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FEATURE 아라리오를 아시나요?
우리 미술계가 아라리오를 주목하는 이유
이규현 이앤아트 대표
세계 미술사의 변화 뒤에는 언제나 뛰어난 딜러와 컬렉터가 있었다. 이탈리아 르네상스 미술은 교회와 메디치 가문이 있었기에 가능했고, 19세기 파리의 인상파 미술은 폴 뒤랑-뤼엘이라는 딜러의 눈이 있었기에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다. 20세기 초반 파리에서 전위적 작가로 ‘실험 단계’에 있었던 피카소와 마티스는 이들을 일찍 알아본 거트루드와 레오 스타인 남매라는 컬렉터가 있어서 클 수 있었다. 20세 후반 미국에서 추상표현주의와 팝아트가 세기를 바꾼 새로운 예술로 자리 잡은 데에는 리오 카스텔리 같은 뛰어난 딜러가 있었다. 미국 현대미술작품의 값이 치솟은 뒷 배경에는 물론 자국의 미술품을 사는데 돈을 아끼지 않았던 미국의 부자 컬렉터들이 있다. 중국 현대미술이 지금처럼 세계적으로 각광 받는 위치에 오른 데에도 당연히 중국의 미술시장과 중국 컬렉터들의 힘이 있었다.
전 세계의 역사까지 거창하게 가지 않더라도, 한 나라의 한 시대에서 예술 트렌드를 만드는 데에 딜러와 컬렉터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21세기 현대미술계에서는 어떤 딜러, 컬렉터가 영향을 끼치고 있을까? 아라리오의 김창일 회장을 빼놓고는 이런 이야기를 할 수는 없다. 2000년대 이후 우리나라 미술계가 변화해온 모습을 생각하면, 중요한 포인트마다 김창일 회장과 그의 ‘아라리오’가 있었다.
시외고속버스터미널, 백화점, 아라리오 갤러리가 나란히 들어서 있는 충남 천안시 신부동 일대는 전부 김창일 회장의 소유이면서 서울에서도 보기 힘든 재미있는 미술거리다. 코헤이 나와의 높이 13m 폭 16m 대형 작품을 중심으로 김인배, 수보드 굽타, 키스 해링 등의 작품들이 거리에 전시되어 있고, 그 옆 아라리오 갤러리에는 김창일 회장의 가장 유명한 컬렉션인 데미안 허스트의 <찬가>를 비롯해 아라리오가 소장하거나 전시하는 동서양의 첨단 미술작품들이 교체되며 보여 진다.
그는 천안의 얼굴을 바꿨고, 이를 통해 천안이라는 우리나라의 작은 도시의 이름을 세계에 알리기도 했다. 천안에서 시외고속버스터미널, 백화점, 외식사업, 갤러리를 운영하는 사업가로, 처음엔 천안 아라리오 갤러리로 시작해 딜러 겸 컬렉터로 점점 이름을 알렸다. 세계적인 미술잡지 《아트 뉴스》가 뽑은 세계 컬렉터 200명에 들어간 유일한 한국인으로 유명한 그는 ‘미술 사업’ 영역을 확장해 작년에는 서울과 제주도에 ‘아라리오’ 이름의 미술관을 지었다.
김창일 회장의 미술 컬렉션은 좋다 나쁘다를 떠나, 우선 우리나라에서 매우 새로운 것이었다.
김창일 회장 이전까지 우리나라에서 미술컬렉터나 미술관 설립자라면 으레 재벌가를 떠올릴 수 있었다. 특히 재벌가의 며느리로 대표되는 ‘여성 컬렉터’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들의 컬렉션은 해외미술의 경우 유럽과 미국의 근현대미술 대가들에게만 초점을 두었다. 김창일 회장의 ‘아라리오 컬렉션’은 이런 세상에 나타난 참 새롭고 다른 컬렉션이었다.
