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미술과 通한 사람들 – 그림이 법의학과 만나니 억울함의 탈도 벗겨지더라_문국진

그림이 법의학과 만나니 억울함의 탈도 벗겨지더라

법의학자 문국진

인권이 침해된 범죄사건이 발생하면 법의학적 감정(鑑定)을 의뢰하게 된다. 이때는 사람만이 아니라 각종 증거물들이 대상이 되며, 사인(死因)을 밝히기 위해서는 시신도 부검한다. 만일 시일이 오래 경과하여 시신이나 증거자료가 없는 경우에는 속수무책으로 손을 놓게 되는 것이 지금의 법의감정 분야 실정이라 하겠다. 필자는 이러한 경우 고인과 관계되는 문건이나 창작물이 남아 있다면 이를 분석해 법의학이 목적하는 인권의 침해 여부를 가려낼 수 없을까를 생각해왔다. 이런 생각의 이면에는 정신의학에서의 병적학(Pathography)
이 있었다. 이미 고인이 된 문호나 장인들의 작품을 대상으로 정신분석을 실시함으로써 살아생전 작가의 정신적 질병이나 당시의 심리상태 등을 알아내는 것이 바로 병적학이다. 현존하지 않는 인물이라 할지라도 그들의 문헌이나 작품 분석을 통해 고인의 정신분석이 가능하다는 것은 법의학계에서도 매우 고무적인 것으로 생각 되었다. 따라서 고인의 유물이나 문헌 및 작품 등을 통해 법의학 분야에서도 사인이나 인권의 침해 여부를 추출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고, 가능성 여부를 시험해보기에 이르렀다.
spec19첫 번째 시험 대상은 화가 반 고흐의 작품이었다. 그는 권총 자살을 시도했는데 이틀이 지나서야 사망했기 때문에 타살 또는 사고사라는 의견이 분분했으며 사인에 대해 많은 의문을 남겼다. 필자는 그의 작품과 문헌들을 면밀히 검색하여 그의 사인은 ‘총상으로 인한 급성법발성 복막염’이며 ‘자살’이라는 것을 알아냈고, 이를《 반 고흐 죽음의 비밀》(2003)
이라는 저술로 펴낸 바 있다. 각종 문건의 분석을 마치 시체를 부검(剖檢)하듯 시행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이러한 문헌검색을 ‘문건부검(Book Autopsy)’이라 칭했다. 그리고 남아 있는 창작물 등의 흔적을 탐지하고 탐구하여 진실을 밝힌다는 의미에서 법의학의 이런 분야를 ‘법의탐적론(Medicolegal Pursuitgraphy)’이라 칭하기로 했다. 법의탐적론의 대상이 되는 각종 창작물 중에서도 미술작품이 가장 좋은 분석 대상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화가는 역사화나 인물화 등을 그릴 때 시대가 부여하는 목적의식을 표현하기 위해 고증을 참작하고 철학적 지성과 자신만의 미적 혼(魂, 예술적 영감)을 융합해 작품을 완성하기 때문에 미술작품은 곧 그 환경과 시대를 증언하는 무언의 증인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림을 감상하는 것은 보는 이의 안목과 전문성에 따라 그 해석에 차이가 생길 수 있다. 즉 어떤 의미에서는 그림을 감상한다는 것은 진정한 의미에서는 그 행위자체가 제2의 창작행위라 할 수도 있다. 이는 그림을 보는 감상자 각자의 경험과 전문성에 따라 마음속에는 자기만의 독특한 감상결과가 생겨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그림을 감상할 때 화가의 미적 기교보다 현 시대적 비판에서 우러나는 인간의 존엄성을 어떻게 이해하고 표현했는지를 중점적으로 봤다. 그 결과 명화들 가운데는 인권에 대한 침해를 경고하고, 인권의 수호를 찬미하는 등의 여러 형식으로 표현된 작품들을 만날 수 있었다. 때로는 애매모호한 표현으로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킨 것도 있었다. 즉 스페인의 거장 고야의 <벌거 벗은 마하>(1800)의 모델이 누군가에 대하여 작가가 함구하였기 때문에 사회적 문제로 비화해 200여 년간 의문의 화제가 되어 오던 것을 작품들의 법의탐적론적 분석으로 모델은 알바 공작부인이 아니라는 것을 가려내어 오랫동안 불명예스러운 소문에 시달리던 알바공작 가문이 이제는 떳떳해질 수 있게 되었으며, 고인이 된 알바 공작부인의 영혼도 시름을 풀고 고이 잠들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미술작품의 법의탐적론적 분석으로 억울했던 누명을 벗길 수 있었다는 것은 이 학문의 필요성을 말해주는 쾌거라 하겠다. 동시에 앞으로 이 분야의 연구가 더욱 활발해질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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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국진은 대한민국 1호 법의학자이자 국과수 창립 멤버이다. 1925년생으로 서울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국과수에 들어가 법의관으로 활동했다. 대학교 3학년 때 우연히 본 후루하다 다네모노가 쓴 《법의학 이야기》에서 “사람에게는 생명도 중요하지만 권리도 그에 못지않게 소중하다.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의학이 임상의학이라면, 사람의 권리를 다루는 의학은 법의학이다.”라는 구절을 읽고 법의학의 길에 들어섰다. 일선에서 물러난 이후에도 예술가의 사인(死因)과 작품을 의학적 관점에서 규명하고 해석하는 ‘법의 예술 병적학’ 분야로 여전히 수사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