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IEFING

무엇이 ‘진짜 미술’인가?

국립현대미술관으로부터 이메일을 받았다. (개념미술) 작가 김소라의 전시 소식이었다. <무릎을 뚫고 턱으로 빠지는 노래 – 김소라 프로젝트>라는 제목의 이 전시는 ‘시각이미지를 배제하고 비물질인 소리만으로 공간을 채운다’고 한다. 헐~~! 나는 아직 이 전시를 못 봤지만 앞으로도 굳이 애써 찾아가서 볼 것 같지는 않다. 솔직히 말해 뭔가 볼거리가 있어야 가서 보지 않겠는가? 어쩌면 이런 반응을 보이는 나 같은 사람에게 작가나 미술관 기획자는 “(촌스럽게) 미술을 눈으로만 보려하지 말고, 열린 마음으로 텅 빈 전시공간을 온몸으로 느끼고 경험하세요.”라고 친절하게 말할지도 모른다. 아니나 다를까 이메일에 첨부된 보도자료엔 이런 내용이 실려 있다. “10대의 스피커에서 퍼져 나오는 각기 다른 소리는 텅 빈 전시 공간을 채우면서 그 파동과 흐름을 온몸으로 경험하게 한다. 관람객은 때로는 단일한 소리의 울림을 때로는 서로 섞인 소리와 마주하면서 청각적 경험을 넘어 촉각적, 신체적으로 지각하게 된다. 이와 함께 논리적인 연속성 대신 자유롭게 교차된 비언어적인 소리는 다양한 변화의 가능성과 열린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이번 전시를 통해 관람객은 소리, 신체, 공간에 대한 사유와 새로운 경험을 하고 소리로 축조된 공간 속에서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될 것이다.”
글쎄, 이런 것도 미술일까? 과연 어디까지가 미술일까?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명색이 미술전문지 편집장이라는 사람이 입 밖으로 내뱉어서는 안 될 말일수도 있겠다. 그렇다고 ‘벌거벗은 임금님’을 곁에서 호위하는 간신배처럼 아무 말도 못하고 뻘쭘하게 있을 수만도 없는 노릇이다. 한국작가 뿐 아니라 특히 해외 여러 현대미술가가 다른 장르 예술가와 협업을 꾀한다는 것, ‘소리’를 흥미로운 매체로 여긴다는 것, 미술(관)의 개념을 확장시키며 관객과의 ‘관계 맺기’를 시도한다는 것 등 동시대미술 언저리에서 시도되는 경향이나 추세를 모르는 바는 아니다. 뒤샹 이후 현대미술사에는 이보다 더 파격적이고 전위적이며 급진적인 전시나 작품이 비일비재했다는 것 또한 잘 알고 있다. 그러니 작가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했다거나 괜히 시비 거는 것으로 오해하지는 마시라.
사실 내가 이렇게 감정을 여과 없이 거칠게 내보이면서까지 언짢음을 숨기지 못한 이유는 <무릎을 뚫고 턱으로 빠지는 노래> 때문이 아니다. 나는 최근 유행처럼 번진 (일부) 젊은 작가의 전시 행태를 못마땅하게 여겨왔다. 그런 전시(물)는 ‘미술’이 아니라고 했다. 대신 ‘그 무엇’이라고 일컬었다. ‘굿-즈’가 대표적 예다. 같은 맥락에서 이번 <아트스펙트럼2016>에서 본 옵티컬 레이스의 그래픽 구조물이나 <사회 속 미술 : 행복의 나라> 일부 출품작도 나는 미술이 아닌 ‘그 무엇’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의 자유지만) 제 맘대로 작품이라는 레테르를 달고 겉멋 부린 ‘그 무엇’을 보면 매우 불편하다. 겉모습만 번지르르하게 포장한 껍데기를 보면 공허하다. 이번호 특집기획과 작가꼭지에 나의 이런 생각이 반영되었음을 밝힌다. 마감 기한 직전에 도착한 성완경 선생의 글과 <사회 속 미술 : 행복의 나라>에 날카로운 비판을 가한 김동일 교수의 글을 추천한다.
나는 ‘미술이란 철학적 사고에 의한 실체가 있는 물리적 구현’이라는 정의에 99.99% 공감하는 사람이다.
편집장 이준희 dam2@unitel.co.kr

HOT ART SPACE

리우 웨이 개인전
플라토 4.28~8.14

이번 전시는 중국 차세대 작가를 소개하는 자리인 동시에 플라토의 고별전이다. 1999년 개관한 로댕갤러리를 전신으로 하는 플라토는 그동안 국내외 다양한 작가를 소개하여 현대미술의 흐름을 관망할 수 있는 장이 되었다. 플라토의 폐관 소식이 알려지자 미술계는 아쉬움을 감추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져가는 플라토가 선택한 마지막 작가는 리우 웨이(??, Liu Wei). 1972년생인 작가는 (1999)으로 데뷔해 상하이미술관 최연소 개인전 작가, 광저우비엔날레(2002), 베니스비엔날레(2005), 부산비엔날레(2008) 등 다수의 미술 빅이벤트에 초청받은 세계적 작가다. 전위적 작업을 펼치는 리우 웨이는 서구 시각에 영향받은 중국의 이미지에 반해 자기반성적 작업을 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참을 수 없는>(1999), <풍경처럼>(2004), <하찮은 실수 Ⅱ>(2009~2013) 등 세계적으로 작가의 이름을 알린 작업과 근작이 함께 소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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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나 (1)

코리아나미술관 소장품 기획전
코리아나미술관 4.7~6.25

전시는 ‘백남준을 회고하다’(사진)와 ‘자인(姿人)-한국·프랑스의 미인’ 2파트로 나뉘어 열린다. 백남준의 작품은 2006년 개관전 이후 10년 만에 수장고 밖 나들이여서 그 의의를 더하고 있다. 또한 여성의 모습을 담은 회화와 조각, 사진 등 코리아나미술관의 정체성과 소장품 연구의 방향을 보여주는 작품도 다수 출품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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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원배, 드로잉, 1995~2016

오원배 개인전
갤러리 밈 5.12~6.7

20여 년간 펼쳐온 드로잉, 콜라주와 프레스코 기법을 이용한 신작 6점을 선보인다. 기존 작업이 삶의 부조리와 인간의 실존 탐구를 추구했다면 드로잉 작업은 단순하고 기호화된 이미지로 한층 더 자유로운 형식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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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은 (1)

이지은 개인전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2관 4.20~5.2

중견작가 이지은이 지난 20여 년간 해온 작품들을 선별해 개인전이자 회고전을 개최했다. 프랑스 유학에서 돌아와 온 직후 발표한 어둡고 무거운 톤의 추상작품에서부터 밝은 색조로 꽃을 그린 근년의 작품 중 40여 점을 선별해 선보였다. 전체 색감과 그리는 방식의 차이는 있으나, ‘꽃’의 다양한 표정과 모습을 그려냄으로써 작가는 미의 일시성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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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효 (1)

2016동시대미감전
성남아트센터 큐브미술관 5.4~7.3

<2016동시대미감전>의 첫 작가는 이재효다. 25년에 걸친 작업을 회고하는 전시로 성남아트센터 공연장을 제외한 모든 공간에서 펼쳐진다. ‘Walking with Nature’라는 부제를 단 전시에서 작가는 400여 점의 드로잉과 대표작 130여 점, 그리고 미공개 대형 신작을 선보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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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환 개인전
문화예술공간 예술의 기쁨 4.27~5.21

광주교대 교수로 재직중인 조각가 박정환의 8회 개인전이 문화예술공간 ‘예술의 기쁨’에서 열렸다. <서로보다>라는 제목으로 열린 이번 전시에서 선보인 인물 두상작품은 치아가 없으면서도 억척스러운 한식 엄마, 허리가 많이 굽었지만 품위를 지키셨던 수원이 엄마, 마을 농수로를 청소하셨던 말수 적은 아저씨 처럼 그동안 작가가 만난 주변 인물의 모습이다.

SPECIAL ARTIST 최 병 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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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모란미술관에서 열린 초대 개인전 <응시> 전시광경

조각가 최병민의 주된 관심사는 인간이다. 해부학적 기초를 바탕으로 제작된 그의 인체조각은 정적(靜的)인 동시에 동적(動的)인 긴장감을 불러 일으킨다. 지난 40여 년 동안 일관되게 전통조각어법으로 몰두해 온 그의 작품은 그만의 독특한 조각적 형식과 함축적인 상징성을 드러낸다. 그의 작품은 넓고 광대한 이야기를 압축적으로 인체에 축약해내는 침묵의 음유(吟遊)와 은유(隱喩)의 발성법과 표현법이다. 작가 최병민의 작품세계를 탐구한다.

