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Feature]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것들
화단의 과거사가 때늦게 정리된 까닭은 …
반이정 미술비평
1981년 국내 개봉한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테스>(1979)를 지난 11월 극장에서 관람했다. 칸영화제 클래식 복원 프로젝트에 따라 감독이 보관 중이던 필름을 4K 디지털 리마스터링 복원을 통해 HD급 화질로 복원한 덕에 33년 만에 재개봉되었기 때문이다. 칸영화제의 고전 명화 복원 사업과는 무관하게, 2000년 전후에 개봉한 영화들도 디지털 리마스터링 복원으로 화질과 음질을 보강한 버전으로 잇따라 재개봉되고 있다. <인터스텔라>의 흥행에 힘입어선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초기 히트작 <메멘토>(2000)도 디지털 리마스터링 복원으로 13년 만에 재개봉됐고, 레오 카락스의 <퐁네프의 연인들>
(1991)도 22년 만에 재개봉한다.
새 영화를 셀 수 없이 쏟아내는 오늘날 극장가에, 굳이 지난 시절 고전을 복원하는 후대의 오마주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재개봉한 <테스>의 보도자료에 따르면 복원을 통해 HD급 화질을 확보했다고는 하나, 오늘날 수준의 고화질을 기대하고 보면 안 된다. 상업예술계의 과거 복원 사업을 보는 관점은 크게 두 가지일 듯싶다. <테스>에 주인공으로 출연한 나스타샤 킨스키의 나이는 18세다. 관객은 1980년 전후로 여배우의 얼굴을 인쇄한 영화 포스터를 아른아른 떠올릴 것이다. 그리고 그 무렵의 자신을 환기하면서 향수에 젖을지도 모른다. 제도 예술계의 생존은 주목을 끄는 스타에 의존하기 마련이니, 지난날 스타들을 이상화하는 생존 전략은 이상한 것도 아닐 게다.
과거를 복원하는 또 다른 사정은 원작의 품질과는 무관하게, 복원 사업이 후대의 독자적인 성과물로 기록되기 때문일 것이다. 원작을 정교하게 복구하는 디지털 세대의 기술력은 아날로그 세대의 유산을 자기 방식으로 소화해서, 디지털 세대의 독자적인 성과물로 등록한다.
연말을 전후로 한국 화단의 과거사를 복원하는 전시가 3편 이상 개막했다. 아르코미술관은 <미술을 위한 캐비닛, 아카이브로 읽는 아르코미술관 40년>에서 지난 40년의 기록물 열람으로 아르코가 걸어온 40주년을 기념했다. 소마미술관의 은 한국 동시대미술의 추진력을 1986~1988년에 출현한 특정 전시장과 기획전에 있다고 가정한다. 그 시기에 출현한 일부 전시를 부분적으로 복원하는 전시회를 열었다. 올해 부산비엔날레도 국내 작가의 국제 비엔날레 참가 기록을 살펴보는 특별전 <한국현대미술 비엔날레 진출사 50년>을 마련했다. 모두 전시된 출품작보다 과거 자료의 열거와 자료집 출간에 집중한 아카이브형 전시였다. 우리 화단 역사의 지난 순간을 불완전하게 복원한 예는 드물게 있었다. ‘현실과 발언’동인 창립 30돌을 기린 <현실과 발언 30년>(2010) 같은 전시가 그런 경우다.
지난해 베니스비엔날레 개막 즈음 열린 (이하 )는 1969년 쿤스트할레 베른에서 열린 문제적 전시 (이하)을 44년이 지난 2013년 베니스로 옮겨놓은 과거 복원 전시의 대표적 국외 사례일 것이다. 그렇지만 44년의 시차를 타임머신도 극복할 순 없었다. “1969년 당시로선 일상적 오브제들로 채워진 전시장의 충격적인 풍경이, 오늘날 전시장에서 목격되는 다만 상식적인 풍경과 같아진 사정도 있다.”(필자의 글《 월간미술》 2013년 11월호) 이처럼 전설을 복원한 전시회는 세간의 주목을 받긴 쉬우나, 전설이 된 전시 앞에서 감동을 주문하는 관객들의 플라시보 효과로 과대평가받은 부분이 분명 있을 게다.
