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FEATURE Cody Choi + Lee Wan & Lee Daehyung

의외의 연속이었다. 2017년 제57회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을 책임질 이대형 큐레이터가 선정됐을 때도, 또한 그곳을 장식할 작가로 코디 최와 이완이 선정됐을 때도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한 장소에서 최고의 화학반응을 일으켜야할 큐레이터와 두 작가를 엮을만한 요소가 언뜻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월간미술》이 그들을 만났다. 그 자리는 의외의 시간이 아닌 그들은 만날 수밖에 없었다는 ‘필연’으로 이어졌다. 그 필연은 올해 한국관의 모습을 어느 정도 상상할 수 있는 단서가 아닐지.

그들이 만나다

황석권 | 수석기자

2017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을 책임질 이대형 큐레이터가 선정되고 참여작가로 코디 최와 이완을 발표했을 때 국내 미술계의 반응은 대부분 ‘의외다’였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까지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작가는 큐레이터가 선정됐을 때 이미 절반은 그 윤곽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큐레이터와의 인맥이 크게 작용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관을 책임질 큐레이터 후보군이 발표되고, 그들이 최종 선정을 위한 프리젠테이션에 포함시킬 작가는 현장 전문가라면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었다. 이대형 큐레이터가 최종 선정됐을 때, 미술계는 이 세 사람이 어떤 인연이었을까 검색하기에 바빴을 터인데 그 단서는 쉽사리 나오지 않았다. 《월간미술》은 2017년 한국미술계가 가장 주목할 이들 3인을 만났다.

우선 시점을 한국관 예술감독 선정 당시로 되돌렸다.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예술감독 6인의 후보 중 하나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작가 선정에 앞서 꼬박 일주일 동안 2017년 베니스 비엔날레 총감독 크리스틴 마셀(Christine Macel)의 지난 20년간의 큐레토리얼 계보를 연구했어요. 본전시라는 큰 물줄기를 이해하고 거기서부터 거리 두기를 해나간다면 한국관만의 차별화된 정체성을 만들어낼 수 있겠다고 생각했죠”(이대형) 크리스틴 마셀이 2017년 베니스 비엔날레를 위해 내세운 주제는 〈Viva Arte Viva!〉다. 말 그대로 “예술 만세”다. 이에 현대미술 창작활동의 주제인 미술가, 미술가의 작업과정, 미술가 개인의 표현의 자유와 역할이라는 인문적 측면을 재주목해 보겠다는 의미다. 이 큐레이터는 이런 질문에 질문하는 형식으로 다음과 같이 생각했다. “‘저자의 문제’, ‘몸 그리고 개인의 역사’, ‘인간 심리의 복잡성’을 섬세하게 묘사할 수 있는가? 거대한 물리적 스펙터클이 아닌 ‘절제된 형식’으로 작품을 표현해왔는가? ‘개인과 역사의 관계’를 실제 개인적인 경험에 기반을 두고 ‘사실과 픽션이 혼재’하는 시대적 내러티브를 구성할 수 있는가? 재료와 의미의 ‘혼성교합’을 통해 ‘전통에 대한 재해석’을 시도할 수 있는가? 사회, 정치적 맥락과 역사적 이벤트를 비평적으로, 그리고 그것을 은유적으로 암시하고, ‘다양한 의미의 레이어’를 부여해 해석의 폭을 넓힐 수 있는가? 특히 서구 비평가들, 큐레이터들이 시도하지 않은 ‘한국과 아시아 모더니즘의 문제’를  실증적인 태도로 보여줄 수 있는가?” 등으로 말이다. 이러한 과정에 먼저 포착된 작가가 바로 이완이다. “비엔날레 참여 제안을 받았을 때 〈메이드인(Made in)〉 연작을 위해 인도네시아에 있었어요. 놀랐죠.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이 큐레이터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제 작업이 세계 미술계에 선보이는 점에 대해서 어떤 이야기가 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이완) 이를 바탕으로 아시아의 모더니즘을 보여주자는 의견이 모아졌다. 이는 총감독이 아시아의 역사를 재방문하려는 기획의도를 내세운 방향성에 부응하기 위함이었다. “작가가 만난 수많은 아시아 사람의 삶을 통해 이론이 아닌 현실로서 모더니즘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이대형)

