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REVIEW 나 점 수
조각가 나점수의 작품은 언뜻 보면 추상회화 같다. 구체적 형상이나 색채가 눈에 띄게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의 조각엔 수많은 이야기와 섬세한 감성이 깃들어 녹아있다. 절제되고 세련된 형태와 촉각을 자극하는 표면의 질감에서 작가의 체온을 느낄 수 있다. 그의 작품 이면엔 실크로드와 아프리카 대륙 횡단이라는 고된 순례의 체험에서 발현된 철학적 사유가 담겨있다. ‘김종영미술관 오늘의 작가’에 선정되어 6월 17일부터 김종영미술관에서 <표면의 깊이>라는 타이틀로 개인전이 열린다.
세상과 더 잘 만나기 위해 詩가 되는 공간
김은영 블루메미술관 학예연구실장
세상을 만나는 법이 달라지고 있다. VR(가상현실) 체험 기기가 세간의 관심 속에 있는 것은 그것이 PC와 스마트폰처럼 큰 변화를 이끌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다. 물리적 이동 없이 특정 공간에 가 있는 것 같은 가상 경험의 핵심은 프레임 없이 세상을 본다는 것에 있다. 주변의 모든 환경이 캡처된다. 머리를 돌리면 더 많은 것이 보이고 설명되는 방식이다. 이로써 실재 세상을 실재같이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조각가 나점수의 작업은 압축적이다. 설명적이기보다 시적이다. 단어 하나로 정신과 몸과 마음을 갑자기 다른 곳으로 옮겨놓는 시처럼 그의 작품은 실재하는 세상을 내 눈앞에 하나하나 가져다 놓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정서를, 의식을 움직여 어디론가 데려간다. 채워 보여주기보다 비워내어 맞닥뜨리게 하는 식이다.
나를 중심으로 둘러쳐진 세상을 나열하듯 보여주기보다 더는 시각으로 분석될 수 없는, 인식 밖으로 확장되어 나가는 크기의, 밀도의 세상이 실제이고, 그 실제를 만나기 위해서는 물리적인 거리를 극복하려는 노력보다는 고정된 의식이 목적성 없이 무너지는 ‘경이’와 같은 순간이 필요하다고 작가는 말한다. 의식이 설명적인, 분석적인 행로를 따라가는 것을 지연시키기 위해 그는 다음과 같은 장치들을 사용한다.
나점수는 공간을 되도록 비우고 수직적인 또는 수평적인 선으로 남는 형태의 조각들을 만들어왔다. 이를 위해 그는 주로 나무를 사용해왔는데 이는 그 원래 모습이 위로 성장해가는 수직성을 지니고 있거니와 서있거나 누워있는 모습에서 곧 생(生)과 사(死)라는 이성의 범주 밖을 향해 가는 생각들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그가 사람의 형상을 사용할 때도 마찬가지다. 손과 발의 행위가 없는 나무 기둥의 침묵과도 같은 포즈로 서있는 인간 형상은 시시각각의 현재보다 더 크고 넓은 시공간을 품어내는 듯 보인다. 그가 만들어낸 수직의 인간형상이 그 자체로서 기념비적인 형태 자체에 주목하게 하기보다 지지대나 통로의 역할로써 그것이 서있는 물리적 공간을 다른 차원의 시공간으로 전환시키는 것은 그에게 조각은 형태가 아닌 공간과의 관계로 정의되기 때문이다.
나점수는 사막을 찾아다닌다. 숲이 사람을 감싼다면 사막은 통째로 드러낸다. 그에게 사막은 비어있는 거대한 공간으로, 보이는 복잡한 모든 것이 비워지고 그것에 붙어있던 소리들도 비워지는 곳이다. 그리하여 모든 감각의 초점이 지평선 위에 숨쉬며 흔들리듯 서있는 자신에게 모아지는 곳이다. 광활한 수평선 그리고 그 위에 침묵하듯 서있는 생명 있는 것들이 자아내는 숭고의 감정으로 그를 끌어당기는 사막이라는 장소에서 그는 수직과 수평으로 환원되는 공간의 언어를 가져와 관객의 의식이 작동하기 전 그의 몸과 마음을 움직이는 에너지 장과 같은 정서적 공간을 만들어낸다.
