〉 프린트된 현수막 위 아크릴 172.3×227.5cm 2016~2023

탁영준 목요일에 네 정결한 발을 사랑하리
아뜰리에 에르메스 2023.11.24~1.28

전시 《목요일엔 네 정결한 발을 사랑하리(Love Your Clean Feet on Thursday)》는 소수의 정체성과 그것을 무참히 포괄하는 특정한 체제 사이에서 이중규범화(anomie)한, 이른바 ‘옳은’, ‘합당한’, ‘맞는’ 등의 표현이 뿜어내는 보통 또는 일반의 개념을 점유한 어떤 인식과 태도의 교화, 그 성질과 정도에 관한 일말의 제언처럼 다가온다. 두 편의 영상과 동일 수의 조각으로 구성된 본 전시는 그 서문에도 밝혀졌듯, 성소수자 퀴어(Queer)로서 아마도 언제나 자신을 교정의 대상으로 지적하는 사회의 이분법적 시선을 나름의 헤아림으로 감내해야 했을 형편에서 그는 허용 가능한 선택의 지표라는 것 그리고 애초에 상위 권력 구조가 소수의 하위 당사자를 간주하는 방식을 곱씹어 사유한다. 균질하고도 평등한 형이상학적 기회를 삶에서 보장받을 수 있게 하기 위한 인식 차원의 준거, 그 합의에서 당사자의 위상은 본디 가장 우선시할 부분이어야 하지만 현실의 상황은 철저히 그것과 무관할 수도 있으며, 그러해도 전혀 무방한 경우가 다분하다. 그와 같은 경계를 두고서 상호 이질적인 집단 간의 공존을 꾀하는 일이란 결국 어느 쪽 누군가에겐 안타까운 결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그 와중에 각자의 입장은 첨예하다. 그 첨예함은 둔탁하고 삐걱거리며, 서로 부딪치며 닳리거나 깎아내는 형태로 감정의 흔적을 기저에 새긴다. 이해관계의 논리를 좇아 아름다움의 권위 역시 부여돼왔고, 일정한 규범의 틀에 의한 재단은 이렇게 계속되어 왔다. 막상 타자와는 무언가 추종의 주체이자 주체로서의 정체성을 인정받지 못한 타자로 영원히 남겨질 거다. 특별하지 않고 평범한 상태, 그토록 당연한 권리라는 것이 차등적으로 분배되는 현실 사회의 체계는 실은 언제든 변경될 수 있었던 것임을 상기하는 것은 꽤 어려운 일임에 틀림이 없다. 설령 개인의 의지나 선택의 자유에 따르는 문제더라도, 성적 지향의 권한을 여전히 윤리나 도덕의 그것처럼 옳고 그름으로 따지려는 입장의 만연함은 그와 같은 시스템의 견고함을 다시금 증명하고 있다.

전시장에서 관람객을 먼저 맞이하는 건 작가의 〈사랑스런 일요일 되길 바라(Wish You a Lovely Sunday)〉(2021)다. 탁영준은 장소성을 매개로 극단적인 인식 태도의 의미를 재조직한다. 여기서 중요한 하나의 계기는 바로 종교다. 실제로는 선험적 영역의 믿음과 그 한정적인 공유의 관계망에 바탕하고 있는 종교라는 체계는 문화의 특정성을 투사하는 차원에 그치지만, 이것이 다시 새로운 위신으로 자기 승화하는 가운데 또 다른 권위로 작동한다. 작가는 안무라는 층위로 상이한 두 공간, 지하의 클럽과 지상의 교회 공간을 한 편의 필름 안에서 교집합으로 묶는다. 등장하는 안무가들은 그 특유의 감각을 활용해 퍼포먼스의 현현을 전제에

〈사랑스런 일요일이 되길 바라〉(사진 오른쪽) 단채널 HD 영상, 컬러, 스테레오 사운드 18분 45초 2021
《목요일엔 네 정결한 발을 사랑하리》 아뜰리에 에르메스 전시 전경 2023 사진: 김상태 제공: 에르메스 재단

