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this is being art-6
거울 속의 나를 보듯 소통하기
최효준 경기도미술관 관장
2012년 가을 경기도미술관에서 <다른 그리고 특별한전>이 열려 한국 미국 일본의 발달장애인의 미술작품 400여 점이 전시되었다. 다양한 종류의 장애 중에서도 가장 이해하기 어렵고 그래서 사회 적응을 위한 제도적 지원이 취약했던 발달장애 부문에 초점이 맞추어진 전시였다. 예술적 재능이 빼어난 발달장애인들이 독창적으로 구현한 미학을 바탕으로 전하는 그 다르고도 특별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많은 이가 감명을 받았고 전문 미술가들에게도 영향을 주었다.
당시 전시의 의도는 각별하였다. 예술적 성취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는 한국, 미국, 일본의 발달장애인들의 엄선된 작품, 자기몰입 과정을 거쳐 ‘다름과 특별함’을 드러내는 창조적 결과물을 만나는 대중들 내면의, 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데 일조하려 하였다. 장애 예술의 가능성을 본격적으로 소개하는, 세계적으로 전례가 없는 정규 미술관 전시를 통하여 관련 인프라 구축에 기여하려 하였고, 궁극적으로는 장애인 대다수가 재능에 상관없이 예술 창작을 통해 행복을 찾고 자아를 실현할 수 있다는 비전을 보여주려 하였다.
예술을 통해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려는 사회적 예술 프로젝트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기울여온 경기도미술관이 주관한 이 전시의 한국 측 협력기관은, 2011년 개관하여 장애예술가들의 독보적 문화창작공간으로 자리매김한 수원의 ‘에이블 아트센터’와 비영리 소수자예술단체인 ‘로사이드’였다. 미국 측 협력기관은 방대한 수준의 창작 시설과 전시 공간을 갖춘 39년 역사의 장애예술가 전문기관 캘리포니아 오클랜드의 ‘크리에이티브 그로스 아트센터(Creative Growth Art Center)’였고, 일본 측 협력기관은 23년의 역사를 가진 장애예술가 전문 지원기관으로 국내에서 왕왕 벤치마킹의 대상이 되는 나라 시의 ‘하나 아트센터’였다.
그간 장애인 문화 복지 관련 국내에서도 많은 변화와 발전이 있었다. 작년에 장애인 문화예술 관련 업무가 종전 문화체육관광부 장애인체육과에서 예술정책과로 이관되었는데 여전히 담당 두 분이 고군분투하고 있다. 근간 장애예술가들의 아트 페어 행사를 치르게 되며, 숙원이던 장애인문화예술센터의 개관 사업을 한국장애인예술협회와 함께 초인적인 노력으로 만난을 극복하고 추진하여 2015년 개관을 앞두고 있다. 수원의 에이블 아트센터는 재정적인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성인 장애 작가 발굴과 지원 프로그램을 꾸준히 운영하고 있으며 국립현대미술관의 주요 전시 관련 장애인 교육 프로그램을 위탁 운영하는 등 전문적 입지를 다져가고 있다.
여기서 몇 가지 생각해야 할 바가 있다. 중앙 정부 차원에서의 정책 추진 등 관(官)주도의 사업 추진과 지원 방식은 분명 낙후된 여건을 비교적 단기간 내에 개선하는 데에 효과적인 한국형 모델이다. 그런데 그것은 절실히 필요하지만 충분하지는 않아 보인다. 사실 바람직한 것은 앞서 말한 미국, 일본, 그리고 수원 에이블 아트센터 사례에서 보듯 우리도 속히 민간 주도의 장애인 예술 진흥 인프라를 양적, 질적으로 꾸준히 성장, 심화해가는 것이다. 그것을 위한 여건을 정책적, 법제적으로 탄탄히 조성해 나아가는 면에서 관의 역할이 더욱 빛을 발할 것이다. 모든 책임을 관에 지우고 늘 관만을 바라보고 기대하는 시대는 지났다고 보아야 할 터, 시민사회와 시민의식의 성숙이 관건이 될 것이다. 결국 대중의 인식이 바뀌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 대중의 느낌이 바뀌어야 한다. 장애인미술 관련 전시가 본격적으로 더 열리고 널리 관심을 끌어 대중의 느낌이 바뀌고 그래서 “장애는 그저 다른 상태다”라고 장애에 대한 고정관념이 깨져야 한다는 것이다.
