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FEATURE 시선의 정치, 동물원을 다시본다
인간은 동물의 한 종류이지만 자신을 동물로 취급하지 않는다. 동물원을 만들고 그 속에 동물을 넣어 인간과 구분해왔다. 동물원을 만들고 그 속에 동물을 넣어 인간과 구분해왔다. 동물원은 오랫동안 야생 동물을 길들이고 전시함으로써 신기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오락공간으로 기능해왔다. 한편 19세기에서 20세기에 걸쳐 제국주의자들은 식민지 원주민들을 데려다가 박람회장 또는 동물원 울타리 안에 가둬놓고 구경거리로 삼으면서 호기심을 충족시켰다. 문명과 야만을 구분하는 이 같은 행위는 그 자체로 야만에 해당한다.
근대 동물원은 서구의 발명품이며, 동물원의 역사에는 제국주의 시선이 배어 있다. 한국 최초의 동물원은 일제강점기 설립된 창경원 동물원이다. 왕실 건물 20여 채가 헐리고 동물원과 식물원이 생기면서 박물관도 함께 들어섰다. 동물원이 살아있는 생명체를 수집하고 전시하는 대상으로 삼는다면 박물관과 미술관은 예술가가 생산한 작품을 유리 진열대 안에 넣고, 작품에 손댈 수 없는 분위기를 조성해왔다.
최근 동물원은 인간이 동물을 관람하는 유희적인 공간에서 동물을 위한 공간으로 방향을 수정하며 동물의 가치를 깨닫고 나아가 인간과 동물이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우는 곳으로 진화하고 있다. 《월간미술》은 근대적 시각장치이자 제도적인 공간으로서 동물원과 박물관, 미술관을 함께 주목함으로써 수집, 분류, 보존, 전시와 교육의 기능에 내재된 인간 중심주의적 시선을 반성하며 인간이 동물을 대하는 근본적인 태도에 질문을 던지고자 한다.
동물원의 역사
동물원의 기원은 부와 권력의 상징으로 정원에 이국적인 동물을 전시하던 풍습인 미네저리(Menagerie)에서 비롯한다. 근대 이후 동물원은 수집, 보존, 교육의 장소로 변화하지만 한때 동물원, 박물관에서는 식민지 원주민이 이색적인 볼거리로 전시되었다.
<Menagerie Hermann van Aken> 석판화 1833
유럽에서는 16세기 귀족들이 부와 권력을 과시하기 위한 수단으로, 19~20세기 무역업자들이 영리를 목적으로 각각 이국적인 동물을 수집해 전시하는 미네저리(소규모 개인 동물원)가 크게 유행했다.
1899년 스미소니언 국립동물원에서 학생들이 곰에게 먹이를 주는 장면
독일 함부르크에 있는 하겐베크 동물원
유럽 최대의 동물 중개상인 카를 하겐베크가 1907년 세운 사립 동물원으로 창살 대신 해자(垓字)를 설치해 관람객의 눈에 여러 종의 동물이 야생의 상태처럼 어울려 생활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몰입 전시의 개념을 최초로 도입했다. 한편 세계 최초로 인간 동물원을 만든 곳으로 하겐베크 동물원의 옛 정문을 자세히 보면 가운데 코끼리, 기둥 위에 북극곰, 사자, 호랑이가 있고, 양쪽 가장자리에 원주민이 서있다. 한때 이 동물원에서는 동물과 인간이 함께 전시되었다.
1887년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필리핀 원주민 전시광경
런던 동물원의 펭귄 풀과 펭귄 비치 광경
러시아 건축가 베르톨드 루베트킨의 설계로 1934년 지어진 펭귄 풀은 당시로선 혁신적이었지만 은신처가 부족해 동물복지를 위해 2011년 펭귄 비치로 대체되었다. 폐쇄된 이후 현재 문화유산으로 전시되고 있다. 1828년 창립된 런던 동물원은 서커스 등의 동물 전시를 제외하고 전문가들이 주도한 세계 최초의 동물원으로 런던동물학회가 경영하고 있다.
1979년 창경원 동물원 광경
1909년 개원한 창경원 동물원은 한국 최초의 동물원으로 현재 서울동물원의 전신이다.
창경궁에 세워진 제실박물관 광경
1909년 대한제국기 황실에서 창덕궁에 세운 한국 최초의 근대적 박물관으로 국립중앙박물관의 전신에 해당한다. 1910년 한일강제합방 이후 이왕가박물관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2011년 파리 케 브랑리 박물관에서 열린 <인간 동물원 : 야만인의 발명> 전시 포스터
남아프리카 여성 사르키 바트만은 사후 박제돼 1974년까지 파리 자연사박물관에서 전시되었다. ‘호텐토트(유럽에서 코이코이족을 비하하는 말)의 비너스’로 불리던 사르키 바트만은 큰 엉덩이와 가슴 등의 특이한 외형 때문에 유럽을 돌면서 구경거리가 된 인물이다.
영화 <블랙 비너스>(2010) 스틸 컷
19세기 인종차별의 상징인 사르키 바트만의 이야기를 영화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