두고 그들에게 주어진 공간을 탐색한다. 그로부터 공간은 급작스레 본래 그것의 목적을 상실한 맥락 없는 일종의 텅 빈 무대로 호명되며, 그곳을 구성하는 건축적 요소들은 어떤 연출을 구축하는 개별 지표의 역할을 하게 된다. 이상의 설정은 행동 양식의 결정 과정과 관련한 일련의 구조 자체를 의심하는 행위로 비친다. 특히나 신체 전반을 지지체로 하는 복수적 공감각에 기반한 전문성의 영역으로서 안무의 창작 방식을 안무가들의 대화를 통해 풀어 놓는 작가는 물적,심적 영역 사이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제3의 장을 열어젖힌다. 때로는 고상하거나 성스럽고 때로는 불결하거나 천박함으로 받아들여지기를 부여 당한 체제(들)는(은) 작가의 시선을 타고 무관한 무성의 공간으로 전락한다. 즉 인식이라는 것이 태생적으로 생성된 불변의 진리가 아니라, 어떠한 의도로 분명하게 정해진 후과적 양상이라는 것을 탁영준의 작업은 떠올린다. 이처럼 작가의 다큐멘터리형 영상에서 격자 관계로 짜인 공간들은 강조된 신체성의 징표로서 안무 범주의 주체들에 의해 이제까지 있지 않았던 형태로 직조되고, 사회 집단 내 공유된 정신적, 물질적 특징으로서 경계를 이루는 문화가 구성원들에게 후천적 습득의 양식으로 존립 가능케 한다. 대안적 현실의 결정체이자 해당 환경에서 성취하는 소통의 산물로서 안무가들의 안무는 귀결한다.

그의 신작 〈목요일엔 네 정결한 발을 사랑하리(Love Your Clean Feet on Thursday)〉(2023)에서는 좀 더 구체적인 종교 참조의 사례가 등장하는데, 기독교 문화의 일례로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역의 말라가에서 벌어지는 부활절 의례 행사가 바로 그것이다. 탁영준은 번안 안무의 구조를 차용해 다른 한 편의 양식을 고안함과 함께 기존의 전통적 인식에 그가 사유하는 대안적 맥락을 덧입힌다. 군국주의 관례 행사에 동원된 탄탄한 신체의 군인들과 그 제복을 훑는 카메라의 움직임은 퀴어적 취향을 명백하게 표상하는 것으로 원래의 역사적 서사를 무화하는 동시에, 절대 무너질 수 없을 것만 같던 막강한 교조의 원리에 필연적인 균열을 초래한다. 재현과 번안의 형식은 관습의 비관습화를 위한 전략으로서 세계에 의해 점령당한 개인을 해방하는 기능을 한다. 예수 십자가상과 성모 마리아상을 짊어진 스페인 외인부대의 행렬은 무용수들의 관능적 안무와 교차 편집되며 열반의 체험을 야기하는 화려한 외양의 효과를 폭로한다. 어느 한 측의 젠더를 대변하는 것이 아닌 전형의 초월적 존재로서 신앙의 대상은 보이지 않는 의식을 신체 감각의 단계로 이전하는 성화(sanctification)의 상징이며, 다른 한편 탁영준은 젠더 표현의 동시대적 대응으로서 동성애적 신체가 수행하는 안무 창안의 방식을 통해 대치적으로 보일 법한 상황에 되레 혼선을 촉발한다. 영속적인 철학이란 어쩌면 그저 신기루임을, 그리고 정치성을 내재한 믿음의 위상 또한 오히려 분열을 발아케 함을 본 작업은 깨닫게 한다. 이 모든 것은 통념이라는 소속감이 심리적 효용의 근거가 될 수 있음을 드러낸다. 말하자면, 고전적인 구심점으로서 그 경계 바깥을 대하는 진리의 속성에 대해 시의적으로 갱신된 평가를 할 필요란 차고 넘친다는 것일 테다.

현상은 본질의 외면으로, 이를 주도하는 것은 주체들의 의지여야 한다. 다만 주체들의 범위를 대척의 객체들과 구분해 규정할 때, 그 척도의 기준은 다양한 자아의 정체성을 최대한 반영해 결정돼야 마땅하다. 그 어떤 상위나 하위의 범주 체계도 자기 유지의 본성을 수반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옳고’, ‘합당하며’, ‘맞는’ 형태의 구축을 약속하는 것은 아니다. 당대의 구성원들이 항시 그 검증을 소홀히 해서는 아니 될 이유도 그러한 조건에 기인할 것이다. 평등의 권익은 사회라는 구조체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평화적 합의를 위한 최소한의 요청임에도 불구하고, 실재하는 의식의 작용은 다수의 편리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고자 소수의 존재를 의도적으로 망실한다. 이러한 현상을 중첩하며 역사적 양상을 조망하는 탁영준의 작업은 그렇게 잊힌 자들의 권리를 담담하고도 아름답게 일으켜 세운다.