김창일 회장이 등장하기 전에 국내에서 세계적인 현대미술 컬렉터로 꼽힐만한 사람은 삼성미술관 리움 홍라희 관장이 유일했다. 그런데 홍 관장의 리움 컬렉션만해도 이미 서양미술사에 안정적으로 자리 잡은 ‘전통적인 대가’들의 작품이 대부분이다. 유명 작가들의 대표작이 골고루 갖춰진 교과서적이면서 ‘아트뱅크’에 가까울 정도로 투자가치 있는 작가들로만 형성되어 있다. 이에 비해 김창일 회장은 소위 가장 ‘핫’한 지금 현재의 미술에 집중한 새로운 개념의 컬렉팅을 보여줬다. 예컨대 2000년대 초에는 데미안 허스트, 마크 퀸, 트레이시 에민 등 영국의 yBa작가들을 수집하면서 주목을 받았고, 곧이어 중국현대미술 작가들과 우리나라의 독특한 젊은 작가들을 수집하고 후원하기 시작했다. 흔히 재벌가와 부자들의 컬렉션은 당장 내일이라도 경매회사에 들고 나가면 비싸게 값 매겨질 환금성 있는 작품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아라리오 컬렉션은 비싼 작품도 있고, 잘 팔리지 않을 실험적인 작품들도 있다. 그가 꼭 투자에 연연해 작품을 모은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 이유다.
한마디로 아라리오가 한국 미술계에 등장한 이후 많은 게 새로워졌다. 김창일 회장이 설립한 아라리오 갤러리가 2006년 여름에 〈중국의 현대미술과 시대정신〉이라는 제목으로 그룹전시를 열었을 때만 해도 장 샤오강, 위에민 준, 팡리 준, 왕 광이 등 당시 가장 인기 있었던 중국 현대작가들이 그렇게 한꺼번에 우리나라에 온 것은 처음이었고, 매우 신선했다. 그는 일찍이 중국 현대작가들과 친분을 쌓아놓았기에, 세계 미술시장이 아시아에 눈을 돌리던 2000년대 중반에 이들을 한 번에 한국으로 몰고와 전시할 수 있었다. 그렇게 그는 한국 미술애호가들의 관심을 일약 중국현대미술로 끌고 갔다.
좋은 컬렉션에는 뚜렷한 ‘테마’가 있다. 이런 점에서 김창일 회장의 ‘아라리오 컬렉션’은 뚜렷한 테마 아래 수집한 표가 난다. 그는 특히 한국과 중국의 현대미술에 일관된 관심을 가졌다. 중국현대미술이 이렇게 대중적으로 인기를 얻기 전에 일찍이 중국에 가서 중국작가들을 직접 작업실에서 만나면서 작품을 보고 소장했다. 작품 크기는 소장하고 팔기 쉬운 작은 사이즈에서부터, 실내에는 전시가 불가능한 어마어마 큰 것까지 다양하고, 회화뿐 아니라 조각, 설치, 미디어까지 장르도 다양하게 수집해왔다. 어떤 작품은 투자가치가 있지만 어떤 작품은 투자가치를 불분명하되 그냥 신선한 충격을 주는 작품들이다. 뭔가 고집이 있고 의도 자체가 남다르게 보인다.
두번째로, 그는 자신의 컬렉션을 공개해 대중에게 보여주는 방법이 색다르다. 그가 서울 종로에 있는 옛 공간사 사옥을 사서 개조한 ‘아라리오 뮤지엄 인 스페이스’를 방문해본 사람들은 안다. 건물을 요리조리 뚫고 헤집고 다니면서 그 작품들을 감상하는 동선이 얼마나 드라마틱하고 재미있는 지. 더군다나 “외국 여행 갔을 때 미술관이 문을 닫으면 슬프다”며 미술관을 365일 무휴로 열고 있다. 작품 수집하는 방법이나 그 작품을 대중에게 공개하는 방법과 능력이 탁월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그는 대중에게 자기 모습을 늘 훤히 드러낸다는 점에서도 우리나라 다른 컬렉터들과 참 다르다. 전시 오프닝 리셉션에서는 사회자 역할을 자청하고, 오프닝을 자축하는 ‘고성방가’에 가까운 노래를 부르곤 한다. ‘자기 갤러리에서 자기가 전시한다’는 미술계의 눈총을 받아가면서도 벌써 개인전을 6번이나 가진 아티스트가 아닌가. 사업가로서 아트딜러로서 컬렉터로서 유명한 그이지만, 어딘가에 있는 그런 아티스트 기질 때문에 모험적이고 고집스러운 컬렉션을 추구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해외에는 이렇게 대중 스타급의 컬렉터들이 꽤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김창일 회장이 유일하다고 할 수 있다. 우리한테도 이렇게 색다르고 재미있고 역사에 남을 컬렉터가 있다는 점, 열정과 고집으로 일관되게 밀고 나가는 미술 컬렉션이 결국 성공한 ‘미술사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점에서 우리 미술계는 그를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