최병민의 천문?인문?지문 그리고 한국 구상조각의 현실에 대한 한 소회

성완경 인하대 명예교수

어떻게 이런 일이 한꺼번에 일어나게 됐는지 어안이 좀 벙벙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너무 당연한 일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당연한 일인데 좀 늦게 일어난 것뿐이다. 좀 늦었지만 얼마나 다행인가. 그러면서 2년 전 그의 작업장을 방문했을 때 그와 나눈 대화 중 ‘포기 각서’란 말에 잠시 생각이 머물렀다.(이 얘기 나중에 더 하기로 하겠다). 읽는 분들을 위해 소식부터 적는 게 순서일 것이다. 미래창조과학부 산하기관인 한국천문연구원이 2018년 금년에 개원 40주년을 맞아 천문과 인문, 우주와 인간의 행복한 융합을 기원하는 문화 프로젝트를 기획했는데 그 틀 속에서 소백산 연화봉 소백산천문대에 최병민의 작품 <구름을 훔친 사람>(1991)을 구입 설치하기로 했다는 기사다. 좋은 소식은 그 밖에도 더 있다. 파주의 임진각 근처 평화공원이 최병민의 작품 <평화 2>(1996)와 <해바라기>(1995)를 매입했다는 소식이다. 이 공원은 방문객들이 자연 속에서 에술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테마파크형 산택로를 이미 조성해놓았으며 인간과 우주, 자연과 전통, 평화와 문화에 대한 명상을 불러일으키는 작품 여러 점을 앞으로 추가 매입하거나 제작 발주할 계획이라고 한다.
최병민은 진지한 인식론적 자각과 뚜렷한 개성과 장인적 공력의 인체조각을 통하여 인간의 삶과 죽음과 문화에 대한 깊은 사색과 명상을 표현해온 작가다. “수천 년에 걸친 신화·토템·설화 등을 알고 상상하고 내가 추구하는 인간형의 문화를 형상화하는 게 바로 내 작업의 궤적”이라고 최병민은 말한 적 있다. 바로 그렇게 그는 작업을 해왔다.
그의 작가 경력은 40년이 넘는다. 최병민이 1973년 대학 졸업 후 주로 발표의 장으로 삼았던 것은 화단의 경력 쌓기와는 거의 무관한, 독특한 미술공동체인 <혜화동 화실 동인전>과 서울대 미대 출신의 뚝심 좋은 재야 엘리트 예비사단 비슷한 <12월전>의 연례전이었다. 그는 조각가로서 작품 활동을 시작한 지 거의 15년 만인 1988년에 첫 개인전을 열었다.(제3갤러리) 첫 개인전부터 고집스러울 만큼의 독특한 개성으로 일관된 특이한 음각부조 작품들로 당시 미술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구름, 해골, 거품, 이무기, 거인, 사신, 눈, 물고기, 새, 철조망 같은 모티프를 등장시켜 본질적으로 죽음과 존재, 인간의 유한함과 현실이 거역할 수 없는 힘들에 대한 명상을, 체관과 허무, 분노와 연민을 표현한 작업들이었다. 능숙한 기량의 그의 음각부조에서 빛과 어둠의 교차가 거꾸로 빚어내는 볼륨의 허상 — 존재의 허공에서 존재의 환영을 읽게 해주는– 은 존재와 비존재, 탄생과 스러짐이 교차점에 불안정하게 붙잡혀 있는 인간의 숙명에 대한 또다른 메타포로서 우리에게 다가온다. 그의 기량과 기질을 유감없이 보여준 전시였다.
그의 두 번째 개인전은 그 4년 후에 있었다. 이 2회전의 내용을 그의 중기 작업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다. 시간적으로는 1회전 이후 4년 만에 열린 전시지만 그 후에도 오래 지속되는 그의 조각작업의 강한 형식적 · 내용적 특징들이 이 전시에서 뚜렷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뼈와 근육만을 남기며 훑어 내려진, 밀도 높은 단순성으로 요약된 강인한 육체들, 마임(Mime)이나 상형문자처럼 거의 기호(記號)에 가깝도록 분명하게 읽히는 갖가지 포우즈나 동작들, 그리고 머리에 이고 있거나 어깨 팔, 등짝, 손끝 등에 걸려있는 구름, 초생달, 번개 따위의 우주적, 설화적 상징물들”이 그것이다(졸고, 위 전시서문. 이하 동일). 이것이 사람들이 비교적 뚜렷이 기억하는 그의 작업의 양식적 표지이다.
초기작의 기질적 색채는 그대로이나 보다 열리고 보편적이고 문화적인 차원의 작업으로 ‘전개되어’ 나가는 것이 이 중기작들의 특징이다. 이제 우화는 하나의 신화로, 보편적 언어와 윤리와 세계관으로 통합된 하나의 문화로 변모해가는 느낌이다. 문화의 ‘원형(原型)’을 느끼게 하는, 원형을 찾아서 그 원형을 통해 얘기하려는 예술적 장치가 다양하게 구사된다.
한국 고대문화의 샤먼적, 제의적 색채나 동양문화권 특유의 약간 기괴하고 마술적인 신비한 에너지 – 이를테면 우리는 그것을 기(氣)철학이나 단학, 18계나 봉술, 염력 등 정신의 집중과 엄격한 육체적 단련에서 나오는 에너지 그리고 바람춤이나 구름춤 달춤 학춤처럼 문화와 자연에 독특하게 어우러진 지점에서 나오는 운률의 에너지 같은 것에 연관시켜 상상할 수 있다 -, 天地人의 조화에 기반을 둔 우주관과 그것의 반영으로서의 윤리, 신화적 설화적 분위기 등 대체로 이런 것들이 그의 작품에서 한국적·동양적 문화전통의 냄새나 운률을 풍기는 요소들이다. 그런데 이런 분위기의 상당 부분은 춤, 음악, 민간 전승놀이, 전설, 제의(祭儀) 등 우리가 알아볼 수 있는 전통문화의 코드들을 활용하는 것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놀이문화적인 요소의 활용은 이번 전시작들에서 가장 눈에 띄는, 인상적인 부분이었다.
후기 작업은 그가 양평군에 작업장을 마련한 2000년 이후의 작업들이다. 앞의 시기에 비해 차분하고 정관적인 것이 특징이다. 전시회로 치면 2008년 제5회 개인전 이후 지금까지 작업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그 사이 3회와 4회 개인전에 선보인 작업들은 2회전의 내용과 양식들을 마케트로 다양하게 변주한 것으로 볼 수 있다.
2008년 개인전의 기획자 김진하는 이 시기 작업 속 인물상들이 지닌 고요함과 경건함과 부드러움에 특히 주목하며 이것을 앞선 시기 작업과의 차별성으로 인식한다. “하늘을 경배하듯, 땅을 위무하듯, 해를 마주하듯, 비와 바람을 부르듯, 신을 맞이하듯, 운명을 바라보듯 경건하게 서 있는 사람. 머리와 어깨 팔에는 구름, 해, 달, 번개 등을 이고 두 발은 가지런히 대지를 딛고 있다. 군더더기 없이 아름답고도 강인한 육체, 절제되고 고요한 동작, 시대와 공간을 구별하는 의복이나 배경이 없는 나신의 직립. 거기에 부드러운 바람이 일며 스치는 듯, 그 눈은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김진하, 투명한 인간, 그 아름다움에의 헌사 – 최병민의 근작 ‘응시’에 대하여, 2008)
특히 눈여겨 볼것은 인체를 다루는 방식의 변화이다. 농경적 샤먼, 노동, 놀이, 춤, 제의 등의 소재들은 여전하지만 표현 방식이 달라졌다. 뼈만 남았던 인체는 부드러운 살갗과 강건한 근육으로 덮이고, 움직임과 기울임이 컸던 다채로운 동작의 변화는 직립의 수직으로 고요하게 멈추어 섰다.
팔의 동작만이 있을 뿐인데, 그것도 움직이지 않는 굳건한 하체에 의해 안정적이다. 여전히 신화적인, 그러면서도 경건한 느낌이 극대화된다. 정지(停止). 시간은 흐르되 동작은 멈추어진 상태. 그 멈춤은 스스로의 의지 혹은 의례 때문인 듯 다분히 의도적인 자세다. 사람이 이런 극적인 자세를 취하는 것은 목적이 있기 때문인데 의전(儀典)·의식(儀式) 등에서 주로 볼 수 있는 동작이라 하겠다. 무거운 분위기의 어떤 중압감, 수도승 같은 비의(秘儀)적 느낌을 불러일으킨다(위 같은 글).
작가들의 경력을 보면 대개 작품 소장처가 몇 개 나열되어 있다. 최병민의 경우에는 그것이 없다. 단지 금호미술관과 모란미술관 이렇게 두 개 미술관이 있을 뿐이다. 두 미술관은 그의 초대전을 열어준 미술관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초대전이니까 의례적인 인사로 한 점 사줬거나 초대 비용의 정산 차원에서 작품 한 점이 미술관으로 건너간 것일 뿐 순수하고 진정한 구매라고 보긴 좀 어려운 측면이 있다. 그는 미술관이나 기업의 구매도 화랑이나 일반 고객 혹은 수집가의 구매도, 비껴간 예술가였다.
앞서 말했듯이 최병민은 1999년 고교 미술교사직 퇴직 후 양평군 서종면에 작업장을 짓고 작업에만 몰두했다. 그렇게 각고의 노력으로 암중 모색해온 신작 40~50점을 모두어 2008년 개인전에 선보였다. 나무화랑 기획에 모란갤러리(화봉갤러리/종로구 관훈동) 초대로 연 전시였다. 1993년과 1995년에 나무화랑 초대로 연 두 차례(제3회와 4회) 개인전에 이어 13년 만에 열린 다섯 번째 개인전이고 ‘응시’라는 타이틀의 주제전이었다.
앞서 1993년과 1994년에 이어 이번에도 이 전시 기획을 맡은 나무화랑의 김진하 대표는 “최병민의 조각은 묵언(默言)을 수행하는 순수한 상태의 인간형 또는 세계와 존재에 대한 직관적인 깨우침을 지향하는 수행자나 예지자로 읽힌다”며 “현자의 침묵이 절제된 조각을 통해 울림으로 다가온다”고 평한 바 있다. 그의 작업의 핵심적 맥을 짚은 말이다. 이 전시는 초대자 쪽에서 작품 한 점을 구매한 것으로 끝났다. 그에 앞선 3회전(1993)과 4회전(1995)의 경우도 작품 판매는 전혀 없이 끝났었다.
나무화랑은 다시 2011년과 2012년에 제6회와 7회 초대 개인전을 열었다. 2011년 6회전은 전시장 전경을 찍은 도판에서도 볼 수 있듯이 깔끔하게 절제된 디스플레이가 최병민 작업의 정신적이고 귀족적인 아우라를 그야말로 금강석처럼 투명하고 단단하게 뿜어내는 전시였다. 별로 크지 않지만 아주 알맞은 크기의 전시공간 전체가 한 작품처럼 통합된 전시였다.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전시작은 모두 마케트 크기였다. 제7회전은 ‘인간-우주’라는 부제가 붙었다. 관훈갤러리와 나무화랑이 공동으로 초대한 전시다. 7회전, 8회전 역시 판매 성과는 전무했다. 다만 한 평론가가 주물 작업비를 대어 한 작품에서 네 개의 멀티플을 떠내어 돈 댄 사람, 작가, 두 갤러리 주인이 각각 한 점씩 나누어 가져가는 것으로 끝난 것이 유일한 성과라면 성과였다.
2013년 서울 평창동 소재 김종영미술관에서 김영원 홍순모 김주호 최병민 배형경 등 삶의 문제를 탐구해온 5인의 조각전이 열렸다. <인간, 그리고 실존>이란 타이틀의 주제전이었다. 최병민은 이 전시에 <하늘 풍경> 과 <벽> 연작을 선보였다.
김종영미술관 최종태 관장은 위 전시서문 말미에 이 전시에 대한 감회를 이렇게 밝혔다. “이 사람들을 보라. 예술을 왜 하는가. 누구를 위해서 하는가. 예술행위란 무엇을 추구하는 일인가. 예술의 목표는 어데인가? 외진 빈터에서 끈질기게도 무슨 신념으로 이들은 왜 이렇게 인간의 문제에 집착할 수밖에 없었는가. 그런 의문, 그 알 수 없는 함정! 그런 길고 긴 끝없는 이야기를 생각하게 한다.”
최병민이 판화가 이상국이 타계했을 때 그 빈소에서 최종태 관장에게 제안했다고 한다. 작가로 살기가 너무 힘들고 작업장에 쌓여만 가는 작품들을 보면 근심만 깊어져서 한 말일 것이다. 최병민이 제시한 방도가 폐탄광촌의 지하 공간이나 공장 공간을 손봐서 작품 저장 공간(매장 공간? 저장 후 봉인?)을 만들고 안 팔린 작품들이 쌓여 있는, 죽음을 앞둔 작가들의 작품들을 수거해서, 작가는 작품의 ‘포기 각서’를 쓰고 국가는 그 작품들을 일단 후대 사람들에게 전해질 수 있도록 (비유적으로 말하면 타임캡슐 묻듯이 하자는 얘기와 유사해 보이는데) 하자는 것이었는데, 그것을 최 관장이 나라에 건의해주십사고 했다는 것이다. 작가가 생존한 동시대에 관중을 만나지 못했으니 그냥 버리는 것도, 사후에 뿔뿔히 흩어지는 것도 견디기 힘든 심정이 있었으니 그런 말을 하는 것이었으리라. 한 마디로 요약하면 ‘그냥 묻어버리라’는 얘기다. 얼마나 부조리하고 웃픈(우습지만 슬픈) 얘기인가.
존재론적이고 실존적이며, 기질적 개성과 가치론적 세계관을 함축한 작품들, 인간과 우주에 대한 그리고 전통과 자연에 관한 진지한 성찰과 탐구를 보여주는 작품들, 민중적인 동시에 귀족적인 깊은 울림을 간직한 정통적인, 정공법적 자세의 작품들이 점점 우리 시야에서 사라져가고 있다. 이것은 생물종의 멸종 위기와 유사할 정도의 미술생태계의 위중한 현실이다. 이 문제를 미술의 사회적 인식 문제 차원에서 그리고 미술 수용의 제도적 틀의 차원에서 잘 살펴보고 나아가 복지와 사회안전망의 차원에서도 대처해야 할 것이다.
내가 이 글의 서두에서 기술한 2018년 뉴스 이야기는 한 작가의 작품이 어디에 어떻게 놓였으면 좋겠는가 하는 생각에서 나온 나의 행복한 상상이었다. 2회전 서문에서 나는 전시작 대부분이 나중에 확대해서 완성하는 것을 전제로 한 소형 작품인 점에 대해 언급하면서 “전시작들이 이 같은 ‘완성’을 위한 물적 공간적 조건들을 만날 것인지는 이번 전시 이후의 작가의 행운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지금 최병민의 양평 작업장을 가 보라. 그리고 거기 쌓여 있는 마케트가 대부분인 100여 점의 작품을 보라. 거기 한 조각가의 비극이 만개해 있다. 이 푸른 오월에. ●

최 병 민 Choe Byoungmin
1949년 태어났다. 휘문고등학교,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을 수료했다. 1988년 제3미술관에서의 첫개인전을 시작으로 금호미술관(1992), 나무화랑(1993, 1995, 2011, 2012), 모란미술관(2008), 관훈갤러리(2012)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현재 경기도 서종 작업실에서 작업하고 있다.

최병민

2011년 나무화랑에서 열린 초대 개인전 전시광경

왼쪽 페이지 <山> 브론즈 34×19×17cm 2011(maquette)

ARTIST REVIEW 나 점 수

조각가 나점수의 작품은 언뜻 보면 추상회화 같다. 구체적 형상이나 색채가 눈에 띄게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의 조각엔 수많은 이야기와 섬세한 감성이 깃들어 녹아있다. 절제되고 세련된 형태와 촉각을 자극하는 표면의 질감에서 작가의 체온을 느낄 수 있다. 그의 작품 이면엔 실크로드와 아프리카 대륙 횡단이라는 고된 순례의 체험에서 발현된 철학적 사유가 담겨있다. ‘김종영미술관 오늘의 작가’에 선정되어 6월 17일부터 김종영미술관에서 <표면의 깊이>라는 타이틀로 개인전이 열린다.

세상과 더 잘 만나기 위해 詩가 되는 공간

김은영 블루메미술관 학예연구실장

세상을 만나는 법이 달라지고 있다. VR(가상현실) 체험 기기가 세간의 관심 속에 있는 것은 그것이 PC와 스마트폰처럼 큰 변화를 이끌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다. 물리적 이동 없이 특정 공간에 가 있는 것 같은 가상 경험의 핵심은 프레임 없이 세상을 본다는 것에 있다. 주변의 모든 환경이 캡처된다. 머리를 돌리면 더 많은 것이 보이고 설명되는 방식이다. 이로써 실재 세상을 실재같이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조각가 나점수의 작업은 압축적이다. 설명적이기보다 시적이다. 단어 하나로 정신과 몸과 마음을 갑자기 다른 곳으로 옮겨놓는 시처럼 그의 작품은 실재하는 세상을 내 눈앞에 하나하나 가져다 놓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정서를, 의식을 움직여 어디론가 데려간다. 채워 보여주기보다 비워내어 맞닥뜨리게 하는 식이다.
나를 중심으로 둘러쳐진 세상을 나열하듯 보여주기보다 더는 시각으로 분석될 수 없는, 인식 밖으로 확장되어 나가는 크기의, 밀도의 세상이 실제이고, 그 실제를 만나기 위해서는 물리적인 거리를 극복하려는 노력보다는 고정된 의식이 목적성 없이 무너지는 ‘경이’와 같은 순간이 필요하다고 작가는 말한다. 의식이 설명적인, 분석적인 행로를 따라가는 것을 지연시키기 위해 그는 다음과 같은 장치들을 사용한다.
나점수는 공간을 되도록 비우고 수직적인 또는 수평적인 선으로 남는 형태의 조각들을 만들어왔다. 이를 위해 그는 주로 나무를 사용해왔는데 이는 그 원래 모습이 위로 성장해가는 수직성을 지니고 있거니와 서있거나 누워있는 모습에서 곧 생(生)과 사(死)라는 이성의 범주 밖을 향해 가는 생각들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그가 사람의 형상을 사용할 때도 마찬가지다. 손과 발의 행위가 없는 나무 기둥의 침묵과도 같은 포즈로 서있는 인간 형상은 시시각각의 현재보다 더 크고 넓은 시공간을 품어내는 듯 보인다. 그가 만들어낸 수직의 인간형상이 그 자체로서 기념비적인 형태 자체에 주목하게 하기보다 지지대나 통로의 역할로써 그것이 서있는 물리적 공간을 다른 차원의 시공간으로 전환시키는 것은 그에게 조각은 형태가 아닌 공간과의 관계로 정의되기 때문이다.
나점수는 사막을 찾아다닌다. 숲이 사람을 감싼다면 사막은 통째로 드러낸다. 그에게 사막은 비어있는 거대한 공간으로, 보이는 복잡한 모든 것이 비워지고 그것에 붙어있던 소리들도 비워지는 곳이다. 그리하여 모든 감각의 초점이 지평선 위에 숨쉬며 흔들리듯 서있는 자신에게 모아지는 곳이다. 광활한 수평선 그리고 그 위에 침묵하듯 서있는 생명 있는 것들이 자아내는 숭고의 감정으로 그를 끌어당기는 사막이라는 장소에서 그는 수직과 수평으로 환원되는 공간의 언어를 가져와 관객의 의식이 작동하기 전 그의 몸과 마음을 움직이는 에너지 장과 같은 정서적 공간을 만들어낸다.
나점수의 조각이 이성적인 설명을 이끌기보다 느낌과 정서로 먼저 관객을 끌어당기는 것은 그것이 바라보는 거리를 전제하기보다 거칠거나 단단함 같은 손끝의 감각을 당겨오기 때문이다. 시각적이기보다 촉각적인 그의 공간 안에서 재료들은 가능한 한 다듬어지지 않은 상태를 유지한다. 나무, 철, 흙, 마른 풀, 석고, 유리, FRP 같은 대체로 자연적인 재료를 사용하며 그는 작가가 재료를 손으로 제어하는 방식을 최소화한다. 깎아내기보다 거칠게 쳐내는, 빚어내기보다 한두 번 뭉쳐놓고 끝내는 방식을 통해 재료는 본래의 물질성을 잃지 않는다. 그리하여 그의 조각들은 본래 그 재료가 놓인 자리, 그것이 속해있던 장소의 공기까지 머금게 되는 것이다.
굵은 나무 기둥을 턱턱 쳐내 나무의 속살 한 켜를 그대로 세워놓은 듯한 조각, 작업실 주변 마른 풀들을 석고반죽으로 이겨 FRP로 만든 인체형상에 덕지덕지 붙여놓은 작품에서 우리는 한겨울 숲에서 나무의 껍질을 만질 때 전달되는 온기, 풀숲을 흔드는 바람을 느낀다. 결과적으로 그것이 추상으로 또는 형상적으로 귀결되는 것과 상관없이 나점수가 만들어내는 형태의 의미는 물질적인 표면을 통해 전달된다. 그에게 표면은 표피로 맴도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의미의 출발점이 되는 끝도 없는 깊이를 지닌 것이다.