원래 전시는 2인전으로 꾸밀 예정이었다. 아시아의 모더니즘과 더불어 한국의 모더니즘도 제시해야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 여기서 이완 작가가 뜻밖의 아이디어를 냈다. 바로 100여 년 전 살았던 한 실존인물(‘Mr.K’로 명명했다)의 사진이 담긴 나무상자를 황학동에서 5만 원에 구한 이완 작가가 이로 상징되는 ‘귀신(鬼神)’을 끌어들이자는 내용이었다. “일제시대?한국전쟁?산업화 과정을 관통하는 실존인물의 삶을 단돈 5만원에 길거리에서 구매할 수 있었다는 아이러니한 에피소드가 개인의 역사를 넘어 한국의 역사와 근대화가 얼마나 쉽게 버려지고, ‘헐값’에 거래되는지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스토리라고 생각했습니다.”(이대형) 하지만 곧 아시아와 한국의 100년이라는 극한 속도감을 묘사하는 데 한계에 직면했다. 그래서 하나의 가족 계보를 만들기로 했고, Mr.K로 대변되는 ‘할아버지’, 이완 작가로 상징되는 ‘손자’ 사이에 ‘아버지’ 격으로 코디 최 작가가 전격 합류하게 되었다. “1990년대부터 문화적 불균형의 문제를 파격적인 형식을 통해 탐구해왔고 2015년 뒤셀도르프 쿤스트할레에서 시작된 대규모 회고전을 유럽 여러 국가 미술관에서 순회하고 있는”(이대형) 그다. “전혀 모르던 이 큐레이터의 전화를 받고 ‘왜 내게 이런 제안을 하지?’ 그런 생각이 들었죠. 30년 넘게 해외에서 활동하고 한국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고, 한국에서 미대를 나오지도 않은 (인맥도 소소한) 나에게 왜? 이제 곧 환갑을 맞는 나에게 왜? 또 함께 전시에 참여할 이완 작가도 모르는 상태였어요. 말 그대로 살다보니 이런 일도(!) 생기나 싶었죠. 하하“(코디 최) “코디 최 작가에 대한 한국 주요 큐레이터, 작가들의 평가와 해외 비평가나 저널리스트, 큐레이터들의 평가가 상반되었어요. 1990년대부터 낸시 스펙터(Nancy Spector), 앤 패스터낵(Anne Pasternak), 그레고리 얀센(Gregor Jansen), 존 웰치만(John Welchman), 필립 베르네(Philippe Vergne)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아온 코디 최를 한국에서는 잘 모르거나, 평가절하하거나, 심지어 터부시하고 있는 현실을 알게 됐죠.”(이대형) 편협한 인식에 일종의 오기도 일었으리라. 이런 과정을 거쳐 짜여진 진용으로 2017년 자르디니 공원 한국관을 접수할 수 있었다.

전열이 갖춰졌다. 이에 큐레이터와 참여작가 2인의 생각이 펼쳐졌다.

이완이 말하다

삼성미술관 리움의 〈아트스펙트럼 2014〉에서 수상을 계기로 이름을 본격적으로 알리긴 했지만 이완 작가의 작업은 자본주의와 노동이라는 문제에 천착한 맥락성이 매우 견고하다. 이번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전시에 출품될 작품도 〈메이드인〉 연작에서 비롯된다. 이미 작업을 위한 온라인 설문조사에서 그 단서는 던져졌다. “〈고유시(Proper time)/부제: “너의 꿈이 달의 행로와 비슷한 회전을 하더라도”-김수영〉을 위한 자료로 쓰입니다. 2013년부터 현재까지 진행 중인 〈메이드인〉 시리즈와 연결되는 본 작품은 2017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에서 전시됩니다.”(설문조사를 위한 서문 중)
〈메이드인〉 연작에 대한 작가의 말이다. “2005년 학교를 졸업하면서 불가항력적인 것에 대한 관심이 생겼어요. 내가 왜 이것을 좋아하게 됐지? 내가 왜 이런 사람이 됐지? 내가 왜 태어났지? 꼬리를 무는 질문은 점차 본질적 내용으로 채워지더군요. 〈메이드인〉 연작도 마찬가지예요. 마트(mart)라는 ‘시스템’에 대한 관심, 역사에 대한 관심, 현대 자본주의와 경제구조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질문이 작업을 낳았죠.” 이 작가는 일상생활의 동선에서 접하는 모든 것이 공장에서 만들어진 생산품임을 인식했을 때 숨을 쉴 수조차 없었다고 털어놨다. 그렇다면 〈메이드인〉 연작은 이와 같은 현실을 부정하는 데서 출발했음을 알 수 있다. “나는 소비자이니까 구매만 하면 끝이잖아? 이러고 싶지 않았던 거죠. 최후의 소비자임과 동시에 최초의 생산자가 될 방법을 생각했고 닭고기를 사서 야구공으로 만든 작업을 선보인 거죠.” 작가는 일전에 《월간미술》과의 인터뷰에서 이는 “개인의 무모함을 보여준 것”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현대 경제체제에 반하는 행위를 극대화하여 보여주기 위해 그가 택한 방식은 ‘비효율’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타이완에서 2달, 태국에서 1달 반, 미얀마와 캄보디아에서 1달간 생활했다. 미얀마에서는 순금 3g을 얻기 위해 도심에서 1000km 떨어진 탄광에서 일했다. 그 금은 서울에서 15만 원이면 구할 수 있다. 동네 마트에서 몇 천 원이면 구할 수 있는 설탕을 위해 대만에서 사탕수수를 수확하고 결정을 만들기도 했다.
이와 같은 작업을 하려면 공부가 필요했다. 실제 경제학, 마르크시즘 등을 공부했고 이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생각으로까지 뻗어나갔다. “〈메이드인〉 연작 이후 〈뱅크〉 연작을 하게 됐죠. 앞서 말한 제조사는 결국 주식으로 구성된 것이 실체가 아닌가 싶었어요. 또 신자유주의에 대한 생각에까지 이르다 보니 실제 주식 거래를 시작하게 되었죠.” 모두 자본의 흐름을 추적하고 파악하기 위해 시행되는 프로젝트다.
이런 맥락에서 그가 베니스 비엔날레를 위해 제시한 〈고유시〉는 제목에 이미 작품의 복선이 깔려있다. “한 끼의 식사를 위해 전 세계의 ‘개인’들은 얼마만큼의 시간을 노동에 쓰고 있을까라는 의문에서 시작한 작품입니다”라는 말이 작품의 내용이 될 것이다. “고유시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서 시간의 개념을 드러내는 방식입니다. 두 대상이 움직이는 속도가 다르면 관찰자의 입장에서는 시간의 차이가 생기지만 두 대상은 그 차이를 느끼지 못한다는 거죠. 각자의 노동시간과 불균형에 대해 누구는 그 차이를 느낄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을 말하고 싶습니다.” 작업은 전 세계인이 한 끼의 식사를 위해 들여야 하는 노동시간의 평균값을 기준으로 하여 그것의 다양함을 보여주는 내용으로 이뤄진다고. 이를 설명하며 공개한 그의 노트는 마치 수학연습 노트 같았다. 그리고 이완 작가는 작품에 대해 여기까지 말했다.