과거사를 복원하는 동력은 또 무엇이 있을까? 손쉬운 해답은 과거를 소홀히 다룬 우리의 부실한 기록문화에 대한 자성의 결과로 보는 거다. 그렇지만 아르코미술관이 소박한 이번 자료전을 마련하려고 개관 40주년까지 손놓고 있던 정황이나, 정권이 수차례 바뀐 연후에 ‘현실과 발언’의 30주년 전시가 마련된 점 등을 볼 때, 10년 단위 기념행사에 내면화 된 타성적인 대응 같기도 하다. 장소 이전과 두 차례 명칭 개정까지 무려 40년의 역사를 아르코미술관이 이제서 중간 정리한다는 것도 늦은 감이 있다. 국가 기관인 아르코의 뒤늦은 자기 역사 정리는 과거보다 현재의 성과에 집중하는 우리 사회의 부실한 기록문화를 상징적으로 대변한다.
이제 원로작가로 분류되는 김구림, 성능경, 이건용, 민정기, 윤석남 등이 전성기를 한참 지난 2000년대에 와서야 아르코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같은 국공립미술관에서 때늦은 회고전을 여는 현상은 어떻게 봐야 할까. 1990년대 이전까지 화단 헤게모니가 형식주의 미술가들에게 편중된 데에 따른, 후대의 뒤늦은 구조조정일 게다. 1세대 원로 실험미술가 회고전에서 그들을 평가하는 ‘국내 최초의’라는 수식어의 잦은 등장이나, 작가 연보와 세계미술사 연보를 나란히 배치하는 무리수나, 서정추상부터 실험영화와 대지예술에 이르는 다양한 실험이 작가 1인의 연보 안에 압축적으로 담긴 사정이나, 원로 작가가 여전히 자기과시형 작업을 내놓는 이유 등도, 형식주의 미술과 실험미술 사이의 비대칭적 평가에 대한 실험미술가들의 서운함의 표시처럼 보인다.
화단의 과거사를 정리하거나 재평가하는 작업이 근래에 자주 관찰되는 까닭은, 형식주의 미술과 실험미술 모두 자생적이기보다 후기식민주의적 조건이 초래한 결과여서일 것이다. 그건 한국 미술계가 자생적인 동시대성을 1980년대 전후에야 뒤늦게 확보했다는 방증 같기도 하다.
우리 화단의 과거사 복원 배후에는 당장의 성과에 집중하고, 압축 성장과 시대의 유행에 집중하는 공동체의 집단 무의식을 향한 자성이 작용해서일 게다. 지난 시절 기록물을 한자리에 모은다한들, 그 당시의 현장을 가감 없이 평가할 수는 없는 일이다. 당사자들의 회고와 기록물에 의존한 과거 복원은 불완전하기 십상이다. 기억에 의존한 평가는 왜곡되고 윤색되기 쉽다.
근래 과거사 복원 움직임은, 동시대미술의 불안정에 대응하는 미술계의 고립감의 표현 같기도 하다. 아르코미술관의 <미술을 위한 캐비닛>에서 과거를 회상하는 중견미술인의 인터뷰 영상을 보자. (근래 화단 트렌드에 익숙하지 않아) 전시장을 찾지 않게 된다는 윤석남의 고백, 새로운 시각예술 조류에 익숙하지 않다고 털어놓는 전-현직 문예진흥위원장들의 진술, 미술관들이 복합문화공간화하는 현상에 아쉬움을 표하면서 미술의 정체성을 살린 차별화된 미술관을 주문하는 안규철의 요청, 아카데미즘과 단색화가 지배한 1980년대 화단에서 ‘현실과 발언’이 주력한 대중과의 소통에 자부심을 드러낸 윤범모의 회고 등은, 손쉬운 키워드로는 포착되지 않는, 동시대 다변화된 한국 미술을 향한 중견 미술인들의 부적응처럼 느껴졌다. 매체 변화가 초래한 오늘날 미술의 다변화에 대해서는 그 어떤 미술 전문가도 쉽게 적응할 수 있다고 자신하기 어려울 게다. 때문에 수십 년 전 우리 미술의 과거를 재정리하고 재평가하는 일련의 복원 작업은, 단순한 키워드와 미술운동과 유대감만으로 존립할 수 있었던 구세대 미술인들이 비선형적인 동시대미술의 정체성을 견제하는 장치처럼 읽히기도 했다.
작년 베니스에서 을 복원한 이 열린 배경도 개별 작품이 관객과 1:1로 마주하며 감상가치를 지녔던 모더니즘의 패러다임에서, 다종의 출품작들이 한자리에 뒤엉켜 ‘어떤 느낌’을 연출하는 패러다임으로 전환되는 분기점을 후대의 동시대미술인들이 기리기 위한 것일 게다. 선명한 쟁점을 잡기 어려운 오늘날 미술계의 종잡기 힘든 풍경으로 넘어가는 분기점을 어쩌면 포스트미니멀리즘, 아르테포베라, 개념미술, 대지미술이 뒤엉킨 <WABF69> 으로 보고, 그 미학적 전환기에 보내는 후대의 예우 같기도 했다.
