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ARTIST 김주호

테라코타를 비롯해 나무와 돌, 그리고 단단한 철판에 이르기까지 조각가 김주호가 다루는 재료는 다양하다. 하지만 그 재료가 무엇이든 그가 작품에서 이야기하는 주제의식은 초지일관 뚜렷하다. 인간과 사회에 대한 관찰과 사유로 포착한 세상의 표정이 그것이다. 이와 같은 김주호의 작품은 내용과 형식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다. 작가정신과 표현방식이 절묘한 조화를 이룬 김주호의 작품세계를 탐구한다.

말하는 조각들

성완경 인하대 명예교수

김주호 작품의 출발점은 ‘지금 여기’이다. 가까운 곳에 눈길을 주면 세상이 돋보기로 보듯 새삼스럽게 보인다. 거리의 삐까 번쩍 요란하고 누추한 간판들도 새롭게 보인다. 소통은 그의 작업의 핵심이다. 돋보인다는 것은 혼자서 되는 일이 아니고 나와 상대방이 서로 궁합이 맞았을 때 가능하다. “내 삶에서 나에게 관심을 끌려는 어떤 것을 알아봐주는 것, 이것이 소통의 기본이다”라고 그는 생각한다. 꼼꼼히 보는 것, 일상 속을 걸으며 끊임없이 찬탄하는 것, 기어코 무언가 찾아내 무릎을 치고 사랑하고야 마는 것. 어쩌면 이것이 그의 작업의 민중적 지평이자 발견자로서의 전위미학의 핵심일지도 모르겠다. 요즘 막걸리엔 ‘생’자가 붙은 생막걸리가 대세인데 그 생막걸리병의 다양한 라벨들을 보며 그는 삶의 충동과 희열을 느낀다. 그리고 배운다. 발견을 하고 철학을 한다. 대중적 삶의 지혜와 이름 없는 인생들의 에너지에 관해. 그것은 사랑이다. 그에게 소통이란 이처럼 사랑과 발견에 기초한 것이다. 항상 눈 맞추는 것. 그리고 사랑하는 것. 이것이 김주호 작업의 출발이다. 그의 조각이 처음부터 끝까지 말하는 조각이기를 열망하는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말하는 조각이자 춤추는 조각, 사랑스럽게 몸을 뽐내는 조각, 타자의 시선을 받으며 행복을 뽐내는 신체들이다. 몸짓, 함박웃음 혹은 미소, 교환, 발화로서의 조형.
그의 조각 재료는 흙, 돌, 나무, 쇠, 발견된 오브제 등이다. 흙을 원통형으로 감아 쌓아 올린질구이(테라코타) 인물상들은 사랑으로 충만해 있다. 이 시기에 통나무에 작업한 나무 조각들도 재료만 바뀌었지 기본적으로는 통 형태의 질구이 작업과 유사한 세계를 보여준다. 따뜻하고 밝고 해학에 넘치는, 삶의 다양한 표정들을 뿜어내는 작품들이다. 불규칙한 나뭇가지들을 자유롭게 이용한 최근의 ‘책조각’들은 더 날렵하고 더 언어적이다.
2012년 6월 관훈미술관과 나무화랑 개인전 때 나무화랑 쪽에 설치된 나무에 채색한 소품 조각들을 말하는 것인데 이 조각들은 모두 책 모양으로 채색되고 글씨가 쓰여진 나무판자 위에 놓였는데 책 표지에 <그때 그 사람들-100년>, <너에게 침을 뱉어라>, <남북 왜 악수하기 힘들까>, <미국이라는 나라> 또는 <Folk Art in Korea>, <Sculptures from objects>, <Art in Nude> 같은 단어가 책 제목처럼(그리고 작품 제목처럼) 적혀 있는 작업이다. “책이 말을 한다/ 눈길을 끄는 표지/ 서서히 그들의/ 몸짓이 일어난다./ 손짓, 몸짓하며 나온다./ 광복 60년의 몸짓이/ Nude의 매혹적인 눈길도/ 책이 내 손길보다/ 먼저 와 있다.”(작가의 작업노트)
최근의 철판작업들은 드로잉 선을 따라 철판을 도려내어 그것들을 연결하고 구부려 공간 속에 펼치거나 세워놓은 작업인데 이 같은 발화의 새로운 실험을 보여준다.