13

<식물적 사유-向> 나무 모터 철, 가변크기 2013

17 길위에서다

<~의 방향> FRP(도색) 600×120×120cm 2012

시간성 – 느린 움직임
최근 그의 작품에는 움직임을 만드는 기계장치가 추가되었다. 얇게 쳐낸 나무 기둥에 저속 모터장치를 부착해 나무 조각이 앞뒤 또는 옆으로 느리고 부드럽게 움직인다. 일정 각도 안에서 아주 느린 속도로 움직이는 모습은 동물의 민첩한, 공격적인 움직임보다 은근하고 고요한 식물의 그것과 닮아있다. 그 스스로의 움직임이라기보다 스쳐지나가는 바람에 의한 흔들림 같은 느낌이다. 왜 이런 움직임일까? 그는 이것이 관객의 정서적 동의에 대한 실험과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형태가 느리게, 곧 멈추려는 듯 더딘 속도로 움직이고 있을 때 그것은 그 자체의 행위로 주목되기보다 공기의 움직임으로 같은 공간 안에 서있는 관객의 마음을 흔든다는 것이다. 이는 찰나처럼 지나가는 시간을 늘여놓은 듯한 느린 움직임 앞에서 유한의 시간을 살아가는 인간의 조건을 떠올리게 되기 때문일 것이다.
행위로 먼저 읽히는 드로잉 기계장치도 마찬가지이다. 검은 석탄으로 흰 종이 위에 선을 긋는 기계장치에서 작가가 무게를 둔 부분은 얼마나 느리게 움직이게 할 것인지다. “선의 반복 행위는 표현을 위함이 아니라 의식의 속도를 지연시켜 현존을 깨우기 위함이다.”라는 그의 의도는 시간성을 느끼게 하는 아주 느린 움직임 앞에서 관객이 나아가고자 했던 방향을 잊고 걸음을 멈춰 지연된 또는 확장된 시간 속에 서있는 자신을 발견할 때 완성된다.
관객으로 하여금 결국 나로 돌아오게 하는 공간. 하던 대로의 생각이 잠시 흔들리며 내가 느끼는 것, 나의 마음이 향하는 것을 더듬어보게 하는 시간의 틈을 만들어내는 것이 나점수의 작업이다. 봐야 할 것으로 가득 찬 세상을 더 많이, 더 잘 볼 수 있도록 또 무언가를 만들어 내어놓는 것이 아니라 비우고 멈추고 잠시 떠나 돌아오며 보이지 않던 실재로서의 세상과 내가 더 깊게, 더 실제같이 만날 수 있는 방법을 제안하는 것. 그것이 그가 하고자 하는 바인 것 같다. 세상을 만나는 법이 점점 더 다양해지고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자유롭게 세상과 진정한 대화를 할 수 있느냐에 있다.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그는 마음이 향해 있다면 가능하다고 말한다. ●

나 점 수 Na Jeomsoo
1969년 태어났다.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조소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2001년 갤러리 보다에서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김종영미술관(2009), 갤러리현대 16번지(2010), 백순실미술관(2013), 갤러리3(2014) 등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현재 경기도 양주에서 작업하고 있다.

 

ARTIST REVIEW 홍 유 영

홍유영의 작품은 현실과 관계 맺고 있다. 그는 일상에서 흔히 보이는 오브제를 채집해서 새롭게 조합하고 재해석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사물과 공간의 관계는 구조적인 변형을 거치고 확장된 개념으로 탈바꿈된다. 입체미술이라는 영역을 고수하는 작가의 관심은 공간의 정치학 또는 공간의 사회경제학 쪽으로 옮아가면서 심화되고 확장된다.

홍유영의 오브제 설치, 공간, 제도는 삶을 강제 한다

고충환 미술비평

홍유영은 공간에 관심이 많다. 처음에 그 관심은 생활의 편의에 따라 그때그때 만들어지고 덧붙여지고 해체되고 재구조화되는 공간의 생리며 생태학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가능태로서의 공간개념, 식물처럼 살아있는 공간개념, 이행하는 공간개념, 부분과 전체의 유기적인 관계에 종속되지 않는, 그 자체 전체인 부분이 만들어내는 파편화된 공간개념이 그 생태학을 뒷받침한다. 그리고 근작에서 그 관심은 공간의 정치학이며 공간의 사회경제학 쪽으로 옮아가면서 심화되고 확장된다. 덩달아 현실적이고 서사적인 측면이 더 강조된다. 공간, 장소, 영역, 경계에 스며든 권력문제, 그리고 영토의 기획에 반하는 탈영토의 실천논리(질 들뢰즈)를 가로지르면서 넘나드는 일련의 작업들이 헤테로토피아(미셀 푸코)에 대한 또 다른 한 가능성을 예시한다.
이를테면 한 평 공간 속에 물건들이 잡다하다(한 평 공간에 대한 연구). 팬과 형광등, 컵과 생수통, 반찬용기 등 대개는 플라스틱 소재의 각종 용기들, 폐 의자와 빨래건조대, 간이 사다리와 철재 봉, 투명 플라스틱 슬레이트 등등. 언뜻 보면 잡동사니 같지만, 사실은 하나하나가 쓰임새가 있는 일상 용품들이다. 이 기물들이 한 평 공간이 좁다는 듯 빼곡한데, 특이한 것은 어떤 접착제도 사용하지 않은 채 순수한 역학만으로 균형을 잡고 있는 점이다. 그 균형은 허술한 것 같지만 빈틈이 없고 되는 대로 쌓아놓은 것 같지만 엄밀하다. 이처럼 빈틈이 없고 엄밀한 균형에서 팽팽한 긴장감이 감돈다. 그 균형이 빈틈이 없고 엄밀한 만큼 구조물 중 하나만 다르게 놓거나 심지어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와르르 무너질 것만 같다. 집이 없는 사람들이 서울에서 밀려나 수도권으로 밀려난다. 그렇게 밀려나다 어렵사리 확보한 한 평 공간마저 대개는 임시방편이기 쉽지만, 여하튼 그나마 그 속에서 자족적인 생활이 가능해야 한다. 한 치의 빈틈도 없는 공간 활용이 주는 팽팽한 긴장감은 바로 여기에 연유한다. 그 긴장감의 강도는 너무 팽팽해서 외부로부터의 최소한의 간섭에도 여지없이 허물어지고 만다. 공간이 무너지고, 삶이 붕괴되고, 존재가 내려앉고 만다. 작가의 이 작업은 이런 임시방편의 삶을 사는 사람들이 피부로 느끼는 공간감, 긴장감, 불안감의 사회심리학적 징후 같다.
그리고 그렇게 떠밀려 다니는 사람들에게 잦은 이사는 일상이다(이사). 지금은 이삿짐을 나르는 일도 전문적인 업종이 되었고 제법 번듯한 이삿짐 전문차량도 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리고 어쩌면 지금도 여전히 이삿짐 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이 1톤 트럭이다. 작가는 1톤 트럭의 공간 수치 그대로 알루미늄 프레임으로 짠 것을 무슨 액자처럼 벽에 걸고, 그 위에 이삿짐을 싸는 그물망을 드리워 놓았다. 그리고 그물망 안쪽에는 아마도 이삿짐에 해당할 벽돌꾸러미를 비닐과 고무 밴드를 이용해 꽁꽁 싸 놓았다. 작가의 이 작업은 타의에 의해 변방으로 밀려난 사람들이며 변방인의 자의식을 내재화한 사람들, 자본주의 시대의 유목민(?)에 대해서 말해준다. 인격으로부터 한갓 짐짝(자본의 페티시? 물신의 페티시?) 신세로 전락한 사람들의 존재론에 대해서 말해준다.
그리고 작가는 공간에 스며든 권력이며 공간의 정치학을 증언하기 위해 거리의 화분을 호출한다(균형 잡기 혹은 불균형한). 거리 정화를 목적으로 거리에 설치해 놓은 거대화분을 무슨 탑처럼 쌓아놓은 것인데, 기우뚱한 지표면 위에 그렇게 쌓은 두 개의 화분 탑이 서로 머리를 맞대고 있는 형국이 외적으로 균형을 잡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지표면 자체가 기울어져 있어서 불안한 느낌을 준다. 결국 외적으로 드러나 보이는 균형은 불균형이 잠재하는 균형이며, 안정은 불안정이 내재된 안정에 지나지 않는다. 작가는 이런 거리화분이 외적으로 거리 정화를 수행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다른 제도적인 장치 구실을 수행하고 있는 현실에 주목한다. 이를테면 인도와 차도를 구별하는 것과 같은. 그리고 그렇게 제도가 그어놓은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선을, 금지를, 감시를 상징하는 것과 같은. 그렇다고 정색 할 필요는 없다. 그 선은 가변적이고 더욱이 융통성의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다만 제도에만 그렇지만. 이를테면 포장마차를 철거하기 위해서라면, 그리고 노숙자를 밀어내기 위해서라면 그 선은 언제라도 인도 안쪽 깊숙이 침범할 수도 있는 일이다. 작가의 이 작업은 바로 이런 제도와 공간의 관계, 제도의 유기적인(융통성 있는?) 공간학에 대해서 말해준다.

Water Containers, 2016 (3)