미술관 건축의 복원
이제까지 과거 미술사를 복원한 전시 기획의 생리만 다뤘는데, 미술관은 그 스스로 용도를 다한 건물을 복원하는 과정을 통해 문화적인 갱신을 꾀했다. 루브르 박물관이 프랑스혁명으로 대중에게 공개되기 전까지, 왕족의 소장품을 모아둔 궁궐이었던 사실이나, 철도역과 호텔을 겸한 건물을 허물지 않고 프랑스 인상주의미술의 성지로 전용한 오르세 미술관이나, 2차 대전 직후 지어진 화력발전소가 수명을 다하자 현대미술관으로 개조한 테이트 모던 등이 대표적이다. 우리에게도 있다. 구 서울역사를 원형 복원 후 복합문화공간으로 변형한 ‘문화역서울 284’나, 군사정권의 잔재인 기무사를 미술관으로 전환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나, 전성기를 지나 퇴락하는 문래동 철공소 거리를 다종의 대안공간들로 만든 ‘문래동 예술촌’처럼, 복원을 통해 공간성을 갱신해서 뇌리에 각인된 전시장이 적지 않다.
과거사를 손질한 기획전 프로젝트나 복원을 통해 갱신을 거듭한 미술관의 역사처럼 창작 행위 중에도 폐기된 과거를 손질해서 전에 없는 감동을 만든 시도가 있다. 폐목재를 모아 근대 여성의 인물 계보로 재구성한 윤석남의 설치작업은 버려진 사물과 여성의 일반적인 형편 사이의 유사성 때문에 해석의 지평을 넓혔다. 쇠락한 구식 아파트의 파사드를 연달아 기록한 정재호의 동양화는 제도권 화단에서 동양화의 구태의연한 존재감에 대한 자기고백처럼 읽히기도 한다. 철지난 사물을 집대성한 것만으로 고유한 미적 성취를 구현한 예는 올해 ‘문화역서울 284’에서 열린 최정화의 개인전 <총, 천연색>을 들 수 있다. 조악한 플라스틱으로 만든 최정화 스타일의 인공 설치물 외에, 출품작 중 절대다수는 그저 수집된 기성품들을 수북이 쌓고 나열한 것이었다. 이미 오래전 폐간된 잡지와 장난감, 영세하고 볼품없는 의자들의 컬렉션으로부터 관객은 전에 없는 감동을 발견하게 된다.
방대한 수집품목에서 창작의 발상을 얻은 예술가는 많다. 앤디 워홀이 사망할 때까지 수집한 물건이 담긴 상자에 날짜와 색인을 붙인 결과, 무려 612개의 상자가 나왔는데 <타임캡슐>이라 명명된 이 보관 상자에는 범죄사진과 치아 틀까지 보관되어 있었다. 저장강박증 때문에 물건을 버리지 못한 어머니의 1만점이 넘는 소지품들로 초대형 설치물을 구성한 중국 예술가 쑹둥도 있다. 전혀 사용할 수 없는 소지품들로 완성된 쑹둥의 설치물 <버릴 것 없는>은 쑹둥의 어머니의 일생을 대리 증언하기도 하며, 자신의 지난 추억을 환기시키는 물건을 발견한 관객에겐 감정이입의 감동을 줄 것이다.
복원하려는 욕구와 향수를 이끄는 동력은 어디서 올까? 서구의 한 연구에 따르면, 과거 유행했으나 현재 더는 구할 수 없는 물건이 소비자에게 향수어린 구매욕을 일으키는 이유에 대해 설명한다. 자기 선택권이 있는 20대 초반에는 자신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 사물과 정서적으로도 강하게 결합하게 된단다. 그 무렵 호감을 일으킨 사물은 세월이 많이 지나서도 향수와 애착을 일으키는 사물로 남는단다.
과거 복원을 통해, 한국 동시대미술의 출발점을 1980년대로 귀결시킨, 아카이브형 전시 두 편(아르코미술관, 소마미술관)을 둘러보던 중, 모순된 감정도 느꼈다. 국내 미술이 가까스로 자발적인 동시대성을 확보한 시기가 신군부 집권기와 우연히 일치했고, 신군부 때 요직을 맡은 박세직이나 전두환 같은 인물이 주요 전시 개막식에 요인으로 얼굴을 비춘 영상 자료들을 반복적으로 만나야 했기 때문이다. 화단의 과거사를 정리할 때마저 정치적 트라우마에 직면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