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NEW FACE 100

contents 2014.02. Special Feature | NEW FACE 100
동덕여대에서 <우수졸업작품전>을 개최하고 10회에 걸쳐 진행한 이유는 무
엇인가?

‘미술의 향방’이라는 첫 번째 전시의 제목이 시사하는 것처럼 이제
막 작가가 되려는 사람들을 주목해 앞으로 미술이 어떤 방향으로 갈 것인지
제시해보자는 것이었다. 동덕여대 회화과가 그 바탕을 제공하고 서울과 수도
권 대학이 협력관계에서 교류를 해보자는 취지에서 시작했다. 우리 학생들만
내부적으로 주목하자는 것이 아니라 문호를 개방해서 졸업생의 작품을 한자
리에서 볼 수 있는 장을 마련하자는 것을 학교 공식행사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중간에 커다란 부침이 있었지만 그 와중에도 지속
할 수 있었던 것은 이 전시를 계속하겠다는 교수들의 의지 덕분이다. 현실적
인 얘기를 하자면 큰 액수는 아니지만 매년 학교가 일정 정도 예산을 지원했
는데 올해는 공식적인 지원이 없었다. 이번 전시는 학과 내부 재정으로 진행
한 것이다. 참여자들에게 따로 참가비도 받지 않고, 디스플레이도 우리과 교
수와 학생들이 다한다. 대규모 전시는 아니지만 전시를 준비하고 도록을 제작
하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10회에 걸쳐 전시를 지속하다보니 각 대학에서 관례적인 행사처럼 여기고,
별 의미가 없는 것으로 인식하는 것 같은데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 전시
는 졸업생들이 모여 친목 도모하자는 취지가 아니다. 졸업전에 출품한 작품
중에서도 우수한 작품을 선보이는 전시이다. 그런 점에서 참여 대학과 참여
학생부터 지지해주고 의미를 부여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1999년에 열린 <공장미술제>를 비롯해 2000년 초 젊은 작가와 관련된 전시
가 쏟아졌다. <우수졸업작품전> 역시 당시의 추세를 반영한 것이라 볼 수 있
나?

확실히 당시는 한국 현대미술계가 ‘영아티스트’, ‘신진작가’를 화두로 하
고 있을 때였다. 대학이 보수적이고 변화를 빨리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해도
이 시기에 우리 대학은 동시대미술의 경향성에 반영한 것으로 본다.
1999/2000/2001년 이 시기는 어떻게 보면 미술의 골든 에이지였다. 미술
이라는 굉장히 추상적이고 모호한 개념이 가장 중요했던 시기로 에너지가 넘
쳤고 다들 그 흐름을 타는 데 바빴다. 이후부터 미술 개념보다 작가 지원기금, 레지던스, 미술시장 등 미술 제도가 우월해졌다. 상황이 역전된 것이다. 원래
예술가를 지원하기 위해 생겨났는데 지금은 이 제도와 시스템을 운영하기 위
해 역설적으로 젊은 작가라는 자원이 필요해졌다.
요즘에는 정말 젊은 작가들이 참여하는 전시가 많은데 그중에서도 이 전시의
특징이나 역할이 있다면 무엇인가?

날것 상태로 보여지는 첫 번째 무대. 그
게 이 전시의 큰 의의다. 각 대학의 졸업작품전도 있지만 각각 대학의 파편화
된 전시와 당대의 스펙트럼을 만들어내는 이 전시는 다른 얘기다. 여기에서
대단한 스타 작가, 이머징 아티스트를 뽑아내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다른 공
모전에 해당할 것이다. 이 전시는 이름 자체도 노골적이다. 근데 이 상태에서
제대로 의미부여가 되지 않으면, 작가로서 성숙해질만한 연결고리를 찾지 못
하고 자신이 작가라고 떵떵거리게 된다. 대학을 졸업하고 미술을 하는 것이
무엇인지, 미술계에서 어떤 식으로 커뮤니케이션하고, 어떤 작업을 해야 하
는지, 작가들은 스스로 공부하면서 성장해야 한다. 작가들은 아시아프에 출
품하는 것과 프로젝트 스페이스 다방에서 전시하는 것을 똑같이 생각한다. 여
기 심사하는 사람들 역시 사람이 달라도 인식이 다르지 않다. 각각의 포지션
을 엄격하게 인식해야 한다.
그동안 참여 작가들을 살펴보면 어떤 변화가 보이나.
이번 전시 도록에 그간
참여 작가 500여 명 중 현재 활동하는 작가의 근작을 담은 아카이브를 수록했
다. 시간이 지나서 작가로 남은 사람은 정말 소수다. 시간의 마모가 크다. 작
가들은 버텨야 한다. 전반적으로 미술대학 학생들이 가지는 감수성과 테크닉
좋고 자기주관적인 그림이라는 점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미술에 대
한 태도는 달라졌다고 본다. 그림이 사적인 게 아니라 그림 그리는 게 사적인
일이 되어버렸다. 작업이 고백적인 것이 아니라 너무 노골적으로 솔직하고 소
박하다. 이것은 한국 사회 젊은 세대의 문화적 삶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성적
으로 매우 민감해졌고 의식의 장벽, 가치판단이 없어졌다. 그렇다고 창조적
상상력이 확장된 것은 아니다. 페이스북에 자신의 누드나 일상을 노출하는 것
과 마찬가지로 예술을 이해하는 것이다. 예술가가 된다는 것에 대한 정체성이
없는 상태에서 예술가라는 이름이 부여되는 것이 문제다.
요즘 젊은 작가들은 작업하는 것만큼이나 살아가는 것 자체에 대한 고민이 많
아졌다.

지금만큼 예술과 사회가 동일화된 적이 없다. 문제는 예술과 삶이 너
무 밀착되어 있다보니 예술이 너무 희박해졌다는 것이다. 사는 것 자체, 생존
이 절체정명의 문제가 돼서 내가 자존감 가지고 산다는 것까지 삶이라면 예술
이 생계와 삶의 문제의 중요한 도구가 된 것이다. 예술과 생계는 층위가 다른
문제다. 먹고 사는 문제가 전부인 세계가 있는가 하면 그게 전부가 아닌 삶을
선택한 쪽이 예술계인데, 생계문제로 모든 것을 재단하니 예술이 없어진다는
얘길 하는 것이다. 예술가가 돈을 벌고 명성을 쌓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돈을
벌고 명성을 쌓기 위해 예술을 하는 것이 문제다. 예술을 하다보니 명성이 쌓
이고 돈을 벌게 된 것과는 인과관계가 다르다.

이슬비 기자

동덕아트갤러리에서 열린 설치광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