< A Space Made by Thirty Water Containers > 20L통 물, 가변크기, 2016

공간, 자본은 자연을 착취한다
공간에 대한 작가의 관심은 제도가 삶의 질을 강제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자본이 자연(또 다른 공간개념인)을 착취하는 것으로 나타난다(Squeeze). 사람들은 자연을 압착하고, 짜내고, 끼워 넣고, 쑤셔 넣는다. 그리고 때로 강요하고, 갈취한다. 공기 정화를 위해서. 심신의 안정을 위해서. 장식을 위해서. 자연친화적인 삶을 증명하기 위해서. 실체를 결여한, 스펙터클한 삶을 증언하기 위해서. 그러고도 더 이상 갈취할 게 없다 싶으면, 자연은 구석에 쑤셔 넣어진다. 이를테면 쓱 봐도 불편하겠다 싶은 천장에 바싹 붙은 좁은 선반 위에. 화분보다는 차라리 팬이 있으면 적당하겠다 싶은 구석에. 이 작업은 구석, 변방, 잉여와 같은 자본주의의 타자들의 지점을 예시해준다. 자연마저 상품화하는 자본주의의 물신에 의해 변방으로 내몰린 것들이며 폐기될 것들의 운명을 예시해준다.
그리고 자본은 일종의 유사 풍경 내지 의사 자연을 그려 보이기도 한다(구축된 풍경, 입체의 경우). 이를테면 낡은 테이블 위에 소주병이며 맥주병 그리고 우유병과 기타 각종 음료수 병들이 첩첩이 쌓여있거나 배열돼 있다. 여기서 테이블은 한 평짜리 공간처럼 현대인의 자기 공간에 대한 자의식 내지 욕망을 상징하며, 낡은 테이블을 지지하고 있는 네 개의 긴 다리는 불안정한 공간인식과 현실인식을 반영하고 있을 것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테이블 위에 쌓인 병들이 산이나 숲과 같은 유사 자연으로 제시된다는 사실이다. 아마도 대개는 녹색과 갈색 계열이 어우러진 음료수 병의 색깔이 자연의 그것을 닮아 있는 것에서 착안 했을 터이다. 그리고 음료수 병들이 인공적인 스카이라인을 그려내면서 빌딩숲을 연상시킨다. 병과 숲과 빌딩이 오버랩되는 것을 통해 자연을 흉내 내는 현실(이를테면 자연주의를 표방하는 아파트)을 풍자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작가의 작업에서 테이블은 공간이 되고 병은 숲이 된다. 아파트촌이 산이며 자연으로 둔갑한다. 자연을 흉내 내면서 억압적인 현실을 감추는 자본주의적 풍경, 물신적 풍경, 욕망 풍경이 된다.
이처럼 자본주의 물신은 자연을 상품화하고, 자연주의를 표방하는 인공자연으로 자연을 대체한다(대체자연?). 그리고 현대인은 그렇게 대체된 자연이자 상품화된 자연을 소비한다. 이 소비재들 중에는 유원지나 휴양지와 같은 비교적 자연의 원형에 가까운 것도 있고, 내셔널지오그래픽이나 관광엽서에서 보던 것과 같은 이미지로 환원된 경우도 있다. 아마도 이런 자연 이미지야말로 가장 흔하게 소비될 것인데, 그 일면을 공사장 가림막에서 볼 수 있다. 공사장 가림막으로는 여러 이미지가 소용되지만, 그 중 전형적인 경우로 치자면 단연 자연 이미지를 꼽을 수가 있을 것이다. 단순하게 공사장 가림막은 공사 현장을 가리기 위한 것이지만, 상징적으로 자본주의 기획의 치부를 가리기 위한 것일 수 있다. 그리고 이를 가리기 위해서 자연 이미지가 호출된다. 여기서 재개발 현장에 맞물린 이권의 크기가 클수록, 삶의 터전에서 내몰린 사람들의 처지가 심각할수록 자연 이미지는 더 생생해 보이고 더 그럴듯해 보여야 한다. 이미지 정치학이며 꿈의 산업이 더 잘 가동되어야 한다.
이를테면 작가의 작업(구축된 풍경, 평면의 경우)은 숲 이미지를 보여준다. 자세히 보면 숲의 부분 이미지들이 하나의 화면 속에 콜라주된 풍경이다. 좀 더 들여다 보면 그 속에 건물이 숨어 있는데, 건축 현장에 비치된 조감도 그대로 부분 이미지들을 편집하고 콜라주한 것이다. 표면적으로 숲 이미지지만, 사실은 그 속에 건물 한 채가 숨어있다. 겉으로 보기엔 자연 같지만, 잘 보면 그 이면에 숨은 자본주의의 욕망이 보인다. 마치 가림막 자체는 자연 이미지를 보여주지만, 사실은 그 이면에 자본주의의 치부를 숨겨놓고 있는 것처럼.
그리고 작가는 공간의 사뭇 다른 해석 내지 용법을 예시해준다. 여기에 물통들이 있다(30개의 물통이 만드는 공간). 각 20리터의 물이 담긴 하얀 플라스틱 물통 30개가 가장자리 선을 따라 삼각형의 공간을 그려내고 있다. 여기서 물통은 아마도 주차금지와 같은 임시방편의 목적을 위해 급조한 장애물, 일종의 생활미술이며 생활 오브제에 착안한 것일 터이다. 그 자체 자기 공간에 대한 현대인의 욕망이며 자본주의의 욕망을 상징할 것이다. 그리고 그 물통들이 그려 보이는 삼각형은 모서리 공간이며 자투리 공간을, 잉여 공간 혹은 공간의 잉여를 상징할 것이다.
여기서 의문이 남는다. 왜 하필 30개의 물통인가. 30이란 숫자에 어떤 상징적 의미라도 있는가. 세월호 현장에서 30명의 아이를 구한 의인? 한 의인에 의해 구사일생으로 살아 돌아온 순진무구한 30명의 아이?
이 작업에서 작가는 공간개념을 매개로 모서리와 자투리 그리고 잉여로 나타난 자본주의의 타자들의 지점들을 전유한다. 조르주 바타유에 의하면 자본주의는 경제성이 없는 것들을 변방으로 내모는데, 그것들을 잉여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잉여는 자본주의의 배타적인 논리와 억압적인 욕망이 만든 외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고, 그 외상을 증언하기 위해서 호출된다. 그렇게 작가의 작업에서 30개의 하얀 물통은 끝내 돌아오지 못한 아이들의 주검을, 순진무구한 죽음을 증언하고 있었다. ●

홍 유 영 Hong Euyoung
1975년 태어났다. 이화여대 조소과와 미국 아이오와 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고 영국 런던 골드스미스 대학에서 미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대갤러리-윈도우갤러리, 갤러리 인 등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2007년 뉴욕 폴록-크라즈너 재단(The Pollock-Krasner Foundation) 후원으로 뉴욕 ISCP 레지던시, 2009년 국립현대미술관 창동스튜디오, 2010년 영은미술관 7기 입주 작가로 활동했다. 서울과 런던을 오가며 작업하고 있다.

 

EXHIBITION &THEME

행복의나라 (48)

위 함경아 <오데사의 계단>(왼쪽)나무, 폐기물 오브제 가변설치 2007 (경기도미술관 소장) 아래 ‘이면의 도시’섹션 전시장 전경

사회 속 미술 : 행복의 나라
ART IN SOCIETY : Land of Happiness

민중미술을 키워드로 풀어낸 <사회 속 미술: 행복의 나라전>이 5월 10일부터 7월 6일까지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에서 계속된다. 이번 전시는 당대의 사회·정치적 이슈를 민감한 시각으로 잡아낸 민중미술 1세대 작가부터 2000년대 이후 활발히 활동하는 이른바 3세대 작가들의 작업을 한곳에 모아 주목받고 있다. 더불어 전시 타이틀에서 알 수 있듯 ‘민중미술’, ‘포스트민중미술’이란 용어를 제거하고 사회·문화적 시각에서 작품 간의 공통적 맥락을 이끌어내고 있다. 현장을 벗어나 미술관에서 ‘사회 속 예술’이란 이름으로 묶인 이 작업들은 과연 비평의 다양성을 어디까지 확장시켜나갈 수 있을까?

이중적 상징투쟁으로서의 민중미술

김동일 대구가톨릭대 교수

나에게 민중미술은 흡사 유령 같았다. 1980년대 말 집회에서 처음 접한 민중미술은 독재에 대한 저항으로 무섭게 타올랐다. 그 화염은 독재가 타도되었다던 1990년대 초 갑자기 사그라져버렸다. 민중의 시대가 왔다는데 민중미술은 오히려 꺼져버린 것이다. 그 민중의 시대가 이른바 문민정부라는 기괴한 가면 아래 위장된 것이었음이 밝혀진 후에도 그 불길은 다시 타오르지 않았다. 1990년대 중반 민중미술은 더 유령 같았다. 누가 민중미술가이고 뭐가 민중미술인지 구별되지 않은 상태에서 ‘풍경화’가 민중미술의 지배양식이 되었다. 제주 바다, 금강산, 오대산, 설악의 자연은 독재에 대한 과거의 투쟁이 화랑에서 환전되는 가장 무난한 방식이 되었다. 화랑에서 성공한 (극)소수 민중미술가의 전시회가 오픈하는 날이면 인사동은 더 스산해졌다. 한때 그들과 함께, 혹은 그들을 따라 민중미술의 화염을 가슴에 품었던 사람들의 좌절이 거리를 배회했다. 2000년대의 민중미술은 더 이상한 유령으로 나타났다. 사회와 예술의 무력함 속에서 더 이상의 나락을 찾을 수 없는 젊은 작가들의 용기가 되살아났다. 많은 사람이 그들에게서 이미 사그라져버린 민중미술의 가능성을 보았고, 이른바 ‘포스트민중미술’이란 호칭을 부여했다. 그들 역시 자신들이 포스트민중미술으로 범주화되는 것을 적극적으로 거부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1980년대를 계승하지도, 2000년대의 새로운 민중미술도 되지 못한 채 진부한 코미디를 반복하는 듯한 인상이다.
〈사회 속 미술: 행복의 나라전〉은 1980년대와 2000년대 민중미술 사이의 관계성을 복원한다.
그 시도만으로도 이 전시는 훌륭하다! 미학적 ‘사생아’였던 포스트민중미술에 ‘친부’를 찾아준 격이다. 세대를 건너뛴 민중미술가들의 가족사진은 생각보다 잘 어울린다. 리슨투더시티의 〈옥바라지골목〉(2016)과 플라잉시티의 〈파괴의 땅에서 할 만한 일〉(2002), 김동원의 〈상계동올림픽〉(1988)은 십 수 년을 사이에 두고 개발과 철거가 반복되는 자본의 논리를 보여준다. 그 어울림은 ‘역사는 반복된다’는 주제로 묶인다. 비슷한 어울림은 ‘이면의 도시’, ‘행복의 나라로’ 섹션에서도 훌륭하게 반복된다. 그러나 그 감동적인 어울림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이 전시는 과거의 민중미술이 왜 소멸했는지, 포스트민중미술이 선배들의 한계를 어떻게 극복했는지 밝히지 않는다. 소멸된 이유도, 다시 호명되는 이유도 모른 채 소집된 민중미술에서 예술과 사회의 관계에 대한 미학적 성과를 전망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전시장은 1980년대 민중미술에서 늘 과도하게 주인공 대접을 받던 작가들의 진부함과 2000년대 이후 새롭게 각광을 받고 있는 세대의 자기만족적인 시도들을 섞어놓았다는 인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러한 혼합은 단순한 식상함을 넘어 이 전시가 문제 삼는 ‘사회 속의 예술’이라는 미학적 지평을 허물고 있다. 예술과 사회의 관계는 사회적 현실을 예술의 소재, 주제로 차용한다거나, 예술을 사회운동을 위한 선전선동의 도구로 삼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문제는 예술의 정치성, 혹은 정치의 예술성이다.
정치는 다양하게 정의된다. 카를 슈미트는 정치를 적과 동지를 구분하는 행위로 보았고, 탈코트 파슨스는 목적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자원을 효과적으로 배분하는 행위로 보았으며, 브뤼노 라투르는 네트워크의 재구성으로 보았다. 정치에 관한 서로 다른 서술은 궁극적으로 예술과 사회의 재구성으로 귀결된다. 예술이 사회의 조성을 바꾸고, 그 변화는 다시금 예술 개념의 확장으로 환류된다. 정치란 예술과 사회의 변화를 매개한다. 1980년대 민중미술의 불꽃이 절정에 달했을 때, 민중미술은 예술과 사회를 함께 변화시켰다. 1980년대 민중미술이 소멸한 이유는 민중미술의 지형이 제도권 편입에 성공한 소수의 스타와 정당한 미학적 평가를 거부한 채 민중의 삶 속에 스며들거나, 집회의 선전물로 휘발해버린 익명의 다수로 양극화하면서 예술과 사회의 환류가 깨졌기 때문이다. 민중미술의 이름으로 주어지는 인정과 성과들을 독점했던 스타들의 ‘배신’과 그에 대한 대다수 민중미술가의 ‘증오’가 상호 작용하면서 민중미술은 거대한 허무의 텅 빈 공동(空洞)으로 황폐해져 갔던 것이다.
민중미술은 이중적 상징투쟁이다. 민중미술은 전시장을 중심으로 한 예술장 내부 투쟁과 이른바 현장으로 호명되는 사회공간에서의 외부 투쟁의 결합으로 이루어진다. 그 결합을 통해 예술 개념은 진보했고, 또한 사회공간은 민주화라는 벅찬 성취를 이룰 수 있었다. 그러나 민중미술의 제도권 내부 투쟁이 젊은 청년 미술가들의 외부 투쟁을 ‘배신’하고 외면했을 때, 민중미술은 실패했고, 학고재, 가나화랑, 가람화랑의 상품으로 전락해버렸다(난 아직도 그 도록들을 버리지 않았다). 그렇다면 2000년대 이후 새롭게 등장한 포스트민중미술은 1980년대 민중미술의 그 한계를 극복할 수 있을까? 나는 이 문제에 대해 다소간 회의적이다. 그것은 이 전시의 한계라기보다는 냉정하게 봤을 때, 포스트민중미술이 아직 예술에 대한 사회의 요구와 사회에 대한 예술의 대응을 담보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성장하지 못한 현실 때문이다. 믹스라이스, 리슨투더시티, 옥인콜렉티브, 노순택, 정윤석, 박찬경의 노고는 여전히 인상적이지만, 현장과 예술의 환류를 지탱하기엔 힘겨워 보인다. 고승욱, 김상돈, 홍성민, 조습의 재치와 유머 역시 후기민중미술의 중요한 성과임에 틀림없지만 주재환이나 오윤의 풍자에 비할 때 뭔가 새로워 보이지 않는다. 이들에게 사회공간의 폭력적 위계구조를 재구성하기 위한 예술의 확장보다는 사회 속에서 과잉 자각된 개별 작가의 자아가 더 도드라져 보인다. 그러한 자아의 확인이 민중미술의 역사에서 중요한 성취라는 데 이견이 없지만, 그 성취는 이른바 예술계가 부여하는 인정과 명예에 쉽게 도취되어버린 것처럼 보인다. 그들에게 사회 속으로 뛰어들어 사회의 구성을 바꾸는 빅뱅의 폭발점을 기대하기에는 그들의 내면이 여리고 약하고 섬세해 보인다. 그 섬세한 자아는 거친 삶의 현장보다는 전시장이라는 공간에서 더 편안해 보인다. 그들은 어렵게 얻은 인정과 도취를 놓치고 싶어 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이쯤에서 솔직히 말하겠다. 그저 민중미술을 사랑하고 민중미술가들에게 더 많은 기대를 걸고 있는 평범한 관객으로서 나는 사실 이런 종류의 전시를 신뢰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과연 ‘전시장’이 그러한 미학과 사회공간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예술가들의 가열찬 왕복운동을 포착하기에 적합한 그릇일까’ 하는 의문 때문이다. 적합하지 않은 그릇이 민중미술의 미학적 파괴력을 합당하게 보여줄 수 있을까? 이젠 도심보다 더 도심스러운 변두리 아파트 동네 한복판에 세워진 근사한 미술관에서 열리는 민중미술 전시라니. 전시장은 권력을 도입한다. 근사한 미술관의 근사한 전시장이 그렇게 근사해지기 위해서 권력과 자본을 필요로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전시장을 통해 틈입하는 권력과 자본은 실상 상계동에서, 옥바라지 골목에서 철거민들을 거리로 내몰던 그것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민중미술가들은 전시장 밖의 거대한 권력과 싸우면서도 정작 전시장을 통해 투영되는 권력 앞에서는 저항하지 못한다. 예술의 미학적 파괴력을 두려워하는 권력과 자본은 늘 그런 식으로 예술과 예술가들을 길들여왔고, 예술가들은 또 그렇게 자신들에 대한 요구를 배신해왔다. 그도 그럴 것이 1980년대 사회를 변화시키고자 했던 미술가들이 그들이 원했던 민주화된 사회가 도래했을 때 발견한 것은 정작 헐벗고 가난한 상태로 내팽개쳐진 자신의 모습이었다. 사회를 변화시킨다는 미명 아래 정작 자기 자신은 예술가도 운동가도 아니었고, 자신들이 제작한 ‘찌라시’들은 투척된 돌멩이들과 함께 거리를 나뒹굴었다. 이런 상황에서 전시장으로부터의 호명은 얼마나 달콤했을까? 그들은 그렇게 무력화되어 간다. 예술가들이 그렇게 무력화되어 갈 때 사회를 변화시키는 예술의 힘은 소멸되어 간다. 이미 지난 몇 년간 사회참여형 예술가들이 〈올해의 작가상〉, 〈에르메스 미술상〉등을 수상할 정도로 우리 예술계의 지형이 변화했지만, 그 변화가 무색할 정도로 민중의 삶을 억압하는 권력과 자본의 힘은 커져가고, 예술가들은 돈 앞에 더 교활해져가고 있다. 사실 나는 최근의 이 ‘난데없는’ 민중미술 부흥의 배후가 지속적인 상품의 공급을 요구하는 미술시장과 그 수요를 지금까지 늘 저평가되었던 민중미술로 대응하려는 시장 세력들, 그리고 시장가치와 미학적 평가에 목말라 있는 민중미술가들의 욕망이 공모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물론 시장중심적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면서 그러한 공모를 반드시 나쁘다고만 할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이 오늘날 새롭게 제기되는 예술과 사회의 환류 요구에 대처하는 정당한 방식이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민중미술이라는 단어는 근본적으로 미학과 사회공간을 왕복하는 운동을 지칭한다. 민중미술은 그 왕복 운동 속에서 사회공간을 재구성하고 그렇게 재구성된 사회공간은 예술을 재규정한다. 민중미술은 예술과 사회 사이의 환류를 향한 끊임없는 자기 변화를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전시는 매우 제한적으로 읽혀야 한다. 이 전시는 ‘사회 속의 미술’을 제한적인 범위 내에서, 그것도 전시장에 적응 가능한 형태만을 소극적으로 수용하고 있다. 이 점을 망각할 때 이 전시는 민중미술의 ‘무덤’ 혹은 ‘종말’이라고 회자된 〈민중미술 15년전〉(이하〈15년전〉)이라는 유령의 또 다른 버전에 불과할 수도 있다. 〈15년전〉은 아주 조금만 민중미술적이었던 것들, 혹은 전혀 민중미술적이지 않은 것들에 민중미술이라는 보편적 이름을 부여함으로써 정작 다수 민중미술가에게서 민중미술을 빼앗아버렸다. 국립현대미술관이라는 제도미술의 정점에서 행해진 〈15년전〉이 민중미술의 무덤이 되는 역설이 거기에 있다.
1980년대 그때와 마찬가지로 지금도 사회를 변화시키고 예술의 정의를 재규정하고자 하는 많은 시도가 도처에서 진행되고 있다. 그 시도들은 공공미술, 뉴장르공공미술, 커뮤니티아트, 장소특정성미술, 예술행동주의, 상황주의, 스125202.jpg 등으로 개념화되고 있다. 그들은 여전히 삶 속에서 권력과 자본의 작동을 관찰, 폭로, 경계하면서 사회 속에 침투해들어가고 있다. 중요한 것은 민중미술이라는 이름으로 수행되는 예술과 사회 사이의 운동, 그 운동의 결과로서 얻어지는 사회의 민주화와 예술개념의 진보를 적절하게 포착하는 비평적 지평을 확보하는 일이다. 민중미술의 선배와 후배세대를 아우르는 적지 않은 성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전시를 매우 제한적인 범위에서만 인정하는 이유는 우리가 충분히 주목하지 못한 시도가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1980년대의 ‘두렁’과 ‘광자협’은 여전히 방치되어 있다. 권력/자본과 대결했던 2005년 〈오아시스 프로젝트〉, 2012년 〈부평구 갈산동 421?1 콜트콜택전〉의 울림은 여전하다.
민중미술이란 어찌 보면 서로 반대편을 비추는 한 쌍의 거울인지도 모른다. 즉 미술을 통해 가능했던 사회의 민주화 그리고 민주화된 사회에서 가능해진 예술의 해방은 하나의 동전을 지탱하는 서로 다른 면들이다. 나는 이 전시를 그 두 면을 잇는 작업의 소중한 일부로서 이해하고 싶다. 그것이 오늘날 우리에게 사회 속 예술의 의미를 되묻고 민중미술의 가능성을 실현하는 길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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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사회 속 미술 : 행복의 나라〉를 기획한 두 주역
기혜경(왼쪽) 북서울미술관 운영부장과 신은진 큐레이터

