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미술과 通한 사람들 – 암에 대한 시각예술적 리서치_노상익
암에 대한 시각예술적 리서치
외과의사 노상익
‘C25.0 췌장암, 전씨, 81세/남, 서울 홍은동 거주
수술은 성공적이었으며 그의 통증, 황달, 전신쇠약은 해소되었다.
3기 췌장암 수술 후 항암/방사선 치료를 받으며 14개월을 생존하였고 2011년 1월 12일 사망하였다.’
연작 ‘Biography of cancer’ 중 세 번째 부분 ‘RESULTs’ 작업에 포함된 도큐먼트의 일부이다. 환자의 개인자료, 임상차트 기록, 여러 가지 감시 장치의 모니터링, 다양한 검사결과, 수술 등 일반인이 보기엔 난해하고 이해불가능하며 무미건조한 기록물들이 병원의 캐비닛과 전자차트에서 튀어나와서 전시장에 걸릴 수 있는 이유는 이런 기록물들이 품고 있는 다양한 의미 때문이다. 이 작업은 고통을 받고 있는 ‘암환자’에 대한 것이 아니다. 동시대에서 감추기에는 너무 흔해진 ‘암’이라고 하는, 불멸하는 질병의 내면으로 들어가서 성격을 이해하고 행동의 수수께끼를 풀어내려는 시도이며 그것이 가지고 있는 비유적, 의학적, 과학적, 사회적 함의를 탐구하는 작업이다.
2008년 전 세계적으로 760만 명이 ‘암’으로 사망하였다. 이런 비극적인 세계지표 위에서 작업이 시작되었다. 의학 논문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리서치였다. ‘암’을 둘러싼 다양한 함의에 대하여 시각예술적 질문을 던지려고 하는데 그것이 어쩔 수 없이 과거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감지하고 나서 우선 과거의 자료를 뒤지기 시작했다. 이미 흘러갔지만 아직 흘러가지 않고 정지 상태에 있는 엄청난 분량의 자료들이 우글거리고 있었다. 물리적으로는 지나간 시간이지만 그 시간이 아직도 에너지를 가지고 살아 있음을 느꼈다.
먼저 자료 수집의 룰을 만들고 리스트를 완성한 뒤 다양한 루트를 통한 접촉을 시도했다. 자료의 양이 많아지고 현대예술이 포용할 만한 수사를 포함시키기 위한 사고의 전개와 고리를 풀기 위해 체계적인 방법론이 필요했는데, 이미 말랑말랑한 머리는 한참 지난 후여서 어쩔 수 없이 가장 익숙한 의학 논문의 형식을 차용했다 (효과적이기는 하다). 의학 논문과는 전혀 별개의 작업을 하려는데 방법은 그것과 똑같은 것을 사용하니 아이러니했다. 작업을 ‘Introduction’ ‘Material and Method’ ‘Result’ ‘Conclusion’ ‘Discussion’의 다섯 부분으로 나누었고 현재와 미래의 자료를 위해 전향적 데이터베이스도 구축했다.
실제 작업에서는 다양한 함의의 내러티브를 포함하기 위한 이미지의 컨텍스트가 중요했고 도큐먼트와 사진자료의 발굴, 생산뿐만 아니라 수용되는 지점까지 고려해야 했다. 이러한 것들에 실패하면 어떤 수사를 가져다 붙여도 단순히 자료를 수집해서 나열하고 보여주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이 작업은 ‘암’을 매개로 만나게 되는 의사, 환자, 그 주변사람들의 그칠 줄 모르는 투쟁, 환상, 희망, 절망, 죽음과 생존에 대한 작업이다. 작업에 등장하는 환자들은 존재하며, 실제로 내가 만난 이들이다. 신원을 보장하려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지만 인지 못하는 와중에 공개된 것이 있을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부디 그들의 신원과 영역을 존중해 주기 바라고, 이러한 시각자료가 훗날 2000년대 초반을 살았던 한 외과의사가 남긴 가치 있는 아카이브가 되기를 희망한다. ●
노상익은 서울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현재 간담췌외과 전문의로 서울중앙보훈병원에서 근무 중이다. 암 환자들의 진단에서부터 진료, 수술, 수술 이후에 이르기까지의 전체 과정을 기록한 자료들을 선별하여 작업을 하는 작가로도 활동 중이다. 2012년에는 란 타이틀로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그의 작품이 궁금하다면 홈페이지를 방문하면 된다.
홈페이지: http://jasonnoh.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