2012년 관훈갤러리에서 열린 작가의 개인전  전시광경. 앞쪽에 보이는 작품 (MDF에 에나멜페인트 2008)는 부천천만화박물관에서 열린 에서 처음 선보인 작품으로 만화가 윤승운의 캐릭터를 응용했다

2012년 관훈갤러리에서 열린 작가의 개인전 <사람사이> 전시광경. 앞쪽에 보이는 작품 <룰루 하하>(MDF에 에나멜페인트 2008)는 부천천만화박물관에서 열린 <타임캡슐을 열다>에서 처음 선보인 작품으로 만화가 윤승운의 캐릭터를 응용했다

  64×21.5×16cm 혼합토(섭씨 1070도) 2015

<창문-2> 64×21.5×16cm 혼합토(섭씨 1070도) 2015

작가와 닮은 작품
김주호가 살고 있는 곳은 강화도다. 강화도에서도 아주 깊은 곳이다. 김주호는 강화도에 20년째 살고 있다. 강화도에서 지금은 퇴직한 직장(보성고등학교)이 있는 서울까지 두 시간이 걸리는 거리를 출퇴근했다고 한다. 최근 김주호는 생애 첫 레지던시를 인천아트플랫폼에서 했다. 흔치 않은 일이기도 하고 쉽지 않은 일이기도 하다. 그의 나이를 생각할 때 특히 그러하다. 그러나 그에겐 뚜렷한 이유가 있었다. 그곳의 잘 갖추어진 철조작업장에서 작업할 수 있다는 것 바로 그것이 이유였다. 플라스마 용접 절단기, 크레인 등 장비가 잘 갖춰진 그곳에서 그는 봄과 여름 6개월 동안 땀 흘리며 작업에 몰두할 수 있었다. 나는 그 결과물로서의 작업을 두 전시장에서 볼 수 있었다. 하나는 서울 북촌의 가회동 60, 다른 하나는 평창동의 김종영미술관이었다. 앞의 것은 개인전이지만 규모가 아주 조촐했고 뒤의 것은 5명을 초대한 기획전(<인간 그리고 실존전>)의 한 부분이지만 규모도 제법 컸고 작품수도 더 많았다. 작품은 모두 철판 용접 환조와 드로잉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드로잉은 빠르고, 날카롭고, 자유롭고, 도상학적으로 풍부하고 흥미로웠다. 철판조각은 바로 그 드로잉들에 기반을 둔 것이었다. 발화하는 조각, 녹아내리며 가스 방울이 되어 떠오르는 발포제 약과도 같은, 혹은 만화의 말풍선 같은, 혹은 만화의 그림 글자나 동작선 같은 그런 상태를 보여주는 조각들이다. 그 속에는 만화가 있고 언어가 있고 기호가 있고 연극이 있고 퍼포먼스가 있고 몸짓이 있고 패션이 있다. 풍물놀이의 도리깨질이나 목구멍을 튀어나온 밥풀이나 (만화의) 말풍선 같은 것들이 턱턱 들어가 있는 듯한 조형들이다.
김주호는 발견하는 사람이다. 김주호의 발견은 대개 우연한 일이 계기가 된다. 앞서 잠깐 얘기한, ‘생生’막걸리를 마시다가 ‘생生’자 들어간 막걸리가 많다는 걸 발견했다는 얘기로 잠시 돌아가 보자. 그 발견 후 2010년 봄부터 그는 생자 들어간 막걸리 통을 모았다. 국순당 생막걸리, 서울 生生막걸리, 生장수막걸리, 덕산 生막걸리강화, 쑥生막걸리, 생배다리막걸리 등…. 그러면서 김주호는 거기서 우리 시대의 맥을 읽을 수 있다는 발견을 한다. 예전부터 지금까지 생은 여러 분야에서 쓰여왔다는 것을 깨닫는다. 생자가 붙은 단어를 좀 더 나열해 보면, 생비지, 생고기, 생금(치약), 생생우동, 얼큰 생라면, 순한 생라면, 생칼국수, 생짜장면, 생, 생머리, 생방송, 생생 정보통, 생생도시…. 결국 그는 생은 오래전부터 지금까지 계속 이어져 왔고 새롭게 만들어지고 있음을 보게 된다. 