바라건대 바뀐 인식을 바탕으로 장애 예술 관련 프로그램에 대한 민간 지원이 크게 활성화되고, 그를 위한 여건이 정책적, 법제적으로 조성되었으면 한다. 아울러 효과가 검증된 민간프로그램에 대해서는 현재 까다롭고 거의 불가능한 관의 지원을 가능하게 하는 방안이 적극 모색되기를 기대한다. 이 부문에서 효과적인 민관 협치, 거버넌스가 필요할 것이다. 예술 활동, 특히 장애인들이 주체가 되는 예술 활동을 관 주도로 진흥시키기에 한계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여기서 미국 크리에이티브 그로스 아트센터(Creative Growth Art Center) 사례를 주목해보자.
크리에이티브 그로스 아트센터의 특별함
41년 전 플로렌스 루딘스-카츠와 엘리아스 카츠라는 선각자들, 정신과 의사와 예술가 부부에 의해 설립된 크리에이티브 그로스 아트센터는, 당시 함께 설립된 3개의 다른 자매기관과는 다른 발전 과정을 거쳤다. 오늘날까지 존속한 베이 지역의 다른 두 군데 기관 중 니아드 아트센터(NIAD Art Center)는, 미술과 무관한 배경의 디렉터에 의해 운영되고 있었고 장애를 가진 작가들이 모본(模本)을 충실히 모사하는 식의 ‘공예’ 개념으로 작업을 하고 있어 크리에이티브 그로스 아트센터와는 확연히 다른 성격을 보여주고 있었다.
크리에이티브 그로스 아트센터의 경우, 디렉터인 톰 디 마리아(Tom di Maria) 가 표방하는 대로 ‘동시대미술(contemporary art)’의 공동 창작 스튜디오로서 운영되어 자유와 창의의 분위기와 활기와 열정이 온 스튜디오에 넘쳐났다. 장애인 작가들은 자신들의 상황에 만족감을 표시했고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외부 방문객을 진심으로 환영하고 자신들의 모든 것을 기쁘게 공개했다. 톰은 그들이 크리스마스 카드를 그리거나 상품 생산을 위한 단위 공정을 담당하는 등 공예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했고, 그들과 함께 미술의 본령에 뛰어드는 입장을 취했다. 그들을 비숙련 노동에 종사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 논리로부터 자유롭고 즐겁게 창의적인 작업에 몰두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톰은 그들의 미술을 ‘아르 브뤼’나 ‘아웃사이더 아트’와 같은 이름으로 범주화하는 것도 거부하고 그것이 오직 ‘동시대미술’로 불려지기를 원한다고 하였다. 센터에는 많은 작가가 스태프나 자원봉사자로 일하지만, 미술기법을 가르치거나 지도하지 않고, 오직 작가 개개인의 창의적 표현 통로를 열 수 있도록 도울 뿐이다. 이것이 바로 크리에이티브 그로스 아트센터의 성공 비결인 듯하다. 자유분방하고 창의적인 창작활동은 그들에게 내적 자유를 찾아주며 장애 극복과 자기실현을 가능케 해주는데. 미술의 관점에서 보면 이러한 과정들이 동시대미술의 영역을 확장시키는데 큰 역할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미술은 본질적으로 개인적인 예술이다. 그런데 센터에서는 협력적인 집단 창작 환경이 주효한 듯하였다. 이 점이 놀라웠고 마치 사회주의 국가의 ‘창작소’를 연상시키기도 하는데, 여러 장애 작가가 한 장소에 모여서 개별적인 작업을 하는 데에는 어떤 각별한 이점이 있는 듯하였다. 발달장애인 사회에서 통할 행복의 조건, 그것은 ‘협력’의 패러다임 같은 것이었다. 거기에는 ‘경쟁’의 패러다임을 ‘협력’의 패러다임으로 바꾸어야 할 이 시대 이 사회의 비장애인들이 배울 바가 있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센터 작가 대부분이 학교로부터 정규 미술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이었는데 이들이 정규 미술교육을 받은 작가들을 이끌고, 지적으로 도전적인 자극을 주고, 그들에게 영감을 준다는 점이다.
