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REVIEW 김종인
바우하우스 교장을 지낸 발터 그로피우스(Walter Gropius, 1883~1969)는 “건축가, 조각가, 화가, 우리 모두는 공예로 돌아가야 한다. … 예술가와 공예가사이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없다. 예술가는 고귀한 공예가이다…”라고 말했다. 작가 김종인은 도예가 혹은 공예가라는 제한한 타이틀로 규정지울 수 없다. 그의 작품은 실용성과 조형성, 그리고 실험성과 예술성을 한 몸에 지닌 확장된 개념의 공예조형예술품이기 때문이다. 공예(가) 본연의 정체성을 확고히 지키며 일상의 삶과 깊이 관계 맺고 있는 김종인의 작품세계를 소개한다.
살아 있는 도자기, 생각하는 작가
조혜영 2015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전시감독
역사적으로 또는 미술사조적으로 볼 때 미술의 여러 장르에 걸쳐 다양한 성격의 작가들이 존재해왔다. 어떤 작가는 자신이 중심이 되어 작품만 열심히 했다고 한다면, 의식과 사상을 바꾸는 것에 초점을 두고 새로운 흐름을 선동하는 작가들도 있었다. 작가 김종인은 후자의 경우에 해당한다. 단지 작품만이 아닌 도자기분야와 공예분야 안에서 시대와 접목되는 새로운 시도를 지속적으로 해왔기 때문이다.
1990년대 초 김종인은 자신을 포함해 한국의 여성은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 하는 질문을 던졌다. 김종인은 여성작가로만 구성된 도예그룹 ‘흙의 시나위’를 결성해 한국 여성의 사회적 위치-정신 등에 대한 고민을 작업을 통해 보여주었다. 그러면서 1990년대 후부터는 한국의 현대공예를 대중에게 알리고 좀 더 가까이 다가갈 방법들을 지속적으로 모색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마니미니재미 가게”이다. 마니미니재미는 ‘많이, 작게, 재미있게’를 뜻한다. 그런가 하면 김종인은 이 시기에 이미 인터넷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소설네트워크의 중요성을 강연을 통해 전파하고 있었다. 인터넷과 공예를 결합시켜 활성화하는 방법을 모색한 것이다. 2000년대에는 본인이 본보기가 되어 도자의 가치 제고 및 활용 방안에 대해 고민했고 서울여자대학교 미술대학 공예학과 교수로 부임한 후 후학들에게 현실적으로 생업에 필요한 교육을 해왔다. “세라믹 클라스Ceramic Class”라는 제목으로 여러 차례에 걸쳐 개인전을 열었으며 전시 현장에서도 수업을 진행하는 등 살아있는 미술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제자들과 작가들에게 믿음을 주고 영향을 주면서 지금은 훌륭한 멘토로서 김종인만의 팔로잉following이 형성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종인을 생각하다
김종인하면 우선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한 여성의 모습이 그려진다. 독특한 모양의 안경을 착용하는 것이 취미이며 짧은 머리와 헐렁하지만 전체적으로 조화가 잘된 의상의 코디로 다소 중성적으로 느껴지는 외모는 작가로 살아 온 그녀의 경험들을 대변해준다. 필자는 1990년 중반 당시 최고의 한국 현대도자 행사 중 하나로 여겨졌던 <진로국제도예지명전>을 통해 김종인을 처음 만났다. 그때의 인상적인 모습이 지금까지 나의 뇌리에 남아 있다. 우선 김종인은 노력하는 사람이다. 어느 한 부분도 소월하게 넘어가는 법이 없다. 작업에 대한 열정, 후학들에 대한 애정, 한국 미술에 대한 작가로서의 책임 등 혼신을 다해 매일매일 노력한다. 그런 모습 뒤에는 아무도 모르는 인내와 노력의 시간들이 지지대처럼 그녀를 지켜주고 있었을 것이다.
1990년대 한국의 현대도예는 조형적 표현에 집중했기 때문에 현대도예 작가로 활동하던 사람들은 모두 조형적 작업을 했다. 여기서 말하는 현대도예 작가란 대학에서 도자전공을 한 사람들을 말한다. 미국의 피터 볼커스Peter Voulkos의 영향을 받아 1960년대 미국에서 일어난 조형에 대한 추상적 표현 즉 쓰임이나 기능적인 도자가 아닌 흙이라는 재료적 물성을 이해하고 그것에 집중된 다양한 표현들이 1990년대 한국에서 시도되었다. 당시 한국의 현대도예는 미국의 로버트 아너슨Robert Arneson, 리처드 쇼Richard Shaw, 커크 맹거스Kirk Mangus와 같은 작가들의 추상 표현적 도예에 영향을 받았다. 도자를 공부하던 많은 학생이 조형적 도자의 본고장인 미국 서부의 대학들로 유학을 가던 시절이었다. 그런 흐름 안에서 김종인은 미국을 선택하기 보다는 영국으로 건너가서 공부를 했다. 당시에는 영국으로 미술공부를 하러 가는 사람들이 많지는 않았다.