여기서 생자 바람이 막걸리에 집중되면서 더 확실히 맥을 잡았다는 것을 깨닫는다. 生을 이렇게저렇게 분석해보는 것은 작품 제작에 도움이 되어서라고 작가는 말한다. 그 다음 말이 중요하다. “작가는 자기 나름의 확신이 있어야 하는데 이것을 자기 주변에서 찾을 때 더 실감나는 작품이 된다”고 작가는 말한다. 그가 찾는 것은 생생세상, 생생풍경이다. 일상 속 지금, 지금 여기의 생생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것이다.
“생생한 옷매무새, /마음껏 자랑하는 당당한 포즈, /길거리 여기저기 /사람이 아름답다 /꽃보다” 바로 이것이 생생풍경이다. 그의 중립적으로 품위 있고 우아하고 당당하고 아름다운 질구이 인물상들이 뿜어내는 무척 섬세하고 편안하고 당대적인 아우라의 핵심이 이것이다. 흙의 터치, 사실과 과장, 포즈와 표정, 단순화, 장신구, 질구이의 질감을 관통하는 것은 그야말로 당당하고 편안한 당대의 미학이다. 놀라운 성취이다. 목조와 석조 작품에 대해서도 비슷한 얘기를 할 수 있다.
이 같은 성취의 바탕에는 삶의 진실과 소통에 대한 그의 소박하고도 질긴 믿음과 추구가 자리하고 있다. 그는 ‘어깨 두들기며 걱정 말라는 든든한 이웃’을, ‘(그들과) 함께 하는 흐뭇함’과 ‘따스한 이야기’를, 그리고 ‘어제가 좋아 보이고 내일이 괜찮을 것 같은 지금 여기’를 사랑하는 작가이며 답답한 세상에 대한 안타까움과 사람에 대한 신뢰를, 그리고 전통적 삶에 대한 신뢰감을 갖고 있는 이웃이다. 본질적으로 그의 작업은 웃음과 사랑의 회복을 선사하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서로 알아보며 “여기요!”라고 외칠 때 인간의 행복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작가. 그것이 김주호다.
2002년 <제4회 광주비엔날레>에서 김주호는 5·18 때 헌병대가 쓰던 건물에서 열린, 필자가 기획한 프로젝트3 <집행유예전>에 출품한 적이 있다. 그때 그는 사병휴게실에 천으로 만든 실물 크기의 인물상 5점을 자유롭게 배치하여 숨 막힐 듯 음울한 이 건물에 유머러스한 공간을 연출했다. 당시 이 작품 제작을 위한 현장 설명회에 참석하고 나서 그가 쓴 ‘친절하고 자세한 답사일기’에 이런 대목이 적혀 있다.
“자유관의 다큐감상. 5·18의 진실이 만천하에 밝혀져 반드시 정의가 승리할 것이라는 희망. 법정에 선 전직 대통령. 그 수뇌들. 모두 지금은 대접 받으며 잘살고 있다. 달라진 것 없잖아. 오, 이 깨끗한 역사. 하얀 브로크 벽면. 누군가 낙서를 할 만한 브로크 벽면인데도, 저 흰 칸. 칸. 칸. 아무도 손대지 않은 관심 밖. 그 옆 골프장에는 평일인데도 고급 승용차가 꽉 찬 것과 참 대조적이군. 깨끗한, 조용한 민주화의 현장. 권위와 폭력과 위선과 망각의 건축물을….조롱하자! 자유롭게, 그리고 즐겁게.”
