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미술과 通한 사람들 – 조선 초상화는 왜 자랑스러운가_이성낙

조선 초상화는 왜 자랑스러운가

피부과 의사 이성낙

필자가 초상화에 눈을 뜬 계기는 반세기 전 의과대학생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뮌헨 의과대학 마르히오니니(Alfred Marchionini) 교수는 학기 마지막 피부학 강의를 ‘미술품에 나타난 피부 질환’이란 주제로 마무리하였다. 저런 시각에서도 예술에 접근할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깨우쳤다. 그 강의는 필자가 피부학을 전공하며 서양 초상화에서 병변(病變)을 찾는 ‘습관’을 가지게 된 동기가 된다.
1975년에 귀국하며 동양화에서는 피부 병변을 찾아볼 수 없겠지 하는 막연한 생각을 하였다. 부끄럽지만 동양화 하면 아름다운 산수화만 생각하였나 보다. 그런데 어느 날,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조선시대 초상화를 만난다.
《 한국귀인초상대감(韓國貴人肖像大鑑)》을 편찬한 이강칠(李康七, 1926~2007) 선생을 만나는 큰 행운이 따랐다. 선생은 조선시대 초상화가 얼마나 꾸밈없이 정교하면서 정직하게 제작되었는지를 강조하며《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숙종 14년, 1688)에 정확히 기록된 초상화 제작 지침을 필자에게 가르쳐주었다. 즉 ‘한 가닥의 털(一毛), 한 올의 머리카락(一髮)이라도 달리 그리면 안 되었었다’고. 이는 필자의 논문 <초상화에 나타난 백반증(白斑症) (Vitiligo auf einem historischen Portrat)>이 독일 피부학 전문 학술지《DerHautarzt》(1982)에 실리는 것으로 이어졌다. 논문에서 초상화에 나타난 병변인 ‘하얀 피부’와 정상 피부의 경계 부위가 불규칙하게 더 검게 그려진 것은 초상화의 안료(顔料)가 변색된 결과가 아니라, 백반증의 전형적 증상인 경계과색소침윤(境界過色素浸潤, marginal hyperpigmentation)이 선명하게 묘사된 것임을 지적했다. 즉 병변이 임상적으로 활성화하면 더 검게 되었다가 하얗게 변하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번져 나가는 임상적 현상과 일치한다고 했으며, 조선시대《 승정원일기》를 인용해 임상적 신빙성을 뒷받침한다고 주장했다. 편집위는 이 논문의 임상적 과학성을 인정해 학술지에 게재하였다. 이는 조선 초상화가 과학적으로 인증 받은 생생한 증언이다. 한국 미술사에 큰 이정표라 아니할 수 없다.
spec15-4대학원 과정에서 필자는 조선시대 초상화를 더 넓게, 더 깊이 연구하면서 초상화에 담긴 사회성에 눈을 돌리게 된다. 유럽 초상화에서는 예상보다 적게 피부 병변을 확인할 수 있고, 동양 초상화의 종주국이라고 할 수 있는 중국 초상화에서도 드물게 볼 수 있으며, 일본 초상화(고승의 초상화 예외)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는 사실에 눈을 뜬다.
특히 두창(痘瘡), 일명 마마병(媽媽病, small pox)과 초상화를 키워드로 동양 초상 미술사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게 된다. 관련 문헌을 살펴보면 명(明) 태종(太宗) 주원장(朱元璋, 1328~1398)이 두창에 감염되었던 점. 17~19세기에 한반도는 물론 중국과 일본 열도에서도 전염성이 강한 두창이 만연했는데도 두창의 상흔(傷痕)을 중국 초상화에서는 아주 드물게 볼 수 있고 일본 초상화에서는 전혀 볼 수 없는 데 반해 왜 조선시대 초상화에서만 두창의 상흔을 쉽게 볼 수 있는가라는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중국과 일본에서는 화가가 대상자의 얼굴을 화폭에 옮기면서 두창의 상흔을 ‘있는데도 못 본 듯’ 주관적으로 그렸고 조선의 화가는 대상자의 얼굴에서 보이는 피부 병변을 우직하리만큼 정직하게 ‘있는 그대로, 보이는 그대로’ 화폭에 옮긴 것이다. 조선 초상화는 과시성과는 거리가 먼, 거부감을 줄 수 있을 피부 증상마저 가감 없이 화폭에 옮겼다는 사실과 맥을 같이한다.
더욱 경외(敬畏)스러운 것은 심한 두창 상흔이 있는 ‘외모 장애자’인데도 초상화의 대상자들이 영의정을 비롯해 높은 관직에 올랐다는 사실에서 당시 사회의 포용성을 보았다. 당시 선비 사회의 정서가 오늘날 우리 사회에 던지는 조용하지만 강한 메시지이다. 조선 초상화에는 자랑스러운 조선의 시대정신(Zeitgeist)이 고스란히 담겨있어서다. ●

이성낙은 피부과 의사를 은퇴하고 미술사학을 전공하기 위해 일흔이 넘은 나이에 명지대 미술사학과 대학원생으로 돌아갔다. 2014년 《조선시대 초상화에 나타난 피부 병변(病變) 연구》로 석사논문을 썼다. 독일 뮌헨 유학에서 귀국 후, 1975년부터 전국 박물관과 사찰, 사당을 찾아다니며 조선시대 초상화를 살펴보고 우리 그림에 나타난 피부병을 연구해왔다. 현재 가천의대 명예총장이자 (사)현대미술관회 회장직을 맡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