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미술과 通한 사람들 – 판소리와 풍속화, 조선후기 아방가르드 예술
판소리와 풍속화, 조선후기 아방가르드 예술
국어국문학과 교수 김현주
판소리를 학문적으로 연구하는 나에게 그림은 더 이상 한가롭게 감상하고 즐기는 여기적 대상이 아니다. 언제부터인가 풍속화는 내 학문 속 깊숙이 들어와 앉아 자기를 학술적으로 대우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건 어찌보면 불행한 일이다. 학문적으로 연결되면 그림이라는 즐거움의 대상도 괴롭게 여겨지기 때문이다. 나는 요즘 풍속화를 학문적인 시선으로 골똘하게 바라봐야 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판소리와 풍속화가 지닌 비슷함에 푹 빠져버린 것이다.
풍속화가 판소리 연구자인 내게 의미를 지닌 존재로 다가온 건, 처음에는 신기한 현상일 뿐이었다. 대학 시절 서예와 동양화를 공부한 적이 있었는데 산수화도 좋았지만 풍속화에 관심이 더 많이 갔다. 풍속화에 보이는 유려한 붓놀림을 흉내내면 붓글씨를 활용한 새로운 묵화가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얼토당토않은 생각을 품어봤던 것이다. 어쨌든 김홍도와 신윤복을 비롯해 윤두서, 조영석, 강희언, 김득신 등 많은 풍속화가의 작품을 뜯어봤던 그때 경험이 판소리를 본격적으로 공부하면서 되살아날 줄은 꿈에도 몰랐던 일이다. 특히《춘향전》에서 이도령과 방자가 광한루 구경을 나갔다가 그네 뛰고 목욕하는 춘향을 발견하고 혹하는 묘사 장면이라든가, 야밤에 춘향집으로 은밀하게 이동하고 춘향과 통정하는 모습을 그리는 장면을 읽으면서 나는 곧바로 혜원의 <단오풍정>, <월하정인>, <야금모행>, <연소답청>, <삼추가연> 등의 그림들을 머리에 떠올렸던 것이다. 마치 춘향전 작가가 그런 그림들을 보고 서술한 것은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물론 화공이
《춘향전》을 읽고 그런 그림을 그렸을 수도 있다는 거꾸로의 논리도 가능하다. 이렇게 신기한 그림과 사설의 연상작용이 판소리와 풍속화를 연결하는 내 이력의 첫걸음이 되었다.
처음엔 정황상의 유사함에서 시작되었지만 좀 따져보니 판소리와 풍속화 양자가 만나는 지점이 한둘이 아니었다. 대상을 클로즈업한 상태에서 아주 자세하게 뜯어보는 사실주의적 성향을 보인다든지, 당시 금기시되는 환경 속에서 과감하게 성적 노출을 감행한다든지, 대상을 희화화하여 우스꽝스럽게 표현한다든가, 여러 각도의 시선들을 배치하여 자유분방하고 발랄한 관점을 드러내는 구조상의 상동성 같은 것도 볼 수 있었다. 양자가 비슷해진 것은 시대적인 상황과 분위기가 밑바탕이 되었겠지만 둘 사이의 상상력 차원의 교류도 작용하지 않았겠나 판단된다. 소설 작가에게 당시의 풍속화나 민화가 주는 회화적 상상력이 어느 정도는 작동하지 않았을까.《춘향전》의 언어 자질을 정밀하게 따지다보면 강렬한 시각적 어휘소(語彙素)들이 널려 있음을 보고 놀라기도 한다. 어떻게 이런 강렬한 원색의 색채소, 매우 역동적인 형상소와 동작소가 나타나게 된 것일까? 그건 당시의 색채와 운동감각을 주도했던 풍속화와 민화를 빼고 말하긴 어렵다고 본다.《춘향전》 언어의 이러한 회화성은 춘향전의 영상화 작업이 빈번하게 이루어지는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고 난 보고 있다. 임권택 감독의 <춘향뎐>에서 춘향이 그네를 뛸 때 흰색 붉은색 꽃들이 어지럽게 떨어지는 장면을 카메라가 잡고 있는데, 그건 ‘백백홍홍난만중(白白紅紅爛漫中)’이라는《춘향전》 언어를 가지고 고민한 결과가 아닌가. 소설 작가에게 회화적 상상력이 작동한다면, 풍속화가에게는 소설적 상상력이 작동하지 않았을까. 신윤복의 <혜원전신첩> 소재 그림 대다수는《이춘풍전》이나《왈자타령》,《절화기담》 등과 같은 당시의 세태소설들과 테마, 분위기, 정조, 표현방식 등에서 상당한 유사함을 보이고 있다. 이로 미루어보건대 혜원은 유곽이 있는 뒷골목과 거기 사람들의 생태를 꿰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세책가의 소설본들을 빌려 읽는 데도 관심이 아주 많았던 듯하다.
내가 풍속화와 판소리에 견인되었던 이유의 하나는 화공과 광대의 그 치열했던 삶에 공감하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숱한 난관에도 불굴의 의지로 그림과 소리를 하나의 예술로 승화시켰다. 판소리 광대들은 천민으로부터의 계급적 해방, 그리고 무당 집안으로부터의 탈출이라는 비원을 소리에 담아내고 있고, 풍속화 화공들도 신분의 한과 사회적 냉대 등의 환경 속에서 시대정신을 화폭에 담으려고 혼신의 힘을 다했다. 그들의 도전적인 실험정신과 투철한 장인정신이 없었다면 전대에는 존재하지 않다가 조선 후기에 찬연하게 등장한 아방가르드 예술로서의 풍속화와 판소리가 그렇게 높은 수준으로 도약하지는 못했으리라.
내가 문화사적인 전체 맥락 속에서 조선후기 문학과 판소리를 보고 있는 한 풍속화는 아마도 역동적인 모습으로 항상 내게 다가올 것 같다. 거울처럼 상대가 되는 장르를 비추면서 문화론적인 반사작용을 할 것이므로. ●
김현주는 서강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춘향전의 연행론적 연구》를 박사학위논문으로 썼다. 현재 서강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고전서사체 담화분석》 《구술성과 한국서사전통》 《판소리 담화 분석》등을 저술했다. 판소리와 풍속화를 소설과 회화적 상상력으로 서로 소통하는 존재로 보고 시대적 배경을 바탕으로 연구한 《판소리 소설을 읽으며 풍속화를 보다》를 펴냈다. 이 저서에서 정조시대 문학과 회화에 주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