미술 영역의 확장, 일상화, 보편화
디렉터 톰은 지난 10여년간 크리에이티브 그로스 아트센터의 주된 운영방향을 정하면서 동시대미술계 최고의 기준에 부응했다고 했다. 그 결과 뉴욕의 현대미술관,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 등에 작품이 소장된 댄 밀러, 주디스 스콧 등 여러 성공 사례가 만들어졌다. 내면의 창의성을 끌어내어 자기실현의 한 과정으로서 예술 창작 행위를 추구하는 것이 의미 있다고 할 때, 예술적 재능이 출중한 장애 작가뿐 아니라 예술적 수월성에서 뒤지는 대다수 장애인을 위한 프로그램으로 이를 정착시킬 만한 가치가 있을 것이다. 체육으로 치면 사회체육을 진흥시켜 저변이 넓은 피라미드를 만들면 그 정점에 자연스럽게 엘리트 체육이 꽃피는 경우와 비교할 수 있는데, 저기능 발달장애인의 경우, 주변의 인정이나 수월성을 기준으로 하는 평가를 떠나서 자기가 좋아서 즐겁게 일상적으로 예술적 표현활동에 몰입하곤 할 때 그 시도와 시간을 매우 소중하게 여기며 그때에 모종의 자가 치유가 진행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그런 기회가 누구에게나 충분히 주어지고 그런 활동이 장려되어야 할 터인데 우리의 경우 특수학교에서 ‘예술성’과 무관하게 그러한 보편적 표현활동을 장려하는 정규 또는 특별 교과 프로그램은 거의 없는 듯하다.
디렉터 톰은 자폐 장애를 가진 작가에 대한 조언을 요청받았을 때 “마음으로부터, 상상으로부터, 꿈으로부터, 걱정으로부터 무언가를 끄집어내어 그림으로 표현하라”고 말했다. 그러한 조언은 예술적 재능이 없는 장애인이나 비장애인 모두에게 유용하지 않을까 싶다. 앞으로 운영될 장애인문화예술센터가, 가정에서나 특수학교에서나 비록 예술적 재능이 없는 학생이라고 하여도 누구나 즐겁게 창의적 예술관련 활동에 몰입할 수 있게 하는 프로그램을 연구, 개발하고 정책화하는 것을 그 주요 기능의 하나로 삼았으면 하는 기대를 갖는다.
비장애인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수많은 백화점의 아카데미에서도, 슈타이너의 발도르프 학교에서처럼 창의적이고 생명력 넘치는 미술수업이 이루어지고, 주체적 활동으로 신체적 정신적 성장을 이끄는 인간 중심의 예술 활동이 보편화되어야 하지 않을까? 모름지기 창작활동이란 수월성의 기준과 무관하게 오직 내면의 창의성의 발현으로서 가치가 판단되고 의미가 부여되어야 할 것이며 창의적이고 생명력 넘치는 개개인의 삶들이 토해놓은 큰 산의 정점에 빼어난 예술적 성취도 자리하게 될 것이다.