최근 민중미술계열 작가 개인전 및 단체전이 연속해서 열리고 있다. 일각에선 서울시립미술관이 ‘민중미술’을 주제로 전시를 열면서 미술시장의 흐름에 편승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이 시점에 민중미술 전시를 개최한 이유는 무엇일까?

기혜경 비슷한 시기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에서 열린 〈가나아트 컬렉션 앤솔러지전〉(5.3~2017.7.31)과 연결해 이번 전시를 보는 시선이 있다. 그 전시는 2001년 가나아트 이호재 대표로부터 기증받은 200점의 컬렉션 안에서 작품을 선정해야 했다. 반면 〈사회 속 미술: 행복의 나라〉는 그 컬렉션과 무관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기획전으로서 전시에 부합하는 작업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특히 민중미술이 시장과 국제 미술사 안에서 판을 만들어가는 상황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 고민했다. 이번 전시는 시장과 연동한 전시가 절대 아니다. 그렇지만 그 동향과 전혀 무관하게 진행됐다고 단언할 수도 없다. 적어도 시장에서 원치 않는 불편한 내용이 있는 작업이더라도 미술사에서,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를 미술관다운 방식으로 풀어내려 했다.
신은진 이번 전시에 출품된 70여 점 중 서울시립미술관 컬렉션이 37점, 그중 가나아트컬렉션은 10점 뿐이다. 미술계라는 프레임을 벗어나 전시를 바라보기를 원했다. 문화사회적인 부분에서 ‘민중미술’을 재조명한다면 건설적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번 전시 중 사회비판적 내용을 담은 ‘역사는 반복된다’ 섹션의 작품을 보면 동시대 뉴스 타블로이드에 나오는 사건 사고와 30년 전 이슈가 일치하는 지점이 많다. 세대론이 만연한 시점에서 세대를 넘어 공유하는 메시지가 있다는 점을 부각하고 싶었다. 이를 위해 연대순의 구성을 피했다. 현재 30대인 젊은 작가와 민중미술 1세대가 30대에 한 작업을 함께 전시했다.

이번 전시는 역사화 맥락을 배제한 의도가 돋보인다. 그러나 한편으로 ‘사회 속 미술’이라는 거친 범주 안에서 일부 작가는 ‘사회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는 작가’로 묶기에 한계가 있지 않나?

기혜경 전시명 자체가 다소 거친 것은 사실이다. 민중미술이 작가의 태도 측면에서 지금까지 지속된다는 지점을 보기 위해 제목에서 ‘민중미술’이란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민중미술’이라는 무게감을 덜고자 했다. 그러면서 사회 속에서 사회에 대해 발언하고 간섭하고 틈을 벌리고 그로부터 새로운 대안을 생각하게 하는 미술의 태도를 묶으려 했다.
신은진 여기서 사회란 ‘시스템 비판’에 가깝다. 국가의 이데올로기에 스며든 무의식적인 권력과 시스템에 대해 발언하는 작가를 보여주고자 한 지점이 있다.

1980년대 활동한 1세대 민중미술 작가들은 거대 이데올로기에 대한 비판적 태도를 취한반면 요즘 30~40대 작가는 대부분 개인의 메시지에서 시작해 사회적 발언을 하고 있다. 이 두 태도가 한자리에 모여 맥락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비판이 있을 수 있다.

기혜경 민중미술을 동시대의 흐름으로 보겠다고 했을 때 이러한 전시 구성은 기본적으로 갖는 한계이자 상황일 수 있겠다. 한편으로 1980년대와 1990년대 이후 세대의 작업적 특징을 따로 분리해서 보아야만 하는가? 선배 세대와 후배 세대 작가는 작업을 대하는 태도에 분명 유사점이 있다. 현재 우리가 고민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를 살펴보고 1980년대 작업을 역으로 찾아갔다.
신은진 2004년 이영철 선생이 기획한 〈당신은 나의 태양전〉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전시를 준비하면서 다른 분야를 흡수 통합하고, 출구를 열어보려는 노력을 했던 것 같다. 각 섹션별 작가의 태도는 분명 다르다. 1990년대 이후 각자도생이 미술계 흐름이라고 하지만 주재환, 박이소는 집단의 흐름 속에 있는듯하면서도 본인만의 컬러를 보였다. 사사(SaSa)가 1년간 본인이 먹은 설렁탕 그릇 수를 세는 작업을 한다 해서 사회적 메시지를 담지 않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1990년대, 2000년대에 들어 작업의 중심이 작가 자신에게로 귀착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사회담론 속에서, 미학의 흐름에서 찾을 수 있다. 박이소, 사사, 양아치, 최정화의 작업을 한 공간에 두고 그들의 스토리 변화를 읽어내면 훨씬 재미있는 전시의 스펙트럼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외에도 현장의 작업을 보여 줄수 있는 부분은 최열의 아카이브, 동시대에서는 현장사진가-대자보식의 텍스트와 사진-의 자료로 현장성을 강화했다. 리슨투더시티가 작가인지 아닌지에 대한 고민들을 넘어서 옥바라지골목에 대한 내용은 지금 이 순간 일어나고 있는 사건이 미술관으로 들어오는 것에 의의를 뒀다. 이처럼 여러 코드를 읽으려고 했다.

전시에서 신은진 큐레이터의 큐레이팅 색깔이 확실히 드러나는 것 같다. 이전에 기획한 〈서울바벨전〉과 이번 전시를 연결해 바라보는 이들이 있다.

신은진 사실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서울바벨〉의 ‘형아뻘’ 되는 전시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니까 젊은 작가들이 가진 고민이 지금은 지엽적이라고 생각되지만 선배세대 작가들이 가진 고민과 일맥상통하리라 보았다. 큐레이터로서 그들이 작업을 대하는 태도를 비슷한 시각으로 바라본 측면이 있다.

그렇다면 이번 전시의 중심을 사회적 발언을 하는 1~3세대 작가들의 만남으로 봐야겠다.

기혜경 민중미술 3세대까지의 작가를 함께 다루자고 했을 때 신은진 큐레이터가 이들의 연결고리를 ‘박이소’에서 찾는다고 했다. 박이소라는 키를 통해서 달라 보이지만 같은 작가의 태도를 한곳에 모을 수 있다는 점은 전시의 중심축이다.
신은진 1층에 최민화, 최원준, 노재운 박찬경의 작업이 놓인 곳 바로 위층에 박이소의 〈풀〉이 놓여있다. ‘대안공간 풀’과 ‘그냥 〈풀〉’의 만남. 이번 전시의 숨은 디테일이다.
임승현 기자

EXHIBITION FOCUS ARTSPECTRUM 2016

아트스펙트럼 (63)

위 백정기 <악해독단>(오른쪽) 벽돌, 바셀린, 화강암, 혼합재료 560×400×400cm 2016 아래 박경근 <군대:60만의 초상> 2채널 HD비디오 영상 2016

삼성미술관 LEEUM이 2016년 첫 전시로 〈아트스펙트럼 2016〉을 개최한다. 〈아트스펙트럼전〉은 한국 현대미술의 신진작가를 발굴하고 지원하기 위해 2001년 처음 시작된 격년제 전시이다. 올해로 6회째를 맞았으며 예년과 같이 작가 선정에 리움의 학예연구원뿐 아니라 외부 큐레이터 및 비평가가 참여했다. 선정된 총 10팀의 작가들은 개인사부터 한국의 근현대사까지 폭넓은 주제를 다루며, 회화·조각·영상 등의 매체 작업과 퍼포먼스·사운드·통계 및 그래픽 등을 시각화한 작업을 선보인다. 동시대 미술의 변화 양상을 개성 넘치는 형식미로 승화시킨 젊은 작가들의 작품은 5월 12일부터 8월 7일까지 삼성미술관 LEEUM 기획전시실에서 확인할 수 있다.

