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FEATURE The Grand Tour 2017 of Europe Big 5
미리보는 2017 유럽 그랜드 투어
2007년 이후 10년 만이다. 전 세계 미술인의 시선이 다시 유럽으로 모아지기까지 말이다. 올해는 이탈리아의 베니스 비엔날레(57th Venice Biennale, 5.13~11.26)를 필두로 독일의 카셀 도쿠멘타(documenta 14, 4.8~7.16(그리스 아테네)/6.10~9.17(카셀)), 뮌스터 조각프로젝트(Skulptur Projekte Munster, 6.10~10.1), 터키의 이스탄불 비엔날레 (15th Istanbul Biennial, 9.16~11.12) 그리고 프랑스의 리옹 비엔날레(14th Lyon Biennale, 9.20~12.31)가 열린다.
그 이름으로도 세계의 미술작가는 물론 미술애호가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빅 이벤트들이다.
이에 《월간미술》은 2017년 신년호 특집기사를 올해 유럽에서 열리는 미술 빅 이벤트 5건에 대한 프리뷰로 꾸몄다. 각 대회의 전반적인 내용과 전시주제에 대해 소개한다. 카셀 도쿠멘타와 이스탄불 비엔날레 총감독 인터뷰도 성사시켰다. 보다 심도있는 설명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을 맡은 이대형 예술감독은 출품작가로 코디 최와 이완을 선정하고 현재 준비에 여념이 없다. 그가 한국관의 청사진을 밝히는 글을 보내왔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속담이 있다. 10년 만에 동시에 열리는 미술 빅 이벤트를 통해 동시대미술 변화의 양상을 살펴본다는 점에서 올해 미술계는 한층 달아오를 전망이다. 이 미술 빅 이벤트를 한 해에 모두 살펴볼 수 있는 기회는 한 인간의 인생에서 생각보다 많지 않다.
진행=황석권 수석기자
문화전쟁의 또 다른 차원
유진상 | 계원예대 교수
문화전쟁이라는 표현은 종종 정부의 대외 문화 콘텐츠 정책이나 기업/관광분야의 국제적 콘텐츠 마케팅 및 프로모션 같은 내용을 다룰 때 튀어나오는 표현이다. 국가 차원의 홍보 비즈니스에 초점을 둔 이 표현은 동시대예술과 관련해서는 다른 의미로 해석될 필요가 있다. 예컨대, 첫째 문화전쟁은 전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정치, 사회, 역사 이슈들에 대한 철학적 조망을 포함한 가장 상위의 논쟁과 도전들을 가리킨다. 둘째로 문화전쟁은 이러한 상위의 전장에서 지식인과 예술가 집단이 가장 도전적이고 설득력 있는 방식으로 자신들의 관점을 세계 내에 투영하고 관철시키는 ‘가치의 전쟁’이자 ‘정신적 수월성의 전쟁’이 되어가고 있다. 세 번째는 문화전쟁은 이러한 논의의 전장에서 각각의 국가나 이해 집단들이 자신들의 명분을 드러내고 전략적 우위를 점하기 위한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노력을 투여하는 사건이 되었다. 동시대미술은 이러한 문화전쟁이 벌어지는 영역들 가운데 가장 ‘심화’ 단계에 해당하는 영역이다. 동시대미술은 이미 가장 비대중적(non-popular)이고 철학적인 기여들로 채워진 지적인 역동성의 장이 되었다. 그리고 이와 같은 경향을 분명하게 반영해온 것이 베니스 비엔날레, 카셀 도쿠멘타와 같은 초국가적 거대 전시다. 2년이나 5년 간격으로 벌어지는 이 행사들은 약 20년 전부터는 모든 분야의 지식인들이 참여하여 당대의 모든 이슈와 쟁점에 대한 토론과 미학적 전위, 교육과 출판으로 이어지는 역사적 사건들로 발전했다. 여기에 10년 간격의 독일 뮌스터 공공조각프로젝트가 같은 시기에 열리면서 우리는 동시대미술에서 일어나는 문화전쟁의 정점을 보여주는 사건을 접하고 있다.