뇌과학자 올리버 색스(Oliver Sacks)가 저술을 통해 밝힌 것처럼 발달장애인의 소통언어는 독특하다. 우리가 그 독특한 언어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기울인다면 그들과의 전반적인 소통을 보다 심도 있게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먼저 그들이 그들의 언어로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판을 만들어주고 그것을 ‘해독’하려 노력하고 그 노하우를 축적해야 할 것이다. 그들이 회화적으로 왜곡, 변형, 생략 등의 기법을 썼을 때 비장애예술가라면 의도적으로 그리하였겠지만 발달장애 작가들의 경우에는 실제로 사물을 그렇게 보았고 이해했고 그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어 그리하였을 것이다. 그들은 시대적 유행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본 대로 느낀 대로 표현했을 것이다. 여기서 미술이, 통상적으로는 비장애 일반인이 이해할 수 없는 발달장애인들의 자기 표현 방식으로서, 의사소통과 감정 전달을 위한 일종의 ‘언어’ 기능을 할 수 있는지가 화두가 된다.
크리에이티브 그로스 아트센터 작가들을 촬영하여 책을 출간한 사진작가 레온 보렌츠타인은 자신이, 장애인들과 자신을 갈라놓는 얽히고설킨 거미줄 밖의 국외자라는 느낌을 받는다고 하였다. 그리고 센터의 효과적인 프로그램을 통하여 미술은, 그 거미줄을 걷어내고 장애작가들과 비장애인들을 통하게 하여 양자의 마음을 풍요롭게 만드는 효과적인 언어가 된다고 하였다. 그렇게 거울 속의 나를 보듯 소통하는 것이다. 장애인은 비장애인의 참모습을 비추는 거울이 될 수 있어 소중한 존재이다. ●
위.2012년 경기도미술관에서 열린 <다른 그리고 특별한전> 광경
[separator][/separator]
interview 발달장애 자녀를 둔 펠트 작가 이재범, 한상미 부부
“펠트회화를 통해 장애를 보듬다”
딸의 이야기를 소재로 그림책 《마냥 7살 송이》(이서원, 2013)를 펴냈다. 이 책을 펴내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사실 자녀가 장애라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드러내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부모로서 객관적인 입장에서 노력한 것 같다.
이재범 예전에는 자녀가 장애라는 사실을 감추는 경우가 많았다. 우리는 송이가 발달상태가 더뎌서 3세 이전에 알게 됐는데 처음에는 충격을 크게 받았지만 장애라는 사실을 빨리 받아들인 편이다. 작업을 하는 부모로서 이 아이를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다. 아이를 키우면서 그림책의 중요성을 알게 됐고 우연히 송이 이야기를 가지고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2년 동안 본격적으로 준비했다. 이 사회에서 송이만 장애를 가진 아이가 아니다. 이 책을 보면 송이에게 해당되는 내용도 있지만 타 지적장애인들에 해당하는 증상까지 함께 담으려고 노력했다.
한상미 송이는 처음부터 일반 초등학교를 다녔는데 학교에서도 초반에는 지적장애에 대한 인식이 많이 부족했다. 송이 학교에는 특수반이 없어서 특수반을 만드는 문제부터 교육청뿐아니라 교장실, 교무실을 수없이 드나들며 치열하게 노력했다. 그리고 언제 돌발 행동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에 매일 학교에 가서 교실 앞 복도에 숨어서 대기상태로 있었다. 송이는 모르지만 아이들은 내가 항상 거기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쉬는 시간에 와서 나를 위로하는 아이도 있고, 송이가 왜 저렇게 행동하는지 물어보는 아이도 많았다. 일반 아이들이 지적장애를 이해할 수 있도록 송이를 위한 일종의 가이드북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에게 접근하는 데 그림책만한 것이 없다. 아이를 가진 부모 입장에서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한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다. 그림보다 글을 쓰는 데 참 고민을 많이 했다. 이 책을 통해 아이들의 인식에 변화가 일었으면 좋겠다.
송이는 생각주머니가 다르다는 식으로 표현한 점이 흥미롭다. 실제로 다른 세계가 있다고 할 수 있나?
