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공간 점유하기, 삶의 균형을 위해
contents 2014.02. Special Feature | 공간 점유하기, 삶의 균형을 위해 |
위 왼쪽・정승혜 <Dear. 여린 과거를 지킨 강건한 당신을 위해>
가변크기 혼합매체 2013 오른쪽・조혜진 <나선형 기둥을 가진 종려나무> 인조 도시루 나무 석고 160×160×220cm 2013 아래・조재영 <Sculpture in the blank> 카드보드 인화지 작업실에서 옮겨온 물품 2013 |
위・이홍한 <354-77>
철 260×250×225cm 2013 가운데・이미래 <일본식 꽃꽂이 조각> 석고 시멘트 먹 단열재 나무 차간막 가변설치 2013 아래 왼쪽・이수진 <Lumizing Sequence> 목재 끈 혼합재료 가변크기 2013 오른쪽・김정은 <Where is your destination-waving the green road> 지도 책 110×27×79cm 2011 |
김다움 <If someone hates u for no reason give that jerk a reason> 벽에 상감기법 드레멜 칼 퍼티 아크릴 가변크기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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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왼쪽・김종희 <흔들리지만
흔들리지 않는> 흰 회기 위에 회색 자수 삼각대 88×215cm 가변설치 2013 오른쪽 위・김상진 <Meditation> 목탁 스피커 방석 혼합재료 200×200×40cm 2013 아래・김덕영 <Making Crack (Push or Pull)> 합판 각재나무 수성페인트 가변크기 2013 |
왼쪽 위・강준영 <Nostalgia+This is it>
glazed ceramic turntable 50×50×52cm 2010 아래・임유리 <삼십살의 캠프파이어> waste wood magnifying glass stained glass film bamboo blind grill butane gas solid fuel fire extinguisher 가변크기 2013 오른쪽 위・추미림 <WWW. the world where we live in> 혼합매체 설치 2011 가운데・정운 <하나의 검은 프레임과 하나의 흰 프레임> IKEA 흰 나무 액자 검은 나무 액자 120×90cm 80×90cm 2011 아래・정문경 <Fort> used clothes mixed media 300×300×270cm 2013 |
위 왼쪽・정효영 <Supersensible clash> needlework on artificial leather thread toys wood
wire hose table motors sensor LED light 110×65×170cm 2011 오른쪽・정기훈 <무동력 여행> 나무 부표 로프 천 105×210×220cm 싱글채널비디오 35초 2014 가운데・서영덕 <Meditation 11> Chain 50×40×70cm 2013 아래 왼쪽・오종원 <짓다> A4용지 가변설치 2012 가운데・민진영 <The green stairs 2> Fabric acrylic LED Lights 210×150×170cm 2013 오른쪽・오완석 <0+play> pemat installation 2013 |
왼쪽 위・이병찬 <Laputa, urban-creatures>
설치 2013 복합문화공간 에무 전시광경 가운데・최윤석 <올해의 질량 2012Mass of the Year> 2012 한 해 동안 수집한 영수증 가변크기 2012~2013 아래・이수성 <낙원> 나무 250×250×120cm 2013 한국현대문학관 입구 설치광경 오른쪽 위・이지아 <명자> 오브제 설치 280×260cm 2012 가운데・김준명 <무제(playing god)> 세라믹 가변크기 2012 아래・권용철 <Chain Reaction_ The movement series_study00> 혼합재료 가변설치 2013 |
위・유화수 <드라마 세트장에서 일을 하는 작가>
나무 석고보드 장판 벽지 시트지 4×2.5×3m 2013~ 가운데・강한별 <Dawn> 가변크기 설치 2013 아래 왼쪽・송유림 <When it turns to something awful> 복합매체 가변크기 2012 오른쪽・박영진 <마주하기로> wood glass acrylic mirror 180×90×110cm 2012 |
왼쪽 위・윤하민 <누가 사냥을 하든지
간에_스테인드글라스> 창문에 드로잉 61×88cm 2012 아래・염지혜 <외국인(Solmier)> 싱글채널비디오 조각 3분39초 컬러 사운드 스틸 우레탄폼 빵 전등 오른쪽 위・김수환 <즐거운 나의 집> 영상 아크릴 채색 수집된 비닐 스티로폼 플라스틱 병 사운드 4분45초 245×520cm 2012 가운데・권동현 <철거 표식을 위한 위장무늬 #2> 디지털프린트 150×225cm 2012 아래・천성길 <풍선 코끼리> 합성수지 우레탄도료 2013 |