장진택 | 독립기획

〈목요일엔 네 정결한 발을 사랑하리〉(스틸) 단채널 4K 영상, 컬러, 4.1 사운드 18분 53초 2023
아래 〈탐〉 대리석, 실리콘, 유채 9×21×22.5cm 2023 사진: 김상태
제공: 에르메스 재단

강운구 암각화 또는 사진
뮤지엄 한미 2023.11.22~3.17

주입식 교육의 폐해일까. 문화재, 유물 등 역사적인 가치와 중요성을 인정받은 대상 앞에 우리는 늘 교훈과 정보를 얻어야 한다는 강박을 갖게 된다. 일종의 ‘역사 아우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비롯되는 강박이 존재한다. 아우라에서 비롯되는 강박은 대상을 더 알게 하는 촉진제가 되기도 하지만, 대다수 상황에서는 역효과를 내며 멀리하게 하는 요인으로 기능한다. 단지 대상을 보는 아주 간단한 일일 뿐인데, 보는 이의 어깨에 걸쳐진 무게가 시야를 가리는 거다. 보이는 것을 둘러싼 맥락까지 알아야 할 것 같은 부담. 암각화라는 대상도 마찬가지이다. 마주할 때, 그 부담에서 자유롭지 않다.

역사 아우라에서 벗어나기 위한 사진
대상은 아무 잘못이 없다. 어깨에 부담의 무게를 짊어진 우리가 보는 것은, 그것이 어떠한 가치를 지니는지를 피력한 역사가들의 해석과 우리를 스쳐 간 무수한 선생님과 교과서가 만들어낸 일종의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이미지가 역사 아우라를 만들어낸다. 문제는 다년간 형성돼 온 이 이미지를 떨쳐내는 일이 쉽지 않다는 거다. 그렇기에 “반구대 암각화의 고래는 왜 서 있을까?”라는 83세 원로 다큐멘터리 사진가의 질문이 더욱 값지게 다가온다. 이미지가 아닌 대상을 있는 그대로 봤을 때 떠오를 수 있는 질문을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교육을 위한 대상으로서 암각화가 아니라, 왜 그렸는지, 어떻게 그렸는지, 왜 이렇게 표현했는지를 보라는 손짓인 거다.

질문에서 출발한 여정
50여 년 전, 신문에서 접한 울산 반구대 암각화의 고래가 왜 세로로 서 있는지 궁금했던 강운구는 오랜 시간이 지나도 해소되지 않는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2017년에 짐을 꾸렸다. 약 3년간 한국과 친연성이 있다고 알려진 파미르고원과 톈산산맥, 알타이산맥에걸쳐있는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을 비롯한 중앙아시아 4개국과 러시아, 중국, 몽골 등 총 8개국 30여 개의 지역을 답사했다. 해가 기울 때를 기다렸다가 선에 그림자가 생겨 윤곽선과 음영이 뚜렷해지면 바삐 움직이며 셔터를 눌렀다. 암각화에 너무 근접해서 사진을 찍으면 형태가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는 점을 인지하고 적당한 거리를 찾았다. 그렇지 않으면 바위의 거친 질감과 흠으로 인해 사진이 추상화된다. 세부 묘사가 없는 암각화를 위해서 어느 정도의 적정 거리를 유지해야만 했다. 색온도도 중요했다. 색온도에 따라 암각화는 붉은색이 되기도 하고 푸른색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암각화를 담은 암각화 사진은 어때야 하는지, 그는 조정을 지속했다.

추리고 가려내는 일
암각화를 담아온 작가는 시대와 역사를 기록하는 행위로서 암각화를 ‘고대의 사진’으로 정의했다. 그런데, 암각화와 사진의 공통 지점은 무언가를 기록하는 용도로 활용된다는 점뿐만 아니라 더 있을지도 모른다. 암각화의 삶을 떠올려 보자. 헤아릴 수 없는 과거에, 형상을 떠올리기 어려울 정도로 까마득한 인물이 돌에 그림을 새겼다. 시간이 흐른 뒤 그것은 ‘암각화’로 분류되어 이 자리에 있다. 시간은 많은 것을 지우기도 하지만 동시에 많은 것을 추리고 가려낸다. 시간이 ‘추리고 가려낸 결과’가 우리에게 ‘포착’되고, 이를 대변하는 일군의 전문가에 의해 설명되어 ‘우리가 봐야 할 것’이 된다. 사진도 이 단계를 공유한다. 사진은 존재하는 혹은 존재했던 것의 크롭과 확대, 조정과 조율을 통한 무언의 지시이자 발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진의 잠재력은 그것이 우리가 봐야 하는 이미지를 만들어내기도 하지만, 우리의 인식 체계에 깊이 각인된 이미지를 떼어낼 수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대상의 일부분 혹은 대상을 둘러싼 맥락과 배경을 따로 떼어내어 그 자체를 볼 것을 요청하는 화살표가 될 수 있다.