한상미 송이가 유치원 다닐 때 선생님이 또래 아이들에게 생각주머니라는 표현을 쓰더라. “송이는 너희보다 생각주머니가 작아서 그래.” 실제 지적장애인은 일반인이 생각하는 주머니 용량보다 작지 않을까. 송이와 같이 생활하는 친구들 눈에는 이해 안가는 부분이 꽤 많다. 당연히 해야 하는 부분을 못하기 때문이다. 저희가 생각하기에 송이의 경우 포커스를 두는 부분이 엉뚱한 데 꽂혀있다. 예컨대 전교 학생, 선생님의 이름을 모두 외운다. 저희가 생각하지 못한 어마어마한 대용량을 외우고 있긴 하다. 일반적이고 보편적이지 않을 뿐이지 나름의 독특한 세계관이 있는 것 같다. 이런 아이를 키우면서 힘들어서 때땔 좌절하지만 재밌는 상황도 많이 벌어진다. 우리는 울상만 짓고 있지 않다. 물론 상황을 인정할 때까지는 많이 슬펐지만 오히려 이 아이 그 자체로 바라보고 함께 생활하다보니 겸손해지고 아주 기본적인 것에도 감사하게 된다. 장애 아이를 키우는 부모는 공감하실 것이다.
그림책을 펠트로 표현한 점이 독특하다. 양모의 따뜻한 느낌에 수공적인 느낌이 더해져 그림책이랑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이재범 국내에서 펠트회화는 우리가 처음인 것 같고 해외는 아직 잘 모르겠다. 송이도 의미가 있지만 작업하는 사람 입장에서도 의미를 찾자면 기존에 없던 새로운 형식을 추구하는 실험이라고 생각했다. 이 작업을 계기로 펠트를 회화적으로 평면화하는 작업들이 이어지고 있다. 올해로 17년째 수제 펠트로 작업을 하고 있다. 해외에서는 많은 편인데 국내에서는 펠트를 전문적으로 하는 작가가 5명도 안 된다.
펠트 작업의 매력은 무엇인가?
이재범 펠트는 양털뿐 아니라 머리카락도 재료가 될 수 있다. 웬만한 동물의 털은 다 된다고 보면 된다. 머리카락처럼 불규칙한 동물의 털이 힘에 의해 결합이 되어 엮어진 부조직의 직물이다. 아무리 힘을 가해 분리하려고 해도 찢을 수 없다. 그림책에 사용된 회화적인 표현은 니들펠트라고 해서 한 땀 한 땀 특수바늘로 누르면서 작업하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걸리긴 하지만 무엇보다 다양한 표현이 가능하다. 펠트는 서양 사람이 많이 이용하는 재료이지만 원래 중앙아시아에서 유래했다. 유목민에 의해서 발전된 기법이고, 우리나라에서도 8세기에 펠트로 제품을 만들었다고 문헌에 기록돼 있다.
장애에 대한 이해가 작업세계와 어떤 관계성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이재범 어려운 질문이다. 초기 작품이 한때 ‘치유’에 포커스를 두었다. 당시에는 나의 내적 치유에 집중했는데, 지금은 함께 바라는 꿈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치유가 되기를 바란다. 작업을 하면서 공예 쪽은 순수미술에 비해 형식은 완벽하지만 내용이 약하다는 점이 항상 마음에 걸렸다. 제가 공부할 때는 공예가 순수미술을 많이 받아들이는 편이었고 예술가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했다. 나중에 사회생활을 하고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메시지를 담은 작품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이 아이와 어른 구분 없이 모두에게 메시지를 줄 수 있는 <로드킬> 작업으로 이어졌고 그림책으로도 표현된 것 같다.
앞으로의 계획은?
이재범 우리 작업을 필요로 하는 그림책이 있으면 추진하고 싶다. 지난 4월 갤러리 이앙에서 개인전을 열었는데 앞으로 구상과 추상을 넘나들면서 다양한 작업을 선보일 계획이다.
이슬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