베니스-카셀-뮌스터로 이어지는 ‘그랜드 투어’(르네상스 이후에 유럽의 귀족들이 반드시 치러야 했던 통과의례와도 같은, 유럽을 가로질러 이태리로 가는 여행)에 금년에도 수많은 한국인이 나설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바젤아트페어를 비롯한 여름 시즌의 주요 전시들까지 포함하면 동선과 일정은 더욱 길어진다. 1997년에는 IMF 외환위기와 겹치면서 한국인들이 거의 해외에 나서지 못했지만, 2007년 ‘그랜드 투어’ 때에는 오프닝에 맞춰 베니스, 카셀, 뮌스터를 잇는 여정으로 한국 방문객이 300백 명 가까이 찾았다. 상당수가 국내 미술관 아카데미 회원이거나 현대미술 테마투어에 참여하는 애호가들이었는데 이들이 버스로 이동하면서 카셀이나 뮌스터 같은 소도시에서는 호텔 방을 잡기 힘들 정도로 한국인들이 붐볐다. 오프닝 기간의 호텔 예약은 1년 전부터 시작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금년에도 이미 상당수 호텔의 예약이 마감되었을 공산이 크다. 유감인 것은 2007년에는 중국과 일본 작가 수십 명이 이들 전시에 초대받았음에도 한국 작가는 베니스 한국관을 제외하고는 한 명도 이 대규모 전시들에 참가하지 못했던 점이다. 오프닝의 수많은 한국인은 다른 나라 작가들의 전시 오프닝을 빛내주러 그 먼 여행을 한 셈이다. 도쿠멘타 경우에는 1977년부터 참가한 백남준과 1992년의 육근병을 제외하고는 지난 2012년 20년 만에 양혜규와 문경원/전준호가 초대를 받았다. 이번에 한국 작가가 얼마나 초대되었는지는 참여작가 리스트가 공개되어야 알 수 있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지난번 ‘그랜드 투어’까지 한국 미술계는 이 최상위 무대에서 구경꾼 신세에 불과했다는 사실이다. 그 이유는 두 가지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는데, 첫 번째는 국제무대에서 한국 작가의 존재를 알릴 전문가의 활동이 부재했다는 점이고, 두 번째는 국제적 ‘문화전쟁’의 수준에서 쟁점들을 드러내고 발화시킬 작업을 보여줄 작가가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번 카셀 도쿠멘타의 예술감독은 2014년까지 10여 년간 바젤 쿤스트할레 관장을 역임한 폴란드 출신의 평론가이자 큐레이터인 아담 심칙(Adam Szymczyk)이다. 그는 이번 도쿠멘타의 주제를 ‘아테네로부터 배운다’로 정했으며 행사도 아테네와 카셀에서 함께 열린다. 유럽과 세계가 출구 없는 정치, 경제, 사회적 위기에 빠졌다는 전제하에 이를 헤쳐 나가는 데 지표로 삼을 수 있는 결정적인 역사적 순간으로서 서구 민주주의의 기원인 아테네를 다시 소환한 것이다. 2012 부산비엔날레 예술감독을 맡았던 로저 브뤼겔(Roger Buergel)과 루스 노악(Ruth Noack)이 총감독을 한 2007년의 12회 전시에서는 〈형태의 이주(Migration of Forms)〉라는 주제로 총감독의 주관적인 미학 관점이 강하게 반영되었으며, 카롤린 크리스토프-바카르기에프(Carolyn Christov-Bakargiev)가 총감독을 맡은 13회 전시는 〈붕괴와 회복(Collapse and Recovery)〉이라는 주제로 글로벌한 시대적 이슈들을 다루었다. 특히 이 전시에서는 몇 개의 주문형 상주 프로젝트를 1년 동안 카셀 현지에서 진행한다던가, 이제까지 다루어진 적 없는 급진적 방식으로 전시공간의 연출하면서 전시 규모를 새로운 차원으로 확장했다는 점에서 도쿠멘타 특유의 진전을 거듭하고 있다.