얼마 전 내가 본, 김종영미술관의 <인간과 실존전>은 그때로부터 11년 후에 열린 전시인데 이 전시 카탈로그에 김주호는 <나는 본다>라는 제목으로 ‘작가의 말’을 기고했다. “외국 관광객이 제일 가보고 싶은 곳이 판문점이라 한다. 그럴 테지 선 그어놓고 넘어갔다 하면 못 돌아올 수도 있다는 게 희한하게 보일 게다. 세계가 하나다 하고 마음대로 왔다갔다 하는데 세상에 아직도 이런 곳이 남아 있다니. 이런 구경거리의 대상이 되고 있는 밑바탕에는 우리의 모순이 아무렇지 않게 자리 잡고 있다. 옆자리에 앉은 분이 갑자기 큰소리로 말한다. ‘… 아 글쎄 통 무슨 당인가 하는 거 뭐야 이 새끼 있잖아. 무기까지 있다 하잖아. 그 새끼 같은 놈이 아직 …’
재판도 받기 전에 국민재판에서 판결이 났다. 나는 그냥 듣고만 있다. 우리의 아픈 현실이 내 눈에 차츰 다가온다.” 김주호의 발견이 편안하고 행복한 것에만 머물지 않음을 이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분단 현실의 모순과 그것이 야기하는 불편함이나 낯섦을 우리 모두 비껴갈 수 없듯이 그의 시선 또한 그러하다는 것을.
김주호의 집에 갔다. 그의 아내가 차려준 밥을 먹었다. 밥상은 그와 그의 아내의 인상만큼이나 정갈했다. 동네사람들하고 뚝딱뚝딱 지었다는 그의 집은 2개 층으로 되어 있는데 1층 겸 지하 공간이 그의 작업장이고 그 위층이 살림집이다. 마당 한켠에는 흡사 농가처럼 허름한 비닐하우스가 있고 그는 그곳에서도 작업을 하는데 겨울에는 주로 별채로 지은 작업장 안에서 한다고 한다. 살림집 아래층이나 별채 작업장 건물이나 모두 작품으로 가득 차 있다. 두 공간 모두 한 개인의 오랜 작업과 시간이 숨 쉬는, 작은 신전이나 성소를 보는 듯한 느낌을 자아낸다. 작품은 마당에도 있는데, 그것들은 또 처음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소박하게, 또는 태연하게 비바람과 햇빛에 온몸을 내놓고 있다.
김주호는 조용한 사람이다. 그는 욕심이 없고 성의를 다해 사람을 대하고 풍족하지 않은 삶이지만 창호지의 여백처럼 정갈한 여유가 몸에 밴 사람이다. 그의 작품들 중에서 입가의 밥풀 같은 미소가 절로 나오게 하는 작품들은 바로 그런 ‘정갈한 여유’에서 나오는 유머인지도 모르겠다. 바쁘거나 강파른 성정에서는 결코 나올 수 없는 유머 말이다. 그의 작품들은 호호호, 푸하하, 훗후후, 낄낄낄, 룰라하하, 갈갈갈 거리며 말을 건다. 그의 인물들은 정답다. 김주호의 유머는 혼자 즐기는 유머가 아니라, 소통하고자 하는 의지의 유머다. 그의 다양하고 방대한 테라코타 작업들에서 보이는 인간군상의 표정과 몸짓이 바로 그런 종류의 유머인 셈이다. 그것들은 드로잉 철조에서 다시 새로운 표정을, 좀 더 낄낄대고 풍자적이고 날카로운 유머를 새롭게 펼쳐 보인다. 김주호는 ‘지금’, ‘바로 여기’의 작가다. 김주호야말로 그 자신이 생막걸리이고 생생작가다. ●

김종영미술관에서 열린  전시광경. (앞쪽) 스틸 패널116.5×39×8cm 2013,  종이에 아크릴 150×300cm 2013

김종영미술관에서 열린 <인간 그리고 실존> 전시광경. <휘날리다>(앞쪽) 스틸 패널116.5×39×8cm 2013, <금수강산> 종이에 아크릴 150×300cm 2013

* 이 글은 <2013 인천아트플랫폼 레지던시 프로그램> 결과보고 및 전시도록에 실린 필자의 글을 재 수록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