코디 최가 말하다

1980년대 미국으로 이민을 간 코디 최 작가의 일상은 생존 그 자체를 위한 싸움이었다. 그리고 그는 미국인이 되어야 한다는 일념으로 하루하루를 살았다고 고백했다. 이곳에서 자신이 얻고자 하는 가치만 선별적으로 취할 수 있는 유학생과 달리 자신은 이곳에서 정착이 절체절명의 과제였다. 결과는? 미국인이 되는 데 실패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돌아온 한국에서의 삶도 그가 기대한 바대로 흘러가진 않았다고 했다. 그래서 이번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참여가 큰 갈등으로 다가왔다고 털어놨다. “최근에 생각해보니 내가 선택한 것은 아니지만 나에게 이런 라이프 프로그램이 진행됐구나 싶었어요. 제안을 받고 내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수 있지만 가장 절실했던 것은 내 삶이니깐 충돌의 지점을 작품화할 수 있겠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러면서 또 다른 양상의 갈등과 충돌을 느꼈다고 했다. “한국에 들어와 강의를 하면서 꼭 비엔날레에 대한 커리큘럼을 마련했었어요. 비엔날레에 대해 비판적인 내용이었죠. 비엔날레 시스템부터 그것을 대하는 작가의 태도까지 말이에요. 그런데 제가 비엔날레에 출품을 한다?” 난처한 시간이 흘렀고 코디 최는 예전에 그가 들었던 존 발데사리와 한 작가와의 인터뷰 내용을 떠올렸다. “발데사리가 ‘작가의 삶은 3가지가 필요하다’라고 합디다. 첫째는 작가적 기질, 즉 재능, 둘째는 어떤 상황에서도 나는 작가라는 믿음, 세 번째가 바로 타이밍. 이건 언제 올지 모른다더라고요. 그러니 이 기회가 그가 말한 타이밍이 온 것이라면 내가 무엇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인가. 바로 그 타이밍(베니스 비엔날레)을 둘러싼 충돌과 갈등이었죠.” 그리고 결정했고 작품에 대해 고민했다. 바로 지금의 베니스를 만든 여러 역학적 상황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베니스는 베니스 비엔날레를 격년제로 진행하며 관광객을 모으고 돈을 버는 도시예요. 베니스 비엔날레는 한마디로 미술(예술)이 자본(돈)과 관광(대중의 눈요기)과 결합하는 곳이죠. 이 결합은 베니스 비엔날레만의 독특한 메커니즘을 형성하는데 베니스라는 물리적 공간은 지형정치적(geo-political) 역학관계가 만든 모순을 안고서 이 시대 미술의 한계와 혼란을 몸소 보여주고 있어요.” 이에 베니스 비엔날레에 출품하는 작가 대부분이 보여주는, 그리고 코디 최 스스로도 느꼈던 예술적 모순과 한계점을 건드려볼 참이다. 사회정치적으로 기여하려는 작업을 하면서 예술의 본질을 파괴하는 그 모순 말이다. “베니스 비엔날레에 참여하는 나의 작업은 아이러니하게도 이 지점에 대한 예술가로서의 비판을 내용으로 하고 있어요. 다시 말해 베니스 비엔날레를 향해 총을 쏘고 싶은 거죠. 하하.”
그러면서 코디 최는 세 가지 키워드를 제시했다. ‘예술가가 인식하는 베니스의 메커니즘’ ‘이중교배의 모순이 만든 거대한 지형정치’ ‘모든 예술가가 식민화된 글로벌 예술의 모순과 한계.’ 코디 최가 제시한 키워드에 대한 설명을 정리해보면 우선 작가는 미술의 진보와 예술의 발전을 위한 사회적 기여에 대해 강박을 갖게 되는데 그에 비해 관람객은 관광객의 마인드와 유사하다. 이 독특하고 상반된 메커니즘의 매개체는 바로 ‘돈’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미술’과 ‘관광’, ‘자본’이 만나 독특한 지형변화를 일으키는데 이는 경제전체주의 강화의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작가들은 글로벌 예술시장에 걸맞은(거래가 되는) 작품을 예술의 파괴를 주창하며 만들어내는데 여기에서 얻어지는 화상(?商)들의 극찬은 현실적 한계를 넘지 못하고 경제가치에 부합하는 작업에 종착하게 된다는 의미다.