내부의 다른 아트스펙트럼

강수미 동덕여대 교수

뒤샹의 ‘레디메이드’ 덕도 아니고 워홀의 ‘팩토리’ 탓도 아니다. 정확히 짚자면 20세기에서 21세기로 이어지는 세계의 기술, 사회, 산업, 경제 조건 변화와 그에 결부된 인간 삶 전반의 변화가 오늘 우리에게 익숙한 ‘예술의 종말(end of art)’ 그리고 ‘무엇이든 미술이 될 수 있다(anything goes)’는 아서 단토 식 미학이념의 뿌리다. 동의하든 않든, 좋아하든 안 하든 그렇다. 하지만 우리는 남성용 소변기가 예술작품이 되고, 브릴로 세제 상자의 대리/대량 생산이 독창적 창작 방식이 되는 단계를 오래전에 넘어섰다. 현재는 작가의 특정 의도가 효과적이기만 하다면, 미술계에서의 효용 및 이해관계에 부응하기만 한다면 무(無)에서 무(無)로 이어지는 어떤 것도 기꺼이 미술이라고 박수 치는 현실 원칙의 조류 속에 있는 것이다. 예컨대 아무것도 그리거나 만들지 않는 것은 물론 원칙적으로 도판조차 남기지 않으려는 티노 세갈(Tino Sehgal)의 작업이 그 세태의 절정을 보여주지 않는가.
하지만 나는 ‘잘만 하면 아무거나 미술’이 될 수 있는 미술계의 느슨한 자유가 창작자의 쾌락이자 고통이 되는 지점에서 현대미술의 두 번째 국면이 시작됐다고 본다. 무엇을 할 것인지와 왜 할 것인지가 ‘미술’이라는 선험적 원리 아래 미리 주어져 있지 않기/못하기 때문에 작가들은 끊임없이 이것도 되었다가 저것도 되어야 한다. 과거와는 달리 꽤 다양한 배경과 이질적인 기질 및 능력으로도 충분히 미술계에 진입할 수 있다. 다만 그 배경, 기질, 능력을 미술로 적절히 활용할 때만 제 존재 가치를 인정받는다. 디자인이나 비디오/영화 연출은 기본이고 작곡, 악기 연주, 밴드 활동, 여행, 자료 조사, 빅데이터 분석, 디지털 프로그래밍, 건축, 엔지니어링, 오타쿠 행태, 수집, 디스플레이 및 연출, 컨설팅, 마케팅, 사회운동 등등을 미술로 이전 융합하고 종합 도금하기. 이미 어디선가 누군가 다 한 것 같은 데서 출발하지만, 그로부터 감각적으로나 개념적으로나 아주 작은 차이를 만들어내 동시대 미술계의 유력한 맥락 안에 ‘작품’으로 안착시키기.
삼성미술관 리움이 개최한 〈아트스펙트럼 2016〉은 위와 같은 점에서 지금 여기 한국의 젊은 작가들 미술뿐만 아니라 동시대 미술 전반의 실재를 함축한 시그니처 전시라 해도 좋다. 1990년대 후반부터 지난 20여 년간 국내외 미술계가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구축한 현대미술의 미학적 경향 및 물질적/정신적 구조가 거기 뚜렷한 스펙트럼으로 펼쳐져 있어서다. 기획 글에 따르면 리움의 학예연구원과 외부(그러나 더 큰 틀에서 보면 미술계 내부) 전문가들이 “한국 현대미술을 보다 폭넓은 시각에서 조망하기 위해 (…) 작가 선정”에 나서 참여한 열 명/팀의 작가들 각각에서, 그리고 그 열 개의 미술 입면체가 모인 집합적 구성물로서의 전시에서 말이다.

아트스펙트럼 (21) 사본

김영은 <1달러어치〉스피커 3대, 모니터 4대, 드로잉 2점, 흡음재 3 가변크기 2016

<아트스펙트럼>에서 찾은 미학적 특수성
우선 우리가 올해의 〈아트스펙트럼〉에서 한국 젊은 미술가들의 특성으로 인정해야 할 사실은 이전 세대의 어떤 작가들에게서도 발견하기 힘든 복합적 전문 능력과 잡학적 기술이다. 그것은 흔히 사람들이 말하는 천부적 미술 재능을 의미하지 않고 다재다능함과도 거리가 있다. 또 복합적이라고 해서 보편성을 띠는 것도 아니지만, 잡학적이라고 해서 수준이 낮거나 쓸모없는 것도 아니다. 여기서 전문 능력이란 선천적으로 주어지거나 운 좋게 발현되는 미적 재능 대신, 의식적 학습과 지속적인 자기 훈련 및 실용적 조직화를 통해서 쌓은 현실 능력이다. 그런 이유로 여기 해당하는 작가들은 많은 경우 작가 개인의 특화된 경험과 이력, 창작으로의 에너지 투입과 노력의 정도가 작품의 성과 및 독특한 수준을 결정짓는 바로미터다. 이를테면 보헤미안 예술가처럼 방랑과 기행을 일삼아도 어쩌다 보니 뚝딱 천재적인 작품이 나와 있는 형편이 아닌 것이다. 그와 달리 〈아트스펙트럼〉에 근거해 볼 때, 여기 젊은 작가들의 작품은 일명 ‘스펙’을 갖춘 전문직업인 혹은 성실 근면한 연구자의 그것처럼 인풋과 아웃풋의 인과관계가 투명에 가깝다. 참여 작가 중 김영은, 옵티컬 레이스, 제인 진 카이젠이 그에 해당하는데, 특히 김영은과 그녀의 〈1달러어치〉 사운드&비디오 설치작품이 이를 잘 보여준다. 어릴 때 바이올린을 배웠고, 대학에서 전공 외로 밴드활동을 했고, 국내 대학에서 조각과 매체예술을 전공한 후 네덜란드로 유학을 가서는 음향학(sonology)을 공부한 배경, 그간 쌓은 전문능력은 김영은의 작업 이력에 고스란히 반영돼 있고, 최근에는 〈1달러어치〉로 구현된 것이다. 그 배경 및 능력은 김영은이 시각예술을 청각을 중심으로 자기 조직화하는 데, 소리를 점/선/면/볼륨 등 조형적이며 공간적인 조건들로 교환시키는 데, 디지털 음원 형태로 1.29달러에 팔리는 비물질의 노래를 두부 썰 듯 길이, 높이, 폭으로 절합시키는 데 스며들어가 있다. 그리고 〈1달러어치〉는 애초 계산상 1.29달러짜리 음원을 1달러만큼만 구매하는 것인 만큼 정직하게 분절되는 가사, 파쇄 음정, 삭제된 주파수 대역 때문에 얇아진 소리 형태로 시청각화돼 작가의 의도를 감상자에게 전달한다.
다음, 우리가 현대미술계의 실제적 경향이자 한국 젊은 작가들의 특성으로 반드시 지목할 점은 매체에 대한 다원적 접근이자 사용 역량이다. 로잘린드 크라우스나 W. J. T 미셸 등 서구의 여러 이론가가 이미 논한 것처럼, 1960년대를 기점으로 미술에서 매체는 장르적 특성과 매체 자체의 속성이 일치하는 매체특정성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주제, 형식, 의도, 용도, 방법, 기교 등에 따라 얼마든지 광범위해지거나 이질적으로 혼용돼도 좋은 포스트 미디엄의 국면으로 진입했다. 하지만 그 국면은 2000년대 들어 미술의 다른 어떤 역사적 시기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확장, 복합화, 심화했다고 봐야 한다. 그 맥락에서 나는 지금의 미술 매체 환경을 ‘예술 매체의 헤테로토피아(artistic medium’s heterotopia)’라 부르고 싶다. 이 헤테로 토피아적 매체 환경에서 어떤 작가들은 기존의 사실들, 다양한 출처의 이미지들, 기록 파편들, 익명적 정보들, 이질적 객체들을 리믹싱, 리포매팅, 트랜스포팅, 레트로 컨버전스 하는 데 열중하고 능수능란한 수준이다. 〈아트스펙트럼〉에도 여지없이 이 같은 면모를 여러 작품에서 발견한다. 앞서 김영은의 경우도 그렇지만 명시적으로는 박민하, 백정기, 안동일, 제이 진 카이젠이 이에 해당한다. 이들의 작품은 시각적으로는 완벽하게 재현되지 않는 작가의 작업 의도, 매체 사용의 목적 및 논리를 창작의 배경 내러티브로 전제한다는 점에서 대체로 개념적 미술로 분류할 수 있다. 그 중 박민하의 〈리믹싱 타임스페이스〉는 우주를 키워드 삼아 20세기 중반 이후 미국(비단 미국뿐일까마는)의 우주개발 열망과 그 실패 또는 부정성의 과정을 본인의 탐사 영상과 기성 SF 영화의 다수 풋티지로 리믹스해 만든 한 편의 영화다. 제이 진 카이젠이 취한 방법론도 크게 보면 박민하와 다르지 않다. 그러나 작가의 개인사가 작업의 핵심 기저라는 점에서, 자신의 개인사를 한국인 해외 입양, 냉전기 아시아 디아스포라, 일본군 성노예, 제주 4·3항쟁 같은 역사적/동시대적 문제들과 구조적으로 엮어 탐구한 후 비디오(역사 자료, 인터뷰, 답사 등의 필름) 설치 및 포스터 제시로 형식화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지면상 모두 논할 수는 없지만 〈아트스펙트럼〉에서 헤테로토피아적 매체성을 띠는 이 작가들의 특이성은 다양하고 이질적인 매체를 사용함에도 불구하고 최종 작품이 예술작품으로서의 미적 기능으로 소급된다는 점이다. 이는 빈 대학의 교수이자 미술비평가인 자베트 브흐만이 미술의 매체특정성과 그 이후를 “기록, 정보, 소통, 참여, 상호작용 등 매체의 특별한 [사용 및] 기능”(Sabeth Buchmann, 《The (Re)Animation of Medium Specificity in Contemporary Art》)에 따라 분류한 점에 비춰보면 다소 제한적이고 내부 지향적인 모습이다.
마지막으로 〈아트스펙트럼〉에서 주목할 한국현대미술의 미학은 여기 젊은 작가들이 사회현실과의 접점 맺기를 당연히 필요하며 적극적으로 수행해 갈 미술의 미션으로 간주한다는 점이다. 나아가 예술과 삶/사회의 결합을 꿈꿨던 서구 20세기 아방가르드의 부르주아적 방식을 답습하는 대신 자기 현실의 날것 상태 세부에서, 한국 사회의 비린내 나는 생태에서, 척박한 대한민국 삶의 생활 구조에서 작품의 내용을 구상하고 미학적 형식을 결정짓는 경향이 강하다는 점이다. 사실 이번 〈아트스펙트럼〉에 참여한 열 명/팀의 작가 모두가 그런 속성을 공유한다고 할 수 있지만, 특히 옥인 콜렉티브, 박경근, 옵티컬 레이스의 작업에서 그 특수성은 두드러진다. 옥인 콜렉티브는 거대한 마루와 언뜻 보면 미니멀리즘 영상 같은 모션 그래픽으로 이뤄진 〈아트 스펙트랄〉설치를 통해 현대미술계 내부의 작가이자 사회의 생활인으로서 딜레마에 빠진 이들의 존재를 문제 삼는다. 박경근의 영화 〈군대: 60만의 초상〉은 이 전시의 최고 수작이라 평할 만하다. 그가 2010년 〈청계천 메들리〉에서부터 파고든 한국 근현대사의 미시적 실재는 그 영화에서 한국 사회 폐부 깊숙이 각인된 군대문화와 걸 그룹처럼 춤추는 전도사 소녀들 앞에서 넋을 잃는 까까머리 훈련병들의 얼굴을 횡단하며 트리밍 되기 때문이다. 옵티컬 레이스의 경우 그래픽디자이너와 “정보 시각화 연구자”(?)가 한 팀을 이뤄 한국 사회의 여러 현상을 통계/시각화하는 식으로 미술을 한다. 이 전시에서 이들이 건드린 현상은 1979~1992년에 출생한 이들(에코세대)의 〈가족계획〉이고,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그 현상은 부모와 자녀의 소득, 결혼, 주거, 미래 설계 등이 걸려 있는 한국 사회의 복잡한 당면 문제로서 전시를 통해서는 수치를 담은 원, 막대그래프 등으로 그래픽 처리되었다. 이들 작품은 이전 세대의 사회적 미술과 비교하면 문맥이 훨씬 정교하고 담론이 풍부해졌는데 그와 동시에 시각적 감상의 대상으로서도 세련된 수준을 자랑한다. 물론 그 점이 지나치면 사회 참여적 예술에 필수 조건인 ‘신뢰’에 관한 한 민감한 지뢰가 될 수도 있지만 말이다. 그리고 결국 무엇이든 미술이 될 수 있는 예술이데올로기와 전략이 난무하는 현대미술계에서 〈아트스펙트럼〉 참여 작가만이 아니라 지금 여기 거의 모든 작가와 그/녀의 작업이 미술에 대한 신뢰와 함께 절묘하게 맞춰야 할 감각의 다른 논리지만 말이다. ●

아트스펙트럼 (75) 사본

이호인< The Tower > (왼쪽) 캔버스에 유채 227.5×162.2cm 2015 <다리를 건너는 자들> (오른쪽) 캔버스에 유채 227×181.6cm 2016

 

EXHIBITION TOPIC

서울 강남구 언주로에 새로운 문화공간, 플랫폼-엘 컨템포러리 아트센터(Platform-L Contemporary Art Center)가 들어섰다. 개관 기념전으로 중국의 양푸동과 한국의 배영환의 개인전이 열린다. 양푸동은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세 여성과 사슴 등에게 투영해 표현했으며, 배영환은 동시대를 살면서 느끼게 되는 상실감과 억압 등을 새로 은유하였다. 전시는 8월 7일까지.