영국에서도 마찬가지로 미국의 영향을 받아 도자분야의 작가가 조형적 표현에 집중하고 있었다. 하지만 미국만큼 흙이라는 매체로 거대한 작품을 만들지는 않았다. 1990년대 영국 조형적 도자분야의 대표 격인 질 크롤리Jill Crowley, 모 접Mo Jupp, 파멜라 룽Pamela Leung, 마틴 스미스Martin Smith가 활동하고 있었으며, 김종인은 당시 골드스미스 대학Goldsmiths, University of London에서 공부했다. 매체의 다양성 즉 흙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재료를 혼합해서 사용하게 된 김종인의 작품적인 시도는 여기서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골드스미스 대학은 미술분야에 자유롭고 열린 교육을 하기로 유명하다. 하고자 하는 개념과 생각만 뚜렷하면 진보적이고 실험적인 표현을 제재하지 않는 미술교육으로 데미안 허스트Damien Hirst, 스티브 매퀸Steve McQueen과 같은 훌륭한 작가들을 배출했다. 따라서 김종인의 많은 실험은 여기에서부터 형성되기 시작했을 것으로 예상한다. 골드스미스에서 공부를 마친 후 김종인은 도자로 잘 알려진 영국 웨일스 카디프 미술대학교Cardiff College of Art and Design, Metropolitan University에서 석사학위를 이수했다. 지금은 카디프 미술대학교 하면 도자분야로 이름이 알려져 있지만 당시에는 한국인이 많이 가지 않는 곳이었다.
영국에서 학업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온 김종인은 본인의 여성성에 대한 고민을 보여주는 여성 인체 작업을 주로 했으며 전시를 통해 선보였다. 설치미술 개념으로 여성의 인체와 관련된 사물found objects을 특정 공간에 배치하면서 한국에서 살아가는 자신의 여성성을 표현하고자 했으며 같은 주제로 여러 번 전시하면서 생각이 정리 된 듯하다. 실제보다 더 큰 사이즈의 여성 인체를 제작하여 도자 고유의 장식기법인 투각기법으로 표면을 장식하기도 하고, 인체를 공중에 띄우기도 했다. 흙을 사용했으나 마치 나무처럼 보이기도 하고, 금속으로 표현되기도 했다. 작품은 마치 태고의 원형을 간직한 아프리카의 나무 조각물처럼 보이기도 했다. 인체 작업을 하던 시기에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의미에서 본인의 가족사를 보여주는 설치 전시도 기획한 바가 있다. 사진과 다양한 사물 그리고 김종인 특유의 인체형상들로 전시가 이루어졌다.
그 외에 김종인은 실용성을 기반으로 하여 물레고 용기 형태들을 제작했다. 푸드스타일리스트와 협업해 식기세트를 제작했는데 이것은 당시 MBC 드라마 <궁>의 소품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IMF 외환위기 이후 조형적인 작업보다는 다시 실용적인 도자기로 돌아가는 흐름에서 맞추어 김종인은 갤러리 현대, 목금토木金土갤러리 등에서 실용적인 작품을 전시했다. 김종인은 색이 짙은 점토를 주로 사용하는데 특히 붉은 점토를 좋아한다. 발색이 효과적이어서 표면 장식을 하기에 적절한 점토이다. 영국에서 배운 색 사용 기법을 한국의 다양한 장식 기법에 접목시켜 화려하고 따듯한 느낌의 장식으로 애호가들의 눈길을 끌었다.
최근에는 주변에서 찾아볼 수 있는 다양한 사물found objects로 해학적인 얼굴표정과 인체를 만들어 군집을 이룬 설치작업을 한다. 마치 키스 해링Keith Haring 장 미셸 바스키아Jean Michel Basquiat의 작업을 연상시키는 그라피티graffiti 작업과 유사한 표현을 입체적으로 시도한다. 미술 장르 간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현대에 김종인은 도예 또는 공예 작가로 정의 내리기보다는 다양성을 추구하고 새로운 표현을 시도하는 작가로 볼 수가 있다.
공예페어-마켓은 최근 우리 주변에서 일상적으로 접할수 있는 행사이지만 1990년대 후 2000년대 초에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김종인은 공예를 활성화하는 시도로 “마니미니재미 가게”를 진행했는데 처음에는 전시 개념으로 작게 시작한 것이 점차 규모를 키우고 공예분야를 전반적으로 다루면서 마켓 개념으로 브랜드화되었다. 이렇듯 현실적 접목을 시도하는 김종인은 공예인들 사이에서 인정받고 있으며 생업이 중요한 젊은 작가들에게 하나의 돌파구를 보여주었다. “마니미니재미 가게”를 기획할 때마다 참여 인원이 증가하고 판매도 지속적으로 유지되었다. 지금은 홍익대 주변이나 대학로 등 여러 장소에서 크고 작은 공예페어가 열리지만 10년 전만 해도 흔하지 않았다. 현재는 또 다른 모습으로 “마니미니재미 가게”를 선보이기 위한 구성을 하고 있으며, 시대에 맞는 새로운 모습이 기대된다.
도자기를 판매하고 상품화하는 작업은 작가들에게는 절박한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 작가 김종인은 이러한 문제를 깊이 인식하고 작업에서 늘 현실과의 접목을 시도한다. 얼마 전 갤러리 세인에서 개최된 기획전시에는 ‘병Bottles’의 형태를 주제로 하여 화려하고 따듯한 장식이 돋보이는 작품을 선보였다. 상업성과 작품성이 물과 기름처럼 나눠지는 것이 아닌 시대의 흐름 또한 녹여낸 조화로운 모습을 선보였다.
작가 김종인의 작품에서는 늘 신선한 시도와 변화를 엿볼 수 있어, 애호가들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오래전부터 존재해왔던 한국의 도자기 분야를 포함한 예술분야를 보다 효과적이고 실질적인 방향으로 이끌어 나가는 시도들이 앞으로도 꾸준히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김종인은 만들고 가르치고 느끼기를 멈추지 않는 작가임이 분명하다. ●
김 종 인 Kim Jongin
1957년 태어났다. 서울여자대학교 공예학과와 University of London, Goldsmiths’ College, Postgraduate Diploma in Ceramics, South Glamorgan Institute Higher Education, MA in Ceramics를 졸업했다. 1990년 공간화랑에서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12회 개인전을 열었다. 2007년부터 <마니미니재미가게>를 기획했고, 현재 서울여자대학교 미술대학 공예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