그렇다면, 강운구의 암각화 사진은 어떠한 역할을 지닌다고 할 수 있는가? 작가는 암각화 사진을 뒷받침할 수 있는 텍스트를 최대한 덜어낸 채, 사진을 제시하고자 한다. 이는 그가 제시하고자 한 것이, 암각화에 관한 조사와 해석이 아니라는 점을 방증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의 암각화 사진 연작을 통해 접근해야 하는 것은 카메라 렌즈가 향해 있던 ‘암각화’일까? 암각화와 우리 사이에 놓인 ‘거리’ 혹은 이미지’인가? 흥미롭게도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전시장을 거닐며 마주한 또 다른 사진들에서 찾을 수 있다. 정확히 말하면 암각화 사진들에 개입하는 또 다른 사진과 이 둘이 유리에 맺히며 어우러진 형상이, 여기에 힌트가 있다며 반짝이고 있다. 기자는 또 다른 사진(미국의 사진가인 존 팔의 사진들) 위를 덮고 있던 전시 유리에 비치는 암각화 사진을 통해 연관이 없는 두 작가의 사진을 엮어봤고, 사진을 찍는 사진가의 행위를 함께 떠올려 봤다. 사진과 사진이 향하는 대상 간의 거리를 넓히는 행위와

전시장 왼편에는 존 팔의 사진 작업이, 오른편에는 강운구의 암각화 사진 작업이 전시되고 있다.
《암각화 또는 사진》 뮤지엄 한미 전시 전경 2024 사진: 박홍순

거리를 좁히는 행위에 대해서 말이다.

‘거리두기’로서 사진
암각화라는 대상과 우리 사이에는 시간적 거리가 있다. 그리고 이 시간적 간극을 나름의(?) 과학적 사고와 분석으로 메우는 전문가들의 시각이 있다. 그리고 이를 전달하는 이들의 무수한 목소리가 있다. 그뿐만 아니다. 무수한 목소리를 일방적으로 전달받은 사람에게서 발생하는 역사적 아우라도 있다. 암각화와 우리 사이에 놓인 거리는 아주 멀다. 여기서 사진이 할 수 있는 것은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이 거리를 인식하도록 하는 일이다.

암각화의 고래가 왜 수직으로 서 있는지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떠난 작가의 여정은 경쾌하고 명료한 답으로 귀결되지 않았다. 여정의 끝에 남은 것은, 문자가 없던 시절에 언어로 기능하던 이미지에 대한 이해다. 암각화에 새긴 이미지를 언어로 보았을 때 우리는 당대의 이미지인 그 언어를 알지 못하니 해석은 괄호에 넣어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작가는 더 구체적으로 모 고고학자가 암각화를 해석한 방식을 언급하며, 자신의 관점을 공고히 했다(그 고고학자에 따르면 암각화는 ‘다산과 풍요’를 기원하는 것이고, 남근이 보이는 인물은 ‘남근 숭배’가 반영된 것이다). 그러면서 “학자들은 대개 자신이 잘 아는 특정 전문 분야에 초점을 맞추어 연구하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프리즘으로만 문제를 분석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이탈리아의 고고학자 에마뉘엘 아나티(Emmanuel Anati)의 말을 인용했다.

한국에서 교육받은 많은 이는 어렴풋이 역사책에서 반구대 암각화를 봤고, 이에 대한 선생님의 가르침을 받았고, 또 시험 문제의 답안으로 달달 외운 기억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암각화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무의식적으로 ‘진부함’ 혹은 ‘교육적’이라는 수식어를 떠올린 적도 있을 것이다. 이는 단순히 암각화라는 대상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우리의 깊은 곳에는 암각화와 같은 무수한 대상이 존재한다. 사진은 우리의 인식 체계가 불완전하기에(보고 싶은 것만 보려는 지향성을 갖기에) 더욱 가치를 지닌다. “거리를 둬 봐. 그 이미지가 아닌 이 이미지를 봐!”라고 외치는 기능은 유효하므로. 전시 제목이 ‘암각화 또는 사진’인 이유는 암각화 사진을 경유하며 전시는, 사진의 존재가치를 향해 있음을 드러내 보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도경 | 기자

〈탐블르이, 카자흐스탄〉 잉크젯 프린트 2017 제공: 뮤지엄 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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