나선형 역사 속에 비친 남성적 향수(鄕愁)

진휘연 한예종 교수

한 공간에서 동시에 열린 두 개인전에서 한국과 중국의 중견작가가 신작을 선보였다. 양푸동은 오프닝에 맞춰 마련된 작가와의 대화 시간에, 자신의 작품세계와 신작에 대해 비교적 상세한 설명을 들려줬다. 중국 근현대화와 경제적 팽창에 따른 도시화와 서구화, 그리고 중국 역사의 단면을 세계미술의 흐름에 근거해서 비디오와 설치, 사진으로 제작해온 작가는 이번에 차이추성 감독의 1935년 영화 〈신여성〉에 대한 일종의 오마주로 〈천색: 신여성 II〉를 제작했다.
신여성은 타지역, 특히 발달한 서구의 영향으로 달라진 옷차림을 하고, 전통이나 관습에 저항하는 모습에 국한되지 않는다. 사회, 정치, 경제, 문화적 지위 향상이나 활동 영역의 확장은 물론, 가정 안에서의 역할 변화, 그것을 둘러싸고 진행되는 타자의 수용을 아우르는 복잡하고도 총체적인 인식을 포함할 뿐 아니라, 변화를 선도하는 담론의 주체로서 인정될 때 신여성은 현재진행형 존재가 된다,
그러나 양푸동은 새로운 매체의 시대에서 만나는 여성 이미지로 신여성의 범주를 규정하고 있는 듯하다. 광고나 잡지에 등장하는 여성의 멋진 외모와 상품과 연결된 이미지들, 핀업걸들을 연상시키는 행동이나 포즈를 따라 하는 모습으로 그려낸다. 그의 작품 속 신여성은 결국 대중매체에서 반복해 노출되는 여성의 이미지에 가깝고, 매체가 그것을 재생산하는 방식에 대한 관심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런 점은 이미 1970년대 후반 신디 셔먼의 작품 〈무제: 영화스틸〉에서 다뤄졌고, 이후 여러 작가의 주제가 되기도 했다.
여성 둘이 몸에 밀착된 짧은 옷차림으로 서로의 몸에 손을 대고 있는 장면이나 비키니를 입고 과장된 움직임으로 발랄함과 젊음을 드러내는 모습, 화면 밖 관객을 강렬하게 응시하는 모습 등을 취하며, ‘여성성’과 대중매체의 이미지 체계가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함께 발전해왔음을 시사하고 있다.
양푸동은 남성 시선의 타자로서 존재할 뿐 아니라, 매력의 주체로서 여성의 자의적 태도를 과장되게 표현함으로써, 소위 여성성, 아름다움, 젊음의 허구성을 드러낸다고 했다. 매체의 선정성을 암시하지만, 동시에 여성 스스로가 이미지 제작의 주체로서 모든 장면을 연출하고 있음도 강조한다. 이런 점에서 그의 신여성은 신디 셔먼의 작품 속 여성들과 또 다른 측면을 갖는다.
눈에 보이는 것이 강렬할수록 그 뒤에 숨은 허상이 감지되지만, 작품은 실체가 아닌 것을 드러내기보다는 허구를 향한 여성과 매체의 양방향 욕망에 대한 포착이란 점에서 흥미로웠다. 무리 지어 포도를 기어가는 작은 벌레들에서 그의 의도는 절정을 맞는다. 서구 정물화의 전통에서 제기된 ‘베니타스,’ 허무함과 삶의 유한함이란 경구를 빌려와서 눈에 보이는 것에 대한 경계이자 유희의 함정을 지적한다.
장면마다 프레임의 시간을 조절하고 소리를 더함 으로써 극적이고도 흡입력 있는 영상 작품을 소개해온 작가는 중국 특유의 미적 감각, 여성에 대한 전통적 미학의 유산과 새로운 취향 간의 충돌도 담아낸다. 고대 진나라 황실에서 유래된 〈위록위마(謂鹿爲馬)〉를 기초로 한 〈사슴과 말〉에선 진짜처럼 보이는 사슴 주위를 빙빙 도는 말의 모습에서 2000년의 시간차를 두고 이어지는 중국의 역사와 예술적 감성의 연대가 부각되기도 한다.
경제적 부흥으로 사회 변화가 급격한 곳에서 여성의 이미지는 언제나 전면에 나타나는 기호가 된다. 작가는 중국 여성을 담아내는 매체의 역사적 흐름을 전제하면서도 이것을 어느 시기에도 보편성을 가질 수 있는 상황으로 전환시키려했다. 그래서 이들은 서양 기원의 옷차림에 중국 전통의 머리모양을 결합한, 모호하지만 동시에 탈지역적, 탈시간적 존재로 각인된다.
그러나 현재의 눈과 과거 사이의 거리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무수한 변수가 양푸동 작품에서 점차 정형화하고 있지는 않은지 의문이 들기도 했다. 여성과 매체, 그리고 진실과 허구라는 익숙하고도 반복적인 주제 너머의 무엇을 제시하기에 이번 작품은 매우 예스러워 보였다. 주제를 압도하는 감각적 영상도 이미 익숙한 느낌이다. 진짜와 가짜가 함께 존재하기 위해 설정된 구분과 분리의 경계가, 아슬아슬하게 숨었다 드러나기를 반복해야 하는데, 이 작품에서는 경계와 거리가 모두 너무 분명하고도 꾸준했다.

양푸동 〈천색: 신여성Ⅱ〉 5채널 HD 컬러 비디오 설치 12~15분 47초 2014

양푸동 〈천색: 신여성Ⅱ〉 5채널 HD 컬러 비디오 설치 12~15분 47초 2014

양푸동 (3)

정제된 공간에서 잠든 반항의 날개
시사적이고도 무게 있는 주제를 능숙하게 비튼 또 다른 작가, 배영환은 〈새들의 나라〉라는 낭만적 제목을 선택했다. 배영환은 자유와 억압, 권력과 욕망이라는 보편적 화두를 다룬다. 영상, 조각, 드로잉, 설치 등 입체적인 형식을 갖춘 전시에서 깃털 옷을 입은 댄서가 크로마키 배경에서 춤추는 모습을 촬영해서 〈추동추사〉란 동영상 연작으로 제작했다. 마치 새의 깃털만이 즉흥적으로 움직이듯 역동적인 모습을 담았다. 북소리의 빠른 비트에 맞추어 움직이는 깃털은 생명, 에너지, 기운, 자유의 상징처럼 보인다.
아래층의 〈말, 생각, 뜻〉과 〈사각 지구본〉은 함께 설치돼 있어서 마치 한 작품처럼 느껴진다. 눈금자 위에 눈을 가린 채 앉아 있는 큰 앵무새는 현실을 거부하는 존재이자 복종을 강요하는 권력의 실체일 수도 있고, 날기를 희망하지만 가린 눈 때문에 제한되고 억압된 세계를 상징하기도 한다. 그 주변에는 네모난 입방체 위에 대륙과 바다가 뚜렷하게 구분 돼 표시된 변형 지구본들이 놓여 있다. 진실을 거부하고, 자신의 세계에 빠져서 평평한 지구만을 신봉했던 과거 인간의 잘못된 신념, 거짓된 착각에 대한 작가의 일갈이다. 이번 전시에서 소리는 매우 중요한 요소이자 작품의 한 부분이었다. 빠른 비트의 북소리는 경쾌한 움직임을 원시의 힘처럼 느끼게 하고 확성기와 라디오에서 나오는 각국의 뉴스들도 일상이 주는 소음과 정보의 간극을 강조한다.
배영환은 깨진 소주병 조각들로 화려한 샹들리에를 만들고, 각성제로 유행가의 가사를 적거나 악보를 만들면서 권력의 가시적, 비가시적 억압에 대한 보통 사람들의 일상을 애정어린 시각과 낭만적 감성으로 제시해왔다. 시각, 촉각, 청각을 모두 자극하는 그의 작품들에서 주제의 무게와 감각적 측면은 늘 균형을 맞춰왔다. 자유로운 움직임을 통해 제도의 모순과 통제를 거부하려는 그의 의도는, ‘지금 이 시간’이라는 시사적 관점과도 연관된다. 다만 매우 설명적이고 친절한 작품과 지나치게 정돈된 표현에서, 배영환의 이번 작품들은 새로운 변형을 앞두고 있다고 느껴졌다.
이 두 작가의 개인전은 플랫폼-엘의 개관전이라는 점 외에는 공통점이 없는 듯 보인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 볼 때, 현대사회에서 매 순간 마주치는 매체의 힘과 시민 간 상호성을 담보하고, 과거부터 연속성을 갖는 시간 안에서 오늘 이 시점의 문제, 역사의 아이러니를 이미지화한다는 점에서 큰 공통점을 갖는다. 또한 감각적, 감성적 표현과 만듦새도 닮아있다. 그런데, 이들이 분석한 역사와 이미지에는 남성 시각의 편향성도 존재한다. 보이는 것 너머에서 작동하던 권력으로서의 남성 실체에 대해 큰 비판 없는 수용은 동시대 억압과 모순 안에서도 이어질 뿐 아니라, 더욱 견고한 역사화 과정을 거치게 된다. 특히 양푸동의 작품들, 자본이 요구하는 여성의 이미지에서는 허구에 대한 날카로운 지적이 드러나기보다는,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여성들의 욕망만이 더욱 강렬하게 다가왔다. 배영환 작품에서 권력과 자유라는 구조 안에서 춤추는 주체의 모습 역시, 체제 안에서 이미 용납되는 수준이자 지극히 낭만적인 반항의 표현으로 보인다.
유사한 궤도를 도는 역사의 흐름이 언제나 확장된다고 믿는다면, 이 작가들의 낭만적 감성이 또 다른 변형을 준비한다고도 생각할 수 있다. 출발점에 선 미술관 역시 여러 모양의 충돌을 수용할 수 있는 큰 시각의 기관이 되길 기대해본다. 지나치게 깔끔해서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을 듯한 공간의 성격도 앞으로 도전받아야 할 부분이었다. ●

배영환 (15)

배영환 〈말, 생각, 뜻〉 혼합재료 210×225cm 2016

배영환 (9)

배영환 〈추상동사-Can you remember?〉4채널 영상 2016

 

WORLD REPORT | SAN FRANCISCO

SFMOMA (7)

. 위 SFMOMA 1층 로비 (Roberts Family Gallery)에 설치된 리처드 세라(Richard Serra)의 < Sequence > (2006) photo:© Henrik Kam, courtesy SFMOMA 아래 척 크로스의 작품이 전시된 피셔 컬렉션(The Fisher Collection)의 < Pop, Minimal, and Figurative Art > 전시장 전경 photo:© Iwan Baan, courtesy SFMOMA

SFMOMA
San Francisco Museum of Modern Art

3년간의 공사를 거쳐 지난 5월 14일 재개관한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SFMOMA). 새 건물과 함께 전시 공간 면적을 대폭 확장해, 미국 서부를 대표하는 현대미술관으로서의 입지를 다지고 있다. 푸른 하늘을 살린 자연채광과 안개를 형상화한 건물의 조화, 광범위한 컬렉션의 만남은 미술애호가들의 발길을 샌프란시스코로 향하게 한다. 《월간미술》은 샌프란시스코를 직접 찾아 변화하고 있는 그곳의 아트신을 전한다. *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 www.sfmoma.org

낯선 건축, 열린 미술관

임승현 기자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이하 SFMOMA)이 3년간의 긴 휴식을 마치고 지난 5월 14일 신축 건물의 베일을 벗으며 재개관했다. 3만3000점에 달하는 소장품, 1억6000만달러의 건축비, 4만3000m2에 달하는 새 미술관 규모, 뉴욕 현대미술관보다 1만8000m2 넓은 전시장. 미술관을 둘러싼 숫자의 나열만으로 엄청난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한마디로 SFMOMA는 명실공히 미국 최대 규모 현대미술관으로 자리매김했다. 기자는 일반 오픈을 2주가량 앞둔 4월 28일 프레스 오프닝에 맞춰 현장을 방문했다. 미술관은 아침부터 취재를 위해 전 세계에서 모인 기자들과 지역 미술계 인사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이날 간담회에는 닐 베네즈라(Neal Benezra) SFMOMA 관장, 크레이그 에드워드 다이커(Craig Dedward Dykers) 건축사무소 스노헤타(Snøhetta) 대표 등이 참석했다. 지난 3년간 SFMOMA에는 이슈가 있었지만 무엇보다 재개관에 관한 이슈의 중심은 ‘건축’일 수밖에 없다. 세계적인 건축가 마리오 보타(Mario Botta)가 1995년 디자인한 붉은 벽돌 건물 위로 솟은 흰색 포인트의 둥근 유리천장의 미술관 건물은 SFMOMA의 상징과도 같았다. 마리오 보타는 삼성미술관 LEEUM 뮤지엄1 건축에 참여해 국내에도 잘 알려진 스위스 건축가다.
사실 이 건물은 주변 도시미감과 이질적이라는 의견이 팽배해 첫 공개 당시 논란이 일기도 했다. 그만큼 이전 건축이 지닌 존재감이 큰데다 컨템포러리 건축에 다소 보수적인 시선을 가진 샌프란시스코의 분위기 때문에 신축의 부담감은 막중했을 것이다. 이에 대해 크레이그 에드워드 다이커는 “보타의 건축물과 연계해서 작업해 영광스럽다. 보타의 건물은 상징적이다. 그러나 우리는 외관에 있어서 그의 건물과 통일성을 주려 하지 않았다. 사실 보타의 건물을 리노베이션하면서 가장 곤란한 부분은 로비에서 천장으로 이어지는 육중한 계단이었다. 우리는 이를 나무계단으로 대체했다. 마리오 보타는 너무나 관대하게 받아들여 주었다”고 소감을 전했다. 건축사무소 스노헤타와 SFMOMA는 기존 건축을 보존 및 보완하면서 바로 뒤에 10층 높이의 새 건물을 지어 전시 공간을 3배 이상 확보했다. “공공성의 확대를 새로운 목표로 삼는다”는 닐 베네즈라 관장의 말처럼 새로운 건축은 세부적인 부분에서 ‘소통과 열린 공간’을 지향한다.
우선 근교와 도시의 연계를 위해 유입 인구가 많은 방향으로 새로운 입구를 추가 설치했다. 이 입구로 들어서자마자 공공 갤러리가 이어진다. 통유리로 밖에서도 볼 수 있는 이곳은 시민들이 전시관람과 상관없이 드나들 수 있는 휴식공간이다. 이곳에는 현재 리처드 세라(Richard Serra)의 상징적인 조각 (2006)가 놓여있다. 한편 자유로운 입장이 가능한 3층 테라스는 야외 조각과 미국 내 최대 크기의 식물 담장(living wall)이 있다. 1만5000종 이상의 지역 식물이 자라고 있어 계절과 시간에 따라 독특한 풍경을 자아낸다. 식물 지배엔 빗물과 재활용수를 이용한다. 갑갑한 빌딩 사이로 자연을 끌어드린 효과를 준다.
이외에도 여름에 안개가 많이 끼는 샌프란시스코의 날씨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한 동쪽 파사드, 기존 건물에서 둥근 유리천장으로 이어지는 육중한 계단을 가벼운 나무 재질로 바꾸면서 신관 역시 같은 재질과 구조의 계단을 층별로 사용해 건물 전체에 내부적 통일감을 살린 점이 주목할 만하다. 또한 1m 정도의 간격을 두고 세워진 신축 건물과 기존 건물을 교묘하게 연결했는데 전시장에 작은 창을 뚫어 이 연결지점을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게 한 점은 소소한 재미다. 사실 두 건물의 외관은 이질적인 물질성을 띤다. 붉은 벽돌 건물과 언덕이 많은 지형적 특징을 담아 볼록한 수평선으로 입체감을 살린 스노헤타의 건물이 막상 실내에서는 물흐르듯 하나로 연결되는 것이다.