베니스 비엔날레는 퐁피두센터 내 현대미술관에서 수석큐레이터로 활동해 온 크리스틴 마셀(Christine Macel)이 예술감독을 맡는다. 아직 전시 주제가 발표되지 않아 구체적인 방향을 알 수 없지만 유럽을 휩쓸고 있는 인종, 난민, 테러, 극우, 유럽의 분열, 전쟁의 공포와 같은 시의적 이슈들이 함께 다루어질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참고로 2015년에는 오쿠이 엔위저가 〈세상의 모든 미래들(All the World’s Futures)〉이라는 주제 안에서 발터 벤야민과 마르크스가 미래를 향해 투사했던, 이제는 현실이 되어버린 세계관을 다루었으며, 2013년에는 마시밀리아노 지아니가 〈백과사전 궁전(The Encyclopedic Palace)〉이라는 주제로 지식과 꿈의 실현, 유토피아에 투영된 인류의 열정에 대해 다루었다. 이 두 예술감독은 모두 근래에 광주비엔날레 총감독을 역임한 만큼 한국 작가들의 참여도 활발했다. 크리스틴 마셀은 지금까지는 한국과 협업한 적이 없는 만큼 어떤 한국 작가들이 참가하게 될지 궁금하다.
1977년에 시작된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는 카스퍼 쾨니히(Kasper Konig)가 지금까지 이끌어오고 있으며 10년마다 열리는 전시의 총감독을 맡고 있다. 뮌스터는 독일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선정된 바 있고 아테네, 로마 등과 함께 ‘유럽 역사유산(European Heritage Label)’에 오를만큼 유서 깊은 도시이며, 대학생 수가 6만 명에 달하는 대학도시이기도 하다. 아름다운 자연경관에 공공조각을 설치하겠다는 생각을 실현에 옮기면서 뮌스터는 일본의 에치고 쓰마리를 위시하여 세계의 수많은 도시가 공공조각 프로젝트에 열을 올리게 하는 계기를 제공했다. 한국에서도 안양조각축제를 비롯하여 뮌스터를 모델로 한 공공조각 프로젝트가 다수 이루어져 왔다. 이번 행사의 주제는 〈멋있게 낡은, 신나게 젊은(Enchantingly Old, Excitingly Young)〉이다. 40년에 이르는 프로젝트를 통해 설치된 지 오래된 작품들과 새롭게 설치된 작품들의 조화와 역사적 공존이 강조된 표어라고 하겠다.
바젤아트페어는 잘 알려진 것처럼 단순히 아트페어라기보다는 바젤이라는 도시 전체가 만들어내는 예술적 프로그램들의 오케스트라가 방문의 내용이다. 바이엘러 미술관, 샤우라거, 쿤스트할레, 비트라 디자인미술관에서 열리는 수준 높은 전시프로그램들, 같은 시기에 열리는 리스테, 볼타, 스코프 등의 중소 아트페어들까지 보자면 며칠이 걸리는 일정이 된다. 게다가 바젤아트페어 부대행사인 언리미티드와 매번 새롭게 제안되는 프로젝트 및 강연들은 가히 매년 열리는 중소 비엔날레급 행사라고 칭할 수 있을 정도다. 개막 시기로 보았을 때 프리뷰/오프닝 행사는 베니스 비엔날레 5월 10~12일, 도쿠멘타 6월 8~9일, 뮌스터 조각프로젝트 6월 10일, 아트바젤 6월 15~18일 순서로 열린다.
철학, 문학과 같은 인문학적인 영역의 역할이 커져가는 동시대미술의 장에서는 유럽의 지식인과 전문가들, 그리고 미술관과 이러한 초국가적 거대 전시들이 주도하는 국제적 예술제도의 틀이 어느 때보다 공공한 것이 사실이다. 결국 이러한 고급문화예술 영역에서 창조적이고 주도적으로 기여하기 위해서는 우리 문화권 내부에서 그러한 역량과 자원을 쌓아야 한다. ‘문화전쟁’을 콘텐츠와 시장의 주도권 싸움으로 국한하는 것은 지나치게 수준 낮은 생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