나점수의 조각이 이성적인 설명을 이끌기보다 느낌과 정서로 먼저 관객을 끌어당기는 것은 그것이 바라보는 거리를 전제하기보다 거칠거나 단단함 같은 손끝의 감각을 당겨오기 때문이다. 시각적이기보다 촉각적인 그의 공간 안에서 재료들은 가능한 한 다듬어지지 않은 상태를 유지한다. 나무, 철, 흙, 마른 풀, 석고, 유리, FRP 같은 대체로 자연적인 재료를 사용하며 그는 작가가 재료를 손으로 제어하는 방식을 최소화한다. 깎아내기보다 거칠게 쳐내는, 빚어내기보다 한두 번 뭉쳐놓고 끝내는 방식을 통해 재료는 본래의 물질성을 잃지 않는다. 그리하여 그의 조각들은 본래 그 재료가 놓인 자리, 그것이 속해있던 장소의 공기까지 머금게 되는 것이다.
굵은 나무 기둥을 턱턱 쳐내 나무의 속살 한 켜를 그대로 세워놓은 듯한 조각, 작업실 주변 마른 풀들을 석고반죽으로 이겨 FRP로 만든 인체형상에 덕지덕지 붙여놓은 작품에서 우리는 한겨울 숲에서 나무의 껍질을 만질 때 전달되는 온기, 풀숲을 흔드는 바람을 느낀다. 결과적으로 그것이 추상으로 또는 형상적으로 귀결되는 것과 상관없이 나점수가 만들어내는 형태의 의미는 물질적인 표면을 통해 전달된다. 그에게 표면은 표피로 맴도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의미의 출발점이 되는 끝도 없는 깊이를 지닌 것이다.
시간성 – 느린 움직임
최근 그의 작품에는 움직임을 만드는 기계장치가 추가되었다. 얇게 쳐낸 나무 기둥에 저속 모터장치를 부착해 나무 조각이 앞뒤 또는 옆으로 느리고 부드럽게 움직인다. 일정 각도 안에서 아주 느린 속도로 움직이는 모습은 동물의 민첩한, 공격적인 움직임보다 은근하고 고요한 식물의 그것과 닮아있다. 그 스스로의 움직임이라기보다 스쳐지나가는 바람에 의한 흔들림 같은 느낌이다. 왜 이런 움직임일까? 그는 이것이 관객의 정서적 동의에 대한 실험과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형태가 느리게, 곧 멈추려는 듯 더딘 속도로 움직이고 있을 때 그것은 그 자체의 행위로 주목되기보다 공기의 움직임으로 같은 공간 안에 서있는 관객의 마음을 흔든다는 것이다. 이는 찰나처럼 지나가는 시간을 늘여놓은 듯한 느린 움직임 앞에서 유한의 시간을 살아가는 인간의 조건을 떠올리게 되기 때문일 것이다.
행위로 먼저 읽히는 드로잉 기계장치도 마찬가지이다. 검은 석탄으로 흰 종이 위에 선을 긋는 기계장치에서 작가가 무게를 둔 부분은 얼마나 느리게 움직이게 할 것인지다. “선의 반복 행위는 표현을 위함이 아니라 의식의 속도를 지연시켜 현존을 깨우기 위함이다.”라는 그의 의도는 시간성을 느끼게 하는 아주 느린 움직임 앞에서 관객이 나아가고자 했던 방향을 잊고 걸음을 멈춰 지연된 또는 확장된 시간 속에 서있는 자신을 발견할 때 완성된다.
관객으로 하여금 결국 나로 돌아오게 하는 공간. 하던 대로의 생각이 잠시 흔들리며 내가 느끼는 것, 나의 마음이 향하는 것을 더듬어보게 하는 시간의 틈을 만들어내는 것이 나점수의 작업이다. 봐야 할 것으로 가득 찬 세상을 더 많이, 더 잘 볼 수 있도록 또 무언가를 만들어 내어놓는 것이 아니라 비우고 멈추고 잠시 떠나 돌아오며 보이지 않던 실재로서의 세상과 내가 더 깊게, 더 실제같이 만날 수 있는 방법을 제안하는 것. 그것이 그가 하고자 하는 바인 것 같다. 세상을 만나는 법이 점점 더 다양해지고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자유롭게 세상과 진정한 대화를 할 수 있느냐에 있다.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그는 마음이 향해 있다면 가능하다고 말한다. ●
나 점 수 Na Jeomsoo
1969년 태어났다.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조소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2001년 갤러리 보다에서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김종영미술관(2009), 갤러리현대 16번지(2010), 백순실미술관(2013), 갤러리3(2014) 등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현재 경기도 양주에서 작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