4. The new SFMOMA, view from Yerba Buena Gardens; photo Jon McNeal, © Snøhetta

Yerba Buena정원쪽에서 바라본 SFMOMA photo: Jon McNeal, © Snøhetta

미술관의 공공성
건축만큼이나 중요한 부분은 바로 전시다. 재개관전은 미술관이 나아갈 방향과 색깔을 보여주는 장이다. 아쉽게도 SFMOMA의 재개관은 전반적으로 ‘전시’보다는 ‘건축’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아무래도 강렬한 주제를 선정하거나 창의적인 담론을 제시하기보다 소장품을 보여주는 다소 밋밋한 설정 때문인 듯하다. 화려하고 거대한 스케일의 전시에 비해 소장품전은 극적인 효과를 내기 쉽지 않다. 소장품을 묶어낸 주제도 뻔하다. 그러나 ‘시대’와 ‘장르’ 중심으로 나눈 교과서적 분류에도 불구하고, 이 전시를 통해 드러내고자 하는 미술관의 메시지는 뚜렷하다.
앞서 닐 관장의 말을 인용했듯 SFMOMA는 ‘공공성 확대’에 열을 올리고 있다. 18세 이하 청소년에게 전시를 무료개방하며, 다양한 시민참여 교육프로그램을 개발, 지역과의 연계를 확대할 운영 방침을 내세운 상태다. 그런데 이러한 맥락에서 공공성의 대상이 미술관만은 아닌 것 같다. 미술관을 찾고, 유지하는 사람들에게 화살을 돌린듯한 메시지가 전시에서 전달된다.
이번 개관전은 소장품을 크게 3가지 갈래로 나눠 총 19개의 주제로 구성됐다. 그런데 각 전시는 미술관에 작품을 기증 및 장기대여한 컬렉션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마치 SFMOMA에 작품을 기증하면 ‘최고의 환경에서 당신의 작품이 빛날 수 있도록 미술관이 최선을 다해 노력하겠다’는 듯한 무언의 프로모션 의지가 엿보인다.
그 첫 번째는 100년간의 장기 임대 파트너십을 체결한 ‘도리스 앤 도날드 피셔 컬렉션(Doris Donald Fisher Collection)’(이하 피셔 컬렉션)이다. 피셔 컬렉션은 의류브랜드 갭(GAP) 창업자 부부의 소장품으로 전후 미술 부분에서 가장 큰 개인 컬렉션 중 하나다. 260점의 피셔 컬렉션 중에서 미국 추상표현, 팝, 미니멀과 구상미술의 섹션에 해당하는 대표작을 선별해 전시했다. 성곡미술관 개인전으로 국내에 잘 알려진 척 클로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엘스워스 켈리 외 아그네스 마틴, 앤디 워홀, 로이 리히텐슈타인 등이 대표적인 작가다. 1960년 독일 미술작품도 주목할 만하다. 시그마 폴케, 게르하르트 리히터 등의 작품을 집약적으로 한자리에 모아놓아 집중도를 강화했다. 이 외에도 통유리벽을 사용해 리빙 가든과 마주보는 전시장에 놓인 1920~1960년대에 걸친 알렉산더 칼더의 모빌 작업, 신관과 구관이 연결되는 전시장에 놓인 ‘영국의 조각가’-토니 크레그, 리처드 데컨, 바바라 앱스워스와 리처드 롱-의 섹션은 화이트큐브이면서도 큰 창을 통해 도시의 모습을 전시장으로 끌어들여 야외에 있는 듯한 착각을 준다.
두 번째 컬렉션은 ‘캠페인 포 아트(Campagin for Art)’이다. 2009년부터 230명의 지역 미술 컬렉터로부터 기증받은 3000여 점의 작품 중 엄선한 600점의 현대미술 작업을 장르별로 나눠 선보였다. 이러한 기증문화는 기증자와 미술관 간의 유대와 공고한 신뢰를 부여준다. 또한 미술관 내에 플리츠커 센터 포 포토그라피(Pritzker center for Photography)라는 이름으로 자리 잡은, 미국 내 최대 사진관련 전시실이자 연구 공간에서 열리는 사진전도 마련했다. 리사 앤 존 플리츠커(Lisa and John Pritzker Family) 재단에 의해 완성된 이 공간에는 다워드 베이, 줄리아 바가렛 바케런,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등의 작업이 전시되었다. 일련의 전시는 미술관이 대중에게 문을 여는 만큼, 대중 또한 미술관 주요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을 각인시키며 적극적인 참여를 바라는 미술관의 의도를 여과없이 드러낸다.
SFMOMA는 이제 미국 서부를 넘어 세계 현대미술에서의 역할을 꿈꾼다. 이를 구축해가는 배경에 화려하고 실용적인 건물과 내실 있는 큐레이터도 한 몫을 할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미술관의 미래를 밝히는 부분은 미술관을 구성하고 받쳐주는 자본가와 지역주민들을 미술관의 참여자로 끌어들였다는 점이다. 시원한 샌프란시스코의 바다처럼 SFMOMA는 재개관을 시작으로 미술관의 외연을 차츰 확장해 나갈 것이다. ●

WORLD REPORT | SAN FRANCISCO

“새로 개관한 샌프란시스코 전시공간 베스트3”

샌프란시스코는 LA에 이어 미국 서부 제2의 도시이자 대표적인 아트 허브다. 이곳은 ‘미국의 유럽’이란 별칭이 있을 만큼 빅토리아시대 건물이 즐비하고, 케이블카가 다니는 고전적 아름다움을 머금고 있으면서 한편으로 최첨단 기술산업이 발달한 실리콘밸리가 공존하는 차분하면서도 역동적인 도시다. 최근 샌프란시스코는 현대미술에 대한 뜨거운 관심으로 클래식한 도시에 모던한 감성을 입히는 중이다. 미국 서부의 어느 도시보다 활발하게 움직이는 샌프란시스코의 아트신에서 최근 1년 이내에 개관 혹은 재개관한 ‘핫 플레이스’를 직접 방문해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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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iu Zhijie 〈 Sketch of The World Garden 〉(오른쪽)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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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ller Scofidio+Renfro가 건축한 UC Berkeley Art Museum and Pacific Film Archive 외관(2016) Aerial view from the UC Berkeley campus. Photo by Iwan Baan. Courtesy of Diller Scofidio+Renfro; EHDD; and UC Berkeley Art Museum and Pacific Film Archive(BAMPFA)

버클리대학교 미술관
UC Berkeley Art Museum and Pacific Film Archive(BAMPFA)

미술관을 확장 이전하는 경우는 있어도 규모를 줄여 재개관하는 일은 극히 드물다. 지난 1월 31일, UC 버클리 대학에서 운영하는 미술관, BAMPFA(이하 밤프파)가 이전보다 실면적을 줄이면서 건물을 신축해 재개관했다. 밤프파는 1997년 내진설계 기준 미달 판정을 받은 후부터 신축 논의가 있었다. 2010년 뉴욕 하이라인 프로젝트에 참여한 건축사무소 ‘딜러 스코피디오+렌프로(Diller Scofidio+Renfro)’는 대학의 프린팅 공장 건물을 유지하면서 증축하는 독특한 디자인을 제안했다. 기존의 공장 위에 삼각형 구조를 2층으로 테트리스처럼 쌓아놓은 형태를 띤다. 미술관을 이전하면서 기존 건물보다 실면적은 줄였지만 창의적인 공간구획으로 영화관, 전시장, 카페테리아 등의 공간을 확보했다. 개관전 〈삶의 건축 (Architecture of life)〉은 밤프파의 디렉터 로렌스 린더(Lawrence Rinder)가 직접 기획했다. 미술관 신축에 맞춰 기획된 이번 전시는 건축 드로잉과 모델을 나열하기보다 간학문적 시각 매체를 통해 건축과 삶의 유기적 연결지점을 찾고자 한 독특한 개념의 전시다. 전시 못지않게 눈에 띄는 작품은 로비에 있는 대형 벽화다. 중국 작가 추즈제(Qiu Zhijie)의 〈세계정원의 스케치(Sketch of The World Garden)〉인데 이 작업은 통유리를 통해 밖에서도 누구나 볼 수 있다. 이 벽화 프로젝트의 시작을 중국인 작가에게 맡겼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 밤프파는 아시아 미술에 어느 곳보다 애정을 쏟는다. 버클리대는 권위있는 중국미술사학자 제임스 케일(James Cahill)(1926~2014)이 학생을 가르치던 곳이기도 하다. 미술관은 재개관에 맞춰 미술관 한 켠에 그의 이름을 딴 ‘제임스 케일 아시아 아트 스터디 센터’를 마련해 누구나 그가 남긴 연구업적을 포함한 방대한 양의 아시아 미술 자료를 조회하고 리서치할 수 있도록 했다. 밤프파는 영화 분야에도 특화되어 있다. 특히 일본, 소비에트 영화의 최대 컬렉션을 자랑하는 17,500여 편의 영화와 비디오는 미술관의 자랑이다. 새 건물에는 232석과 33석이 겸비된 두 영화 상영관이 마련되어 다양한 영화프로그램을 이어갈 예정이다.

다이닝룸 전경 photo: Henrik Kam, taken November 2015, courtesy 500 Capp Street Foundation

< David Ireland House >다이닝룸 전경 photo: Henrik Kam, taken November 2015, courtesy 500 Capp Street Foundation

데이비드 아일랜드의 집
David Ireland House

“‘예술을 위한 예술’을 하지 않을 때 진정한 예술이 된다.” 일상의 오브제를 작업으로 승화한 개념미술 작가 데이비드 케네스 아일랜드(David Kenneth Ireland, 1930~2009)의 말이다. 그의 말을 증명하듯 샌프란시스코에서 활동한 이 작가의 대표작은 ‘500 Capp Street’에 위치한 〈데이비드 아일랜드의 집> 자체다. 1975년, 그는 1886년에 세워진 빅토리안식 집을 구매했다. 창문의 몰딩을 제거하고, 벽체를 벗기고, 노란색 폴리우레탄으로 바니시 칠을 해서 집을 개조했다. 또한 30년간 생활하면서 생활도구부터 가구까지 점차 그의 작품으로 채웠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2004년 그가 건강 악화로 집을 떠난 후 가족들이 경제적인 문제로 집을 부동산에 내놓았다. 이 소식을 들은 지역 컬렉터이자 후원자인 칼리 윌리엄스(Carlie Williams)는 집을 구매하고 작품의 보존을 위해 거리 이름을 딴 ‘The 500 Capp Street 재단’을 설립했다. 여기에 데이비드 아일랜드의 오랜 동료인 안 해치(Ann Hatch)와 예일대 아트갤러리의 디렉터인 조크 레이놀드(Jock Reynolds)가 협력해 작품 보존 및 복원에 참여했다. 2014년 시작된 복원작업은 2년의 시간을 거쳐 올해 1월 15일 드디어 대중에 공개됐다. 의외의 공간에 놓인 책, 가구, 서신을 포함한 그의 일상 속 작업은 마치 시간여행을 떠난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데이비드의 정신은 일상과 지역 공동체에 깊이 뿌리박혀있다. 그런 그의 삶이 기록된 공간을 유지하고 동시에 대중에 공개함으로써 그의 유산을 확대하는 일에 참여했다는 것은 영광스러운 일”이라는 칼리 윌리엄스의 말은 미술 후원자의 태도와 역할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미네소타 (5)

Minesota Street Project의 '1275 Minesota Street' 외관과 전시장 전경

Minesota Street Project의 ‘1275 Minesota Street’ 외관과 전시장 전경

미네소타 스트리트 프로젝트
Minnesota Street Project

지난해 여름, 샌프란시스코 근교에 위치한 산업단지 도그패치(Dogpatch)에 2층 창고형 건물을 개조한 복합문화공간, 미네소타 스트리트 프로젝트가 들어섰다. 이 프로젝트는 비영리 예술공동체와 상업 갤러리 간 지속가능한 문화적 연대를 목표로 한다. ‘1275 미네소타 스트리트’는 프로젝트의 시작을 알리는 공간으로 현재 10개의 상설 갤러리를 포함해 2곳의 순환 갤러리, 다목적 미디어룸 등이 들어서 있다. 서울에도 한 건물에 여러 개의 상업 갤러리가 모인 경우는 있지만 지역 주민을 위한 비영리적 성격을 띤 공간이 포함된 경우는 드물다. 이곳의 설립자인 앤디 라파포트(Andy Rappaport)와 그의 아내 데보라 라파포트 (Deborah Rappaport)는 실리콘밸리 사업가 출신의 열렬한 아트컬렉터다. 이들은 3년 전 그들이 자주 가던 샌프란시스코 유니언스퀘어에 위치한 몇몇 갤러리가 치솟는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갤러리 유지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에 “후원자의 도움을 통해 자생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예술 기업의 대안 모델이 필요하다고 느꼈다”며 설립 배경을 말했다. 미네소타 스트리트 프로젝트는 계속 확장 중이다. 6월부터 작가 스튜디오 건물인 ‘1240 미네소타 스트리트’를 오픈하고 매년 70명의 작가를 수용할 예정이다. 3번째 공간인 ‘1150 25번가 스트리트’는 최근 떠오르는 해안 지역(Bay Area) 작가들의 작업을 보관하는 수장고로 운영할 전망이다. 워낙 큰 규모의 프로젝트가 진행되다 보니 이 지역은 짧은 시간 안에 샌프란시스코 미술계의 새로운 아트밸리로 부상하고있다. 데보라는 “돈을 벌기 위해서 시작한 일이 아니다”라며 “작가와 갤러리가 보다 더 자유롭게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도록 돕고싶다”고 말했다.

샌프란시스코=임승현 기자

* 샌프란시스코관광청 www.sanfrancisco.travel