위・이종건 <Blue sky> Engraving on antique hardwood flooring enamel Paint 180×378.5×7cm 2013
아래・길종상가 <네(내) 편한세상> 대림미술관 프로젝트 스페이스 구슬모아 당구장 설치광경 2013 |
일반인과 달리 특정한 날짜와 시간개념의 기복이 심해, 며칠 동안 작품 제작하는 것도 모자라 단기간 아르바이트나 언제 잘릴지 모를 대학 강사, 새로운 작품을 끊임없이 구상하며 국내외 유수한 레지던시 공모에 응모하고 떨어지기를 반복하는 것, 이것이 나의 일상이 다. 그리고 그 결과에 따라 몇 안되는 젊은 작가들 사이에서 명과 암이 극명하게 갈라지는데, 이것은 매번 승자독식의 경쟁. 어느 한쪽 의 희생을 전제로 한다. 이 험난한 길은 자연히 작가로서 인정받거나 작품전시에 기회를 받기 위해 미술제도권 내에 끊임없이 자신을 노출할 것을 요구한다. 그 길에서 작품이 잘 팔리는 스타작가, 안 팔리는 작가, 미술교수이면서 작가, 기타 등등의 작가로 분류되고 선택된다. 7할은 네오룩과 같은 웹사이트에 올라오는 공모전과 전시 정보, 월간지에서 소개되는 현대미술 작품과 작가들을 보며 꿈을 키워나가지만, 이 꿈은 좇 아 올라갈수록 허망하기만 하다. 선택된 작가가 아니라면 온갖 공모전과 레지던시 입주작가 선정 심사를 통과해 그 기회를 받아야 되는 데, 이럴 때는 과정 없이 잘 짜인 작업의 형태로만 평가받아야 한다. 그때마다 마주하는 심사위원들에게 작업에 대한 오해를 받으면서, 결과야 좋든 나쁘든 유통기간(수혜기간)이라도 주목받고 싶어서 다시 지원하게 된다. 이 사회에서 젊은 예술가로 살아가는 것은 다른 사람들과 달라도 너무 달라 현재 수만하은 젊은 작가가 어려운 처지에 중도포기해야 되는 기로에 서 있다. 이러다간 젊은 작가의 씨가 말라버릴 지도 모른다. 나는 지방대를 나와서 예술의 중심인 서울로 편승하기 위하여 수많은 수도권 전시와 레지던시에 공모하여 젊은 작가로서의 기회를 얻고자 했다. 지난 2006~2007년 무렵, 대학원 재학 중에 운전의 경험을 표현한 <야간운전> 시리즈는 메이저 공모에 선정되며 작품이 하나, 둘 팔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2008년에 미술시장의 거품이 빠르게 꺼지면서, 그림은 팔리지 않았고 형편은 곧 어려워졌다. 그것은 유년시절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종사하신 택시기사 직종이 한때 는 선망의 대상이었지만,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보잘것없는 직업으로 몰락하는 과정과도 같았다. 이렇듯 자본주의 사회에서 미술제도 권 역시 젊은 예술가들에게는 보장받는 삶이란 로또와도 같다. 그렇기 때문에 나 역시 매번 갱신되는 예술구조 속에서 살아남을 길을 택하려면, 작품을 판매하거나 각종 레지던시와 지원금을 받아 활동을 유지할 수밖에 없다. 다른 젊은 작가들은 어떻게 살아나가고 있 을까? 그리고 나는 누구의 어떤 모습을 보고 배워야 할까. 그래도 나는 이런 불안한 삶 속에서 젊은 작가라는 이름으로 특권을 누리고 있다는 생각은 여전하다. 과거 독재정권과 맞서 싸웠던 선배 세대들은 진지함을 너머 참혹함 속에서 견뎌냈다고들 한다. 그런데 내가 바라보는 현재의 풍경들은, 대다수가 미술판에서 기득권 행사나 정당성을 주장하는 것으로 자신만의 경쟁력을 갖추는 것 같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젊은 작가가 살아남을 수 있는 경우는 돈 걱 정 없는 집에 태어나 작업하는 것, 돈 많은 배우자를 만나는 것, 돈과 권력이 있는 계층과 네트워크 파워를 갖추는 것, 어떻게든 SNS와 방송 출연으로 화제를 몰고 가며 활동하는 것뿐인가? 혹시 조용히 작업하면서 시스템이 붕괴되어 새날이 올 때까지 묵묵히 작품 활동을하면, 작가로서 정당한 생활을 유지하는 시 대를 맞을 수 있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이 시대에 오직 작품으로 만 인정받을 수 있는 문화적 인프라는 없는 것일까? 많은 사람이 불확실성의 시대라고 지적하면서 ‘나만의 경쟁력’을 갖춰야만 행복해질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오늘날. 이런 사회 속에서 ‘예술 로 세상을 바꿔보겠다’라는 말도 안 되는(물론 그럴 능력도 없겠 지만), 그림도 그리고 다양한 예술 프로젝트를 통해 일개 작가로 서 사회 변화에 조금이나마 기여할 수 있는 예술을 한다는 것은 망상일까? 승자 독식의 구조가 아닌 공생의 관계로서 사회와 더 불어 예술의 길을 함께 찾아갈 수는 없을까? 그리고 내가 수혜를 입을 때 뒤에 있던 작가들과 후배들을 위해, 장차 내가 받은 것을 일부라도 돌려줘야 할 책임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 |
홍원석 <멈춤의 다리> 캔버스에 유채 720×1000cm 가변설치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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