다시 모여 이야기하면

“코디 최가 실제 자신의 경험(아픔, 상실, 분노 등등)을 바탕으로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집요한 학술적 연구와 분석에서 만들어진 작품을 통해 문화적 가치가 만들어지는 근원을 찾는다면, 이완은 자신의 감정을 배제한 채 세상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며 자본주의 시스템의 근원에 접근한다. 코디 최가 동서고금의 수많은 창문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다양한 각도를 제시한다면, 이완은 다양한 파편을 긁어모아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창문을 만들어 보인다.”(이대형) 이러한 차이를 간략히 말하면 집중하는 지점이 작가의 개인사냐 시스템이냐이다. 코디 최는 “이번 전시는 ‘자본주의’라는 큰 틀과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그 큰 틀만 맞으면 우리는 서로 어떤 작업을 하는지 몰라도 괜찮아요. 그런데 이완 작가가 의도한 것은 아니었겠지만 1990년대 초기 제가 벌인 작업을 보면 이완 작가의 작업과 프로세스나 표현에서 다른 시점이긴 하지만 비슷한 점이 보여요. 한국에 발표되지 않은 작업이 좀 있어요. 예를 하나 들면 중력과 하이힐(서구 여성의 신발)의 관계에 대한 내용으로 컬럼비아 대학의 물리학 박사와 공식을 만들어 보기도 했어요.”(코디 최)
서로 다른 양상을 띠는 작가의 작업이 한곳에 전시된다. 그곳에서 요즘 유행하는 말로 케미가 만들어질지, 아니면 불협화음을 내며 파국을 맞을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일단, 인터뷰 내내 큐레이터와 작가, 작가와 작가 사이는 그 분위기가 요즘말로 너무나 ‘달달’했다. 전시장에서 관람객의 시선을 끄는 장소를 양보하고, 상대 작가에게 작품 제작에 드는 비용을 더 얹어주려 배려했단다. 작가로서 욕망이 우선 아니냐며 몇 가지 이간질(?)을 유도하는 질문을 했지만 손사래를 치며 서로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춰주는 두 작가였다. 코디 최는 인터뷰 중간에 이완에게 “아 맞다. 고마워. 좋은 작업해줘서. 이 말을 꼭하고 싶었다”고 깜짝 고백하기도 했다.
한국관을 작은 통로로 연결된 3개의 어항으로 생각했다는 이대형 큐레이터. 자신의 공간은 지키지만 같이 호흡하는 3명이 공존하는 방법을 모색하는 데 적잖은 노력을 기울였다. 한번에 모이는 회의도 열지만 각 작가를 개별적으로 만나는 회의도 병행하고 있다고 했다. 작가들이 서로 영향을 받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두 분 작가는 서로의 작업을 꼭 50%만 알고 있을 것”이라며 “견고한 작품이 구축됐을 때, 나머지 50%를 알 수 있게 칸막이를 치울 것”이라고 말했다. 글쎄. 그 칸막이는 아무래도 5월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개관일에 치워질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